<탄핵 후폭풍> 혼돈의 대선판 관전포인트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3.10 17:09:07
  • 호수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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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보수 대결집? 문 지고 황 뜬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됐다. 정국은 빠르게 조기 대선 체제로 본격 전환될 전망이다. 대선이 60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 당의 대선주자들은 정권 쟁취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권교체에 대한 민심이 주를 이루는 상황서 보수진영에선 대반전 카드를 기획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탄핵 직후 각 당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자 여야 대선주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9대 대선은 3월10일 기준으로 60일 뒤인 오는 5월9일 경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야권은 현 정국을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룰 최적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합계가 과반을 넘으면서 이번 대선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
끝까지 간다?

앞서 민주당은 정당들 중 가장 우선적으로 선거인단 모집에 들어가면서 대선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난 9일에는 선거인단 모집을 마감해 본격 경선 체제로 돌입했다. 민주당은 대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버티고 있는 가운데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전장을 내민 모습이다.

일각에선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은 강력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대선판을 지배하고 있다. 경선 과정서 문 전 대표가 낙승을 거둘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돌발 변수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선 안 지사의 재반등이 문 전 대표의 대권행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지사는 ‘대연정’ 발언을 통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중도와 보수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때 문 전 대표와 10% 안쪽으로 격차를 좁히면서 안풍(安風)이 불 조짐을 보였지만 ‘선의’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20%을 넘었던 지지율은 5% 이상 빠져 15%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여권의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까지 덜미를 잡혔다.
 

일각에선 탄핵이 인용되면서 줄곧 통합을 강조해왔던 안 지사가 반등을 이끌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탄핵 결과로 인해 양 극단으로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통합’을 강조해온 안 지사가 호재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탄핵 인용 결정, 대선구도 지각변동 예상
문 대세론 휘청…안희정·이재명 반전기회

안 지사 측도 통합 이미지를 통해 문 전 대표를 잡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안 지사 캠프의 총괄본부장인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지난 9일 “미래 대한민국을 통합해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는 문제의식서 출발한 게 대연정”이라며 “지금까지는 탄핵이 이슈였지만 앞으로는 탄핵 찬반으로 맞서 있던 국론을 어떻게 통합할 것이냐가 국민적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시장은 선명성을 강조하며 경선 대역전을 노리고 있다. 지난 8일 이 시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문 전 대표의 사드 및 안보 현안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시장은 지난 6일에도 문 전 대표를 공격했다.

그는 “문 전 대표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복지재원 확보의) 가장 마지막 방법이라고 얘기한다”며 “경제 기득권자나 재벌, 사회의 온갖 기득권자가 문 전 대표에게 몰리는 것 같다”고 말해 문 전 대표의 재벌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 시장이 문 전 대표에 공세를 퍼 붓는 것은 안 지사를 따돌리고 문 전 대표와 양강구도로 가기 위한 방법론으로 풀이된다.


이 시장 캠프 관계자는 “우리는 2등이 아니라 1등이 목표다. 문 전 대표와 대비되는 이 시장의 정치적 리더십을 국민이 알게 되면 경선서도 결국 이 시장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지사와 이 시장은 문재인 대세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손이냐 안이냐
국민의당 딜레마

탄핵이 인용돼 정권교체에 대한 전 국민적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국민의당은 적신호가 켜졌다. 민주당이 경선 룰을 확정짓고 대선 채비를 갖추는 동안 국민의당은 이조차 확정짓지 못했다.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희의 의장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손 의장의 합류로 확장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국민의당은 정체 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는 국민의당의 창당 기반인 호남도 민주당에 빼앗긴 모양새다. 좀처럼 반등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줄곧 결국 ‘문재인 vs 안철수’구도로 갈 것이라고 했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에 본인과 문 전 대표가 결국 최후의 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문 전 대표는 “만일 (안 전 대표가) 보수 후보가 된다면 결국 정권교체 후보와 정권연장의 맞대결이라고 본다”며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훨씬 많기에 누가 상대 후보가 되더라도 정권교체를 이뤄낼 자신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양자대결 성사여부는 대선 직전에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략 5월9일 경에 대선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다수의 민심은 민주당 경선에 쏠려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경선서 최종 낙점된 사람은 탈락한 나머지 2명의 지지율을 끌어들여 강력한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국민의당은 경선 흥행을 장담할 수 없고 문 전 대표와 양자구도로 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보수 후보들이 전멸한 상황에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주장하는 안 전 대표쪽으로 보수층이 결집한다면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보수진영도 적신호가 들어오긴 마찬가지다. 일단 바른정당은 박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박차고 나왔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 앞서서는 기각 시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쓰는 강수를 뒀다.

