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2번의 사직서 제출로 검찰과 ‘안녕’ 참여정부 말 임명돼 BBK 정국, 촛불수사 등 풍운의 1년7개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결국 검찰 수장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명돼 인사청문회부터 BBK 정국과 정권교체, 촛불 수사까지 순탄치 않은 1년7개월 동안 굳건히 버텼던 임 총장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지목되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책임을 짊어졌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직서를 극구 반려했지만 임 총장은 끝내 두 번째 사직서를 내밀었다.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 원칙을 표방했던 임 총장.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얄궂은 인연이 안타까운 끝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말기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임 총장에게 수사를 받았고,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 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임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기가 만료된 정상명 총장의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월 재정경제원을 떠난 지 10년 만에 장관으로 돌아왔다. 윤 장관은 지난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맡았다. 하지만 당시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그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이후 금융위기의 책임을 지게 된 그는 아시아개발은행 이사로 자리를 옮겨 5년 동안 해외생활을 했다. 그를 다시 불러들인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던 고 이수인 의원과 처남·매부 사이인 윤 장관을 제 5대 금융감독원장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서 그는 금융과 산업자본을 분리한 ‘금산분리’ 철폐를 주장하며 엇갈린 행보를 걸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 말기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금감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연봉 6억원의 최고대우를 받으며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2월 이명박 정권의 두 번째 경제수장으로 이름을 올린 윤 장관은 전 정부의 관료 출신이면서도 현 정부에서 중용된 인물이다. 이는 노 정권 말기 소신 있게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모습을 이 대통령
윤증현 장관은 취임 후 환율이나 성장률 전망, 경기진단 등에서 비교적 조심스런 언행을 이어왔다. 앞서 가벼운 말로 구설수에 올라 시장의 신뢰를 잃은 강만수 경제팀을 의식한 탓이다. 하지만 간혹 거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 2월 윤 장관은 한 강연에서 “국회는 깽판” “선거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추경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국가의 요직을 맡은 인물이 국회를 모독했다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 4월에는 국회 대정부질의에 출석해 “비싼 병원에는 안 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윤증현 어록을 남겼다.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윤 장관과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설전을 벌이던 중 나온 말이다. 이 자리에서 전 의원은 영리병원 제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전 의원이 “영리병원은 고가 서비스를 환자에게 적극 권하고 의학적 지식 없는 환자는 이에 따를 수밖에 없어 의료비가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지만 윤 장관은 “영리의료법인 진입을 자율화하면 경쟁력
이명박 정부의 2기 경제팀인 윤증현 호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윤 장관은 지난 2월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던 1기 경제팀 강만수 호의 뒤를 이어 국내 경기회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선발됐다. 경기급락세 진정과 환율 안정, 내수 경기 활성화 등 많은 숙제를 안고 출발했던 윤 장관은 짧은 시간 동안 숨 가쁜 릴레이를 펼쳐왔다. 취임 후 윤 장관은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내수 진작을 위해 갖가지 부동산 완화 정책을 펼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재계의 평가는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일요시사>에선 윤 장관이 지난 100일간 이룬 다양한 성과와 앞으로 풀어야 할 미완의 숙제들에 대해 파헤쳐 봤다. 주가 상승, 환율 안정, 경상수지 최대 흑자 등 급한 불 소등 기업 구조조정, 일자리 창출, 내수시장 안정 “갈 길은 멀다” 28조원 추경 예산은 임시방편 800조원 유동성 자금 관리해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윤 장관의 행보에 대해선 ‘대체로 잘해왔다’는 평가다. 실제 윤 장관 취임 후 불안한 금융시장이 안정을
리니지 대박에 조폭 여기저기서 꼬여 김택진 사장, ○○파 보스와 담판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성공 신화를 있게 한 ‘리니지’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김 사장은 몇 해 전 친분관계가 있는 기자들과 사석에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 적이 있다. ‘조폭’과의 악연이 그것이다. 리니지가 인기를 끌자 조폭들이 회사에 난입해 업무를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파 보스가 김 사장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김 사장은 단순히 회사가 커지니까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고심 끝에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조폭들을 만났다. 김 사장은 당시 혼자였다고 한다.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 속으로 겁도 났지만 그는 당당히 보스와 대면했다. 보스는 부하들에 둘러싸인 채 김 사장을 어르고 달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고 한다. 워낙 김 사장이 원칙적인 얘기만 꺼내자 결국 보스는 오히려 김 사장에게 사정을 했다. 그런데 보스의 부탁이라는 것이 너무 황당했다. ‘리니지’ 아이템을 달라는 요구였다. 김 사장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대충 그 자리를 정리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뒤를 이어 ‘코스닥 부호’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풍력발전 부품업체인 태웅의 허용도 사장은 지난해 말에 이어 코스닥 주식부자 1위를 차지했다. 