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안희정 ‘노짱’ 프로젝트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27 11:26:05
  • 호수 1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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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 타고 차령산맥 넘어 중원을 장악하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상승세가 매섭다. 한 달여 만에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2위 자리를 꿰차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그는 ‘대연정’ 카드를 내세우며 중도·보수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자연스레 문 전 대표로 흐를 것으로 보였던 당내 경선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다. <일요시사>는 ‘제2의 노무현’을 꿈꾸는 안 지사의 대역전 카드를 살펴봤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곤욕을 치렀다. 지난 19일 부산대학교서 열린 강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들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다”고 말하면서부터다. 국정 농단의 최정점에 있는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안 지사와 각을 세우지 않던 민주당 문 전 대표도 “해명을 믿지만 말 속에 분노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대연정 카드
중원 흔들다

자신의 친정인 민주당에서까지 비난 행렬에 동참하자 안 지사는 사과로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22일 안 지사는 “어떤 분의 말씀이라도 그 말의 액면가대로 선의를 받아들여야만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그것이 최근 국정농단 사건에 이른 박근혜 대통령의 예까지 간 것은 아무래도 많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선의 발언으로 안 지사는 일격을 받았다. 설 이후 급등했던 지지율도 주춤했다. 알고 보면 보수층을 겨냥하다 악수를 둔 ‘선의’ 발언은 앞서 ‘대연정’ 발언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2일 안 지사는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가진 기자간담회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반대 진영의 사람들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함께 국가의 목표를 합의할 때 국민들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시대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지사의 대연정 발언은 야권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다만 중도와 보수층의 지지율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앞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서도 그는 “이전 정부의 협상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해 민주당 지지자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열린 관훈 토론회서 안 지사는 ‘자유한국당이 개혁과제에 동의하면 손을 잡을 수 있나’라는 질문에 “새누리당이든 한국당이든 당의 강령집은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 서로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는 정책은 많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심지어 여당일 때 (특정 의견을)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이를 반대한다. 서로 싸우기 위한 행동”이라며 “협치와 대화의 능력을 높이지 않고서는 헌법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중도와 보수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며 중원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 초기 문 전 대표의 ‘페이스메이커’ 혹은 ‘차차기 주자’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이재명 성남시장에 가려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도 보수층을 아우르는 발언과 동시에 문 전 대표와 각 세우기가 지지율 상승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타 대선주자들이 주춤한 사이 새로운 화두를 계속해서 던진 점도 그의 상승을 견인했다. 안 지사의 메시지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사퇴 이후 갈 곳을 잃은 중원 민심을 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지율 급상승 단숨 2위 자리 꿰차
대연정 카드 먹혔다 ‘노풍’ 재현?

현 안 지사만큼 ‘문재인 대세론’을 강하게 위협한 존재는 아직까지 없었다. 다만 민주당 경선을 통과해 최종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내 지지율이 60%를 육박하는 문재인이라는 벽을 넘어야만 한다. 현재 안 지사의 당내 지지율은 20% 중반에 머물러 있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경선을 앞둔 시점부터는 전체 지지율이 아닌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율이 중요하다”며 “당 지지자들의 60% 이상은 여전히 문 전 대표를 지지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역전하기는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이 문 전 대표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안 지사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지난 20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지지율에서 문 전 대표는 33%, 안 지사는 20.4%를 기록했다. 호남 지지율은 문 전 대표 32%, 안 지사 21.1%를 나타냈다. 대전·충청 지지율은 문 전 대표 30%, 안 지사 32.2%를 보였다.

결국엔 호남
노무현 DNA?

단순 지지율만 놓고 보면 안 지사는 2월 첫째 주부터 지지율이 수직상승했고, 문 전 대표는 30%의 지지율을 지킨 모양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호남 민심이다. 호남서 문 전 대표는 안 지사와 10% 이상 격차를 벌리며 우세를 보이고 있다.
 

안 지사의 호남 지지율은 본인의 전체 지지율과 동반 상승했지만 문 전 대표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 어느 지역보다 호남이 중요한 이유는 대선의 척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야권이 승리한 대선을 보면 호남의 강자가 최종 대권을 차지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면치 못했다. 본격적으로 경선이 시작되자 예상 밖으로 호남민심은 노 후보를 향했고, 호남서 승리했다. 결국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최종 경선서 승리한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 각종 여론지표상 안 지사는 대전·충남·TK, 5060 지지율에서 문 전 대표보다 비교우위에 있다. 전체 지지율 상승과 당내 지지율 극복도 중요한 문제지만 호남서의 지지율 상승이 급선무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 경선이 호남에서 처음 치러진다는 점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자칫 경선 초반에 문 전 대표에게 승기를 넘겨줄 가능성도 있다. 중도 보수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안 지사가 호남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복안은 무엇일까.

야권의 적통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자 최적의 묘수로 꼽힌다. 안 지사는 지난 11일 1박2일 코스로 호남행에 나섰다. 그는 ‘노풍’의 진원지인 광주를 방문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국립 5·18민주묘역을 방문해 방명록에 “꺼지지 않는 횃불 5·18”이라고 적으며 광주민심을 향한 구애를 펼쳤다.

