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년 해방구’ 영등포 유흥가는 지금…

짝 찾아 나선 아줌마 아저씨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영등포는 타 지역 사람들이 약속을 정하는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 또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역세권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대표적 대형 상권 중 하나. 지금은 빛을 많이 잃었지만, 집창촌은 아직 건재하다. 요즘 영등포의 상황은 어떤지 <일요시사>가 직접 찾아가 봤다.

영등포역 인근에는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 등 대형 쇼핑센터들이 밀집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맞은편 영등포역 메인 상권인 먹자골목은 시설과 환경 등이 낙후된 데다 홍대·강남·명동 등에 대형 상권이 발달하면서 상권이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지하철노선 개통과 함께 각 지역의 테마거리 및 먹자골목이 발달하면서 고객층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카바레, 콜라텍
여전히 성업중

상권 전문가와 상인들은 과거보다 상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전성기때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상권은 대형 쇼핑센터 이용객 흡수 요인과 인근 직장인 고객 유입 등으로 외식·유흥업을 중심으로 상권을 이어가고 있다. 유흥업소 및 음식점들이 밀집한 먹자골목을 찾았다.

영등포역 1번출구로 나와 영등포역 교차로를 건넌다. 네온사인 불빛이 화려한 먹자골목이 시작된다. 영등포역 먹자골목은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교차로에서 영등포시장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약 400m의 영중로와 그 이면 지역을 말한다. ‘노래방’이 성업을 이루는 먹자골목에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가 판을 친다.

실제로 거리를 걷는 동안 음식점을 나오는 직장인 무리에 “서비스 많이 줄게, 우리 가게로 와요”라며 말을 건네는 호객꾼과 이른바 술집 ‘삐끼’들이 자주 보인다. 유흥업종을 중심으로 외식업종도 새벽까지 성행하는 '24시 상권'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영등포역 메인상권 골목으로 들어서자 음식점, 호프 등 외식업종과 함께 노래방, 유흥주점, DVD방, 모텔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40∼50대 연령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이곳은 롯데·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쇼핑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유입이 잦은 곳이다. 오랜 역사의 역세권답게 30∼40년 된 자영업 가게가 다수를 이루며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프랜차이즈 가게는 유행을 쉽게 타는 등 수개월 만에 없어지기 일쑤다. 영등포 먹자골목의 분위기는 프랜차이즈 창업이 주를 이룬 일반적인 역세권 먹자골목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각지에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됐던 영등포 먹자골목은 외식메뉴가 유행을 많이 타는 것이 특징”이라며 “4∼5년 전에는 ‘오징어와 주꾸미’ 메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2∼3년 전부터는 ‘양꼬치’ 붐이 일었다. 최근에는 스몰비어, 족발집 등이 느는 추세”라고 귀띔해 준다.
 

무작정 들어간 한 프랜차이즈의 사장은 “프랜차이즈의 경우 메뉴는 그대로인데 브랜드만 바뀐 사례를 자주 봤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유행을 따라서 입점했으나 지금은 먹자골목 맛집으로 자리 잡은 주꾸미 가게는 인근 쇼핑몰 직원과 직장인들의 단골 외식장소가 됐다.

그는 “프랜차이즈의 경우 유행이나 브랜드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면서 수개월 만에 바뀌는 경우도 많으나, 개인사업자 점포의 경우 그들만의 노하우로 장사를 잘 유지해 40년 이상 된 점포도 많다”고 말했다.

한 창업연구소 관계자는 “영등포 상권은 각 지역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리적 요인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메뉴들이 밀집한다”며 “먹자골목 내 인기메뉴의 흐름은 ‘뼈다귀해장국’에서 ‘감자탕’ ‘주꾸미’ ‘양꼬치’ ‘족발’ 등으로 바뀌어 왔다”고 했다. 그는 “영등포 먹자골목의 특성상 비슷한 시기에 같은 메뉴의 업종이 한 번에 들어와 경쟁해야 잘되는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대형쇼핑몰 난립…그 사이로 먹자골목
삼삼오오 식사하고 2·3차 유흥업소로

먹자골목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 활기를 띤다. 먹자골목은 노래방 등 유흥업소가 밀집해 경쟁하며 불야성을 이루다 보니 외식업종 역시 탄력을 받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이 보인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40년간 거주해온 A(55)씨는 “먹자골목은 식사하면서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저녁 상권과 노래방 등 유흥업종이 성행하는 새벽 상권으로 나눌 수 있다”며 “유흥업종과 함께 음식점도 새벽까지 장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4시간을 운영하는 한 식당의 주인은 “낮·저녁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는 고객뿐 아니라 출출한 새벽시간대 또는 오전에 숙취해소하려는 고객 등 시간대별로 다양한 손님이 온다”고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민속주점 역시 유행메뉴에 영향받지 않고 꾸준히 점포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4시 민속주점 종업원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손님들이 많아 대기석을 마련해야 한다”며 “황금시간대에는 손님이 없는 집은 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타임스퀘어를 지나자 청소년 출입금지구역’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청소년이 들어올 수 없는 곳. 그렇다고 통행에 제한이 있지도 않은 그곳. 늘 따가운 시선만이 존재하는 집창촌이다.

