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32)남조선 여행

배신자는 끝까지 처단한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고개 돌리지 말고 시선 고정하고 따라 오라우!”

석원이 그 자리에 멈추어서 남자의 얼굴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조선말 잘 모르오?”

“그저 조금밖에는…”

남자가 거칠게 혀를 차고는 다시 일본어로 반복했다. 이어 석원이 얼른 시선을 남자의 뒤통수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따라가기를 잠시 후 육중한 철문 앞에 멈추었다.


이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크고 작은 방들이 복도를 가운데로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순간 석원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왜 그러는 게요!”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석원이 온몸에 힘을 주며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한 방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열린 문 사이로 내부를 바라보자 역시 흐릿한 백열전등 아래 달랑 책상과 의자 두 개만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오!”

석원을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는 남자의 음산한 말투에 뭔가 말하려했지만 입가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문 닫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방안을 살펴보았다. 취조실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책상 앞으로 다가섰다. 막상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 했으나 차마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여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상을 손으로 잡고 서 있는 중에 갑자기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비명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심하게 다그치는 소리 그리고 채찍 소리 역시 어우러졌다.가만히 소리가 들려오는 벽 가까이로 다가가 귀를 밀착시켰다. 여자의 비명이 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뒤섞여 들렸고 여러 남자의 악다구니 역시 들려왔다.


순간 벽에서 얼른 떨어졌다. 아울러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다리는 절로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간신히 힘을 내어 의자에 자리 잡았다. 등에서 그리고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지만 마음뿐이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식은땀 마냥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죽박죽 되어가는 중에 문이 열리며 이호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장…니…임.”

“많이 기다렸지.”

호룡을 부르는 석원의 턱이 심하게 움직였다. 호룡이 짐짓 그를 모른 체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은근하게 다가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석원이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가?”

석원이 손을 들어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가리켰다. 호룡이 석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섰다가 다시 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장님, 어디 가세요!”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하도록 할 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게.”

말을 마친 호룡이 마치 가지 말라고 손을 젓는 석원의 모습을 무시하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다시 석원의 귀로 악다구니와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전 호룡이 곁에 있을 때는 소리가 잦아들었었는데 호룡이 방을 나서자마자 다시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잠시 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호룡이 다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일시적으로 악다구니와 비명이 잦아들었고 그저 흐느끼는 소리만 미세하게 들려왔다.

“부장님, 무슨 일인지요?”

석원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악질반동 새끼 가족들은 죽어도 싸지.”

석원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룡이 독백을 뱉어내듯 했다.

“아, 지금 왜 그러는지 그 사유를 물었었지?”


“그렇습…”

석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마지막 각오를 다지다
여행으로 긴장감 해소

“한 악질반동 새끼가 조국의 은혜를 저버리고 도망갔다는 거야. 그래서 그 아내며 어린 자식들이 저 몹쓸 일을 당하는 거 아닌가.”

“무슨 내용인지요?”

“악질반동 새끼가 북조선 자금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하였는데 돈만 먹고 튀어버렸다는구만. 그래서 그 가족들을 잡아와 고문하는 게지.”

“돈을 갚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 사람아, 돈만이 문제가 아니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데 그게 밖으로 흘러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하튼 반동 놈의 가족만 안 되게 생겼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되긴. 북으로 끌려가서 총살당하거나 아니면 최하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될 거야.

북조선이 다른 건 몰라도 배신하는 놈들은 절대 그냥 두지 않거든.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놈도 조만간 잡혀올 거야.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조선의 비밀 요원들이 지옥까지라도 쫓아갈 테니까.”

호룡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영란이 들어서고 있었다.

“지도원 동무!”

영란의 밝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자 석원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으로부터 조그마한 외침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석원 군, 왜 이래요?”

영란이 급하게 석원에게 다가섰다. 이어 부드럽게 석원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호룡을 주시했다.

“각오를 확고히 다지는 모양입니다.”

“각오라니요?”

“물론 우리 민족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각오 말입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래야 나도…”

영란이 말하다 말고 석원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아랫도리를 슬그머니 훑었다. 그 손에 축축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남조선에 가자고?”

“어때, 지난번 홍콩 갔을 때처럼 함께 가는 거야.”

옆에서 운전하는 석원을 바라보는 기미코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왜 그래. 함께 가기 싫어?”

“나야 당연히 가고 싶지. 그런데…”

“그런데 뭐?”

“그 놈이 눈치 챈 거 같더라고.”

“무슨 수로?”

“내가 당시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다녀왔다고 했는데 그 놈이 내가 이야기했던 친구 중 한 아이와 만났던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 둘이 홍콩 다녀온 사실을 안다는 이야기야?”

“거기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뭔가 의심하는 눈초리더라고.”

“그러면 되었지 뭐. 함께 가는 걸로 하자고.”

말을 자른 석원이 주차시키고 문을 열고 나서자 저만치에서 오사카 항이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서 한 곳을 주시했다.

아직도 무시무시한 만경봉호가 전에 있던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그를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는 거야?”

“저 항구 말이야, 오사카 항.”

“느닷없이 오사카 항은 왜?”

석원이 답에 앞서 가까이 다가온 기미코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너무나 아늑해 보여서 그래.”

“그야 우리 고향이니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고향이지 고향.”

석원이 고향을 되뇌며 며칠 전에 있었던 악몽을 떠올렸다.

영란의 손에 이끌려 또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 머물렀던 방과는 천양지차였다.

마치 호화롭기 그지없는 초일류 호텔의 객실을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하고 깨끗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영란이 석원에게 바짝 다가섰다.

“왜 이런 거야?”

영란이 손을 뻗어 슬그머니 석원의 아랫도리를 다시 훑었다. 석원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다가선 영란의 머리칼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잠시 그 순간을 유지하던 영란이 천천히 석원의 몸에서 벗어나 석원의 바지를 벗기기 위해 손을 허리께로 가져갔다. 순간 석원의 다리가 꼬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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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