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 문재인 딜레마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6.11.21 11:02:06
  • 호수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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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고우면하다 영영 뒤집힐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혼란한 정국을 기화로 지지율 1위를 꿰찼다. 최근에는 퇴진운동을 선언하며 선명성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에 ‘대통령 된 줄 착각한다‘는 비판을 듣고, 뒤로 물러서면 야권에게 ‘책임감 없는 대선주자’라는 평을 듣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최근엔 현 정국의 호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들려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통해 머리를 맞대고 퇴진운동의 전 국민적 확산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식?
광폭행보 나서

최근 문 전 대표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퇴진’을 내세우며 광폭행보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2일 100만 촛불집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다른 야권 잠룡들에 비해 다소 늦은 시점에 촛불집회 참석의사를 밝히는 등 이슈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달 말부터 문 전 대표는 퇴로를 두는 전략을 취하면서 이슈를 이끌기보다는 관망하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확정된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입장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과도하게 뒤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최근 들어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문 전 대표의 광폭행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퇴진운동’을 강조해 안 전 대표가 주장한 ‘정치혁명’과 같은 맥락의 강한 어조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때문에 안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차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강도 높은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전 대표가 현 정국서 이슈를 선점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 더 이상 눈치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문 전 대표의 하야 주장에 대해 “결국은 이번 하야를 통해 조기 대선을 점화시키겠단 것”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 ‘퇴진운동’ 선언…다소 늦은감
거국중립내각 화두 던졌는데 청와대 수용?

뒤에 머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보류한 그를 정면 비판하는 잠룡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좌고우면하는 문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당내 최대 세력인 문 전 대표가 입장을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동안 계속 바뀌어 왔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왜 이렇게 갈지자 행보를 하느냐. 이것은 문재인 전 대표의 어정쩡한 자세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 위상에 흔들림이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권 일각서 어정쩡한 문 전 대표의 태도를 비판했다면 여권은 오락가락 행보에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문 전 대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달 26일 ‘거국중립내각’ 화두를 정치권에 처음으로 던졌다. 새누리당은 당초 예상과 다르게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새누리당 추천 내각은 거국중립내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해 여권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더민주 지도부서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해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넘기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총리 추천권은 야권3당의 공식적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단순 국회 추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리에게 조각권과 국정 전반을 맡기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거국중립내각 때와 마찬가지로 문 전 대표는 청와대의 야권 요구 수용을 거부했다. 이러한 문 전 대표의 행보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은 진실성과 일관성이다. 문 전 대표의 이런 말 바꾸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불만을 표했다.

호재를 이렇게?
확장성이 문제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가 대형 호재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율 정체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11월 3주차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0.0%로 18.4%를 기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앞서며 3주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반 총장을 앞서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 지지율은 10% 이상 상승하고 반 총장 지지율이 7∼8% 떨어지는 등 큰 폭의 변동이 있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반기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10%를 돌파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문 전 대표 고정 지지층(20%)은 견고하지만 이밖에 중도, 새누리당 이탈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은 현 청와대의 실정으로 인한 착시효과인 셈이다.

또 청와대가 마비되고 새누리당이 친박-비박 간 주도권 경쟁에 함몰된 상황서 문 전 대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민주 한 초선의원은 문 전 대표에 대해 “현재 정국의 과실을 빼먹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지율 확장의 숙제를 안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최근 총선 전 ‘호남발언’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지난 4월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서 더민주는 제1당에 오르며 여소야대 국회의 선봉장이 됐지만 호남에선 국민의당에게 깃발을 뺏겼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계 은퇴가 자연스러운 수순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국회가 열린지 5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 과거 ‘호남발언’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서 처음으로 구체적 해명에 나섰다. 그는 "당시 선거서 우리가 승리하고 또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막아 우리 당 정권 교체의 기반을 구축했다"며 "광주와 호남서 우리당이 지지받기 위한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만약 광주·호남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이 있다면 죄송하고, 그 발언의 맥락을 잘 살펴달라”며 “광주·호남 민심 지지가 없다면 대선을 포기할 것이란 부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야는 찬성 탄핵은 반대
지지율 1등인데 의문부호