‘안희정을 지지하는 사람들’ 행사에 참석한 그는 “야당의 역사는 당내 주류 선거판에 소수자로서 도전한 김대중의 40대 기수론과 2002년 이인제 대세론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던 노무현의 도전·역전의 역사였다”며 “그런 민주당의 DNA와 역사로 2017년 새로운 기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안 지사의 품성이 선거 공학적 계산이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며 “보름 전 호남 방문 때 나타난 ‘안희정 지지세’를 재확인하고 그 기세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자구도 우세
양자구도 만들기


아울러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일대일 구도를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정치권은 민주당 경선서 강력한 양자대결 구도를 형성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을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안 지사 측은 “문 전 대표와 양강구도를 강화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지세 확산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민주당 경선은 당원과 국민이 1인 1표씩 행사하는 1차 투표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치러 대선후보를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안 지사 측은 내친김에 지지율을 끌어오려 1차에서 승부를 보자는 생각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결코 불가능한 주장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가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안 지사는 모든 3자 대결서 지지율이 50%가 넘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의 3자 대결서 안 지사는 51.4%를 얻었다. 안 전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의 3자 대결서도 55.3%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3자 대결서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이 같은 결과는 확장성 측면서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에 비해 우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내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안 지사 지지 선언을 준비하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비문(비 문재인)계 한 초선 의원은 “문 전 대표가 대권 경쟁서 앞서 나가면서 경선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의원들이 많았는데 현재는 안 지사를 지지하고자 하는 의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안 지사 측 관계자도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문의가 많이 온다”며 “합류를 타진하는 인사가 꽤 있다”고 귀띔했다.

비문계 리더급 인사들 중 일부도 안 지사 지지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4일 비문계 의원 20여명이 모인 자리서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안희정은 초기 노무현, 문재인은 말기 노무현이라는 얘기가 젊은이들 사이서 돈다고 하더라”며 안 지사에 대해 긍정 평가했다.

TK·충남 이겼는데…당내 경선 힘들다?
김종인·박영선 돕나? 지사직 내놓고 배수진

이어 “현재 민주당은 다양한 목소리와 비판에 대해 입을 막고 있다”며 “이래서는 수권정당이 되기 어렵고, 정권을 잡더라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문재인 대세론’에 의해 당내 경선의 역동성 약화와 내부 분위기 경직을 꼬집은 셈이다.

안희정 캠프 총괄본부장인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지난 22일, 안 지사와 김 전 대표의 관계에 대해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김 전 대표의 의견을 많이 듣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가 깊이 지원해 줄 지 여부에 대해서는 “김 전 대표가 안 지사에게 우호적이고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해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4선 중진 비문계 박영선 의원도 안 지사 공개 지지를 긍정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박 의원의 한 측근은 “박 의원이 애초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안 지사가 선대위 없는 당 중심의 선거를 강조하면서 어떤 식으로 지원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 지사 측이 박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첫 순회 경선지인 호남 지역 내 박 의원의 높은 인지도와 지지 기반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안 지사가 도지사직 사퇴 카드를 꺼내 반전 계기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도지사직을 사퇴할 경우 배수진 효과로 인해 문 전 대표를 추월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충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공세도 안 지사의 지사직 유지를 힘들게 하고 있다.

충남 홍성의 한 도의원은 임시회 본회의서 “많은 도민이 도정공백으로 인한 도의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있다”며 “210만 도민은 지사의 권력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모품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대선 일정이 본격화되면 안 지사가 도정을 챙기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 지사 측은 지사직 사퇴에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안 지사 캠프의 한 인사는 “다음 대선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서 도지사직 사퇴 여부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경선 일정을 보고 만약 사퇴해야 한다면 도민과 상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사직 내놓고
판 뒤엎는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 지사의 향후 대권 가도에 대해 “만약 중도 보수층에 더 어필이 돼 지지도가 25%를 돌파한다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며 “다만 민주당 경선 참여 의향 자체를 조사해보면 안 지사의 경선 지지층이 낮기 때문에 하락 국면도 배제키 어렵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희정 캠프에 누가 있나?

한때 '좌희정 우광재'라 불렸을 만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꼽힌다. 최근 대선주자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안 지사의 캠프 사람들도 자연스레 노무현 사람들로 꾸려졌다. 크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신 인사와 충남지사 선거 캠프 때 함께했던 민주당 소속 인사 등 두 부류로 나뉜다.

참여정부 출신으로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초대감사를 맡은 수도권 3선의 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안 지사 대선 캠프의 총괄본부장 겸 좌장을 맡고 있다. 서갑원 전 의원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도 여기에 합류했다.

안 지사와 30년 정치적 동지로 알려진 이 전 강원도지사도 외곽에서 안 지사를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열린우리당 염동연 전 사무총장은 실무를 맡고 있다. 원조 친노로 불리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캠프 실무총괄실장을 맡고 있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메시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 윤 전 대변인에게 총괄본부장을 맡겼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밖 인사로는 주로 안 지사의 학생운동이나 충남지사 선거를 도왔던 인물들이 참여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홍보를 맡고 있고,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조직, 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대변인은 안 지사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박수현 전 의원이 맡았다. 공보특보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대표실 부실장을 역임한 김진욱 전 부대변인이 맡고 있다. 안 지사의 정책은 조승래 의원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의원과 전문가그룹이 담당하고 있다.

경제 멘토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경제사령탑을 맡은 바 있는 이헌재 전 부총리와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이 맡고 있다. 이 밖에 외교·안보는 김흥규 아주대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장이 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안 지사의 사드 배치 합의 존중 발언은 김 소장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외곽에서는 안 지사의 싱크탱크(정책입안자) 역할을 하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속 인사들이 지원사격 중이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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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