탄핵이 인용으로 결론남에 따라 바른정당은 국정 농단의 책임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됐다.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탄핵 반대 진영은 점점 목소리를 높여왔다. 샤이 보수층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헌재를 압박하고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의원들도 탄핵 기각을 주장했다.

바른정당은 중간에 낀 모양새였다. 바른정당의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지지율이 정체되며 반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바른정당에선 새로운 대체마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정운찬 전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대해 “얘기는 오가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으로 가면 묻혀버린다”며 여타 정치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황 vs 홍
보수 카드는?

탄핵이 인용됨에 따라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게이트’의 책임을 떠맡게 됐다. 탄핵정국서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기각을 주장했기 때문에 보수층의 결집을 얻긴 했지만 ‘부역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그럼에도 보수층은 잠재적으로 자유한국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황교안 권한대행과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주목하고 있다.
 

황 대행은 대선출마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지만 현재 전체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의 공동 책임자라는 부담이 있지만 보수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선 대선 출마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고수했던 황 권한대행이 조만간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는 20일경 대통령 선거일이 공고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 공고 권한은 황 대행에게 있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난 상황에서 황 대행이 대통령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대선 출마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황 대행의 출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지난 2일 황 대행은 국가조찬기도회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사람이 마음으로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다”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당초 원고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황 대행의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는 ‘황대만’(황교안 통일 대통령 만들기)의 출범이다. 황대만은 자체 구성원을 모집해 본격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문vs안’ 양자구도 가능성은?
황 저격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높은 지지율을 보유하고 있는 황 대행 영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황 대행이 출마하면) 흥행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황 대행이 다양한 리스크에도 불구, 여론 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하지 않는 등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대선 출마의 명분과 방법을 찾는 데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2심 무죄 선고로 단숨에 대권주자로 떠오른 홍 지사와 황 대행이 당 내 경선서 맞붙을 경우 충분한 흥행몰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홍 지사는 대선 출마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9일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만나 “당비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당원권 회복을 요청했다.

홍 지사는 지난 8일 한국당 초선의원들을 만난 자리서 “대선에 대한 생각이 조금 있다”고 말해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이어 “1997년, 2002년, 2007년 세 번의 대선을 치러봤기 때문에 대선 경험은 당내서 제일 많다”며 “어차피 대선은 진영싸움으로 5대 5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문재인 때리기에도 열을 올렸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가 얘기하는 정권교체는 정권탈취”라며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콘텐츠도 없던 박근혜 후보 하나 제압 못했다”고 말했다.

한 정치전문가는 “보수층은 이러다가 정권이 넘어가고 적폐청산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 속에 표를 결집시키면서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라며 “황 대행이나 홍준표 경남지사 쪽으로 보수표가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도는 어디로
빈자리는 누가?

탄핵 이후의 대선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탄핵 인용은 사법부의 판단으로 현 정권이 정말 잘못된 정권이라는 인식을 재확인 시킬 것”이라며 “보수 결집현상을 예상할 수 있으나 캐스팅보터인 중도층이 확고하게 야당을 찍을 공간이 더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탄핵’ 박근혜가 잃은 것

탄핵이 인용됨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 따라 경호·경비를 제외하고 연금 혜택 등 모든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경호법은 현직 대통령이 임기 만료 전에 퇴임할 경우 경호 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5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파면이 결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 칩거 생활을 정리하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지난해 10월 “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서울 삼성동 사저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로 바로 가지 않고 임시거처로 옮길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 언론은 “탄핵 인용시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팔고 경기도에 새 집을 구할 것”이라고 보도키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삼성동 사저로 돌아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으로 인해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현직 대통령에게 보장됐던 형사상 불소추 특권도 사라지게 됐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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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