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설’ 반기문 낙마의 비밀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10:44:46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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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장어’ 누가 끌어내렸나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여권 내 유력 대선주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낙마했다. 귀국 직후 ‘정치교체’ 화두를 던진 그는 언론의 검증 공세에 시달렸다. 동시에 한때 문재인 전 대표를 앞질렀던 지지율은 완전히 반 토막 났다. 위기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왜 야인의 길을 택했을까. 반 전 총장의 낙마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봤다.

여권 대선주자의 핵으로 꼽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가졌던 반 전 총장은 “내가 주도해 정치교체와 더불어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말했다.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3주 만에 대선 포기를 전격 선언했다.

귀국 후 그는 고향인 충주와 음성을 비롯해 부산과 대구, 광주 등 전국을 도는 강행군으로 대권 행보를 이어왔다. 설 직후에는 개헌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4개당은 이에 싸늘하게 반응했다.

불출마 선언
갑자기 왜?

반 전 총장은 기자회견서 “내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오히려 내 개인과 가족, 그리고 10년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가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권행보 기간인 20여일 동안 각종 구설에 오르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귀국 첫날인 지난달 12일 공항철도 발권기에 2만원을 투입한 모습이 포착돼 ‘서민 코스프레’ 논란에 휩싸였다. 이 밖에 ‘국립현충원 방명록 커닝’ ‘퇴주잔’ ‘봉하마을 방명록’ ‘조류독감 방역 체험’ 등의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귀국 후 본격 검증에 나서기도 전에 대권행보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지지율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언론의 맹공에 반 전 총장은 ‘가짜 뉴스’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울러 자신의 정치행보를 평가절하한 정치인들은 ‘구태의연하고 편협하다’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이유에 대해 지난 2일, 바른정당 김성태 의원은 “설 연휴 이후 여론조사를 했는데 13%대 지지율에 머무른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던 반 전 총장이 지지율 격차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분석처럼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최근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귀국 직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20% 초반 지지율서 상승세를 보였지만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문 전 대표와 20% 넘게 벌어졌다.

정치권 염증·지지율 하락…진짜 이유?
새누리 탈당 미적미적…결정적인 원인?

김 의원은 추가적인 이유로 “오는 8일 (반 전 총장이) 정당과 비슷한 결사체를 만들려 했고, 이를 위해서는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힘이 필요했지만 이들의 탈당이 불발돼 충격을 받아 사퇴를 결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당초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13명)은 설 연휴 직후 반 전 총장을 돕기 위해 집단 탈당하겠다고 예고해왔다. 반 전 총장 측은 이들과 함께 바른정당에 입당하거나 독자 창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충청권 의원 8명은 지난달 31일 회동서 탈당을 보류했다.

반 전 총장 측 한 캠프 인사는 “이게(충청권 의원들의 배신) 가장 큰 타격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20명을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하더니 나중엔 5명도 안 된다고 하더라. 겨우 이 정도를 데리고 바른정당에 입당한다면 영이 서겠느냐”고 했다.

반 전 총장이 갑작스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충청권의 한 의원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었다. 선대본부를 꾸려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전혀 콜(요청)이 없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충청권 의원들이 강력한 지원을 해주길 원했지만 자신의 행보를 관망하는 모습에 못내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당도 없고
돈도 없고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기존 정당에 입당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약이 있었다. 가장 큰 정당이라고 본 새누리당이 분열돼있고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수의 분열도 반 전 총장의 낙마를 부추긴 셈이다.
 

이와 동시에 반 전 총장의 대한민국 정치판에 대한 나이브한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 전 총장이 지난 2일 “나는 태생이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고 직선적이어서 복선이 깔린 이야기는 평생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한 점을 볼 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로는 자금사정도 거론된다. 귀국 후 대선 행보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반 전 총장은 “당이 없으니 돈 문제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 의원도 아니고 정당에 소속된 입장이 아니다 보니 자금과 조직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울러 눈딱 감고 당에 들어가면 반 전 총장이 주창한 ‘정치교체’에 대한 명분이 서지 않았다.

돈 때문? 현실적 문제 직면?
동생·조카가 발목 잡았다?

