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덕보는 기업들

매장될 뻔 했는데…그녀가 꺼내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최순실 게이트’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검찰 수사력과 여론이 집중되면서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기업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최순실 덕에 남몰래 웃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현 KDB산업은행)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에 따라 검찰의 대우조선해양 비리 관련 수사의 강도가 더해지는 모습이었다.

[대우조선해양]
[김새는 수사 ]

하지만 9월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검찰 수사력이 한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초반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박수환 게이트를 터뜨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모양새였지만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평가된다.

박수환 게이트는 검찰이 대우조선해양 경영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서 당시 홍보대행업무를 맡았던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의 석연찮은 행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터졌다. 특히 박씨와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에게까지 수사력을 확대하면서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력은 최순실 이슈가 불거지면서 약해지는 모습이다. 실제 검찰이 배에 힘주고 밀어붙이고 있는 강 전 행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9월말 법원이 기각하면서 검찰 수사 동력이 약해졌다.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선 최순실 게이트로 여론의 관심을 피해가며 검찰의 날카로운 예봉을 피해가는 모양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구조조정 칼날마저도 피해가는 양상이다.

위기의 대기업 기사회생
국민들의 지탄 받다 잠잠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 달전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향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주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출자전환을 통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총력을 기울일 뿐 구체적인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정태옥 의원(새누리당)은 이날 정무위의 산업은행 혁신안 및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현안보고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자구계획에는 자산매각과 관리직 인력감축, 협력업체의 구조조정에 그치는 수준”이라면서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같은 핵심 자산 매각과 인력의 과감한 구조조정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를 어렵게 본 <매킨지 보고서>가 앞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대우조선해양의 자구계획에 대한 노조 동의 없이는 추가적인 현금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형제의 난]
[일단 정지]

효성도 ‘논란의 문’이 열리기 전 최순실 파문으로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효성은 그동안 ‘형제의 난’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효성 조석래 회장의 3형제는 경영권을 두고 경쟁을 해왔다. 하지만 차남 조현문 전 효성중공업 부사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 의견이 맞지 않아 아버지 조 회장과 형 조현준 사장 등을 상대로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다. 조 전 부사장이 2014년 6월 조 회장과 조 사장을 횡령·배임 등 기업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 이른바 형제의 난이 불거진 것이다.

사건은 현재까지 치열하게 진행되는 양상이었다. 그결과 국세청 고발에 따른 검찰 수사로 조석래 회장이 수천억원대 횡령·배임과 탈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올해 1월 1심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인자금 유용이 드러난 조현문 사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심 재판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형제의 난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진정되는 기미다. 조 전 부사장의 지근거리서 법률 자문을 맡는 등 법률적 지원 사격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자 조 전 부사장의 힘이 크게 빠지고 있는 것.

현재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각종 이권 개입에 연루됐는지 검찰 조사가 한창이다. 따라서 조 전 부사장과 우 전 수석 사이에 수상한 흐름이 파악될 경우 조 전 부사장의 ‘형제의 난’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끌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예상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롯데 수사]
[동력 상실]

롯데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묻히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은 지난해부터 경영권을 두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그룹 부사장 사이 형제의 난이 불거지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롯데그룹의 국적 논란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치매설까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뉴스를 만들어 낸 것.

국민 여론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지난 6월부터 지난달 19일까지 4개월동안 검찰은 롯데그룹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롯데수사 성과는 외견상 화려했다. 신격호·신동빈·신동주 등 오너일가 5명을 포함해 총 24명이 조세포탈·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검찰이 밝혀낸 총수일가 범죄금액도 3755억원에 이를 만큼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당초 핵심 의혹인 오너일가 비자금, 제2롯데월드·롯데홈쇼핑 인·허가 관련 비리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이미 다른 건으로 기소됐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주요 인사들이 모두 불구속 기소돼 검찰의 수사력에 한계를 보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순실 사태로 인해 여론의 관심마저 차갑게 식어 롯데로서는 재판을 준비하는 데 부담이 줄어든 모습이다. 실제 지난 15일, 롯데그룹 비리 관련 재판이 열렸지만 각 언론의 ‘헤드라인’ 자리는 최순실 관련 기사에 내줬다.


[네이처리퍼블릭 ]
[오너리스크 해소]

네이처리퍼블릭 역시 최순실 게이트 덕분에 오너리스크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지난 4월, 불법 도박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정운호 전 대표가 변호사 폭행 스캔들에까지 휘말리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대표직을 맡고 있던 정운호 전 대표는 스캔들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대표자리까지 김창호 현 대표에게 넘기면서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이었지만 상황 타개가 쉽지 않았다.

당시 실적이 이를 반영한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올해 상반기 1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 163억원에 당기순이익을 시현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당기순손실 19억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오너리스크가 더욱 두드러진다.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3%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15억원으로 무려 76.4%나 감소했다.
 

2분기에는 실적이 더욱 악화돼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전환됐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올해 2분기 영업손실 37억원, 당기순손실 3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의 경우 1분기 7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고, 2분기에는 645억원으로 10.9%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네이처리퍼블릭은 오너리스크가 확대되자 당시 추진 중이던 기업공개(IPO)를 현재까지도 못하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슈부터
오너 리스크까지 한방정리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주요 관심사가 네이처리퍼블릭서 청와대로 옮겨갔다. 또한 여론의 부정적인 관심 역시 네이처리퍼블릭에서 멀어지는 모양새다.

정 전 대표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관심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네이처리퍼블릭 입장에서 불필요한 관심이 제기돼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다만 네이처리퍼블릭이 악재서 벗어나는 모습이지만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정 전 대표의 지분 매각설은 6월경부터 구체화돼 업계에 돌고 있으며, 추락한 실적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약품]
[슬그머니 위기탈출]

한미약품은 지난 9월말 늑장공시를 통한 편취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목이 집중됐지만 역시나 최순실 게이트 덕분에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다. 한미약품은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베링거잉겔하임 기술이전 계약 해지 관련 정보를 일부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전 유출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공매도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언론도 한미약품 논란에 대해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이었다. 검찰과 금융당국도 사건 발생 초기에 강력한 의지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례적으로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범행 가능성이 짙다고 보고 패스트트랙(조기 사건 이첩) 제도를 통해 사건을 지난달 13일, 검찰로 이첩했다.

그러나 최순실 파문으로 한미약품 수사가 국민들의 관심서 멀어지면서 수사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증권가서조차도 검찰의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것으로 예측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가운데 검찰 조사를 받던 한미약품 직원이 실종되면서 검찰의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지난달 31일, 김모씨는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뒤 실종된 것. 현재까지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에 힘이 빠질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인데, 한미약품으로서는 한시름 놓은 셈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의 경우 검찰의 수사력이 더욱 집중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검찰의 수사력이 최순실 게이트로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 입장에선 대비가 편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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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