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진 범서방파’ 추종세력 백태

잡아도 잡아도 ‘살아있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전국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폭력을 행사하던 ‘통합 범서방파’의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태촌의 ‘범서방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의 추종세력은 그대로였다.

피해자에는 전직 대통령 차남, 유명 드라마 제작진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이번에도 ‘소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범서방파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보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늘 그래왔듯 어디선가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태촌은 1977년 조직된 서방파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1970~1980년대 당시 양은이파 오비(OB)파와 함께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았으나 1989년 서방파의 행동대장 격인 정아무개씨가 살해되면서 서방파의 위상이 도전받자 김씨는 세력 재정비를 위해 ‘범서방파’를 결성하게 된다.

해체됐다고?
건재한 조직

김씨의 활동 무대는 정·재계와 연예계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1976년 김씨 일당은 박정희정권의 사주를 받고 신민당 전당대회장에 난입해 당시 김영삼 후보 측 대의원에게 각목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김씨는 1986년에는 인천의 나이트클럽 사장 황아무개씨를 흉기로 난자한 사건으로 징역 5년을, 1992년에는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유명 영화배우를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씨가 사망한 후에는 함평·화곡·연신내 범서방파 등 3개 조직 60명이 모여 ‘통합 범서방파’를 결성하고 전국 건설현장이나 유흥업소, 분쟁현장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지난 8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합 범서방파 조직원 81명을 붙잡아 이 중 두목 정모(57)씨 등 17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과정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52)씨에게 거액을 갈취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전재용씨의 외삼촌인 이창석(65)씨는 경기도 오산 땅을 수원 N건설사에 매각했다. 당시 전씨는 이씨로부터 계약 업무를 위임받았다. N사는 대금 400억원 중 100억원이 모자라자 보유하고 있던 용인의 토지를 담보로 내놓았다. 그러나 N사는 부도를 냈고 전씨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법원에 이 토지의 공매를 신청했다.
 

그러자 N사 대표와 친밀한 사이였던 통합 범서방파 화곡 계열의 두목인 조모(50)씨가 개입했다. 그는 2012년 1월 조직원 40여명을 데리고 N사의 공매 대상 토지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조직원들은 유치권을 주장하는 플래카드도 내걸고 20여일 동안 숙식하며 막무가내로 공매 실사단의 접근을 방해했다. 이들은 전씨에게 20억원을 갈취하고 나서야 현장서 철수했다.

계속되는 이권 개입 적발
전두환 차남에 20억 갈취

같은 해 8월에는 전북 김제의 한 교회 강제집행 현장서 강제집행에 반대하던 신도 100여명을 소화기로 폭행했고 역시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강남서 부산 기반 조직과 조직원 150명을 동원해 대치하는 등 전국을 누비며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2009년 9월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에 난입해 제작진을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영화배우 이병헌과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강병규 간의 갈등으로 촉발된 사건으로 소개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다.


통합 범서방파 조직원들은 지난해와 올해 각종 경매장에 난입해 경매를 방해하는 등 올해 초까지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이미 범서방파의 와해를 선언한 적이 있다. 2009년 11월 김태촌의 후계자로 불리던 나모(50)씨는 조직원들로부터 “칠성파 조직원들이 전쟁을 하려 서울로 단체 상경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씨는 당시 칠성파 부두목 정모(44)씨와 사업투자 문제로 갈등을 빚던 상황이었다.

이들은 최근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조직원들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경찰에 진술해라”고 지시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진술하기 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면 진술 자체가 효력이 사라진다는 점을 노렸다. 경찰은 “이들 조직의 이권과 폭력행사를 한 곳이 더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겠으며 수도권서 활동하는 다른 조직폭력배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출범한
통합 범서방파

경찰은 이미 범서방파의 와해를 선언한 적이 있다. 2009년 11월 김태촌의 후계자로 불리던 나모(50)씨는 조직원들로부터 “칠성파 조직원들이 전쟁을 하려 서울로 단체 상경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씨는 당시 칠성파 부두목 정모(44)씨와 사업투자 문제로 갈등을 빚던 상황이었다.
 