귀청소방, 립카페…
꺼지지 않는 홍등

아직 어둠이 내리기 전 영등포 집창촌은 높은 빌딩 숲 외딴섬처럼 고요했다. 가게 문은 굳게 닫혔고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커튼이 둘러쳐 있다. 시간이 이른 탓이다. 붉은 불빛이 켜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둠이 내리기 전 집창촌 주변을 살펴봤다.

높은 빌딩이 즐비하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 등 쇼핑몰에 샌드위치처럼 자리 잡고 있다. 타임스퀘어, 백화점 앞 많은 인파와 대조적으로 집창촌 골목은 한적하다. 간간이 자동차 몇 대가 지날 뿐이다. 도시 아래로 해가 지며 어둠이 내렸다. 직장인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집창촌 골목을 지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매일 이 골목을 지나는 여성들은 어떤 생각일까? 20대 직장인 여성 B씨는 “사실 보기가 좀 그렇다. 매일 이곳을 지나지만 볼 때마다 민망하고 같은 여자로서 썩 기분이 좋지 않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곳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집창촌 골목에서 장사하는 50대 남성은 “이곳이 터전이다.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 때문에 먹고 산다. 여기 없어지면 우리는 뭘 해서 먹고 사나. 저렇게 큰 백화점이랑 우리가 경쟁이 되나?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창촌의 붉은 등이 켜질 시간. 하지만 집창촌 어느 곳도 불은 켜지지 않는다. 이상했다.

이때 한 여성이 눈에 띈다. 홀로 나와 화장 중이다. 손님 맞을 준비에 손길이 바빠 보인다. 어렵게 말을 건넸다. 10년 넘게 성매매 일을 해온 여성이었다. C(40)씨는 언론에서 쏟아진 비판적 기사 때문에 일단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C씨는 “2011년 시위 이후 타임스퀘어 측과 합의한 게 오후 8시다. 그때부터 오후 8시가 돼야 일을 시작한다. 예전보다 손님도 줄었지만, 최근 보도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경찰은 집창촌 단속하지 말고 숨어있는 오피스텔이나 단속해라.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좀 야비한 것 같다. 차라리 합동단속을 하든지…. 만만한 게 우리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 제일 힘든 건 손님이 없는 거다. 여기도 재개발계획이 있다. 여기 없어지면 아가씨들이 어디로 갈 것 같나? 뻔하다. 오피스텔 아니면 해외 성매매다. 이게 더 큰 문제”라며 “그냥 집창촌을 레드존으로 규정해 정부에서 관리하는 게 더 낫다. 지구상에 남자가 존재하는 한 성매매는 없어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


30∼40년 된 가게들 상권주도
골목마다 성매매업소 불야성

저녁 8시. 집창촌 전체에 드디어 불이 켜진다. 아가씨들은 저마다 가게 안에서 의자를 꺼내고 옷매무시를 고치며 영업을 준비한다. 영등포역을 나와 눈에 보이는 유명 쇼핑몰을 찾아가려다 지름길로 보이는 골목길로 잘못 접어든 모녀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쇼윈도와 붉은 조명, 그리고 야한 옷에 “에구머니”라는 외마디말을 남긴 채 뒤돌아선다. 유명 쇼핑몰 쪽에서 데이트를 마치고 나오던 연인들도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쇼윈도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 돌아선다.

영등포역 앞 대로변에는 쇼윈도는 없었다. 1층은 대부분 파이프나 철물 등을 만드는 업체들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상점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특유의 빨간불이 은은했고 여성들이 3∼4명씩 짝지어 도로 옆에 나와 있다가 지나가는 남자들의 팔을 잡아끈다.
 

대로변에서 꺾어져 집창촌 거리 옆으로 들어서자 호객행위는 뜸하다. 종업원들은 유리를 열고 내다보며 “여기야”하고 부르거나 미성년자들이 들어오려 하면 “너흰 여기 오면 안 돼”라고 말만 하는 수준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호객행위는 없고 쇼윈도 안에서 밖을 보며 손님을 기다린다. 군데군데 커튼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 업소들도 보인다. 30여분 사이에 4명의 남자 손님들이 업소에 들어갔다.

경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나타난다. 경찰차가 나타나자 대로변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여성들은 골목이나 계단 사이로 움직인다. 경찰은 스피커에 대고 “거기 재킷 입은 분, 빨리 들어가세요”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경찰차가 지나가자 여성들은 금세 다시 나와 호객행위를 시작한다.

테마거리 발달로
옛 명성 되찾나?


한 업소의 사장은 “아가씨들을 착취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기본 화대 8만원 중 3만5000원은 아가씨 몫으로 떼주는 등 함께 살아가고 있다”며 “어차피 절대 안 없어질건데 네덜란드처럼 그냥 우리도 인정해주고 놔두면 안 되냐?”고 기자에게 반문한다.

경찰 등에 따르면 영등포 일대에는 한때 40∼50여개 업소에 100여명 이상의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현재 경찰이 확인한 영업업소는 22개에 종업원은 40∼50명 선이다. 대신 일반적인 회사 사무실로 위장한 채 영업하는 등 음성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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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