차 사장의 주식평가액은 지난 15일 현재 7310억원이다. 코스닥 부호 2위는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이다. 이 사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3387억원으로 지난해 말(970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김상헌 동서 대표는 평가액 3047억원으로 3위에 올랐다. 이어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가 2721억원, 양용진 코미팜 대표가 2267억원, 안재일 성광벤드 대표가 2190억원, 신동수 평산 대표가 209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밖에 ▲이정수 유니슨 사장(1823억원) ▲이창규 현진소재 사장(1480억원)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1251억원) ▲장세희 동국산업 사장(1039억원) ▲이재웅 다음 사장(765억원) ▲이환용 디지텍시스템 사장(736억원) ▲이기형 인터파크 사장(701억원) ▲윤성덕 태광 사장(685억원) ▲변대규 휴맥스 사장(503억원) ▲곽민철 인프라웨어 사장(498억원) ▲김석환 삼천리자전거 사장(487억원) ▲박상환 하나투어 사장(390억원) 등으로
벤처기업인이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주인공은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 사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치고 1조원대 ‘주식 부자’에 등극했다. 재벌가 출신이 아닌 김 사장이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결국 성공을 이뤄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 사장의 ‘벤처 신화’를 되짚어봤다. 흔히 재벌하면 삼성, LG, 현대차 등 굴지의 그룹 총수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재벌 개념과 지형이 바뀌고 있다. 수대에 걸쳐 부를 세습한 재벌가들이 분가 등으로 핵분열한 틈새로 신흥갑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다. 김 사장은 최근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지분평가액은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재계전문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김 사장의 주식가치는 지난 15일 엔씨소프트 주가가 장중 한때 18만2000원까지 올라가면
- 재보선 경선에서 지고 승복해 화제가 됐는데. ▲ 당연한 일이었다. (경선 결과를) 받아들였다. 무리한 경선이었다. 경선 당일 연설도 하고 투표도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600명 정도가 왔다. 이중 120명만 자리에 앉아있었고 나머지는 삼삼오로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경선은 명단유출 등 문제가 많았다. 문제제기를 하고 법적인 문제제기까지 검토해 볼 수 있었지만 시끄러워지지 않겠나. 집안 손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해 집밖에서 책망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 같았다.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어려운 일이었다. 결단을 내리면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 - 힘든 결단을 했는데, 그 배경을 얘기해달라. ▲ 처음부터 정치인은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천 이후 파동이 생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좋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정치인도 있구나, 어려움도 수용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는…. 폭넓게 정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 명분은 쌓았지만 실리는 놓쳤다. 또한 경선제의 문제점도 발견했다. 경선제는 대표시절 당 대표와 대선후보를 뽑기 위
바쁘게 지나온 질곡의 정치사를 뒤로하고 새롭게 정치권으로 돌아온 이가 있다.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다. 한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한 이른바 ‘DJP연합’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며,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 청와대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며 두 번의 정권 창출 역사의 중간에 서 있었다. 6년간의 정치적 변혁기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지난 1월 친정인 민주당에 복당한 한 전 대표. 입 무겁기로 유명한 그를 만나 그간 말하지 못했던 정치비화를 들어봤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산 1년10개월 “뒤에 선 조정자 역할” ‘노무현 대통령’ 만든 국민경선제, 밝히지 못하는 속내 10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태풍의 눈’ 안에서 우리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함께한 한광옥 전 대표가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특별복권을 계기로 정치적 자유를 얻어 민주당에 복당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여의도로 돌아왔다고 끊어졌던 정치생명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지성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사제 대결이 결국 무산됐다. 첼시는 지난 7일 오전(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템포드브리지서 바르셀로나와의 열린 2008~200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서 1-1로 비겼다.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후반 인저리타임 이니에스타에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결국 첼시는 통합전적 2무를 기록했고 원정 다득점에 밀려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에 실패했다. 맨유가 아스널을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선착한 가운데 첼시는 오는 28일 이탈리아 로마서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행 티켓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이로써 결승전에 선착해 있는 맨유 그리고 박지성과의 대결이 무산된 것. 지난 1987~1988시즌 PSV에인트호벤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히딩크 감독은 20여 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노렸지만 끝내 결승 진출에 실패하게 됐다. 한편 박지성은 지난 2004~2005시즌을 마친 후 PSV에인트호벤서 맨유로 이적해 히딩크 감독과 멀어졌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맨유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고 아스널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서 선제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쳐 맨유의
