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더민주 당권쟁탈전

문재인 없으니 고만고만 ‘더 빡세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친문세력 내부의 싸움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된 더민주 전당대회가 이종걸 의원의 합류로 주류 대 비주류의 대결로 급 반전됐다. 전대가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요시사>는 내년 대선정국의 이정표 역할을 할 더민주 당대표 선발전을 미리 살펴봤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전당대회(이하 전대)는 4파 구도로 확정됐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추미애, 송영길, 김상곤 3인방에 비주류 이종걸 의원이 가세한 모양새다. 당초 당대표 출마를 점쳤던 더민주 내 비주류 측 김부겸, 박영선 의원은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다.

주류 vs 비주류
정면대결 구도

더민주 추미애 의원은 지난 28일 “분열을 막고 통합을 이뤄내겠다”며 공식적으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추 의원은 “야권 통합보다 우리당의 강력한 통합이 먼저”라며 “당이 강해져야만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민주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과 송영길 의원은 앞서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4일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파의 눈치를 보며 표를 구걸하는 대표는 필요없다”며 “대선승리의 필승공식으로 당과 국민의 힘을 모을 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또 김 전 위원장은 “우리 당에는 좋은 후보들이 많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대선후보가 되고자 하는 분들은 경쟁의 장에 모두 나오라”고 강조했다.

같은날 송 의원도 “8·27 전당대회에서 선출할 당 대표는 우리 당을 지지율 1위의 강력한 수권정당으로 변모시킬 일꾼이어야 한다”며 “강한 야당을 만들어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말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당대표는 대선 경선 관리자가 아니다”며 “전대 이후 진행될 개헌, 정계개편 논란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정통성에 기초, 더민주를 중심으로 확고하게 야권연대를 이뤄 정권교체를 이룰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비주류계에서는 이종걸 의원이 처음으로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교체의 열망을 받들어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세력을 겨냥해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움직임은 당 내부가 지나치게 한 세력, 한 방향, 한 목소리로 꾸며지는 것”이라며 “더민주는 정치 경험, 정치 입문 경로, 정책 노선도 다양한 사람들이 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당이 단일한 세력으로 획일화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당 대표가 된다면 우리 당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은 보다 공정하고 보다 열려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이 당권 도전 의지를 내비치면서 주류 대 비주류의 대결구도는 만들어졌다. 하지만 친문계가 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 의원의 승부수가 통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주류 vs 비주류 큰 싸움 예고
친문계 장악…이종걸 통할까?

이 의원이 출마를 밝히기 하루 전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이 의원을 만나 출마를 만류했다. 김 대표는 일찌감치 경선에 뛰어든 주류 후보들 속에서 현실적으로 당선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전당대회 출마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대표는 이 의원에게 “쓸데없이 판을 키우지 말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주류 대 비주류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출마의지를 내비친 친문계 3명은 문 전 대표 계파의 표를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번 전대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 진영을 과도하게 의식한 문심(文心)잡기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 관계자는 “이미 출마의사를 밝힌 세분 모두 사실상 문재인 전 대표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라며 “당 안팎에서는 ‘친문 진영 핵심 인사가 A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친문 진영이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 등 문심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친문계 3인방은 나란히 경남 김해을 지역대의원 개편대회가 열린 김경수 의원의 사무실을 찾았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2012년 대선 당시 더민주의 전신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표의 수행팀장이었다.


이는 당권 경쟁의 향방을 좌우할 최대 계파인 친노·친문 진영을 향한 구애의 손짓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행보로 볼 수 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당 대표 출마를 밝힌 후 첫 일정으로 김해행을 택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남다르다.당권 주자들은 나란히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을 방문키도 했다.

송의원은 봉화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면담을 가졌고 김 전 위원장은 출마선언 다음날인 지난 25일 권 여사를 예방했다. 추 의원은 출마 선언 전 이미 권 여사를 찾은 바 있다.

당권 주자들의 이 같은 행보에는 10만명에 달하는 온라인 당원의 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문 전 대표 시절 인터넷을 통해 당원으로 가입해 친노·친문 성향을 보인다. 이번 당 대표 선거의 반영 비율은 대의원(현장투표) 45%, 권리당원(ARS투표) 30%, 일반당원(전화면접 조사) 10%, 일반국민(전화면접 조사) 15%를 합산해 반영한다.

친문 표심이
판세 가른다?

