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대통령 별장 ‘저도’에 무슨 일이…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23 11:15:13
  • 호수 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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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에 총부리 겨눈 '특권층 놀이터'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저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동시에 저도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에게는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방부는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기보다는 특권층의 놀이터를 가꾸는 데 열중했다. <일요시사>는 수십년간 지속된 저도의 비극을 살펴봤다.

저도(猪島)는 거제도 북단서 1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돼지가 누워 있는 형상’의 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통신소와 탄약고로 이용됐고, 6·25 당시에는 주한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되기도 했다.

생활터전 강탈
총부리 겨눴다

그러다가 1954년 해군의 관리 하에 들어간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름철 휴양지로 사용됐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靑海臺)’로 공식 지정됐다. 20여년이 흐른 1993년 11월이 돼서야 대통령 별장 지정이 해제됐지만 아직까지 국방부 소유지로 해군이 관리하면서 일반인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저도에는 이처럼 바다의 청와대로 불리는 청해대를 중심으로 섬 주변에 8개 동의 수행원 및 경호원을 위한 숙소, 막사, 팔각정 건물, 9홀 규모의 골프장, 자가발전소 등과 대한민국 지도와 태극문양을 본뜬 연못이 있다.

저도는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첫 여름 휴가지로 선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추억 속의 저도’라는 글과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진을 올렸다.


박 대통령은 “35년 여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글을 남겼다.

박 대통령 추억의 장소인 저도는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아픈 기억의 장소다. 저도와 단 1.2km 근방 거제시 장목면 하유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송모씨는 “70년대 저도에선 3가구 10여명이 소도 키우고 살았는데 해군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쫓겨났다”고 말했다.

하유마을에는 총 34여가구가 살고 20여가구가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지척거리에 있는 저도 땅을 맘 편히 밟아보지 못한다. 70∼80년대에는 어민들이 물리적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하유마을 송씨는 “저도 인근 해상은 어장이 좋아 진해서도 낚시를 하러 자주 왔다”며 “저도 가까이에서 고기를 잡으려 하면 (해)군서 어선에 총을 쐈다”고 말했다. 이어 “해군 바지선이 있었는데 거기서 얼굴을 얻어맞기도 하고 벌을 서다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있다가 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특히나 대통령이 방문하면 저도 주민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유마을 한 주민은 “5공시절 대통령이 오면 저도 인근 해안뿐만 아니라 하유마을까지 경호가 삼엄했다”고 말했다. 바다는 해군이 경호하고 육지인 하유마을 부근은 청와대가 통제했다.

장목면 한 주민은 통제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아들이 심한 병에 걸려 부산 아니면 마산의 큰 병원에 가야할 상황이었는데, 당시 배로 가면 2시간이면 될 거리를 차를 타고 나가 한나절이 걸렸다”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이 한 번 오면 장목면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수십년 지속된
외딴섬의 비극


저도는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시작해 역대 대통령들의 큰 사랑을 받은 섬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도를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하유마을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근 장목면은 ‘상왕’ ‘왕실장’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고향이다. 유력 정치인들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현재 소수 특권층의 놀이터로 전락해 주민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해군 장성 부인들 파티가 저도에서 열렸다. 이때 해군은 함정까지 동원하며 40여명의 장성 부인을 에스코트 했고, 700만원의 군 예산을 편법으로 조성해 숙박비와 격려품을 제공했다.

행사에는 당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의 부인도 참석했다. 해군은 “영화 <연평해전> 제작비 모금에 도움을 준 부인들을 위한 행사였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파티서 바지 위에 속옷을 입은 여성이 춤을 추는 사진이 공개돼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었다.

장목면 발전협의회장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경치로 관광지로서 가치가 뛰어난 저도에 일반 국민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데, 소수 특권층은 자유롭게 저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청남대는 일반 국민에게 개방되면서 관광지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지 않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거제도 북단 돼지섬…해군 주민에 총질
박근혜 대통령 어린시절 추억 서린 곳

저도는 거제의 대표적 관광지인 외도의 3배 크기에 달하며 섬 전체가 해송과 동백이 군락을 이룬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202m 길이에 달하는 인공해수욕장도 조성돼 천혜의 관광지로 꼽힌다.

