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행보가 심상찮다. 야권 불모지 대구에서 31년 만에 깃발을 꽂은 그가 본격적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것이다. <일요시사>는 김 의원의 대선 밑그림을 살펴봤다.
당 대표와 대권을 놓고 저울질하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부겸 의원이 당권을 포기하고 차기 대권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8·27전대 불출마 선언문’ 에서 “당을 수권정당으로 일신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당은 꼭 제가 아니라도 수권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역할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역할은?
김 의원은 “정치적 진로는 열어두겠다. 그때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진지하게 말씀을 올리겠다”고 말해 대권 도전을 암시했다. 당초 김 의원의 당권-대권 출마 여부는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 텃밭이었던 대구에서 당선 되면서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후 ‘대권 도전 직행’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비주류 내에서 김 의원의 당권 도전 권유가 이어지자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의원은 최근 이달 안에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입장 정리가 늦어진 점에 대해서는 “신공항 결정을 앞두고 경솔하기보다는 진중한 자세를 취하는 게 도리라 생각했다”며 몸을 낮췄다.
김 의원은 당권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면서 주류 측인 추미애-송영길 의원을 견제할 수 있는 대항마로 인식됐다. 다만 실질적으로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당내 주류가 몰표를 보내자 정세균 의원이 당선된 점을 되돌아보면 비주류 측 당권주자로 나선다는 것은 낙선을 각오하고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해 김 의원 주변에서는 “핵심주류인 친문(친 문제인)측에서 ‘김부겸이 나오면 도와줄 것’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확실한 메신저가 와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언론을 통해 펌프질만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게다가 더민주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가 대선 경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대선 1년 전인 올해 연말까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실상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내년 대선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 의원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미 당권 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송영길 의원과 붙어 패배할 경우 대권가도에 부담이 될 우려도 있었다. 김 의원 주변에서는 승산을 자신할 수 없고 괜한 계파싸움에 휘말려 김 의원의 중도 합리적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며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주류 측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박영선, 이종걸 의원도 앞서 김 의원에게 단일화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선 의원은 김 의원이 전당대회(이하 전대) 불출마를 선언하기 하루 전인 22일 라디오에 출연해 당 대표 경선에 대해 “전당대회서 당 대표가 얼마나 확장성이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김부겸 의원에게 전대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해 김 의원을 의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끝난 뒤 “입장이나 거취는 조만간 밝히겠다”며 “(박 의원 등과) 자연스럽게 오고 가면서 전화통화는 할 수 있지만, 모여서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고 하는 일은 없다”고 말해 후보 단일화설에 대해 선을 그었다.
차기 대권도전 시사…비중·시기 저울질
전당대회 빨간불… “당 대표로? 아깝다”
김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하며 “누구를 지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앞으로 대권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는 김 의원은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지낸 중진의원이지만 대구에서는 초선이나 마찬가지다. 19대 총선에서는 2위로 낙선했고, 대구광역시장에 출마해 2위로 낙선했기 때문. 하지만 김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62.3%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 지역주의 타파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단숨에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당초 김 의원은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이번에 당권을 잡고 차차기 대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당 대표 당선 가능성과 차기 대권 도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대 불출마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가 당권 포기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집권을 위한 모임’(이하 민집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종걸 전 더민주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민집모에서 김부겸 의원을 대권 후보로서 좀 받쳐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민집모 내부에서 힘이 좀 있어야 좋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대선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김 의원이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은 비주류이면서 중도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자칫 친노·친문 패권주의로 빠지기 쉬운 더민주에게는 놓칠 수 없는 카드다. 또한 대구·경북지역에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어 훗날 대선주자에게 표 확장의 효과도 줄 수 있다.
반면 김 의원의 불출마로 당권 경쟁 구도의 무게감이 떨어져 전대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도 있다.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김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대선 후보급 당대표’ ‘영남 당 대표’ 등 흥행이 가능했지만 당권 도전 의사를 밝혔거나 검토 중인 의원들로는 전대흥행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더민주 소속의 한 의원은 "지난해까지 당내 선거는 친노와 비노의 싸움이라는 구도가 있었는데 원내대표 선거나 국회의장 선거 결과를 보면 친노와 비노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깨진 것 같다"며 "경쟁을 정의할 수 있는 구도가 없으면 국민적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 키워야”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다양한 후보들이 대권에 도전해 판을 키워야할 때”라며 “김부겸 의원의 경쟁력이 지금 당 대표에 쓰이기엔 아깝다는 평이 많았다”고 전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부겸-이해찬 손잡은 이유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친노 좌장으로 통하는 이해찬 무소속 의원과 함께 외교통일 어젠다를 논의한다. 지난 21일 김 의원 측에 따르면, 김 의원은 ‘동북아 공존과 경제협력’이란 이름의 초당적 의원연구단체를 국회에 등록할 예정이다.
해당 단체는 동아시아가 세계경제 중심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북·중·러를 포함한 동북아지역 경제협력을 한국이 선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외교·통일 어젠다룰 세우기 위한 연구모임이다.
대북정책도 함께 다룰 방침으로 알려진다. 김 의원은 “동북아에 대한 지식공유를 통해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평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라며 “동북아를 묶어내면 북한 문제도 어느 정도 다른 채널로(경색국면이) 풀리지 않겠나 본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김 의원과 동참하는 의원으로는 더민주 내 중도서향 인사들의 모임인 ‘통합행동’의 박영선, 김영춘 의원과 더민주 내 주류 측으로 분류되는 김태년, 전재수, 조승래 의원 등이다. 새누리당에는 윤재옥 의원,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이 참여한다.
다만 김 의원은 각 당 참여의원 면면과 연구단체가 다룰 내용 등에 비춰 대권준비 등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에 대해 “연구단체는 그냥 연구단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주류측 핵심인사인 이 의원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옛날에 재야 때부터 말하자면 그분이 사수고 나는 조수였다. 당권 등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없다”고 일축했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