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담배에 손대는 이유

400원 주고 사서 4000원에 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담배 수만갑을 밀수입해 들여온 조폭들이 최근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헐값에 들여온 담배를 유흥업소와 시장 등에 팔아넘겼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세금 정책으로 인해 동남아로 수출되는 국산 담배는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에 돈 냄새를 맡은 조폭들이 하나둘 담배 밀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해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담배 8만갑을 밀수해 국내에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번 사건은 압수된 수량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조직폭력배까지 개입돼 있어 논란이 가중됐다.

역으로 재판매
청소년에 인기

지난 5월 24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해외로 수출된 담배를 밀수해 판매한 조직폭력배 등 15명을 검거해 조직원 김모(38)씨와 유통총책 정모(48)씨 2명을 관세법 및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조직원 함모(35)씨 등 국내 유통책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경부터 12월까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홍콩 등으로 수출된 국산 담배 ‘에세’, ‘레종’과 해외 담배 ‘말보로’ 등 10여가지 담배 8만갑, 시가 4억원 상당을 밀수입해 유통했다.

국내 밀수 총책인 김씨는 캄보디아로 출국해 해외 밀수 총책인 용모(38)씨에게 직접 담배 밀수 자금을 전달하고 수출된 국산 담배 등을 인천항 등을 통해 밀수할 것을 지시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정식적으로 수출되는 국산 담배의 가격은 400∼700원가량. 우리나라의 6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국내로 밀수된 담배는 경기 하남의 물류창고에 보관되면서 함씨 등 13명을 통해 강남 유흥업소나 사우나 등에서 한 갑당 3000∼4000원 정도에 판매됐다. 담배 한 갑당 가격은 평균 시중 판매가격인 4500원보다 38%나 저렴하다. 이번 범행에는 밀수부터 보관, 운반, 판매 등 전 단계에 걸쳐 조직폭력배들이 가담했다.


면세 담배 2933만갑(시가 664억원)을 빼돌려 국내에 유통한 일당이 검찰에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일당 중에는 면세 담배를 판매하는 담배회사 KT&G 간부와 전주지역 조직폭력배가 끼어 있었다. 2014년 8월 인천지검 외사부(이진동 부장검사)는 선원 용품업자 김모(42)씨와 KT&G 중부지점장 강모(47)씨 등 6명을 관세법 위반과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도·소매업자 등 2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유통총책인 전주 월드컵파 조직폭력배인 김모(39)씨를 지명수배했다.

선원 용품업자 김씨 등은 2010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면세 담배 2933만3500갑을 중국에 수출할 것처럼 신고한 뒤 국내로 반입해 팔았다. 김씨 등은 1갑당 900원인 면세 담배 겉포장에 새겨진 ‘DUTY FREE’ 글씨 위에 KT&G의 위조 바코드를 붙인 뒤 1갑당 2500원에 판매하거나 일부는 면세가격으로 유통했다. 당시 정상 담배 한 갑은 2250원에 출고돼 소비자에게 2500원에 판매됐다. KT&G로부터 면세 담배를 공급받아 빼돌린 김씨는 40억원, 유통총책인 김씨는 150억원을 챙겼다.

KT&G 간부인 강씨는 면세 담배를 건넨 대가로 선원 용품업자 김씨로부터 10차례에 걸쳐 1억3917만원을 받았다. 담배사업법상 면세 담배는 외교사절, 국군, 경찰, 교도대원, 해외취업 근로자, 외항선 선원, 국제항로 항공기, 주한 외국군, 북한 지역을 왕래하는 관광객 등에 한해 공급된다. 하지만 밀수입된 면세 담배는 도매상과 위조책, 소매상 등 점조직 형태로 유통됐으며 이 과정에서 국고로 귀속돼야 할 세금이 밀수 사범과 유통 사범들에게 흘러가 막대한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해외에서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 담배도 문제다.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불법으로 생산한 뒤 유명 국내외 담배 브랜드를 붙여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짜 담배의 적발 액수만도 지난 3년간 12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가짜 담배가 활개 치는 일부 동남아 국가들과 인접해 있으므로 실제 국내 유통량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아 수출품 싸게 구입해 국내로 밀수
돈 되니…전국구 형님들 경쟁적으로 개입

최 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힙합’ ‘블랙 데블’ 등 향기 담배도 등장했다.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청소년층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위에서 언급한 사건과 현상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하나같이 조폭들이 연루돼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폭들이 담배밀수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뛰어들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폭들은 여러 가지 밀수사업을 하고 있었다.
 

적발 현황만 살펴봐도 이듬해 10배가량 폭등했고, 지난해에는 60억원을 넘어섰다. 유통 공간도 유흥주점과 PC방 등을 벗어나 일반 소매점까지 뿌리내렸다. 온라인 판매를 활용하면 청소년도 손쉽게 살 수 있다. 경찰은 생산·유통 과정에 각국 조폭이 연계돼 수익금 중 상당 부분이 이들의 운영 자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관계자는 “가짜 담배는 정교하게 위조돼 식별이 곤란한 데다 유통이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뤄져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짜·밀수 담배는 줄잡아 30여종. 서울 N재래시장과 부산 G시장은 물론 경기 안산 등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은 중간유통조직을 쫓고 있지만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 가짜 담배에도 인기품목이 있다. ‘던힐’ ‘마일드세븐’ ‘카멜’ 등 외산 담배와 국산 ‘에세’ ‘레종’ 등이 인기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힙합’ ‘블랙 데블’ 등 향기 담배도 등장했다.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청소년층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위에서 언급한 사건과 현상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하나같이 조폭들이 연루돼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폭들이 담배밀수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뛰어들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폭들은 여러 가지 밀수사업을 하고 있었다.

