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반문주자’ 불안한 안보관 비교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31 11:42:48
  • 호수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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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18개월 카드 ‘먹힐까’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유력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안보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드 배치를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 잠룡들은 연일 맹공을 퍼부으며 문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문 전 대표와 반문주자들의 안보관을 비교해봤다.

지난해 7월 국방부는 경북 성주에 기습적인 사드(THAAD) 배치를 발표했다. 사전에 충분한 협의 없이 정부는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성주 군민들은 집단 반발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정치권의 사드 배치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거론한 지 2달여 흐른 지난해 9월9일 북한은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내외적 악재가 겹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문-반-안
사드 OK?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 정체 국면을 극복하고 지지율을 30%대로 높이면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과 동시에 연일 엇박자·논란 횡보를 보이면서 민심은 문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승세를 의식한 듯 여야 잠룡들은 앞다퉈 문 전 대표의 안보관 비판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현 안보 상황의 중요 키워드는 사드(북핵), 군대, 한미동맹 등이 꼽힌다. 우선 정치권에 논쟁을 일으키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된 사드에 대해 지난달 15일,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는 (앞으로 진행을)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미 합의가 이뤄진 걸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9일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다시 하자”며 조기 배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명확히 했던 점을 미뤄볼 때 본인의 입장을 180도 뒤바꾼 셈이다. 기존 ‘재검토’ 입장에서 ‘합의 유지’선까지 후퇴하자 정치권은 일제히 문 전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적 표를 계산하며 말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국민 편에 서는 정치인이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문 전 대표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어 “사드는 2500만 인구가 사는 수도권 방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며 “더구나 우리가 경제적으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심각한 관계 악화를 초래할 뿐”이라고 사드 배치 반대를 분명히 했다.

문, 연일 오락가락…말 바꾼 이유는?
이재명-박원순 본격적 문 헐뜯기 시작

이재명 성남시장도 문 전 대표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이 시장은 “사드 관련 문 대표님 입장이 당초 설치 반대에서 사실상 설치 수용으로 왜 바뀌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며 “한반도 운명에 지대한 영향이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건 국민 특히 야권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 역시 사드배치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상태다.

국민의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도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드 불가피론’을 내세웠다. 안 전 대표는 “외교·안보의 판단 기준은 국익이 우선 돼야 한다. 일단 정부 간에 약속한 협약을 다음 정부에서 완전히 뒤집는 건 힘들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에 복귀해 대선 행보를 보이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23일 사드와 관련해 “현재 남한은 북한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고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무기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른정당서 몸을 풀고 있는 유승민 의원도 사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 5일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사드 한반도 배치를 논의한 데 대해 “매국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국회서 열린 창당 준비위 회의에서 “사드는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군사주권, 또 국민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은 어떤 나라나 어떤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또 모병제…
선심성 공약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도 안보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지난 17일 문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 기자간담회서 군 복무기간과 관련해 “국방개혁방안에는 18개월까지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계획돼있다. 앞으로 18개월로 정착되면 장기간에 걸쳐 단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마다 조금씩 (복무기간을) 줄여나가서 18개월에 맞추는 것인데 이명박정부서 22개월 선에서 단축이 멈췄다. 그러니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것은 원래대로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 병력에 대해서도 현재의 60만명 규모를 50만명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아울러 그의 저서에는 군 복무기간 18개월 단축을 넘어 1년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본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 잠룡 이재명 성남시장은 문 전 대표보다 파격적인 군 단축을 언급했다. 이 시장은 지난 17일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를 통해 선택적 모병제로 현재 21개월인 군 복무기간을 10개월까지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병력을 13만명 줄여 50만명으로 하고, 10만명의 전문 전투병과 고가 고성능 장비 무기 담당 전문병사를 모병하자'는 주장이 담겨있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을 정면 비판했다.