아울러 거제시 북단에 위치해 부산과 마산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접근성을 높인다. 장목면 발전협의회장은 “자연환경이 외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라며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저도가 거제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방부가 주장하는 군사요충지로서의 가치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미 거가대교가 저도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비밀 보장이 어려운 상황이고, 또한 저도에는 해군 소대병력 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군은 저도에 3.2km에 달하는 산책로를 만들고 제1전망대·제2전망대도 갖춰 특권층만을 위한 관광지로 조성했다. 지난 2010년에는 대우건설이 저도에 콘도시설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거가대교 건설을 허락하기도 했다.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환 불가를 외친 해군이 정작 거가대교 통과 전제 조건으로 그들의 휴양을 위한 콘도시설 기부채납(40억원 상당)을 요구한 셈이다. 아울러 저도에서 불과 2km 떨어진 장목면 구영해수욕장에는 해군전용 휴양소가 이미 설치돼 있었다.

이상한 국방부
반환은 언제?


거제시민들은 저도가 거제의 품으로 되돌아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앞서 저도 통제로 인해 고통 받던 어민들의 집단 민원에 의해 문민정부 시설인 1993년 11월19일 대통령령에 따라 저도 청해대 시설이 해제됐다.

같은 해 12월1일 저도는 행정구역이 진해시에서 거제시로 환원됐다. 행정구역만 환원됐을 뿐, 현재까지 국방부 소유지로서 외부인 출입과 주변 어업활동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해군은 ‘중요군사시설’ ‘전략적 요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25년이 흐른 지금까지 국방부와 해군은 매번 같은 이유를 들며 저도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저도에는 특권층을 위한 콘도시설이 들어섰고, 해군 장성들의 놀이터가 됐다. 이 같은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은 ‘저도 반환’을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지난 9일 더민주 거제지역위원회는 “거제시민들의 지속적인 저도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시민 품으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며 “저도 반환을 더민주 대통령 후보 정식 공약으로 채택해 정권교체와 동시에 저도 반환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부터 군장병과 가족 하계 휴양소로 저도를 운영 중이라는 국방부의 설명도 허울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저도 군장병 휴양소를 이용한 319명 중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장성과 영관급이 247명으로 즉 군 고위간부들에게만 ‘추억의 장소’가 됐다.

장성 부인들 파티…특권층 전유물
이상한 국방부…환수 분위기 고조


지난 5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도 정책구상과 관련한 긴급좌담회를 통해 “저도 반환은 지역 어민들의 생업권, 경남도민들의 생활편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선공약 추진을 기정사실화했다. 거제시발전연합회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거제시발전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하루빨리 거제시로 이관해 경남의 대표적인 친환경적인 국민관광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권의 이 같은 적극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은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감을 표명했다. 하유마을 한 주민은 “저도가 거제로 반환되면 외도보다 더 큰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기(거제시 장목면) 출신인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도 저도는 거제로 반환되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쉽게 반환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출신의 정치인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지난 2004년에 저도 반환을 추진했던 바 있다. 하지만 추후 박근혜정부의 실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반환에는 무관심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2004년은 당시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던 시절로 그가 ‘문제의 진상을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국방부의 논리에 편승해 저도 문제에 한발 물러섰다. 그 결과 저도는 특권층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전략전 요충지이자 중요 군사시설이라는 국방부의 논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아직도 모르쇠
현대사의 아픔

정부는 거제시의 수십년 동안의 간곡한 요청에 대해 모르쇠고 일관하고 있다. 야권이 저도 반환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막상 현실적인 문제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정가로부터 나오고 있다. 거제시 한 지역 정치인은 저도에 대해 “저들은 낭만과 흥을 위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았지만, 저도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별장 ‘청남대’는 지금…

역대 대통령들의 대표적 별장으로 베일에 가려졌던 청남대(충북 청원군 소재)는 지난 2003년 4월18일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의 청남대는 1983년 지어졌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돼 지어졌다고 알려진다.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엄격한 통제로 인해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대통령이 방문할 때는 경찰이 1주일 전부터 마을 곳곳을 수색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1988년 국회 5공 비리 조사특위서 폐쇄가 검토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별장들을 하나 둘 씩 폐쇄했지만 청남대 한 곳만은 남겨뒀다. 청남대 반환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14년여가 흐른 현재 청남대 누적 관광객은 10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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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