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 가진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다.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그릇의 등장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여전히 옹기에 빠져 흙을 빚는 사람들이 있다. 이현배 장인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은 오는 26일까지 이현배 옹기장의 전시회 <오늘의 옹기: 이현배>전을 개최한다. 전통 방식에 기능성과 현대적 미감을 더한 옹기장이 이현배 장인의 26년간 결과물을 총망라하는 자리다.
장인의 명품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옹기를 조명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예술과 삶의 조화로운 접점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현배 장인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전시는 ‘아름다운 모양새’ ‘다양한 쓰임새’ ‘옹기다운 옹기’ 등 세 주제로 나뉘었다.
아름다운 모양새에선 자기에 비해 소박하다는 이유로 미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전통 옹기에 대한 장인의 심미적인 탐구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장인의 항아리는 일반 남부식보다 어깨가 벌어지고 입술이라 불리는 ‘전’을 야무지게 잡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고 역동적인 특징이 있다.
또 나아가 장인은 기존의 일반적인 옹기 형태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예를 들어 곤쟁이 젓독의 현대적 원통 조형미를 활용해 아름다운 쌀독과 키다리 화분을 탄생시키는 방식이다. 장독이 땅에 묻힌 모습을 닮은 납작연봉단지, 세련된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자라병의 변신을 보면 옹기 본연의 조형미를 극대화하려는 장인의 손길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장인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발효 음식의 맛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발효 숙성, 신성도 유지 면에서 전통 옹기의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 도시 평균 살림규모에 적합한 장독세트를 1990년대부터 제안해왔다.
국수상, 서양식 상차림, 에스프레소잔 엄지와 커피 로스터기, 한약 한 첩을 데워 먹기 편한 약손 등을 선보였다. 다양한 쓰임새를 주제로 한 전시에선 거친 옹기 표면과 수저가 닿았을 때 쇳소리가 덜 나도록 보완해 만든 예올 회청 세트 등 오늘날의 건강한 옹기밥상을 볼 수 있다.
옹기다운 옹기에선 ‘숨 쉬는 옹기’를 만날 수 있다. 장인은 성긴 흙을 서로 이어 구성력을 가진 몸을 만들고 자연유약으로 피부를 입혀 뜸 들이듯 지긋이 구워야 제대로 된 옹기가 나온다고 본다.
옹기 소재인 흙의 물성, 형태에 대한 장인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반복을 통해 체화된 성형, 가마 축조 및 번조 기술은 실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영산강 유역 고대 옹간 제작기술을 복원하는 데 활용 중이다.
장인이 생각하는 숨 쉬는 옹기는 단순히 통기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옹기가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옹기답다’는 것. 함석재떨이를 대체하는 사각옹기처럼 부엌이나 창고, 베란다서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냄새 대신 옹기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길 늘 바라왔다.
예술 그리고 삶
미술관 관계자는 “오늘의 옹기란 이현배 장인이 지난 26년간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생활용품으로서 옹기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의미한다”며 “전시된 옹기를 보며 어떤 모양새와 쓰임새로 활용할지 상상해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각자 삶 속에서 오늘날 숨 쉬는 옹기를 그려보고 나아가 전통과 현대, 예술과 삶의 접점을 스스로 찾는다는 점에서 뜻깊은 관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이현배는?]
지난 1월 진안군은 ‘진안고원형옹기장’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7호로 종목 지정됐으며 옹기장 이현배 장인이 보유자로 인정됐다고 밝혔다. 장인은 지난 1991년 옹기제작에 입문해 전남 보성 박나섭 옹기장으로부터 남부식 옹기의 정형을 교육받았다.
1993년부터는 백운면 손내옹기에서 옛날 화려했던 진안 도자문화의 전통과 맥락을 이어가며 ‘진안고원형옹기’를 생산하고 있다. 장인은 한국적인 옹기 그대로의 빛깔과 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질흙과 자연 유약을 사용하고 축축한 흙집에서 자연 방식으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고집한다.
장인은 옹기장이가 되기 전 원래 호텔리어였다. 서울의 호텔에서 6년여간 초콜릿만 전문적으로 만들었다. 호텔 로비에 설치된 조각 작품에 감동받아 조소를 배우는 등 예술에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옹기의 매력에 빠져 호텔리어라는 화려한 직업도 내던지고 옹기장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엿장수를 하다가 옹기장이가 됐다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고향인 전북 장계서 엿을 팔다가 어느 날 옹기 관련 기사를 접했고 그대로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 그의 소망은 소박하다. 옹기가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 것, 그뿐이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