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헌법재판소로 넘어감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을 예상하는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이와 동시에 ‘스스로를 대통령 적임자’라며 예상 밖으로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정치인들이 있다. 후방에 머물던 그들이 갑자기 전면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닉제’(피닉스+이인제)라 불리는 이인제 전 새누리당 의원이 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12일 이 전 의원은 “새누리당이 건강한 보수우파의 중심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일조 하겠다”며 “당을 빨리 재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고 이후 당이 정비되면 (대통령후보)경선에 나갈 생각”이라고 말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우후죽순
그는 비박계가 주장하는 인적청산에 대해 “새누리당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며 친박계의 손을 들어줬다. 현 헌법 체계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지적하면서 정치권의 화두인 개헌에 동참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 전 의원의 대선 출마 시기와 장소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당 재건과 건강한 보수우파’라는 슬로건을 내밀고 선제적으로 대선 출마를 언급하면서 ‘폐족’ 새누리당 친박의 대선주자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지난 총선에서 떨어지면서 7선에 실패한 이 전 의원이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정치 2선으로 물러날 위기에 처한 그가 아직 ‘건재함’을 내비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에선 천정배 전 공동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천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송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차별 없는 세상, 주권 중심 대한민국의 길을 여는 데 앞장서겠다”며 “국민혁명 완성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다 하고자 다가오는 대선에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천 전 대표의 선언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 혼자 대권 레이스에 있었기 때문에 약간 외로운 적이 많았고 또 국민들로부터 집중을 받는 데도 약했다”며 “그러나 이렇게 천 전 대표가 뛰어들어 경쟁체제가 구축돼 당의 발전을 위한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당초 국민의당은 ‘안철수당’이라고 불리면서 외연확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의 연대 제의에도 선을 그으며 대선 완주를 공언키도 했다. 국민의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에게 끊임없이 국민의당 합류를 제의했지만 확답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서 천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국민의당은 한시름 놓은 모양새다. 최소한 2명의 대선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경선을 치를 수 있는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선 안철수·천정배 경선 체제를 구축해 다른 잠룡들 영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정치권은 지난 16대 대선을 통해 강한 경선이 강한 본선의 밑바탕이 되는 것을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실제로 당시 불과 2%에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선을 통해 ‘노풍’을 일으키며 본선 승리를 쟁취했다. 천 전 대표는 외연을 확장해 강한 경선을 치르고, 강한 후보로 수권정당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밖에 야권의 군소 대권후보로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정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준비가 끝나면 1월 쯤에 선언할 수 있다. 그야말로 후발주자라 계속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제가 또…친박계 단독 후보 확정?
천정배 의도는…외연 확장·강한 경선
‘동반성장’ 정운찬 여당 버리고 어디로?
국민의당의 러브콜에 대해서는 “국민의당이 제시하는 방향성이 다른 데보다는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국민의당 합류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놓음에 따라 대선주자 기근에 시달린 국민의당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14일 “새누리당 친박계와는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는 그가 현 정국에 책임을 친박계에 묻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 전 총리가 대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 전 총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충청대망론의 기수로 꼽힌다. 그는 반 총장에 대해 “외국에 너무 오래 계셔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선 “함께 잘사는 동반성장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누구의 도움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며 반 총장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즉, 정 전 총리가 특정 정당에 정착해 누구와 연대를 도모하느냐에 따라 올해 대선 지형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과 연대를 하지 않고 각을 세워 충청표가 나뉘게 되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가 반사효과를 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달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대선 출마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에는 대선 출마 여부에 여지를 남기면서 뒷말을 무성하게 남겼다. 출입기자 간담회서 “지금은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끝나고 나면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며 또한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그건 제가 말씀드렸다”면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황 권한대행이 광폭행보를 보이자 야권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정부질문에 참석하라며 황 권한대행을 압박했고 “관리자에 그쳐야 한다”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여권 친박계의 생각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대선주자가 전무한 친박계 입장에서는 황 권한대행을 대선주자로 내세워 반전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당장은 ‘폐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영입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황 권한대행이 자리서 내려오면 새누리당이 본격적으로 황 권한대행 띄우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갈팡질팡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군수 후보들이 본인의 존재감 구축을 위해 출마를 선언한 것”이라며 “유력 대선주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는 어렵겠지만 대선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이라는 ‘대형이벤트’는 정치인에게 큰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