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상장 앞둔 기업들 중간점검

오너 때문에 엎어지고 실적 때문에 자빠지고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기업이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장기업은 주식 자체가 자기 자본에 해당하는 만큼 효율적인 자금을 조달을 통해 안정적인 재무 환경을 갖추는 데 용이하다. 하지만 자금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는 점은 기업들이 상장을 주저하게끔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올해 초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수요 조사 결과 상반기에 15곳, 하반기에 5곳이 상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예상대로 상장이 이뤄진다면 2011년(21건) 이후 가장 많은 상장건수를 기록하게 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은 16곳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단지 예상일뿐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상장을 보류하거나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줄줄이 상장계획
제대로 이뤄지나

당초 계획대로 연내 상장의 꿈을 이룬 기업은 지금까지 총 5곳이다. 해태제과식품은 지난 11일부로 유가증권시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상장 첫날 상한가(29.82%)로 거래를 마쳤다. 해태제과식품의 이날 종가는 2만4600원으로 공모가(1만5100원)를 63%가량 웃돌았다. 2001년 상장 폐지된 해태제과는 2007년과 2012년에 재상장을 추진했지만 당시엔 실적 악화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엔 연 매출 1000억원대 돌파를 눈앞에 둔 허니버터칩의 인기에 힘입어 상장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7884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해태제과는 영업이익(471억원)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고 당기순이익(170억원)은 4배 규모로 확대됐다.

대림산업의 자회사인 대림C&S는 지난 3월30일부로 코스피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2만4950원으로 출발한 대림C&S 주가는 1700원(6.81%)하락한 2만3250원에 장을 마쳤다. 공모가 2만7700원보다 16%가량 밑도는 수준이다.


대림C&S는 지난해 매출 2955억원, 영업이익 54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4.6%, 영업이익은 60.8% 증가한 수치다. 대림C&S 지분은 대림산업 50.8%, 이준용 회장 2.3%,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7.8%씩 보유하고 있다. 대림C&S는 국내 콘크리트파일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9%를 차지하고 있는 1위 업체다.
 

화장품과 의약외품 제조업체인 인터코스는 지난달 18일 중소기업전용 증권시장인 ‘코넥스(KONEX, Korea New Exchange)’에 상장됐다. 주당 평가가격은 1830원이었다. 인터코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61억500만원, 순이익은 11억3600만원이다.

2014년 설립된 인터코스는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사개발생산(ODM) 사업을 한다. 특히 ODM 사업을 통해서 위탁받은 제품의 개발을 완료한 뒤 생산·공급에 나서면서 독자적인 기술력도 갖췄다는 평가다. 경쟁력을 인정받은 인터코스는 올해 초 원익투자파트너스로부터 총 2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원익투자파트너스 확보한 인터코스 지분은 8.54%(4357주)다.

연내 상장 계획 20개 회사 ‘갈림길’
각종 걸림돌 걸려…이곳저곳 백지화

핸드백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제이에스코퍼레이션은 지난 2월 상장을 완료했다. 1987년 설립된 제이에스코퍼레이션은 버버리와 헨리 벤델, 마이클 코어스, 랄프로렌, 케이트 스페이드 등 고가에서 중저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개의 브랜드군을 갖추고 있다. 2014년 핸드백 제조 업체인 ‘씨에치오리미티드’를 흡수하는 등 몸집도 불렸다.

용평리조트는 오는 27일 코스피 상장이 사실상 확정된 분위기다. 정창주 용평리조트 대표이사는 지난 11일 “코스피 상장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 리조트 운영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콘도 분양사업에서도 리딩 컴퍼니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용평리조트의 공모 주식 수는 1672만주이며 공모 예정가는 8100∼9200원이다. 공모 금액은 밴드 상단 기준으로 보면 1538억원이다. 용평리조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763억원에 영업이익 264억원, 당기순이익 116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눈앞서 날린
‘상장의 꿈’

상장의 기회를 눈앞에서 날려버린 기업들도 제법 보인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오너리스크가 장애물처럼 인식되는 양상이다. 정운호 대표가 연일 집중포화를 맞는 사이에 기업공개(IPO) 준비를 전담해 왔던 재무담당 임직원들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이승훈 상무가 지난해말 퇴사했다. 이 전 상무는 하나금융투자(옛 하나대투증권) 출신으로 정 대표가 상장을 준비하며 직접 영입한 인사다.
 

이 전 상무와 함께 네이처리퍼블릭에 합류했던 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들도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대표가 자리를 비우면서 ‘더페이스샵’ 창업 때부터 함께 회사를 키워온 영업부문 인사들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데 이들과 의견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네이처리퍼블릭 창업 초기 멤버인 강창구 이사가 재무업무를 맡고 있다.

상장 기대감으로 지난해 장외시장에서 17만원대까지 치솟았던 네이처리퍼블릭 주가는 정 대표 구속 이후 IPO 일정이 지연되면서 4만원대로 주저앉았다. 10개월 만에 주가는 1/4분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장을 기대하고 장외에서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건 당연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아직까지 상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듯한 인상이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연내 상장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상반기 상장이 예상되던 티브로드는 IPO를 연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티브로드는 지난해 12월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로부터 ‘상장적격’ 판정을 받은 후 곧바로 공모절차에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상장적격 만료기간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업가치 산정을 두고 재무적 투자자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게 주된 원인으로 파악된다. 상장 예비심사 승인 유효기간인 오는 6월까지 상장 절차를 완료하긴 사실상 힘들어진 상태다. 티브로드 측은 일단 상반기 상장 계획을 접고 하반기에 다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 청구부터 모든 공식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한다.