날개 돋친 듯…
뒷골목서 팔린다

대표적인 물품이 마약류다. 국내 폭력조직은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등 기업형 국제범죄조직과 달리 마약류 범죄 개입을 금기사항으로 여겼지만, 2010년도부터 조폭이 마약밀매와 밀수에 개입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조폭들이 담배사업으로 눈길을 돌린 건 높은 수익률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발됐을 때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 적발된 담배 밀수는 287건으로, 2014년과 비교해 네 배 이상 뛰었다. 2014년에 적발된 담배 밀수는 40여 건이다. 이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담배사업법에 따라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불법 밀수 담배는 블로그와 해외서버를 이용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판매된다. 이들은 KT&G를 비롯해 BAT, JTI 등 국내 유통 중인 담배들 대부분을 판매한다.

불법 밀수 사이트들을 살펴보면 2900원가량에 담배 1갑을 판매하고 있다.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되고 있는 담배 가격은 4500원가량이다. 4500원 가격 제품 기준 소비세가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33원, 개별소비세 594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폐기물부담금 841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 같은 불법 면세 담배는 주로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 홍콩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밀수입된다. 선내 면세점에서 구매한 담배를 집화장에서 넘겨받은 뒤 세관 신고 없이, 국내에 되파는 방식이다. 이들은 국제여객터미널을 오가며 면세 담배를 밀수입한 뒤 세관 신고 없이 국내로 유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 여행객 등에게 웃돈을 얹어주고 구매한 뒤 되팔아 넘기는 일도 발생한다. 면세 담배 구매 시 1인당 살 수 있는 물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온라인을 이용한 담배 판매는 불법이지만 이들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과 제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 중 일부는 회원제를 통해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곳도 있으며, 해외사이트에서만 해당 사이트가 검색되도록 하는 방법도 이용하고 있다.

돈냄새 맡고
조직들 연루

이렇다 보니 돈만 떼이고 물건은 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불법인 걸 알면서도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담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다 피해를 보는 것이다. 불법 거래 사이트 다수는 계좌 이체를 통한 결제만 가능하게 운영하고 있다.

입금과 물건 도착, 궁금한 점은 홈페이지상에서만 문의할 수 있다. 또 갑작스럽게 사이트를 폐쇄하는 경우도 있어, 돈만 송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판매와 구매 행위 모두 불법이라는 점 때문에 피해자들은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조업체들의 하소연도 늘어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담배는 모두 불법이지만 수사권이 있다거나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제조사뿐만 아니라 편의점 등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입을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인상된 담뱃값은 세금 인상이었기 때문에 제조사의 수익이 늘어나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담배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이런 일들이 늘어나다 보니 업계 내부에서 이례적으로 출시 기념 할인 이벤트 같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담배판매인연합회 측은 “명백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활동하다 보니 현재로써는 피해 규모와 불법행위를 모두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일부 지방 판매업자 중에서는 이를 발견해 직접 고발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밀수 담배 판매는 과거에도 암암리에 존재했으나, 지난해 국내 담뱃값 인상을 계기로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막무가내식의 담뱃값 인상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인상된 가격에 포함된 세금이 늘어났지만, 흡연율 감소는 미비한 상태다. 담뱃값 인상 직후에는 담배판매량이 2014년 하반기 대비 8억갑이 줄어든 14억갑 정도였지만, 하반기에는 4억갑을 회복하며 18억6700만갑이 팔렸다. 단순한 가격정책만으로 금연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또 거둬들인 세수로 국민건강증진기금 사업구성에 사용한 예산이 28.4%에 불과해 금연을 이유로 걷은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세수 적자를 메웠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담뱃값 인상으로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2015년 10조53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3% 증가한 수치다.

가짜 담배 판쳐도 속수무책
유흥가·온라인 판매 성행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세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세청에서는 국내 담배제조사인 케이티앤지(KT&G), 비에이티(BAT)코리아, 한국필립모리스와 위조·면세 담배의 밀수 및 불법유통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관세청과 국내 3대 제조사는 업무협의를 위한 전담창구를 지정하고, 상호 정보교류를 통한 단속협력 기반을 마련해 불법행위를 예방할 방침이다.

먼저 제조사는 수출용 담배의 수출 선(기)적 수량을 수출 신고한 대로 적정하게 공급하며, 선(기)용품(당해 선박(항공기)에서만 사용되는 식품, 연료, 소모품 등 ) 면세 담배 취급업체에도 용도에 맞게 적정 수량으로 공급해 부정유출 요인을 해소하기로 했다. 또, 관세청과 수시로 협의회를 개최해 담배 국내외시장 유통동향 등 정보를 교환하고 담배 불법유통 시중 단속 시 서로 협력(제조사의 담배식별 전문가가 현장에서 위조담배 식별)할 계획이다.

“대책이 없다”
관세청 골머리

관세청은 면세 담배 취급업체 현장을 점검하고 그 종사자에 대한 지도 교육을 하며, 밀수 및 불법유통 등을 근절하는 데 이바지한 업체 및 직원에게는 표창 또는 포상하기로 했다. 관계자는 “이번 양해각서(MOU) 체결로 국내 담배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국가재정수입을 확보함으로써, 지하경제 양성화 및 부정부패 척결 등 국정 과제를 달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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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