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부산 민심 앞과 뒤

여당 텃발? 이젠 야도로 밭갈이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부산이 야도(野都)로 변신할 채비를 갖췄다. 부산 시민들은 20대 총선에서 야권에 힘을 실어주면서 26년간 이어진 여권지지세가 균열을 보이고 있다. 부산 경제의 끝없는 추락은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13 총선서 부산 18개 선거구 중 5곳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이래 가장 많은 의석을 야당이 확보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 단 2명에 그쳤다는 점에서 4년 만에 3석이 늘어난 셈이다.

제2의 부마항쟁?

당초 문 전 대표의 사상구 불출마와 조 의원의 더민주 탈당으로 부산에서는 더민주가 18석 전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더민주 당선자 5명 중 4명은 수도권을 떠나 험지인 부산행을 택했다. 예상을 뒤엎고 김영춘, 최인호, 전재수, 박재호 의원이 부산에 깃발을 꽂았다. 이들은 부산에서 지역 밀착형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바닥을 다져온 정치인들로 부산 민심을 얻었다.

특히 김해영 연제구 의원은 30대 후반의 젊은 변호사로 여성가족부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김희정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18석 전석 확보를 노렸던 새누리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개표 상황실에서는 “부산 민심이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 직후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시민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산시민 편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며 “더 많은 소통과 실천으로 시민 편에 서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 부산시당은 “반드시 부산 발전으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더민주 김영춘 의원은 “4·13 총선 결과를 위대한 부산 시민의 승리”라며 “새누리당 20년 독점체제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부산을 부활시키라는 시민들의 엄중한 요청으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과거 민주화 성지로서 야도 부산이라는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쾌거”라고 말했다.

부산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야도(野都)’로 통했다. 호남보다 더욱 야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부마항쟁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한 지역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가 있던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부산 시민들은 6개 선거구 가운데 3곳에서 야당만 두 명씩 동반 당선시켰다.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총선에서는 한 곳만 빼고는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부산이 ‘여도’로 돌아선 것은 1990년 3당 합당을 하면서부터다. 이후 14·15·16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여당이 부산을 장악했다. 무려 26년 동안 여권지지세가 유지된 것이다.

일례로 2006년 지방선거 때 금정구의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구의원 후보가 후보 등록 전 이미 사망해 선거운동을 한 차례도 하지 않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부터 ‘야도 부산’의 명맥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였다.

당시 민주당 김영춘 후보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가 된 무소속의 오거돈 후보는 49.3%라는 득표율로 50.6%를 기록한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를 압박했다. 이번 총선에서 18석 중 5석을 차지하면서 야도 부산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부산의 투표율은 55.4%로 대구 54.8%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국 평균 58%보다 낮은 수치다. 전체 투표율이 낮아지고 청년 투표율은 상승한 것으로 볼 때 노·장년층의 상당수가 투표를 포기했다. 19대 때 20%에 그쳤던 부산지역 야당 득표율은 20대 국회에서는 30∼40%대로 상승했다. 이 같은 민심 변화의 결정적 이유로는 경제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총선서 야권에 힘…26년 여권지지세 균열
'문재인 건재' 새누리 내년 대선 장담 못해


부산은 수출 부진에 내수 침체까지 장기화되면서 고용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은 고용 절벽이 심각한 상황이다. 동남지방통계청의 부산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올해 1분기 부산지역 취업자는 16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청년 실업자는 3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4000명 늘어났다. 이에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정부가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빠져 경기 회복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3월31일 더민주 부산시의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경제선거”라며 박근혜정권의 3년간 경제 실정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부산의 정치를 독점해온 25년동안 부산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며 “지금 부산은 쇠퇴와 침체, 절망의 도시가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부산은 400만명이던 인구가 지난해 기준 35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위상은 경제력에 있어 인천에게 위협받고 있다.

부산은 조선·해운업 등 부산경제를 지탱하던 업종이 부실화되면서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이다. 부산 시민은 이번 총선을 통해 뚜렷한 경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신공항이 백지화되면서 민심은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모두 부산 출신이라는 점도 새누리당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문 전 대표는 "부산에서 국회의원 5명만 뽑아 주신다면 박근혜정부 임기 중에 신공항 착공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신공항은 백지화됐지만 국회의원 5석을 얻으면서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호남에서는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던 문 전 대표가 부산에서는 나름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부산의 6곳에 후보를 냈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당 투표에서 20.3%의 지지율을 얻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4월19일 “20대 총선에서 부산시민들이 20% 지지를 보낸 것은 선물이 아닌 숙제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 변화로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23일 부산상의에서 진행된 상공인간담회에서 안 전 대표는 부산에 대한 러브콜 발언을 쏟아냈다. 안 전 대표는 “지금 부산 경제가 매우 어렵다”며 “부산이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업종과 함께 하면서 미래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국민의당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탈출구가 없다”

부산 정치권 관계자는 “당초 새누리당 독주가 예상됐던 부산에서 더민주가 5석을 확보하면서 부산 정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부산 출신 더민주 문 전 대표, 국민의당 안 전 대표 등의 향후 대권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shs@ilyosis.co.kr>


<기사 속 기사> 유신독재 내린 부마항쟁은?


부마항쟁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유신독재 반대시위로 부산과 마산의 첫 글자를 따 명명했다. 유신 정부에 의해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총재직 정지 가처분과 의원직 박탈 등의 사건이 발생하자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고조됐다. 부산에서 1979년 10월16∼17일 이틀 동안 부산대와 동아대 학생 50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까지 합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사태를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해 18일 새벽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단 병력을 투입해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계엄령과 위수령 발동 후 부마사태는 단기간에 진압됐지만 그 뒤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했고 유신체제도 막을 내렸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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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