이마저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반등의 여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업황 자체가 가라앉은 분위기다. 경쟁회사들의 주가흐름 역시 긍정적이지 않다. 티브로드와 투자자 사이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답보상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에 티브로드가 상장하려면 극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며 “하반기에 IPO를 하고 상장을 위한 준비과정을 착실히 밟는다 해도 쉽사리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바이오시스(옛 서울옵토디바이스)는 예비심사 통과 후 6개월 안에 상장을 완료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서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서울바이오시스는 12월에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했다.
 

하지만 당시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얼어붙으면서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했고 서울바이오시스는 상장을 철회했다. 상장을 철회하더라도 예심 통과 후 6개월 안에만 상장을 마무리하면 규정상 문제가 없었으나 서울바이오시스는 지난 3월16일까지 상장을 완료하지 못했고 IPO는 물건너 갔다. 실적 부진이 악재로 작용한데다 업황이 긍정적이지 않아 연내 상장은 어렵다는 중론이다.

유력 후보들
정작 안개국면


이외에도 두산밥캣, 넷마블게임즈, 롯데정보통신, KIS정보통신, 태진인터내셔날, LS전선아시아, 호텔롯데, 코리아세븐, JS코퍼레이션, 코엔스 등이 연내 유가증권 상장 유력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이 무작정 상장을 추진할거란 보장은 아직 없다. 유가증권시장에 섣불리 뛰어들길 주저하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기업이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장기업은 주식 자체가 자기 자본에 해당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아도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자금조달이 용이해진다. 인식 제고 과정을 거쳐 자산 증대마저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상장 조건 중에서 주식 보유자가 50명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는 만큼 개인회사라는 개념은 희석된다. 제3자가 회사의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면 그 회사를 넘겨야 한다.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실적이든 부채든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런 점들은 상장을 주저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상장해봐야…” 자진 폐지 증가
공시 등 실익만큼 부담도 크다

최근에는 주식시장을 박차고 나가는 상장 기업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고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있지만 증시에서 자금조달 필요성이 거의 없어 비상장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공시 부담과 전략노출 등 불이익에 대한 우려도 섞여 있다.

1994년 상장한 경남에너지는 오는 19일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경남에너지는 최대주주인 경남테크의 요청으로 자진 상장폐지 추진을 결정했고 한국거래소 승인까지 얻었다. 코스피 상장사의 자진 상장폐지는 지난해 1월 SBI모기지 이후 1년4개월여 만이다. 경남에너지 측은 “현재는 상장을 유지하는 데 따른 실익이 적기 때문”이라고 상장폐지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아트라스BX도 현재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아트라스BX는 지난 3월 공개매수를 진행했으나 최대주주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보유지분(31.13%)까지 합쳐도 적정 지분 기준을 밑도는 87.68%에 그쳤다.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선 대주주 측(회사·특수관계인 포함)이 95% 이상의 지분 확보가 필수다. 아트라스BX는 다시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상장폐지를 진행중인 경남에너지와 아트라스BX는 현금자산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상장을 폐지한 후 100% 지분을 확보해 국내 시장 상황과 소액 투자자, 감독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동성도 풍부해 상장을 통한 직접자금 조달에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 또 소액주주들의 항의나 경영간섭, 경영사항 공시, 분기 결산보고 등의 부담도 덜 수 있다.

최근 상장설이 떠돌던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계획이 없음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1일 공시를 통해 “현대오일뱅크 IPO 검토를 한 바 없다”며 “시장 여건이 우호적으로 형성되면 국내증시에 상장을 검토할 수 있으나 현재까지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는 지난 2011년에도 추진됐다가 무산됐고, 이후에도 그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대오일뱅크는 상장시 약 6조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되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알짜 계열사이다.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3%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상장 후 지분매각만으로도 상당한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

한국 증시에서 자본을 끌어 쓴 외국 기업들의 탈 상장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자진상장폐지가 무산된 도레이케미칼은 다시 한 번 자진상폐를 진행 중이다. 앞서 중국 기업인 3노드디지탈과 중국식품포장, 국제엘렉트릭, 일본계 SBI모기지 등은 한국 증시에서 발을 뗐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계 자본이 투입된 상장사는 언제든 ‘먹튀’로 돌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헐값에 지분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으로 실적을 단기간에 호전시키고 비싼 가격에 되팔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반발이 심하면 알짜 자산들을 매각한 뒤 법인 청산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외국 기업들은
탈 상장 행보

IB업계 관계자는 “실적이나 자산에 비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 증시를 떠난다는 기업들도 더러 보인다”며 “상장을 하고 싶어도 절차를 밟지 못해 무산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상장폐지를 시도한 후 기업 가치를 높여 해외에 재상장하거나 유상감자, 고배당 등으로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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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