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손학규 정면충돌 시나리오

전대 끝나고 큰 싸움 벌어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야권의 거대 잠룡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이 장외서 대권 민심 다지기에 한창이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까지 손 전 고문 영입전에 뛰어든 가운데 오는 8·27전대를 마치고 문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은 나란히 호남을 방문해 호남 민심 회복 경쟁에 돌입했다. 문 전 대표는 축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어록 가운데 ‘야권대통합으로 민주세력의 힘을 하나로 모아서 정권교체를 해 달라’는 말을 인용해 “내년 대선서 대통령님의 유지를 잇겠다”고 약속했다.

둘 다 모두
“새판 짜겠다”

같은 자리서 손 전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은 5번의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통령까지 되면서 인동초정신을 보여주셨다”면서 “우리도 이 위기를 김대중 정신으로 국민의 뜻을 모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두 명 모두 DJ를 거론하면서 호남 민심 잡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문 전 대표가 손 전 고문에게 “언론에 비치는 모습이 아주 좋다. 빨리 돌아오셔서 힘을 주셔야죠”라고 말하자 손 전 고문은 대답 없이 웃기만 한 것으로 알려진다.

네팔서 귀국한 문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 입김을 불어넣을 경우 자칫 더민주가 친문패권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한동안 여의도와 거리두기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복귀시점은 오는 27일 더민주 전대가 끝난 이후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지난 5월, 손 전 고문은 “정치의 새판을 짜겠다”고 밝혀 공식적으로 정계복귀를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 모임에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되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정계복귀 선언을 했다고 보고 있다.

손 전 고문의 현재 당적은 더민주지만 그는 정계복귀 장소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더민주는 물론이고 국민의당을 비롯한 새누리까지 손 전 고문에 대한 영입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간 새판짜기를 강조해온 손 전 고문이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정계복귀는 더민주, 국민의당 두 당 중 한 당일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더민주는 실질적으로 대주주라고 불리는 문 전 대표가 버티고 있고, 국민의당에는 안 전 공동대표가 대선주자로서 몸을 풀고 있다. 손 전 고문이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두 대선후보와의 한판승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야권 잠룡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정가의 관심이 쏟아졌다.
 

박 시장은 휴가 중이던 지난 16일, 손 전 고문이 머물고 있는 전남 강진군 백련사 인근 토담집을 찾아 손 전 고문과 대화를 나눴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배석자 없이 둘이 안부와 덕담을 주고 받았다”고 말했고, 손 전 고문 측 관계자는 “심각한 청년실업, 어려운 서민경제 등 우리 사회의 위기가 주로 화제였다”고 전했다.

문-손 나란히 호남행…장외 민심잡기 올인
“빨리 돌아오시죠” 세 결집 후 한판 승부

일각에선 둘의 만남을 두고 문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독주하는 상황에서 비주류 후보 간 연대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손 전 고문이 더민주 내 비주류 잠룡으로 인식되는 인사를 접하면서 외연확대에 나서는 동안 문 전 대표는 야권단일화에 초점을 맞췄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이 열린 국립현충원 현충관서 “지난번 총선 과정에서 야권이 서로 경쟁했지만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다들 뜻을 함께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희(나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어떤 방식이든 함께 힘을 모아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고도 했다.


문 전 대표의 단일화 발언을 두고 안 전 대표는 “지금 국가가 큰 위기상황인데 이럴 때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이 그립다”며 “많은 어려움이 우리 앞에 직면에 있지만 김 대통령이 남긴 말과 원칙들을 명심해서 이런 위기와 난국을 꼭 극복하도록 하겠다”고 원론적인 발언만 했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단일화 제안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손 전 고문의 합류에는 반색하는 입장이다.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에 합류할 경우 외연확장을 도모함과 동시에 대선 경선서 손 전 고문을 누를 경우 지지율 상승과 전국적 확장성을 갖는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손 전 고문과 정운찬 전 총리를 향해 "당에 들어오면 비대위원장이나 당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박 위원장은 “안철수 전 대표 한 사람만으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 우리가 문지방을 확 내려버려야 한다. 그분들이 당에 들어와 대선 경선 틀과 룰을 직접 만들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세론
손학규가 막는다?