‘산소탱크’ 박지성이 꿈의 무대에서 주연으로 떠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입단 후 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시원한 골을 선보인 것. 그는 지난 6일 아스널과의 준결승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에 답했고 다가올 결승전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란 것을 시사했다. 박지성은 이로써 항간에 떠돌던 ‘위기설’을 깨부수고 당당히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위기의 순간마다 어김없이 ‘한 방’을 보여준 그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봤다. 챔피언스리스 준결승에서 선제골 넣어 팀 승리 견인 준결승 두 경기 골 넣어 골 결정력 부재 말끔히 해소 퍼거슨 감독, 강한 믿음 보이며 결승전 출장 가능성 시사 위기마다 발휘되는 진면목 또 한 번 나타나 축구팬 열광 “박지성이 맨유 이적 후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이번 결승전에서 박지성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일 아스날과의 경기 후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지성은 활약상에 비해 가장 과소평가를 받은
고향 전북 전주덕진 재선거서 ‘무소속연대’로 압승 당내 복귀 추진 “돌아간다” 민주당 “누구 맘대로” 정동영 전 장관이 귀환했다. 17대 대선에서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낙선한 데 이어 18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쫓기듯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그가 4월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여의도 정계 복귀에 성공했다. 정 전 장관은 정치적 고향 전주 덕진 재선거에서 72.3%(5만7423표)의 득표율로 12.9%에 그친 민주당 김근식 후보를 압도적인 차로 제쳐 민주당 지도부의 공천배제 결정에 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나서야 했던 설움을 씻어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에게 재선거는 나지막한 언덕을 넘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고비와 더 높은 산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재선거 출마를 위해 뛰쳐나왔던 민주당에 복당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추락한 ‘거물’의 이미지 쇄신과 비주류가 된 자신의 계파 챙기기,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대비도 하나같이 녹록치 않은데다 당권과 대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번 재선거에서의 당선이 ‘절반의 승리&r
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4월 전주 덕진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하면서 그의 순탄치만은 않았던 정치 인생이 시선을 끌고 있다. 정 전 장관은 195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출신인 그는 서울대 동기인 이해찬 전 총리의 권유로 1996년 정계에 입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15대 총선에 출마한 그는 전주 덕진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총선에서도 전국 최다 득표를 획득하며 재선에 성공,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국민회의 시절 당대변인과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당시 권력 2인자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겨냥 ‘정풍운동’을 벌이면서 깨끗한 이미지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2002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어 졌지만 경선을 완주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년 신기남·천정배 의원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인 폄훼 발언 파문’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17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까지 사퇴
‘대한민국 브랜드’ ‘글로벌 SK’ 기치 드높여 보아오·다보스포럼서 각국 정상·주요인사 만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며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중국 보아오포럼에서 원자바오 총리와 존 키 뉴질랜드 총리 등 각국 정상과 주요 인사를 만나는 등 한국 기업인으로 유일하게 참여해 민간경제 외교를 펼쳤다. 앞서 올 1월에는 3박4일 동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 등 국가 정상은 물론 알 팔리 사우디아람코 회장, 앗 슈와이브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 회장, 크리스토퍼 콜 골드만삭스 회장 등 재계 리더들을 만났다. 지난해 말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를 후원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광폭행보’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민국 브랜드’를 알리고 ‘글로벌 SK’의 기치를 드높이는 등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최 회장이 잇달아 국가원수급 지도자와 재계 리더를 만나는 등 민간 경제 가교 역할을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계의 조연에서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한 지 오래. 검찰발 사정바람과 금융발 불황폭풍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치고 나가는 ‘공격력’이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스피드를 내고 있는 강 회장에게도 건드리면 아픈 ‘아킬레스건’이 있다.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강한 강 회장의 2%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제다. 우선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이 눈부시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순위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밑으론 신세계그룹, CJ그룹, 동부그룹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즐비하다. 2000년 그룹 출범 당시 매출은 2605억원. 지난해 STX그룹 총매출 28조원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목표는 30조원이다. 사정바람·불황폭풍 속 거침없는 질주 화제 지연 학연 등 큰인맥 부재 “너무 평범했나” ‘월급쟁이서 총수로’자수성가 성공스토리 ‘스페셜 코스’ 밟은 재벌 사