반 전 총장은 경남 김해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정치 경험도 없는데 상당히 빡빡하게 시작하고 있다. 조직과 돈은 (운용을) 아예 해보지 않아 잘 못한다”고 토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을 치르는 해에 후보를 추천한 정당에 선거보조금을 지급한다.


보조금은 교섭단체에 총액의 반액이 나눠진다. 이후 국회의원 의석수, 총선 득표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이 돈을 정당은 대선 후보 선거운동에 쓴다. 반 전 총장 입장에선 교섭단체 규모의 새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 과제였던 셈이다.

섣불리 기존 정당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도 반 전 총장을 괴롭게 했다. 귀국 초기 반 전 총장 측근 인사는 “선거비용에 대한 고민은 있다”면서도 “반 전 총장이 20% 이상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자금 문제가 향후 행보의 결정적 고려 요인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름 동안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락해 선거비용보전 지지율인 15%를 장담키 어렵게 됐다. 외교관 출신으로 정치인 생활이 전무한 반 전 총장이 거대 조직을 꾸리고 자금을 융통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부담스런 검증
오락가락 행보

검증 과정도 반 전 총장의 낙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 전 총장의 동생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에 대한 의혹은 대권행보 초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달 20일 미국 검찰은 한국 정부에 기상씨를 체포·송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경남기업 고문을 지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는 미국 연방법원에 250만달러(29억원 상당)의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 2014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 ‘랜드마크 72’를 매각하는 과정서 중동의 한 관리에게 50만달러(6억원)의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반 전 총장 측은 지난달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친인척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 보도된 대로 한미 법무 당국 간에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면, 엄정하고 투명하게 절차가 진행돼 국민의 궁금증을 한 점 의혹 없이 해소되길 희망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2일 반 전 총장을 향해 “치국 이전에 수신제가부터 하시라”고 꼬집었다. 기 대변인은 “반기상씨와 아들 주현씨가 사기행각 과정서 반 전 총장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지위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더 이상의 회피와 꼬리 자르기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유엔 재직시 발언과 업적에 대한 논란도 반 전 총장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지난달 24일 반 전 총장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서 “내가 (성소수자) 지지를 한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과거 유엔사무총장 당시 발언과 정면충돌됐다.

지난 2015년 9월 그는 “나는 괴롭힘 당하는 10대 게이, 구직을 거절당한 트랜스젠더 여성, 흉악한 성범죄에 노출된 레즈비언의 편에 선다”고 말한 바 있다. 퇴임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30일에는 “내가 성소수자 운동가임이 자랑스럽다”는 말도 했다. 불과 두 달 사이 성 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바뀐 셈이다. 진보와 보수를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결국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발목 잡은
정체성 딜레마

반 전 총장의 중도 낙마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지지율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처음에 제기됐던 정체성의 모호성 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어떤 쪽의 스탠스를 잡을 수 있을지가 대단히 애매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문 대체마는?

반기문 전 총장이 낙마하면서 보수층을 결집할 대체자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언론은 '반기문 대망론 vs 홍석현 대망론'이란 칼럼을 게재하며 홍 회장이 대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홍 회장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유엔사무총장 후보 내정 약속을 받고 2005년 워싱턴 주미대사로 부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2005년 MBC가 ‘삼성 X파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홍 회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홍 회장의 행보도 심상찮다. 지난해 2월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연설서 그는 “공자도 오십이 돼서야 지천명, 그 뜻을 알게 됐다”며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68세 때”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올해로 68세가 된 홍 회장이 대권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전면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 지사는 오는 16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홍 지사 측근은 “1심 결과를 뒤집어 이번엔 무죄를 받을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증인의 진술이 1심과 2심서 엇갈리고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심서 무죄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홍 지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받으면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대망론’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홍 지사는 “대통령 선거 출마는 모든 정치인의 로망”이라고 말해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지난달 26일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홍 지사가) 항소심서 무죄를 받는다면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새누리당 대권주자 대부분이 탈당한 상태라 만약 홍 지사가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한다면 그를 당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홍 지사 측 정장수 비서실장은 “재판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 (홍 지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며 “오로지 도정에 전념하며, 재판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만 밝힐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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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