그는 칠성파와의 전쟁에 대비해 11일 오후 7시 범서방파 조직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란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비상근무에 들어간 경찰의 감시 등으로 패싸움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나씨는 당일 오후 7시30분쯤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 조직원 해산을 명령했다.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은 대대적인 범서방파 소탕 작전에 들어갔고 부두목 등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뭉친 잔존들
여전한 파워

당시 경찰은 “범서방파를 비롯해 호남의 국제PJ파, 경기 청하위생파, 부산 칠성파 등 국내 유명 폭력조직들이 대부분 와해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또 경찰은 “이번 수사로 사실상 범서방파는 와해돼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범서방파와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지난 6월엔 강남 범서방파 폭력조직원이 흉기를 들고 집안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실탄에 맞고 검거됐다. 지난 6월20일 밤 11시께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 2층에 수배자가 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들어왔다.

수배자는 오모(36)씨로 폭력조직인 강남 범서방파 조직원으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올해 초 검찰에 수배된 상태였다. 2012년 7월 조직원 80명과 함께 수도권과 강원지역 아파트 분양 사업장과 유흥업소와 오락실 등에서 폭력을 일삼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하지만 첫 재판부터 출석하지 않자 의정부지법은 구속영장을 발부해 의정부지검에 수배를 의뢰했다. 오씨는 경찰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목에 댄 뒤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밥상을 방패로 이용했다. 옆에는 오씨의 자녀 등이 있었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쏘겠다고 했으나 오씨는 되려 “테이저건 맞아봤다. 손은 움직일 수 있더라. 쏘면 자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수차례 일망타진과 와해
다시 부활해 전국서 활개

그보다 전 4월에는 차명으로 대량 보유한 주식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 김태촌 씨의 양아들 김모(43)씨가 1심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치는 50분 동안 이어졌다. 경찰은 결국 실탄을 쏘겠다고 세 차례 경고한 뒤 흉기를 쥔 왼쪽 어깨를 향해 실탄 1발을 발사했다. 실탄은 오씨의 4번과 5번 갈비뼈 사이에 박혔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난 5월 강원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대낮 춘천서 집단 패싸움을 벌이다 달아난 2개파 폭력조직원 29명을 체포해 특수상해 혐의로 12명을 구속하고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지난 2월 폭력조직원 17명을 체포(8명 구속, 9명을 불구속)했고 달아난 29명을 추적 중이었다. 두 폭력조직은 춘천의 생활파와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범서방파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19일 춘천시 효자동의 한 주점 앞에서 생활파 이모(32)씨 등 5명이 범서방파 이모(31)씨등 3명과 시비가 붙어 대낮 길거리서 패싸움을 벌였다.

두 조직 폭력배들은 오전 8시 춘천시 송암동 종합운동장 주차장서 만나 서로 준비한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패싸움을 벌였다. 이 패싸움으로 양측에서 5명이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전 4월에는 차명으로 대량 보유한 주식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 김태촌씨의 양아들 김모(43)씨가 1심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상장법인의 주식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사항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취득한 주식 수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며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또 2011년 1월 김씨가 지명수배된 지인에게 관계 당국에 청탁해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12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김씨는 이 혐의 외에도 기업 인수 합병 전문 브로커와 짜고 2012년 11월 우량 벤처기업인 위조지폐 감별기 제조사를 인수한 뒤 200억여원의 회사 자금을 빼돌려 인수대금으로 끌어온 사채를 갚는 데 쓴 혐의 등으로 지난해 4월 구속기소됐다.

김씨는 지난 2013년 1월 숨진 범서방파 두목 출신 김태촌씨 곁에서 범서방파 행동대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1999년 폭행, 2002년에는 특수강도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기 어렵다더니…
보란 듯이 범행

이번 통합 범서방파 이권개입 사건 이후 경찰은 또다시 ‘일망타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범서방파가 쉽게 와해되진 않을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직도 김태촌의 추종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범서방파의 두목 등 잔존 세력들이 잠시 몸을 피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범서방파 내부를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범서방파는 쉽게 일망타진되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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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