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세아그룹 막전막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국내 철강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값싼 중국산 철강재의 위협이 거세지는데다 공급과잉, 보호무역 강화 등 거듭된 악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위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요즘이다. 꾸준히 몸집을 키워온 세아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안팎의 시선에서 일말의 불안감마저 엿보인다.

1960년 창립한 부산철관공업을 모태로 하는 세아그룹은 철강 제조업을 주력으로 성장해왔다. 세아제강과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를 주축으로 총 23개의 계열회사가 세아그룹이라는 우산을 공유하고 있다. 세아홀딩스는 세아베스틸, 세아특수강, 세아창원특수강 등 특수강 사업과 비철강 사업을 관장하고 세아제강은 강관 사업과 해외 자회사들을 거느리는 구조다.

웃고 있지만
걱정이 태산

2015년 4월 기준 상호출자제한 일반기업 지정에 따른 세아그룹의 재계 서열은 40위, 자산총액은 6조8010억원이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2014년부터 동국제강을 밀어내고 포스코·현대제철과 함께 철강업계 'Big3'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세아그룹은 세아베스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세아홀딩스가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은 약 2875억원. 전년 대비 12.5% 증가한 수치다. 매출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3.9%, 25.9% 뛰어 오른 4조482억원, 2070억원을 기록했다. 계열사인 세아베스틸이 특수강 사업을 앞세워 전년 대비 26.8% 증가한 영업이익 2223억원을 달성한 게 결정적이었다. 사실상 세아베스틸이 세아홀딩스 전부를 먹여 살린 셈이다.

세아베스틸의 선전을 위안 삼는 세아홀딩스와 달리 세아제강은 볼품없는 성적표를 꺼내들었다. 세아제강은 지난해 10.7% 감소한 2조19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반토막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종합하자면 그룹 전체 실적은 상승했지만 세아베스틸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세아그룹의 올 한해가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의 공격적인 행보는 가장 큰 위협이다.

현대제철은 2월 초부터 당진에 위치한 특수강 공장에서 상업생산에 돌입한 상황이다. 2013년 특수강 사업 진출을 선언한 현대제철은 지난해 2월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는 등 착실히 기틀을 다져 왔다. 100만톤 규모(봉강 60만톤, 선재 40만톤)의 당진 특수강 공장과 포항공장(봉강 50만톤) 생산량과 합하면 현대제철의 특수강 생산능력은 연산 150만톤에 이른다.

현대제철은 당진 특수강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 생산의 상공정에 속하는 봉강·선재를 생산하고, 현대종합특수강에서 하공정인 자동차 엔진·변속기 등의 주요 부품소재를 만들 방침이다.
 

현대제철의 특수강 생산은 당장 세아그룹에게 고민거리다. 주력 계열사인 세아제강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특수강 부문 매출 비중의 약 30%를 현대·기아차에 기대고 있는 세아베스틸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세아특수강도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긴 마찬가지다.

실적은 괜찮지만…빛 좋은 개살구
현대제철에 손발 잘릴까 전전긍긍

주력 계열사의 공장 가동률이 꾸준히 하락세라는 점도 불안요소. 세아제강의 가동률은 2012년 87%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가동률이 70%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아베스틸의 가동률도 2011년(88%)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현대제철이라는 호적수가 등장한 올해는 가동률이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점쳐진다.

물론 세아그룹이 국내 특수강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주도권이 현대제철로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산 400만톤에 이르는 세아그룹의 특수강 생산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아베스틸은 현대제철이 지난 2013년 특수강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자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와 수출 비중 확대를 고려해왔다. 지난해 3월 포스코특수강을 1조1000억원 규모에 인수한 것도 특수강 사업 다각화를 위해 움직임이었다. 다만 내수의 상당부분이 잠식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신규 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나머지 철강업체들의 점유율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며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의 관계를 감안할 때 내수 의존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특수강 최강

