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장난에 수억 날린 부모들 사연

자식 불장난…쫄딱 망하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10대 청소년의 불장난에 외제차 등 4대가 불탔다.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후폭풍은 거셌다. 법적인 처벌은 둘째 치고서라도 차량 수리비용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그대로 떠안았다.

수천만원의 차값을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된 것. 사실 이런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고급외제차에 소화기를 뿌려 억대의 차 값을 물어줘야 했던 사건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야기다. 자식의 장난으로 억대의 빚을 지게 된 부모들. 그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지난 20일 고등학생 김모(16)군이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군은 지난 18일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길에 일회용 라이터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긴 김군은 작동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길 옆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에 라이터를 켜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김군은 불을 끄는 것을 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법정 의무자 책임

결국 김군이 붙인 불씨는 쓰레기봉투 주변 마른 덤불과 잡목으로 퍼졌고, 급기야 주변에 주차된 외제차와 승합차 등 4대에 옮겨붙었다. 불은 119 소방차량까지 출동하고서야 진화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성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피해 정도가 커 입건했다”며 “호기심에 의한 사소한 불장난이 이 같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수천만원의 차 값을 물어주게 된 김군 부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시가 수억원에 달하는 외제 승용차량에 소화기를 뿌린 사건도 있었다.


한 중고차 사이트에는 초등학생들이 람보르기니 차량을 파손해 수리비만 1억6000만원이 나왔고, 차량이 폐차 직전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는 람보르기니 차량을 파손한 초등학교 4학년 A(10)군 등 4명을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했다.

외제차에 소화기 뿌려 차값 물어줘
장난삼아 불질렀다 전액 배상 판결

주차장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결과,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B(30)씨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연두색 차량에 초등학교 4학년 A군 등 4명이 소화기를 뿌리고 차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는 등 차량을 훼손하는 행위가 영상에 담겨있었다.

A군 등은 “차 모양이 장난감처럼 보여서 호기심이 생겨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수리 견적으로 6600만원이 나왔다”며 “가해자들이 초등학생인만큼 처벌을 원치 않고 있어 학생들의 부모와 합의를 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피해 차량은 광주 지역에서 한대밖에 없는 람보르기니로 신차의 경우 시가가 5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수리비에 대한 추측들도 난무했다. 네티즌들은 “아이들 장난에 부모만 죽어난다” “부모가 무슨 죄”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C군은 1학년 때부터 작은 체구 탓에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체격이 커지며 괴롭힘은 다소 줄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반에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몇 년째 앓던 조울증은 점차 심해졌고, 자살 충동을 자주 느끼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2013년 8월18일 오후. C군은 자신이 살던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개학일인 다음날 학교에 가도 예전처럼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허리춤에는 집 주방에 있던 과도가 꽂혀 있었다. 마침 같은 빌라에 사는 아주머니 D(53)씨도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빌라 4층에 살던 C군은 3층에 사는 D씨 가족과 10년 넘게 알고 지낸 이웃 사이였다. C군은 흉기를 옥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휘둘렀다. “혼자 죽으면 너무 무섭고 아는 누군가와 같이 죽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왼쪽 어깨를 한 차례 찔린 아주머니가 쓰러지자 C군은 “아줌마 죄송해요. (저 지금) 폭발할 것 같아요”라고 소리쳤다. C군은 피를 흘린 채 도망가던 아주머니를 뒤쫓아 여러 군데를 찔렀다. D씨는 목 부위 동맥이 절단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비명을 듣고 나온 이웃 주민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 빠른 응급조치로 다행히 생명은 건졌다. 경찰에 붙잡힌 C군은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사건 당시 만 14세 미만인 점이 고려돼 형사 처분 대신 소년부 송치 결정을 받았다. D씨는 형사재판과 별도로 C군과 그의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법 민사10단독 정원석 판사는 C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대신 부모에게 4318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D씨의 흉터 성형 등 치료비 432만원 중 C군 측이 이미 D씨에게 준 114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치료비 318만원과 D씨가 청구한 위자료 4000만원을 모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판사는 “원고로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여길 주거지에서 아무런 까닭이나 영문도 없이 이웃으로부터 무차별적인 칼부림을 당했다”며 “동맥 출혈 등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했고 현재까지도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권자이면서 아들을 보호하고 교양할 법정 의무자인 부모가 그 의무를 충실히 다하지 못했다”며 “이것과 사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민법은 성년의 기준은 만 19세로 두고 있다. 즉, 엄마의 모체에서 태어나서 성년자가 되는 만 19세 미만의 사람은 모두 대한민국 법제상 미성년자다. 책임 능력이라는 것은 법률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이되는데, 미성년자라도 4살 어린이와 18살 고등학생의 책임 능력을 동일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민법도 미성년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그 행위의 책임을 분별할 지능이 없는 때’에는 배상의 책임이 없다고 규정해, 책임 능력 유무의 기준을 행위의 책임을 변제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지의 여부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미성년자의 책임 능력 유무는 구체적 사례에서 개별적으로 판단될 문제다. 책임 능력 없는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경우 해당 미성년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미성년자를 보호, 감독하는 부모가 대신해서 책임지도록 규정되어 있다. 해당 미성년자의 감독자인 부모는 감독의무 위반이 있고,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미성년자와 연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대다수 미성년범 부모들은 부모의 책임임을 통감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약속하고, 자식의 행위에 선처를 구한다.

안 해줄 수도 없고…
“왜 물어줘” 버티기도

그러나 간혹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면서 피해자에 대해 배상을 거부하고, 자식이 잘못한 걸 왜 자기에게 따지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부모들도 있다. 그런 황당한 반응은 언뜻 냉정하지만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도의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이고, 법적으로도 잘못된 말”이라며 “민법 제755조 제1항에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미성년자가 그 책임을 분별할 능력이 없을 만큼 어려서 그의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때에도 그 부모가 대신 배상책 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판례를 살펴보면 미성년자가 독립적으로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에도 그 부모는 미성년 자식에 대한 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므로 직접 피해자에게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순간 패가망신


결국, 미성년의 자녀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부모는 도의적인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또 그는 “미성년자 범죄 발생의 원인이 된 가정의 해체에 그들 부모의 책임이 크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며 “문제에 대해 법적인 접근에 앞서 가족 전체에 대한 힐링 처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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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