지난 18일 전주를 방문한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군 복무기간 1년 단축은 한마디로 무책임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같은 생각은 국방력에 대한 전박적인 생각 아래서 계획이 필요하다”며 “저출산·고령화로 군에 입대 가능한 젊은이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하게 군 복무기간 단축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군 문제에 가장 강경한 대선주자다. 유 의원은 지난 20일 대선을 앞두고 사병의 군 복무기간 단축이 잇따라 공약으로 나오는 데 대해 “병역법에 복무기간을 단축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유 의원은 창당준비위 회의에서 “제가 국방위원회에 8년 있으면서 복무기간 단축을 못하도록 병역법 개정안을 냈는데 국방부가 대통령 시행령으로 하겠다고 해서 통과시키지 않았다”며 “대선 때마다 3개월씩, 6개월씩 복무기간이 줄면 도저히 군대가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선 후보들, 특히 민주당 후보들은 자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국 대신
북한 선택?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잠룡들의 근본적인 남북문제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문 전 대표는 지난 17일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어딘들 못 가겠느냐. 지옥이라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북한부터 가겠다”는 자신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냐 북한이냐 선택하라는 질문 자체는 참 슬픈 질문이자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우리의 오랜 우방이자 친구이며, 북한은 우리의 협상대상”이라며 “핵문제를 해결하고 역대 남북회의를 이행·실천할 수 있는 관계로 회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북한부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성남시장은 지난 27일 집권 후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적대적인 국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할 상대”라며 “만나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진척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모든 대화 채널이 끊기고, 적대 일변도의 정책으로 평화통일이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새로운 지도자들이 만나서 서로 윈윈 하면서 상호공존할 수 있는 정책들을 진행시켜야 한다”며 “실무적 협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 최고책임자들 결단을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신속히 만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즉, 선 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귀국한 반 전 총장은 북한의 ‘비핵화 없인 대화도 없다’는 현 정부의 대북기조를 옹호하고 나섰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의 북핵 해법이 이전보다 더 강경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방한 당시 관훈클럽 간담회서 반 전 총장은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내가 유일하다. 대북압박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인도적 문제를 통해 물꼬를 터가며 대화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 복무 단축 대선 때마다 등장
집권후 미국 버리고 북한 먼저?

정가는 당시 발언을 두고 현 정부와 대북정책에 있어서 각을 세웠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따른 일련의 대응과 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해 기존 입장에서 선회했다.

현재 반 전 총장은 북한 대응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반 전 총장은 “북핵문제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 여기에 따르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즉, 자신만의 담론과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반해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대북 강경론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5년 3월 ‘5·24대북조치’ 해제를 두고 “북한이 도발을 인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사과, 재발방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5·24조치의 전면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5·24대북조치는 지난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이명박정부가 같은 해 5월24일 내놓은 대북제재수단으로 남북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 모든 지원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강경 기조를 보여온 유 의원은 최근에는 민주당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힐난했다. 지난 24일 유 의원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야당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불안한 대선 후보에게 국가를 맡기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사람,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문제를 김정일에게 물어보는 사람, 사드 도입에 반대했다가 5차 핵실험 뒤에는 말을 바꾸고 말 바꾸기가 일상인 그런 사람에게 국가 안보를 맡기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갈지자 행보
지지율 때문?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근 오락가락하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에 대해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중도 보수층을 잡아야 하다 보니 주요 현안에 대해 상대편 논리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문(문재인) 대 비문(비문재인) 구도의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은 핵심 지지층을 끌어모으기 위해 문 전 대표를 비토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2년 문-안 안보관 충돌 왜?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설전을 벌였다. 야권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남북관계 개선 발전을 말하는데, 보면 이명박정부처럼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며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5·24조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잘못 아는 것 같다. 우리도 어떤 조건을 걸지 않는다. 먼저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통해서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은 재발방지 대책이 꼭 있어야 한다”며 “내 입장은 먼저 대화하고, 이를 통해 사과, 재발방지, 경제교류, 인도적 지원까지 다 협의를 하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안철수가 박근혜보다 더 보수적”
금강산 재개 놓고 ‘평행선’

이어 “일단 재개하면서 재발방지나 관광객 신변안전을 보장받자는 데 동의하느냐”는 문 후보의 질문에 안 후보는 “그렇지 않다. 먼저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방지책을 약속받은 다음 재개할 수 있다”며 “현정은 회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두 약속한 것으로 관광객 신변 보장이 되었나”라고 비꼬았다.

두 사람의 충돌에 대해 김연철 교수는 '18대 대선의 통일·외교 분야 정책 비교와 평가'에서 안 후보 측이 안보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국방정책을 발표하면서 중요한 차이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 선거 막바지에 받아들인 복무기간 18개월 단축안에 대해 안 후보 측만 반대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국방안보 정책만 보면, 안철수 후보 측의 공약들은 박근혜 후보와 유사하거나 혹은 더 보수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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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