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9) 대야성

복수심에 불판 평정심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신하들의 시선이 의자왕의 얼굴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일찍이 성왕께서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서거하신 적이 있음을 잘 알고 있소. 당시 우리의 세가 약했다 할 수 없으나 성왕께서는 평정심을 잃고 전쟁에 임하였기에 그런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오.”

의자왕이 잠시 말을 멈추고 저만치에 앉아 있는 청년 장수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의 덕목이 뭐라 생각하는고?”

“그야…… 방금 전하께서 말씀하신 평정심입니다.”


“바로 말하였네. 그런데 성왕께서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평정심을 잃으셨었네. 그런 연유로 신라군에게 패하신 게고.”

경청하는 신하들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러니 경들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네. 군사, 계속 설명하게.”

흥수가 가볍게 목례하고 다시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하여 이번 전투에서는 양동작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동작전이오?”“그러합니다, 대장군.”

성충의 말에 가벼이 답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성충 장군께서는 전하를 모시고 미후성(구체적 지명은 알 수 없으나 경남 거창 인근 지역으로 사료됨)을 시작으로 진격해 주십시오. 아울러 그와 관련하여 전하께서 계백 장군을 가잠성(경남 거창) 성주로 임명하셨으니 회의가 파하는 즉시 계백 장군은 서둘러 전쟁 준비를 하시오.”

“그렇다면 가잠성을 본진으로 삼고 주변의 모든 성을.”

성충이 말하다 말고 시선을 의자왕에게 주었다.

“그렇소. 그러니 장군은 짐과 함께 움직여야 하오.”

성충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오, 장군.”

“이왕지사 전하께서 친정하신다면 의미 있는 전쟁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그 이야기인즉.”

“미후성 정도가 아니라 신라의 중심 혹은 그에 버금가는 장소를 취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급하게 흥수가 말을 이어받았다.

“하면.”


흥수가 즉답에 앞서 의자왕을 주시하자 의자왕의 시선이 윤충에게 향했다.

시선을 받은 윤충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는 듯 흥수를 주시했다.

“대장군께서 전하를 모시고 가잠성을 기반으로 신라를 공략할 시점에 소신은 윤충 장군과 함께 신라의 대야성을 공략하려합니다.”

“대야성!”

모두의 입에서 일시에 터져 나왔다.

“우리 백제의 실제 목표는 바로 대야성입니다.”


“대야성을 치고자 하는데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소이까?”

“신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거점이란 점이 첫째 이유고 둘째는 지금 대야성 성주가 김품석이라는 사실입니다.”

“김품석이라면 김춘추의 사위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여 지금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의 사위를 죽여 우리 백제의 기개를 만방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지난 시절 관산성 전투에서 당했던 일을 복수하고자 합니다.”

성충이 김품석을 되뇌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왜 그러는 게요, 대장군.”

“전하, 그런 경우라면 소장이 당연히 선봉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그러하옵니다.”

“대장군이 말이오? 하면 대장군은 짐을 내치고 가겠다는 이야기요?”

의자왕이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자 당황한 성충이 의자에서 일어나 급히 무릎 꿇었다.

“전하, 꿈이라도 그런 말씀은 삼가하여 주십시오.”

“하면, 방금 이야기는 무슨 뜻이오?”

“대야성 같은 중요 지점에는 아무래도.”

성충이 말을 하다 말고 윤충을 바라보았다.

“형님, 아니 대장군은 소장을 어찌 보고 그러십니까!”

말을 마친 윤충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에게 다가서면서 허리에 있던 칼을 풀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전하, 소장이 명을 받들지 못할 시에 반드시 이 칼로 소장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윤충의 목소리가 가래 끓는 듯했다.

“하기야 군사가 함께 한다면.”

성충이 동생의 모습, 어깨까지 심하게 떠는 모습을 살피며 급히 말을 돌렸다.

“바로 그러하오. 윤충 장군의 용맹함과 군사의 지략이 합해지면 대야성 아니라 경주를 함락시키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말을 마친 의자왕이 윤충에게 물러가라 고갯짓하자 윤충이 가볍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성충을 바라보았다.

성충이 그 시선을 은근히 회피하며 흥수를 바라보았다.

“결국 전하를 모시고 신라의 관심을 유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송구하옵니다만 결과는 그렇습니다.”

성충이 생각에 잠겨들었다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신라 쪽의 대응은 생각해 보았소?”

성왕 관산성 전투 패배…설욕 위해 성 접수?
앞장서는 계백 장군…신라군 역습 대비 나서

“당연합니다, 대장군. 경주에 잠입해 있는 세작에 의하면 지금 신라의 장수로는 김유신이 으뜸인데 그야말로 찬밥 신세라 합니다.”

“김유신, 찬밥 신세라.”

“사사건건 선덕여왕과 반목을 일으키고 그런 연유로 하루하루 술에 의지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김유신이 지금 신라의 실세인 김춘추와 처남 매부지간으로 알고 있소만.”

“대장군, 권력의 문제입니다.”

흥수가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순간 의자왕의 얼굴이 경직되고 있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의자왕의 표정을 살피던 성충이 급히 말을 돌리고 계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계백 장군, 아니 가잠성 성주는 여하한 경우라도 방심하지 말고 가잠성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군.”

“신라 놈들은 간사한 족속들이라 예측할 수 없으니 쉽게 움직이지 말도록 하게. 그리고 행여나 전하를 모시고 백제군이 진군하기 전에 신라군이 쳐들어온다 해도 오로지 수성에만 전념하게.”

“수성만 하라니요?”

혈기왕성한 계백이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전 전하께서 지적하셨듯이 전쟁은 혈기로만 치르는 게 아니네. 즉 평정심이 중요한 게야, 평정심.”

성충이 평정심에 힘을 주고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계백 장군은 대장군의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짐이 가기 전까지 오로지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도록 하게. 이후의 일에 장군을 소중히 쓸 터이니.”

의자왕까지 나서 계백의 혈기에 일침을 가하자 계백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타소의 주의를 무시하고 기어코 검일의 처를 빼앗은 품석이 그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치마폭에 젖어 지냈다.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가야금 소리에 낮을 보내고 버들가지처럼 야들야들한 몸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지속되었다.

그 시각 백제는 성충을 앞세운 의자왕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국경으로 이동했다.

이어 가잠성을 기반으로 미후성 등 국경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성을 공략했다.

그에 따라 백제군을 막기 위해 신라의 주력군이 급히 움직였다.

동시에 윤충이 군사인 흥수와 함께 백제의 정예병 일만 명을 거느리고 김품석이 성주로 있는 대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성을 포위했다.

그 모든 정황을 입수한 대야성 진영에서도 즉각 경계태세가 발동되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말인가?”

“기껏 매복 훈련에다 순찰을 강화했는데 정작 백제군이 코앞까지 닥치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검일의 지적에 모척 역시 의아한 듯 백제 진영을 바라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했던 훈련을 생각해보았네.”

“훈련이라니요?”

“어느 순간 훈련이 멈췄지. 그래, 자네 일이 있고 난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훈련이 종료되지 않았는가?”

검일이 모척의 말을 헤아리는 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

“듣고 보니 형님 말이 맞네요.”

“성주가 자네 부인을 취한 후로는 훈련이 없었지.”

“그러면 그게.”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너무 비약 말게.”

“아닙니다, 형님. 한번 깊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성주가 자네 부인에게 빠져 지내느라 훈련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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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