이희범 회장 실질적인 그룹 2인자 부상 이종철·이인성·장원갑·이명기 신임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오른팔’은 누구일까. STX그룹 서열 순으로 따져보면 그룹의 실질적인 2인자는 지난 3월 영입된 이희범 에너지부문 총괄 회장이다. 뒤늦게 합류했지만 강 회장과의 친분과 그룹의 반쪽인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회장 밑으론 그룹을 이끄는 ‘이종철-이인성-장원갑-이명기’핵심 부회장 4인방이 있다. 이종철 STX팬오션 부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STX와 STX팬오션 대표이사로 그룹의 해운·무역·에너지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2004년 STX그룹이 인수한 범양상선 출신인 이 부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범양상선의 전신인 범양전용선㈜에 입사해 런던 사무소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2004년 STX팬오션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지난해 1월 부회장에 올랐다. 이인성 STX조선 부회장은 그룹 조선해양 부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조선해양 영업본부장과 지원본부장
신지애가 더욱 빛나는 것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생들과 시작한 단칸셋방 생활은 신지애로 하여금 주변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했다. 비슷한 고통을 겪어봤기에 그들이 얼마나 절실한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용돈을 받아서 쓰면서도 받은 상금을 기부로 내놓는 데 인색하지 않은 이유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저도 힘든 시절을 겪었습니다. 당시에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제가 그분들의 사랑에 대해서 보답할 때라고 생각해요.” 신지애는 데뷔 초부터 매년 수천만원씩 불우 청소년 장학금이나 불우이웃돕기 등에 성금을 내왔고 지난 2008년 9월에는 경기도 용인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2400만원어치의 쌀과 지원금을 건네기도 했다. 매년 억대 기부 실천…2008년엔 17억 외화벌이 톡톡 자신의 도움 필요한 곳이라 생각되면 아낌없이 지원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도 지원금을 내놨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되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아버지가 다니는 교회의 헌금, 동네 봉사 등 연간 기부금까지 포함해 매년 억대의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언론이나 팬들이 주목하고 있는 빅스타들은 대부분 다양한 애칭을 갖고 있다. 우즈를 비롯해 아니카 소렌스탐(여제), 로레나 오초아(넘버1) 등은 ‘성적형’이고, 그렉 노먼(백상어)과 짐 퓨릭(8자 스윙), 카밀로 비예야스(스파이더맨) 등은 ‘플레이 스타일형’이다. 로손과 나탈리 걸비스(바비 인형) 등 여자선수들은 ‘섹시함’이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프로골퍼들의 애칭은 사실 선수의 모든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수식어이다. 애칭만 살펴봐도 선수의 외모와 신체적인 특징, 기량 등을 단번에 가늠할 수 있다. 신지애의 애칭은 ‘지존’이다. 올해 LPGA투어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지애는 ‘지존’이라는 애칭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애칭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해까지는 첫날 성적이 좋지 않아 ‘슬로스타터’로 불리다 최종일 역전우승이 많아 ‘역전의 명수’와 ‘파이널스 퀸’이라는 애칭이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록을 작성해 ‘
2009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 공식 데뷔와 함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존’ 신지애가 선배인 박세리를 넘어 첫 해 5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등극할 수 있을 것인가. 신지애는 올해 초 “올해 ‘신인왕’이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많은 팬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돼 5승 이상씩을 할 거라고 격려해줘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신인왕’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페어웨이를 놓치지 않는 드라이버샷과 컴퓨터 아이언샷은 기본, 과감한 퍼팅 능력과 두둑한 배짱까지 겸비한 신지애는 이미 기량 면에서 LPGA 정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3개 메이저대회 타이틀 획득, 한 시즌 상금 사상 첫 7억원 돌파, 3년 연속 상금왕 등은 신지애가 국내 여자골프 1인자로 군림하며 남긴 기록들이다. 또한 신지애는 LPGA 투어에 비회원으로 참가해 3차례씩이나 우승한 전례도 있다. 그러니 이제까지 한국을 대표해왔던 박세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로 신지애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며 항상 ‘준비된 신
지난달 29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2009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꿈의 200점대’를 돌파하며 ‘피겨여왕’으로 자리매김한 김연아는 1990년 9월 경기도 군포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7살이 되던 해인 지난 1996년 김연아는 고모의 낡은 스케이트를 신고 처음으로 피겨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6가지 점프 기술 중 악셀을 제외한 5가지 트리플 점프를 소화하며 ‘천재 피겨소녀’로 주위의 주목을 받아온 김연아는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연습벌레였다. 김연아를 지도하는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연습할 때 ‘이제 좀 그만하자’고 말려야 할 정도로 연습벌레다. 만족을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더욱이 어릴 적부터 계속된 부상은 김연아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곤 했다. 특히 중학 시절 인대가 늘어나 점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땐 은퇴까지 고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천재 피겨소녀의 노력은 차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9월 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