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시행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9월28일 법안 시행 이후 4개월이 흘렀지만 김영란법이 관통한 사회는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청렴사회’ ‘더치페이 사회’를 꿈꾸며 야심 차게 시행된 법안을 두고 이를 피해가려는 꼼수만 극심해졌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헐거운 김영란법의 그물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꼼수’를 <일요시사>가 조명해봤다.
김영란법은 2012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국민권익위) 위원장이 발의한 법안으로 2015년 3월27일 제정됐다. 이후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9월28일 시행됐다. 처음에는 공직자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아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하려는 취지로 제안됐지만 입법 과정서 적용 대상이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으로 확대돼 논란을 빚었다.
시행 4개월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는 ‘3·5·10 원칙’이 널리 전파됐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법안 적용 대상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에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분 받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3·5·10 원칙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 대상자들이 사교 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상한액을 뜻한다.
이 원칙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식의 꼼수가 등장했다. 법안의 모호한 기준으로 생긴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방법이 우후죽순 나타난 것이다. 김영란법은 시행 전부터 애매한 기준이 문제가 되리라는 예측이 많았다.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일반인의 질의조차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권해석 문제도 있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28일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서 모든 쟁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일각에서는 “꼼수가 판 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당시 헌재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법안 적용 대상이 된 점,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때 공직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조항 등 4개 쟁점 사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실제 김영란법을 둘러싼 꼼수 논란은 법안 시행 전부터 횡행했다. 기업의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나 대관업무를 하는 중견업체들이 많게는 수억씩 식당에 선결제를 해놓았다는 말이 돌았다. 법안 시행 전 송년회를 당겨서 하거나 골프장 예약을 미리 잡아두고 접대를 하는 일도 많았다.
밥값을 여러 차례 나눠 결제하는 쪼개기 방식,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 수를 부풀려 계산하는 방법도 나왔다. 상한액을 초과하는 식사를 한 뒤 다른 직원을 더 불러 1인당 부담액을 낮추는 방식도 있다.
예를 들어 1인당 5만원가량의 식사를 한 후 직원 두 사람을 더 부르고 1만원 상당의 안주를 더 시켜 4인 12만원 기준을 맞추는 것이다. 개인이 먹은 음식의 가격보다 1인당 평균 결제 금액으로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면서 생긴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계산을 하면서 3만원까지는 법인카드로, 나머지는 현금이나 개인카드로 결제하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몇 명이 함께 식사했는지 알 수 없도록 영수증에 아예 총액만 나오게 해달라는 요구도 많다고 한다. 사용 흔적이 남는 카드보다는 현금을 사용해 결제하는 일도 늘어났다. 때문에 검은 돈이 움직이는 지하경제가 지금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법안이 공직자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의 배우자까지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들의 부모나 자녀의 이름을 빌려 고가의 식사나 선물을 받으면 된다는 말도 시행 초기부터 대상자들 사이에서 맴돌았다. 예를 들어 축의금을 낼 때 본인 이름으로 10만원을 내고, 부모님·친인척 등의 이름으로 10만원씩 총 30만원을 내는 식이다.
식당 차원에서 나오는 꼼수도 있다. 최근 일부 고급 한정식집에선 5만원권 기프트카드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물 상한액이 5만원으로 식사 상한액(3만원)보다 높은 것에 ‘착안’해 고안한 꼼수다. 접대하는 쪽에서 받는 쪽에 기프트카드를 제공해 식사값으로 사용하게끔 하는 식이다. 식당에선 이 같은 방식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기프트카드 이용을 유도하고 있다.
대놓고 어기기도
김영란법 신고가 서면으로만 이뤄지다보니 실제 신고가 적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또 쪼개기 결제, 인원 부풀리기, 선결제, 현금결제 등의 꼼수는 내부서 고발자가 나와야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각이 어렵다. 때문에 일각에선 보는 눈이 없는 이상 3∼4만원 식사 정도는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영란법’ 신고·적발은?
지난달 5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해 9월28일 시행 당시 ‘대변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지만 4개월이 지난 2월 현재 신고 및 적발 건수가 미미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법안 시행 100일 기준으로 김영란법 위반 행위로 신고된 건수는 부정청탁 47건, 금품수수 62건, 외부강의 8건 등 총 117건이다. 첫 신고는 시행 당일 서울 지역의 한 학생이 112전화로 “학교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이 교수에게 캔 커피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김영란법 위반 신고는 신고자가 실명으로 기재한 서면 신고가 원칙이기 때문에 접수되진 않았다.
시행일로부터 2개월 후인 지난해 11월에는 공무원 간 금품수수 사례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대구시 공무원이 국민권익위원회 직원에게 음료수를 건넨 게 발단이었다. 지난달 11일에는 업무 관련 업체에서 식사를 접대받은 경북 안동시 공무원 2명이 적발됐다. 이들은 관련 업체 직원들과 저녁을 먹으며 1인당 4만9000원가량의 음식을 제공받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안 시행 100일 동안 총 367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 중 112 신고를 통해 접수된 게 348건이었다. 112 신고 접수는 대부분 법 적용 여부 문의였고, 그마저도 첫 달 289건에서 법안 시행 2개월째에 43건으로 급감했다. 서면 신고는 19건이었고, 그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3건이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