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재벌’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성공스토리

재벌은 금수저를, 천재는 머리를 갖고 태어난다

벤처기업인이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려 화제다. 주인공은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 사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치고 1조원대 ‘주식 부자’에 등극했다. 재벌가 출신이 아닌 김 사장이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결국 성공을 이뤄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김 사장의 ‘벤처 신화’를 되짚어봤다.

흔히 재벌하면 삼성, LG, 현대차 등 굴지의 그룹 총수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재벌 개념과 지형이 바뀌고 있다. 수대에 걸쳐 부를 세습한 재벌가들이 분가 등으로 핵분열한 틈새로 신흥갑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다. 김 사장은 최근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지분평가액은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재계전문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김 사장의 주식가치는 지난 15일 엔씨소프트 주가가 장중 한때 18만2000원까지 올라가면서 1조203억원을 기록했다. 김 사장은 엔씨소프트 주식 560만6091주(지분율 26.74%)를 보유하고 있다.

벤처기업가 최초로 상장사 10대 주식부호에 등극
지분평가액 1조원 돌파 “웬만한 황태자 명함도…”
리니지·아이온 ‘대박행진’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이 1조원이 되기 위한 마지노선은 엔씨소프트 주가 17만8500원이다. 시가총액 3조6448억원(상장사 48위)인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지난해 말 5만원대에서 3배나 뛰었다. 덩달아 김 사장의 지분가치도 연초 대비 200% 가까이 증가해 벤처기업 경영인으론 처음으로 상장사 주식부호 10위권에 진입했다.

김 사장의 지분 가치는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들을 제쳤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9494억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7583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4664억원) 등 재벌그룹 ‘황태자’들이 모두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김 사장보다 지분 가치가 높은 재벌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2조9339억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조8550억원),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1조9211억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1조5458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1조1900억원),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1조1447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1조150억원) 등 7명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주식 가치 1조원을 돌파한 김 사장이 대기업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의 부호로 급성장했다”며 “일부 금융권에서 엔씨소프트의 목표주가를 20만원까지 전망하고 있어 김 사장의 주식평가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재벌가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올해 42세인 그가 ‘맨주먹’으로 재벌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2년이다. 온라인게임 ‘리니지’와 ‘아이온’단 2개의 아이템으로 대박을 터뜨린 결과다.

눈에 띄는 점은 김 사장이 재벌가와 동떨어진 인물이란 사실이다. 부호 리스트에 거론된 재벌들이 하나같이 선대로부터 주식이나 가업을 물려받는 등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열패밀리인데 반해 김 사장만 유일하게 직접 엄청난 부를 일군 ‘자수성가형’이다.
인터넷과 디지털로 대변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트렌드를 일찌감치 읽어 아이디어 하나를 무기로 세상이란 무대에 나와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 사장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표본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주가 급등
지난해 말부터 3배 뛰어

1967년 서울 출생인 김 사장은 1985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대학선배인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문서작성 프로그램 ‘아래아 한글’을 개발하면서 벤처의 꿈을 키웠다.
1989년 선보인 아래아 한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 사장 등은 한글과컴퓨터를 세웠지만 김 사장은 학교에 남았다. 그는 같은해 한메소프트란 벤처를 창업해 한메타자로 잘 알려진 한글입출력프로그램 ‘한메한글’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김 사장은 1990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입사해 미국 보스턴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네트워크 분야에서 일을 했다.
그랬던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 서울대 전자공학과 최초의 여학생인 장인경 마리텔레콤 사장과의 인연에 기인한다. 역시 김 사장의 대학선배인 장 사장은 ‘게임업계의 대모’로 유명한 인물로, 1994년 카이스트 재학 중인 게임 마니아들을 모아 마리텔레콤을 세워 ‘단군의 땅’ ‘쥬라기 원시전’등 최초의 온라인게임을 만들었다.