대의원은 권리당원 1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지역위원장들이 지역 당원 추천을 통해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라인 입당 당원 사이에서 ‘대의원 추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당권 후보들은 온라인 당원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이번 전대에서 후보들이 친문 진영에 대한 ‘러브콜’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온라인 당원들은 친문 성향으로 편중돼 있다는 평가가 많다. 결과적으로 친문 진영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대표 선거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각 지역별 표의 향방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권리당원의 경우 호남지역에 있는 권리당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호남 출신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당원들도 일정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선거운동 중인 추미애·송영길·김상곤 후보 측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선 여성 의원 최초로 지역구 5선 고지를 밟은 추 의원이 치고 나가고 있고 송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이 추격하는 모양새다. 경기도에선 인천시장을 지낸 송 의원이 다소 앞서가는 가운데 추 의원도 지지세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감을 역임한 김 전 위원장은 빠른 속도로 두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지역에선 전남 고흥 출신인 송 의원에게 광주 출신인 김 전 위원장이 도전장을 내민 모습이다. 그러나 전북 정읍 출신 남편을 둔 추 의원이 ‘호남의 며느리’임을 강조하면서 호남지역 대의원과 당원들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어 이 지역 판세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지역별 표심잡기 주력
역시 관건은 호남민심

추 의원의 출신지역인 대구가 있는 영남지역에선 추 의원이 다소 앞서가는 분위기지만 송 의원은 대구는 물론 부산, 울산, 경남 서부 등지의 조직 면에서 오히려 추 의원을 압도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김 전 위원장 측은 대구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영남지역의 경우 대의원 수와 권리당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전체 판세에 큰 영향을 주긴 어려워 보인다.

충청과 강원, 제주 등지에서도 각 후보들의 득표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 각지에서 표밭을 갈아온 추 의원과 송 의원을 상대로 김 전 위원장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추미애, 송영길, 김상곤 3명의 후보는 서로에 대한 날선 견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송 의원은 문 전 대표와 가깝다는 평을 듣는 김 전 위원장을 향한 견제구를 날렸다. 송 의원은 지난 22일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을 겨냥해 “어떤 사람과 친하냐 가깝냐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든 당원들의 판단 기준은 내년 정권교체를 하는 데 어떤 당대표가 우리 후보의 확장력을 가지고 본선 승리를 가져올 것이냐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반박했다. 그는 추미애·송영길 의원에 대해 “여의도 문법에 머무르고 있는 인물들이고, 구(舊)정치에 젖어있는 면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두 사람이 친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누구의 사람도 아닌 김상곤일 뿐”이라며 “한 번도 친노·친문으로 역할을 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송 의원과 김 전 위원장은 지난 6월에 나란히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복귀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손 전 고문을 끌어안고 외연을 넓힐 적임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친문에 러브콜을 보낸 추 의원에 날을 세운 것 아니냐는 평가다.

“잠룡 지킨다”
송-김 견제구

추 의원은 지난 5월 당 대표의 역할에 대해 “흔드는 세력으로부터 대선후보를 강단 있게 지켜야 한다”고 말해 문 전 대표를 염두 해 둔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에 송 의원은 “총선 후 강진으로 한 번 찾아가 손 전 고문을 만났다”며 “손 전 고문이 복귀한다면 대선 경선에 참여하려 할 것 같은데, 제가 대표가 되면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도 “손 전 대표가 빨리 더민주로 복귀했으면 좋겠다. 제가 대표가 되면 복귀할 여건들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대선후보 경선에도 참여했고, 다시 오셔서 뜻을 펼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함에 따라 오는 5일로 예정된 예비 경선에서 ‘컷오프’될 한 명이 누가 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민주는 4명 이상이 출마하면 3명으로 추리기로 했다. 예비 경선을 통해 1명의 탈락자가 발생함과 동시에 순위까지 공개된다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전대를 위한 전략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선거의 효율성을 고려해 예비경선을 굳이 치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대위는 회의에서 예비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예비경선은 중앙위원회에서 진행되는데 중앙위는 국회의원, 당직자, 지역위원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대가 대의원, 일반당원까지 포함해 ‘민심(民心)’을 반영하지만 예비경선은 오로지 ‘당심(黨心)’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송 의원과 김 위원장이 나름대로 확보한 비주류 표를 이 의원이 가져오면서 친문색채가 강한 추 의원이 어부지리로 유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컷오프는 누가?
민심 말고 당심

이 의원이 컷오프를 통과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친문진영의 표가 쏠려 있다고 하더라도, 예비경선에서는 세 후보 모두 탈락시키지 않고자 적절히 분산될 수 있다”며 “비주류 진영이 모두 이 의원을 지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뜨거운 여성 최고위원 경선
女최고위원 놓고 한판승부 벌어진다

오는 8월27일 열리는 당 대표 경선에서는 권역·부분별 최고위원도 동시에 선출된다. 여성 최고위원 직을 놓고 유은혜 의원과 양향자 광주 서을 지역위원장의 한판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 의원은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가 대선승리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며 전국여성위원장 및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야 세상이 바뀐다”며 “우리당 당헌 제8조 ‘여성당원 30%공천’ 규정을 지키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은혜-양향자 양자구도

양 위원장은 지난 25일 “정권교체를 향한 여성의 거대한 움직임을 함께 시작하겠다”며 전당대회 여성부문 최고위원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양 위원장은 “정권교체를 위한 3%를 위해 뛰겠다”며 “지난 대선 여성 득표율이 3% 뒤졌고, 그만큼 우리는 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 여성 조직의 다른 길을 개척 하겠다”며 “가장 뒷전으로 밀려온 분들의 삶과 함께하는 게 새로운 정치의 길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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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