다만 여기서 손 전 고문의 고민이 깊어진다. 손 전 고문이 박 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해 국민의당을 선택할 경우 대선 경선 틀과 룰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안철수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안 전 대표가 지배하고 있는 국민의당에 합류할 경우 경선 승리조차 장담키 어렵다.
 

설사 안 전 대표를 이기고 국민의당 단독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문 전 대표와의 한판 승부도 불가피하다. 지속적으로 야권 '단독후보론'을 내세우고 있는 문 전 대표의 말대로 내년 대선에서 10년 만에 야권이 정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야권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손 전 고문이 국민의당이 아닌 더민주를 택하게 된다면 문 전 대표와의 대결은 더민주 내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박 시장을 만나는 등 비주류 외연확장에 나선 점을 볼 때 손 전 고문이 더민주 내에서 세 결집을 통한 한판승부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오는 27일 열리는 더민주 전대 결과에 따라 문 전 대표와 손 전 고문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당초 더민주를 장악한 주류계에 의해 더민주에서 이종걸 당 대표 후보가 컷오프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을 깨고 이 후보는 컷오프서 살아남았다.

“문과 끝판승부 벌인다”
손, 전대 후 진입 가능성

이 의원은 한 언론을 통해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손학규계라고 불리는 분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면서도 “손학규 의원을 따르는 분들이 저를 지지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일부 당원에게 “제가 당 대표가 되면 손 전 고문을 모셔오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후보는 손학규계의 측면 지원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예비경선 결과를 놓고 보면 손학규계의 결집력이 친문(친 문재인)계에 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후보와 문 전 대표 모두 손 전 고문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둘의 속셈은 엇갈린다. 이 후보는 손 전 고문을 영입해 비주류와 주류를 아우르는 대선후보로 내세우려고 하는 반면, 문 전 대표는 본인의 러닝메이트 혹은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세우려 하는 모습이다. 주류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추미애 의원은 “1등 후보를 지키겠다”고 말해 노골적으로 친문계의 지지를 호소함과 동시에 문 전 대표 띄우기에 나섰다.

이처럼 8·27 전대가 주류 대 비주류의 양상으로 접어든 가운데 누가 당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손 전 고문의 더민주 합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손 전 고문이 더민주에 조기 합류해 대선 경선을 치르는 그림도 그려진다.
 


이 후보가 당권을 잡는다는 것은 당원 민심이 비주류를 향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후보가 문 전 대표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도 손 전 고문에게는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 후보는 대선 경선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고 문 전 대표 대세론에는 회의적인 모습을 내비쳤다.

손학규-잠룡 연대
문재인 무너뜨리기

반면 추 의원이 당선된다면 더민주는 본격적으로 문 전 대표 띄우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선의 룰과 틀 자체도 문 전 대표 중심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손 전 고문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문 전 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오는 27일 열리는 전대 결과에 따라 손 전 고문이 더민주서 본격 등판할지 아니면 제3지대를 구축할지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에는 손 전 고문을 제외하고도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등 잠룡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한다. 손 전 고문이 더민주 내 잠룡들과 연대해 세를 규합한 다음 문 전 대표의 아성을 무너뜨릴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종인 ‘문재인 제동’ 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김 대표는 한 언론과의 퇴임 인터뷰에서 “‘이대문’(이대로 가면 대권후보는 문재인)하고 집권과는 별개의 사항”이라며 “착각하면 큰일난다”고 일갈했다.

김 대표는 “자기들이 막강한 패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대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그것과 내년 대선 결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걸 인식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전 대표가 주장한 ‘화합’과 ‘외연확장’에 대해 말만 가지고 화합과 외연은 힘들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더민주 대선 레이스에 대해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더 두고 봐야 한다”며 “누구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선 밋밋하고 맥빠져서 안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계 복귀 여부로 관심을 모으는 손학규 전 고문에 대해서 “더민주라는 협소한 공간만 생각할 게 아니라 외곽에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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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