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재벌’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성공스토리

재벌은 금수저를, 천재는 머리를 갖고 태어난다

벤처기업인이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주인공은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 사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치고 1조원대 ‘주식 부자’에 등극했다. 재벌가 출신이 아닌 김 사장이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결국 성공을 이뤄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 사장의 ‘벤처 신화’를 되짚어봤다.

흔히 재벌하면 삼성, LG, 현대차 등 굴지의 그룹 총수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재벌 개념과 지형이 바뀌고 있다. 수대에 걸쳐 부를 세습한 재벌가들이 분가 등으로 핵분열한 틈새로 신흥갑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다. 김 사장은 최근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지분평가액은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재계전문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김 사장의 주식가치는 지난 15일 엔씨소프트 주가가 장중 한때 18만2000원까지 올라가면서 1조203억원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엔씨소프트 주식 560만6091주(지분율 26.74%)를 보유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등극
지분평가액 1조원 돌파 “웬만한 황태자 명함도…”
리니지·아이온 ‘대박행진’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이 1조원이 되기 위한 마지노선은 엔씨소프트 주가 17만8500원이다. 시가총액 3조6448억원(상장사 48위)인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지난해 말 5만원대에서 3배나 뛰었다. 덩달아 김 사장의 지분가치도 연초 대비 200% 가까이 증가해 벤처기업 경영인으론 처음으로 상장사 주식부호 10위권에 진입했다.

김 사장의 지분 가치는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쳤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9494억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7583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4664억원) 등 재벌그룹 ‘황태자’들이 모두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김 사장보다 지분 가치가 높은 재벌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2조9339억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조8550억원),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1조9211억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1조5458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1조1900억원),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1조1447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1조150억원) 등 7명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주식 가치 1조원을 돌파한 김 사장이 대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의 부호로 급성장했다”며 “일부 금융권에서 엔씨소프트의 목표주가를 20만원까지 전망하고 있어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재벌가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올해 42세인 그가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온라인게임 ‘리니지’와 ‘아이온’단 2개의 아이템으로 대박을 터뜨린 결과다.

눈에 띄는 점은 김 사장이 재벌가와 동떨어진 인물이란 사실이다. 부호 리스트에 거론된 재벌들이 하나같이 선대로부터 주식이나 가업을 물려받는 등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열패밀리인데 반해 김 사장만 유일하게 직접 엄청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이다.
인터넷과 디지털로 대변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트렌드를 일찌감치 읽어 아이디어 하나를 무기로 세상이란 무대에 나와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 사장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표본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주가 급등
지난해 말부터 3배 뛰어

1967년 서울 출생인 김 사장은 198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대학선배인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문서작성 프로그램 ‘아래아 한글’을 개발하면서 벤처의 꿈을 키웠다.
1989년 선보인 아래아 한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 사장 등은 한글과컴퓨터를 세웠지만 김 사장은 학교에 남았다. 그는 같은해 한메소프트란 벤처를 창업해 한메타자로 잘 알려진 한글입출력프로그램 ‘한메한글’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김 사장은 1990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입사해 미국 보스턴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네트워크 분야에서 일을 했다.
그랬던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 서울대 전자공학과 최초의 여학생인 장인경 마리텔레콤 사장과의 인연에 기인한다. 역시 김 사장의 대학선배인 장 사장은 ‘게임업계의 대모’로 유명한 인물로, 1994년 카이스트 재학 중인 게임 마니아들을 모아 마리텔레콤을 세워 ‘단군의 땅’ ‘쥬라기 원시전’등 최초의 온라인게임을 만들었다.

김 사장은 당시 장 사장을 통해 ‘게임계 괴물’들과 인맥을 형성했고, 이는 결국 게임사업에 뛰어든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때 만난 파트너가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이다. 두 게임천재의 만남은 국내 온라인 게임의 역사에서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 사장은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하면서 카이스트 출신으로 온라인 게임개발부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송 사장과 손을 잡고 이듬해 ‘리니지’서비스를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12년 만에
재벌 반열에 ‘우뚝’

김 사장은 “소프트웨어가 효율화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해 독립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정한 게 온라인 게임 개발”이라며 “개발 당시 IMF 상황을 맞아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리니지가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대박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게임업계는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시기상조’로 여기고 김 사장의 도전을 ‘무모한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국내 초고속통신망이 잘 갖춰져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겨우 서버컴퓨터 1대로 시작한 리니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리니지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절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PC방의 출현은 리니지 대박 행진에 기름을 부었다. 재료비가 들지 않는 온라인게임이 매출의 30%가 수익으로 남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만큼 김 사장의 재산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리니지로 뿌리를 내린 엔씨소프트는 지금 꽃을 피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리니지2’에 이어 지난해 11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온’으로 또다시 대박을 터뜨린 것.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리니지2 등의 기존 매출에 아이온 매출까지 추가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어 월평균 1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아이온은 지난 1분기 국내에서만 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리니지는 294억원, 리니지2는 411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엔씨소프트는 지난 1분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1% 증가한 13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어난 5000억원이 매출 목표다. 직원도 1997년 17명에서 12년 만에 3000여 명으로 늘었다.
성공신화를 써온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집 담보로 대출…조폭들 협박…정치권 러브콜…리니지 후속작 흥행 실패…부인과의 이혼…벤처신화 속 시련도

김 사장은 리니지를 개발할 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리니지가 인기를 끌자 ‘조폭’들이 회사에 난입해 리니지 아이템을 요구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2004년 4월 총선 때는 성공신화와 젊은 나이, 벤처정신 등이 정당의 개혁성과 어울린다고 판단한 정치권에서 그를 적잖게 괴롭혔다는 후문이다.

2005년과 2006년 야심차게 내놓은 리니지 후속게임인 ‘길드 워’와 ‘오토어썰트’가 판매 부진을 겪은 데 이어 2007년엔 북미시장을 겨냥해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타뷸라라사’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무엇보다 게임 중독 현상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게입산업 폐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김 사장으로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련은 김 사장이 줄곧 ‘위기론’을 제기하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 까닭이다. 김 사장은 여전히 “갑부나 부호란 얘기가 맞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이온을 출시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많은 실패 속에 배운 교훈들이 많다”며 “흥미로운 도전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전한 바 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김 사장은 2007년 11월 ‘천재소녀’윤송이씨와 비밀리에 재혼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윤씨가 2004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서로 눈이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 뺨치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윤씨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00년 ‘24년 2개월’이란 나이에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 미디어랩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컨설팅회사 매킨지, SK그룹 계열사 와이더댄닷컴을 거쳐 2004년 28세로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아들을 출산한 뒤 곧바로 최고전략책임자(CSO)겸 부사장으로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윤씨는 엔씨소프트 지분 0.02%를 보유하고 있다.
김 사장은 2004년 11월 전 부인 정모씨와 이혼했다. 당시 그는 이혼에 따른 양육비와 위자료 등 재산분할로 300억원대의 엔씨소프트 주식(35만여 주)을 정씨에게 양도해 화제를 모았다.

연매출 5천억원 ‘눈앞’
직원 17명서 3천명으로

이혼 사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김 사장이 사업으로 가정에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추론이다. 정씨는 이혼 직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족에 대해 전혀 알려진 게 없을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며 “다만 김 사장과 이혼한 부인과 자녀들, 한때 엔씨소프트에 근무한 처남이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만 확인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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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