해명 이후 정치권에선 ‘선거 전략으로 그냥 했던 말이란 이야기 아니냐’며 문 전 대표를 강하게 질타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의 해명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러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90% 이상 지지를 해준 호남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과 말을 하는 분이 또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은 말로만 호남을 생각한다면서 완전히 호남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태까지 뚜렷한 의견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민심이, 또 정당들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퇴진을 요구한다”며 비판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당 차원서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은 논평서 “문 전 대표는 전략적 거짓말을 해서 미안한 것인지, 아직도 정계를 은퇴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면 호남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에 앞서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에선 문 전 대표는 호남서 90% 이상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총선서 호남 민심이 문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호남서 더민주가 단 1석도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호남에 전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명실공히 호남의 맹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의 꾸준한 호남행은 그의 대선 플랜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11일 광주를 방문해 ‘그린카 산업’ 홍보를 위해 전기차를 타고 민심을 살폈다. 지난 2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 나주역사,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뒤 광주대교구청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하며 민심다지기에 나섰다.


문 퇴진운동
새누리 반발

최근에는 새누리당서도 친박계를 중심으로 문 전 대표의 행보를 질타해 문 전 대표의 대선행보를 어둡게 하고 있다.

친박계 중진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지난 16일 “문 전 대표는 대통령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며 “국민 분열을 틈타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유력 후보가 전국을 다니면서 대통령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본다. 당 차원에서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 여론몰이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라며 문 전 대표의 대통령 퇴진운동을 인민재판으로 규정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문 전 대표 비난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고 ‘원맨쇼’하겠다는 것이냐”며 “지금 대통령이 다 된 줄 착각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야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인 문 전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들이 여야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문 전 대표 입장에선 현 정국서 전면에 나서면 새누리당의 집중포화를 받게 되고 뒤로 물러서면 국민의당 및 정의당 등 야권의 공세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는 박 대통령 자진퇴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탄핵과는 시종일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제기와 관련해 “나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하야까지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탄핵 절차까지 밟는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나쁜 대통령”이라고 힐난했다. 문 전 대표가 탄핵이 아닌 퇴진에 중점을 둔 이유로는 하야를 통하면 60일 이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만 놓고 봤을 때 조기 대선은 문 전 대표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싸움이다. 또한 탄핵은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동의와 더불어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탄핵은 결론이 나기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국정동력을 상실한 박근혜정부에 정국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 된다. 문 전 대표는 퇴진을 주장함으로써 ‘조기대선’과 ‘청와대 압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반기문-잠룡연대
뜨면 문재인은?

문재인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 지형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전 대표에 힘이 실릴수록 다른 대선주자들은 다른 지점에서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며 “만일 반기문 총장과 연대한다면 문 전 대표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 싱크탱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서울 프레스센터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싱크탱크에는 교수와 각 분야 전문가 등 약 500명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싱크탱크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외연확장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면 이번에는 중도층 표심잡기에 닻을 올린 셈이다.

싱크탱크는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았다. 조 교수는 국제기구 출신 경제학자로 참여정부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추진단장은 김현철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 양봉민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교수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진심캠프’에서 활동한 정영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산하에 각 분야별 7개 분과로 조직됐다. 또한 경제·민생 대안을 내놓기 위한 10개 핵심추진단도 운영된다.

<기사 속 기사> ‘개헌’ 문재인 생각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해 개헌론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국회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는 긴급기자회견서 문 전 대표는 “우리 헌법은 손볼 대목이 많다”며 “당연히 저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대선서 개헌을 공약한 바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개헌을 논의하면 국면 전환을 초래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꺼내는 개헌카드에 대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 참 느닷없다. 생각이 갑자기 왜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개헌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정권연장을 위한 제2의 유신헌법을 만들자는 거냐”고 꼬집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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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