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8>

“동이씨, 나랑 하기 싫어?”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호빠 선수들에게 돈은 너무 쉬운 것이었다
명자씨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가슴과 따로 노는 몸

화장실에는 아까 했던 토악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단 그것부터 씻어 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그냥 잠자리를 해야 하나? 아니면 어떤 핑계를 대지? 그렇다고 이런 순간에 무슨 핑계를 댈 수 있단 말이야?
샤워를 하기 위해 팬티를 벗는데 안에서 수표가 나왔다. 어젯밤 받은 팁이었다. 아, 드디어 어젯밤의 일들이 조금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고 진 사람이 벌칙을 받곤 했었다. 얼음을 입에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상대 파트너와 주고받기, 몸의 일부에 마요네즈를 발라놓고 빨아먹기, 몸속에 숨겨놓은 물건 찾기…. 손에 쥐어져 있는 수표들은 모두 그런 벌칙들의 대가였다. 순간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돈이란 게 이런 건가? 너무 쉽게 벌어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것,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호빠 선수들에게 돈은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오늘 번 것을 오늘 다 써도 상관없다. 내일 출근하면 또다시 수십만원을 빵빵하게 지갑에 채울 수 있으니까. 푼돈만이 아니다. 스폰서 하나 제대로 잡으면 최소 1억의 전세집에 외제차 정도는 기본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스폰을 잡을까’에 골몰한다. 그들에게는 돈이 곧 행복이었고, 그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공사’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큰 스폰서가 생기면, 작은 스폰서는 어김없이 내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럴 때마다 여자들은 더욱 더 선수들에게 매달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빚을 내서 선수들에게 갖다 바치고, 선수들은 그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묘한 것은 그 이후의 전개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큰 스폰서를 물어서 ‘들어앉는다’고 해보자. 여기에서 들어앉는 건 함께 동거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에게는 이것이 공사의 완성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공사의 끝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함께 살다보면 보기 싫은 모습도 보게 되고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환상도 깨지게 마련이다. 왠지 무능력해보이기도 하고 늘 함께 있으니 예전에 보았던 매력도 없어진다. 그때부터 여자의 눈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호빠 선수들이 아닌가. 그러면 얼마 가지 않아 그 선수는 버림을 받는다. 그렇게 버림받은 선수는 다시 호빠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호빠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왕자’가 되어 있는 선수들이 일반 직장인의 한 달 월급으로는 절대로 성이 차지 않기 때문이다. 시원한 샤워물줄기가 그나마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버림받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공사를 칠 것인가, 단물을 빼먹힐 것인가?
욕실에서 나갔다. 명자씨가 길게 담배를 내뿜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여자가 무섭다는 느낌…. 남들이 들으면 우스울지 모르지만, 공사를 앞둔 나의 상황으로서는 정말로 옷을 벗고 누워있는 명자씨의 모습이 무서웠다.

■ 돈 냄새 맡은 선수들
그런데 역시 명자씨는 프로였다.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이씨,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동이씨, 나 직설적인 성격인 거 알죠? 그냥 물어볼게요.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호빠를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을지도 모른다. 순간 동료 선수인 ‘훈이’의 말이 생각났다. 여자들이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는 건 선수들의 ‘간’을 보기 위해서라고. 그럴 때는 필요한 게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싼티가 나지 않고 더 큰 공사를 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명자씨가 계속해서 물어봤다.
“고급빌라? 외제차? 뭐가 필요해요?”
“어, 전 필요한 게 없는데요.”
명자씨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사실 명자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선수들은 부지기수다. 그녀의 돈 냄새를 맡은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에게 공사를 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런 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선수들은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안달인데… 동이씨는 안 그러네… 생각보다 순진하네! 호호”
명자씨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남자의 욕망을 자극시킨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게 맞는 일인지 더 의심이 든다. 지금 이 한 번의 잠자리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은영씨의 빚도 못 갚는 무능력한 남자가 되는 건 아닐까?
그때 또다시 ‘훈이’라는 녀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녀석은 한 번의 잠자리로 여지없이 ‘지명’이 짤리고 공사가 물 건너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잠자리를 너무 일찍 끝낸 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일’을 마친 후 손님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그냥 앞으로는 친구로 지내자.”
훈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위 도중에 자세를 자주 바꿨다고, ‘그곳’에 인테리어를 너무 많이 했다고 짤린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했다. 심지어 입 냄새가 많이 난다고 구박받고 더 이상 지명을 해주지 않는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의 잠자리가 오히려 공사를 떠나서 영원히 지명의 자리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눈을 감고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있는 명자씨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했다가는 나도 그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 순간 최후의 방법이 떠올랐다. 입술이 거의 포개어질 무렵, 그래서 격정적인 순간이 다가올 그 즈음에 내가 입을 뗐다.
“명자씨… 전 명자씨를 사랑해요. 저에겐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렇게 소중한 순간을 이런 싸구려 모텔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면, 이제 앞으로 저는 명자씨를 함부로 대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런 관계가 함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에게 소중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사이로 발전해나갔으면 해요.”
일단 이 말은 명자씨에게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불붙은 여자의 욕망은 그리 쉽사리 잠재울 수 없는 듯 했다. 명자씨는 ‘그래도 난 동이씨가 갖고 싶어’라며 더욱 거세게 몸을 밀착해봤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그녀가 갑자기 쏘아붙였다.
“동이씨, 나랑 하기 싫어?”

<다음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