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45) 현장 점검

국립극장서 거사 치른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담뱃불을 살피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 바늘이 막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저만치 아래서 택시가 올라오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담배를 발로 가볍게 비벼 끄고 극장 건물 한 모퉁이를 찾아 몸을 숨기고 택시를 주시했다.

동일의 예상대로 택시는 국립극장 앞에 멈추어 섰고 예의 정장 차림의 석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살피며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으로 시선을 주었다. 근처에도 이르기 전에 절로 눈이 감겼다.

피식하고 한번 웃고는 석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모자를 반듯하게 쓰고 내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며 고스란히 태양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귀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일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가까이 이르자 인기척을 느낀 석원이 고개 돌렸다.

이어 모자를 벗고 상체를 90도 정도 꾸부려 예를 표했다.

순간 일본인들의 지나친 인사 예법을 생각하며 문석원이 아닌 난조 샤쿠겐이라는 이름이 입가에 맴돌았다.


“지금 온 게요?”

“먼저 와 계셨습니다.”

“한번 둘러보려 먼저 왔소.”

둘러본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 의미를 알았는지 석원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기서 기다릴 테니 한번 둘러보고 와요.”

동일의 낮은 목소리에 석원이 가볍게 고개 숙였다 몸을 돌려 건물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동일이 다시 나무 그늘에 몸을 맡기고 석원의 움직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건물에 이른 석원이 고개를 돌려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이어 다시 고개를 돌려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는 듯 문 앞에 자리 잡았다.

그 자리에서 문손잡이를 돌리는데 문이 닫혀있는지 애를 먹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순간 동일이 다가가 석원을 불렀다. 동일의 부름에 석원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급히 돌아왔다.


“지금 내부를 볼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러니 오늘은 주차장에서 건물까지 가는 동선만 살피도록 하오.”

석원이 다시 주차장에서 국립극장 정문까지 가는 길을 살펴보았다.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는 동선을 석원이 여러 번 관찰했다.

그를 바라보던 동일이 석원을 승용차에 태우고 남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산타워 근처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타로 상.”


“예, 지도…아니 나카소네 상”

“고타로 상은 남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오?”

느닷없는 질문인지 석원이 흠칫했다.

“고타로 상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남조선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타로 상은 남조선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 하는 소리요.”

“오히려 그 부분 때문에 정이 가지 않습니다. 부모님 모두 남조선 출신이건만 왜 일본이란 땅에 와서 그리도 천대받으며 살아야 했는지. 그런데 남조선은 일본과 친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특히 박정희 일당들을 보면 정말로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고는 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고 말고. 거기에 더하여 박정희 정권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독재를 감행하고 있으니 고타로 상처럼 트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참기 힘들다 생각하오.”

말을 하며 근처를 바라보자 한적한 곳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동일이 그리로 걸음을 옮겨가자 석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뒤를 따랐다.

“잘 보도록 하오.”

동일이 벤치에 앉자마자 주변을 살피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국립극장 내부 설계도요.”

순간 석원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곳이 아까 고타로 상이 들어가려던 입구요.”

석원이 동일이 가리키는 지점을 따라 내부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1층 로비가 나타났고 이어 극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었다.

이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함께 그곳에도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나카소네 상.”

“말해보오.”

“저는 국립극장이라고 해서 상당히 규모가 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리고 이 배치도를 살펴보니 이외로 규모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내 어느 곳에서 저격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막상 현장을 살펴보니 어느 곳에서고 저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허술한 경호 노려… 연설 중 저격 모의
“반드시 성공해야” 근접 사격 신신당부

동일이 내색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웃고 말았다.

“물론 고타로 상의 말이 백번 지당하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거요. 그리고.”

동일이 말하다 말고 뜸을 들이자 석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비록 여분의 총알이 있지만 첫발에 치명상을 입혀야 하오. 그리고 나머지 총알은 확인 차원에서 사용되어야 하오.”

석원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링컨의 경우를 상기하라는 말이오. 링컨을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던 사유는 바로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했기 때문이오.”

동일이 시선을 배치도에 주었다.

석원 역시 동일의 시선을 따라갔다.

“잘 살펴보오, 어디가 최적의 장소인지.”

석원에게 주문을 주고 이내 곁에 있는 돌을 들어 저만치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꿩이 나무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꿩을 향해 돌을 던졌다.

정신없이 먹이를 찾아 배회하던 꿩이 낌새를 알아챘는지 돌을 던지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나카소네 상, 순간적으로 든 생각인데 목표물이 움직임이 없을 때 저격하는 방식이 옳지 않겠습니까?”

“잘 보았소, 바로 그런 문제요.”

동일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 박정희가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석원이 다시 시선을 배치도에 주면서 주차장부터 행사장으로의 이동 경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주차장은 어떠하겠습니까?”

석원이 손가락으로 주차장을 지적했다.

“주차장은 곤란하오.”

“왜요?”

동일이 단정적으로 말을 받자 석원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가장 경호가 삼엄한 부분이 박정희가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간이오. 즉 처음 부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집중하는 게 경호의 기본이오.”

“그러면 경호가 가장 허술한 순간을 잡으라는 말씀이십니다.”

“당연하오. 그러니까 방금 이야기했듯이 정지 상태에서 그리고 경호가 허술한 이러한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저격 순간을 선택해야 하오.”

“그렇다면…”

석원이 말하다 말고 뚫어지게 동일을 주시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좋은 생각보다도, 광복절 행사 당일 박정희가 연설할 거 아닌가요. 그러면 그 순간을 이용해서 저격하는 방법이 좋을 듯합니다.”

“그것은 최후의 방법이고.”

“최후라니요?”

“고타로 상이 그 순간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소? 다행스럽게도 연설대 가까이 있다면 고타로 상 말대로 최적의 기회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먼 거리에 있다면 어려운 문제가 될 거요.”

“제가 가까이 자리 잡으면 어떨까요?”
 

<다음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