철강업계에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최근 세아그룹은 3세 경영체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3세 경영체제는 수많은 뒷말을 쏟아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세아베스틸은 지난 1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태성 전무가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세아제강도 오는 25일 주총에서 이주성 전무를 신규 등기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동갑내기 사촌 관계인 두 사람은 각각 고 이운형 전 세아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이순형 현 회장의 맏아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세아홀딩스, 세아제강의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둘 다 1년여 간 서울 본사와 지역 공장을 주 2~3회 왕복하며 경영수업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3세 경영체제는 그룹 계열분리 소문과 묘하게 연결되는 양상이다. 얼마 전 이태성 전무가 보유 중이던 계열사 지분 매각에 나선 것도 남다르게 여기지지 않는 대목이다.

지난 1월 이태성 전무는 세아제강 주식 4만주(0.67%)는 그룹 계열사인 해덕기업에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주된 이유는 상속세 마련이다. 처분 단가는 4만9800원으로 책정됐고 이 전무에게는 19억9200만원 규모의 현금 여유분이 생겼다. 이태성 전무는 이운형 회장이 타계한 뒤 세아홀딩스 지분 71만주 가운데 약 33만주(8.41%)를 물려받은 바 있다.

이태성 전무의 세아제강 주식 매각은 자연스럽게 이순형 회장의 세아제강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 여타 회사들과 조금 다른 세아그룹의 내부 조직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변화 예고하는 3세 시대
꼬리무는 계열분리 가능성

세아그룹은 지주사 세아홀딩스가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이태성 전무와 그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절반을 약간 초과한다. 세아홀딩스는 세아베스틸, 세아특수강 등 대부분의 주요 계열사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다만 세아제강은 예외다. 형제경영체제를 이어오면서 느슨한 이분화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이태성 전무 일가가 보유한 세아제강 지분은 21.48%,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전무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28.24%다. 하지만 2014년부터 이태성 전무가 세아제강 지분 일부를 꾸준히 매도했고, 이주성 전무는 꾸준히 매입해 기존 격차가 더 벌어졌다.


드디어 시동
3세 경영체제

이태성 전무와 이주성 전무가 각각 세아홀딩스와 세아제강의 지분을 늘리면서 일각에서는 향후 경영권 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태성 전무가 세아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고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전무를 주축으로 세아제강이 독립한다는 계산이다.

후대로 갈수록 이전 세대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희석되는 형제경영체제의 일반적인 통념과 갈수록 엄격해지는 정부의 대기업 규제 정책이 이 같은 소문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한다.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다는 취지하에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세아그룹 역시 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 단, 세아제강이 계열분리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난 14일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세아제강의 자산규모는 2조738억원이다. 7조원에 육박하는 자산을 지닌 세아그룹에서 세아제강이 분리되면 세아그룹은 대기업 집단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외형 축소에 따른 대외적 위상 약화는 어쩔 수 없다.

다만 반대급부로 2년 내에 계열사 간 채무보증 완전 정리 규정을 비롯한 각종 골치 아픈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미 대기업 집단 하위권에 속한 몇몇 기업은 몸집을 줄여 해당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달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세아그룹을 비롯해 태광, 현대산업개발이 내부거래 관련 공시를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점검에 나선 바 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회사는 특수관계인과 자본금의 5% 또는 50억원 이상의 내부거래를 할 경우 미리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공시해야 한다. 이번 점검은 지난해 하반기 세아그룹의 공시대상 내부거래 서면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실 여부을 확인하는 차원에 불과했지만 신경 쓰이는 사안임에는 분명했다.

계열 분리?
계속되는 뒷말

물론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세아그룹인 만큼 경영권 분쟁이 아닌 현 체제 지속 가능성이 더 크다. 세아그룹은 2013년에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 강화 대책이 발표되자 곧바로 세아네트웍스와 해덕스틸의 지분정리 및 청산에 나서는 등 정부 정책을 최전선에서 이행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아그룹 역시 계열분리 가능성을 뜬소문을 치부하긴 마찬가지다.

세아그룹 관계자는 “최근 들려오는 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뜬소문에 불과할 뿐”이라며 “불황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그룹의 힘을 합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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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