김 사장은 당시 장 사장을 통해 ‘게임계 괴물’들과 인맥을 형성했고, 이는 결국 게임사업에 뛰어든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때 만난 파트너가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이다. 두 게임천재의 만남은 국내 온라인 게임의 역사에서 ‘사건’으로 평가된다. 김 사장은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하면서 카이스트 출신으로 온라인 게임개발부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송 사장과 손을 잡고 이듬해 ‘리니지’서비스를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12년 만에
재벌 반열에 ‘우뚝’

김 사장은 “소프트웨어가 효율화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해 독립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정한 게 온라인 게임 개발”이라며 “개발 당시 IMF 상황을 맞아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리니지가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대박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게임업계는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시기상조’로 여기고 김 사장의 도전을 ‘무모한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국내 초고속통신망이 잘 갖춰져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겨우 서버컴퓨터 1대로 시작한 리니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리니지 모르면 간첩, 못하면 컴맹’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절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진 PC방의 출현은 리니지 대박 행진에 기름을 부었다. 재료비가 들지 않는 온라인게임이 매출의 30%가 수익으로 남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만큼 김 사장의 재산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리니지로 뿌리를 내린 엔씨소프트는 지금 꽃을 피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리니지2’에 이어 지난해 11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아이온’으로 또다시 대박을 터뜨린 것.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리니지2 등의 기존 매출에 아이온 매출까지 추가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어 월평균 1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아이온은 지난 1분기 국내에서만 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리니지는 294억원, 리니지2는 411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엔씨소프트는 지난 1분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1% 증가한 13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어난 5000억원이 매출 목표다. 직원도 1997년 17명에서 12년 만에 3000여 명으로 늘었다.
성공신화를 써온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집 담보로 대출…조폭들 협박…정치권 러브콜…리니지 후속작 흥행 실패…부인과의 이혼…벤처신화 속 시련도

김 사장은 리니지를 개발할 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리니지가 인기를 끌자 ‘조폭’들이 회사에 난입해 리니지 아이템을 요구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2004년 4월 총선 때는 성공신화와 젊은 나이, 벤처정신 등이 정당의 개혁성과 어울린다고 판단한 정치권에서 그를 적잖게 괴롭혔다는 후문이다.

2005년과 2006년 야심차게 내놓은 리니지 후속게임인 ‘길드 워’와 ‘오토어썰트’가 판매 부진을 겪은 데 이어 2007년엔 북미시장을 겨냥해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타뷸라라사’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무엇보다 게임 중독 현상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게입산업 폐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김 사장으로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련은 김 사장이 줄곧 ‘위기론’을 제기하며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 까닭이다. 김 사장은 여전히 “갑부나 부호란 얘기가 맞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이온을 출시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많은 실패 속에 배운 교훈들이 많다”며 “흥미로운 도전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전한 바 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김 사장은 2007년 11월 ‘천재소녀’윤송이씨와 비밀리에 재혼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윤씨가 2004년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서로 눈이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 뺨치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윤씨는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00년 ‘24년 2개월’이란 나이에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대학원 미디어랩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컨설팅회사 매킨지, SK그룹 계열사 와이더댄닷컴을 거쳐 2004년 28세로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아들을 출산한 뒤 곧바로 최고전략책임자(CSO)겸 부사장으로 엔씨소프트에 합류했다. 윤씨는 엔씨소프트 지분 0.02%를 보유하고 있다.
김 사장은 2004년 11월 전 부인 정모씨와 이혼했다. 당시 그는 이혼에 따른 양육비와 위자료 등 재산분할로 300억원대의 엔씨소프트 주식(35만여 주)을 정씨에게 양도해 화제를 모았다.

연매출 5천억원 ‘눈앞’
직원 17명서 3천명으로

이혼 사유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김 사장이 사업으로 가정에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추론이다. 정씨는 이혼 직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족에 대해 전혀 알려진 게 없을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며 “다만 김 사장과 이혼한 부인과 자녀들, 한때 엔씨소프트에 근무한 처남이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만 확인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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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