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영란법 이후…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①‘직격탄’ 업계 표정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52:45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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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폐업 “다 망하게 생겼다”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서민 주머니는 두말하면 잔소리. 구멍이 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지 오랩니다. 올해는 더한답니다. IMF 이후 최악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꿎은 ‘김영란법’이 타깃이 되고 있습니다. 이 법 때문에 경기침체가 더 심화됐다는 게 원망의 시선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연말도 지났고, 명절도 지났습니다. 각종 통계와 조사 결과, 그리고 본지 취재를 통해 ‘김영란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 봤습니다. <편집자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김영란법 시행으로 여러 업종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설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매출 급감으로 일부 업종은 고사위기에 직면했다. <일요시사>는 김영란법 이후 위기에 처한 업계 상황을 짚어봤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처음 제안했다. 지난 2015년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9월28일 시행됐다. 김영란법의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부패 청산을 기치로 내건 김영란법은 시행 초기부터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초상집 분위기

시행 반년이 지난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의 가이드라인 ‘3만원(식사 및 음식물), 5만원(부조), 10만원(부조)’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선 선물을 주력으로 하던 화훼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지난달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월1일부터 15일까지 전국 화원협회 1200개소의 소매 거래금액은 모두 1억302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1%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소매 거래금액도 28% 감소한 6억3520원에 머물렀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4개월간 꽃 소비가 눈에 띄게 위축된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화환이나 난 선물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서 김영란법은 화훼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모양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른 2005년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2만870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0년 1만6098원, 2015년 1만3000원을 기록해 10년 새 37% 급감했다. 같은 기간 화훼 생산 규모도 2005년 1조105억원에서 2015년 6332억으로 반 토막 났다.

앞서 서울 양재동 aT 화훼공판장은 출하물량이 줄고 경매단가가 떨어지자 경매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난 시장이 호전될 경우 난 경매를 원래대로 복구하려 했지만 김영란법이 겹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 시행 초기인 지난해 10월, 결혼 시즌임에도 꽃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줄었고, 연말연시, 인사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꽃집들은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 났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축하 난을 보내는 관행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화훼농가와 소매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예년에는 6500원에서 8500원 사이에 팔리던 국화 한 단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4000원대에 팔리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화훼업계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T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꽃 소비의 대부분이 경조사용·선물용인데, 기업과 금융권의 경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막연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일상에서의 꽃 소비를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훼업계뿐만 아니라 축산업계도 울상이다. 국내 축산업계는 대목인 설을 맞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은 상품을 내놓는 등 김영란법 맞춤 선물세트를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선물 5만원이 넘지 않는 4만9000원대 선물세트는 축산업계의 주력 상품이었지만 택배비를 포함하면 김영란법을 위반할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음식점, 화훼, 축산, 주류…
매출↓ 폐업하는 가게 속출

지난달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월2일부터 26일까지 롯데백화점 축산부문 설 선물세트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축산부문 매출이 3.1% 떨어졌다. 반면 수입산 축산품 판매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신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김영란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 국산 농수산물이 외면받고 수입 농수산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법의 취지가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류업계도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접대 문화가 자취를 감추면서 유흥업소의 매출이 감소해 맥주, 위키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김영란법은 성장가도를 달리던 와인 업계에도 타격을 입혔다.

다만 가격과 도수를 낮춰 소비자층을 넓힌 소주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후 외식업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주류업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도 김영란법을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일부는 생계까지 위협받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84.1%는 지난해 12월에 비해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고 답했다.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업계도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그나마 드나들던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다. 지난달 4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흥업소는 2만5000여개, 서울 지역의 유흥업소는 2500여개에 달한다.

특히 업소가 밀집된 강남은 현재 30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30여개 업체가 이미 문을 닫았다. 10여개 업체는 업종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서울지부회장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업계는 특히 올해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해에는 기업들이 이미 대형 공연에 대한 협찬금 책정을 마무리한 상황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분야 지원을 감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기업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 업계다. 은행·카드사들은 클래식 공연 협찬 비용의30∼50%를 티켓으로 환산받아 고객 초청이나 거래처 접대에 사용해왔다. 하지만 초대권을 받는 이들 중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상당수 포함될 수 있어 기업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현 공연업계의 흐름을 두고 원종연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기업과 제작자들이 김영란법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투자심리와 홍보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람객의 공연 문턱을 낮춰주는 초대권이 위축되고 비평가와 평론가 등에게 티켓 제공이 까다로워지면서 입소문을 내는 홍보활동의 어려움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역시 무리수?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9일 김영란법에 대해 “김영란법 취지에는 100% 찬성하나 3·5·10만원으로 규정된 제한 금액이 적절한지는 살펴봐야 한다”며 “법 취지는 살리고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는 줄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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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