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야쿠자의 세계

최대조직 전쟁 임박…국내 조폭도 초긴장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인 일본의 야쿠자가 파벌싸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올해로 101년째를 맞은 야쿠자는 매해 100조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이며 일본 사회를 주름 잡고 있다. 이번 파벌 싸움이 지난 1985년 25명의 사망자를 낸 ‘야마이치’ 항쟁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가 분열하면서 기존 조직과 파벌싸움이 시작됐다. 조직원 2만7000명 규모의 ‘야마구치파’는 지난해 8월 기존의 ‘야마구치파’와 ‘고베 야마구치파’로 갈라섰다. 야마구치파의 현 두목이 간사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100년 전 야마구치파가 처음 태동한 고베를 강조한 고베 야마구치파가 생겨난 것. 일본 정부는 야쿠자들의 전면전인 ‘항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지난 8일 일제히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일본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계파별 알력
‘야마이치’ 재연?

야쿠자는 일본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말로 주로 대규모 조직을 가진 폭력 조직이다. 토건 및 금융 업체로 위장해 사업을 벌인다. 야쿠자의 근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력 송출, 하역, 건설 등의 목적으로 무리를 지은이들이 당시에 마피아처럼 누구누구 일가(一家)라는 명칭 아래 텃세를 과시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구미(組), 또는 가이(會)로 바뀌었다.

야쿠자라는 명칭은 도박용어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화투놀이 중 하나인 산마이라는 도박은 1부터 9까지의 숫자패 중 3장을 뽑아 합산해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7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라는 기본 규칙이 있다. 8, 9의 눈이 나오면 합계가 17이 돼 끝자리 수가 7이 된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 장을 더 뽑지 않겠지만,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은 여기서 한 장을 더 뽑는다. 최악의 경우 3을 뽑아 끝자리수가 0(8+9+3=20)이 된다. 이 같은 행동 패턴이나 인생 설계가 야쿠자가 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일본어로 ‘893’을 읽어서 ‘야쿠자’라 하고, 이를 ‘쓸모없는 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야쿠자의 조직 구조를 살펴보면 3대 조직은 ‘야마구치파’ ‘스미요시파’ ‘이나가와파’로 나뉜다. 야마구치파의 조직원 숫자는 2만3000여명이다. ‘고도카이’는 야마구치파 산하 최대 파벌로 현재 6대 회장 시노다 켄이치가 여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야마켄파’는 야마구치파 산하 2대 파벌로 ‘고베야마구치파’를 창설하는 데 주도한 파다. 3대조직 중 하나인 ‘스미요시파’는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3대조직 중 하나인 ‘이나가와파’는 현 5대 회장이 재일동포 출신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련의 조직 분열의 중심에는 야마구치파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가 있다. 2005년 두목이 된 이래 10여년 동안 야마구치파를 이끌어왔다. 일본 전국의 산하조직의 중간 보스에 해당하는 직책에 자신의 파인 고도카이 사람을 대부분 임명해온 것이다. 다른 파벌 간부들을 중용하지 않고 본부에 과도한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특히 지난해 8월 긴급집행부회의에서 산하 조직 두목 13명을 ‘절연’ 또는 ‘파문’ 형식으로 조직에서 배제하면서 격화됐다.

폭력조직 내부규율에 따르면 파문이 되면 다른 조직에도 통보돼 야쿠자사회에서 배제되며 절연 조치에는 무서운 보복이 뒤따라 일반사회에 부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지난해 야마구치파에서 이탈된 13개 세력은 야마켄파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를 새 조직의 리더로 추대했다. 조직명을 야마구치의 발상지 고베를 넣은 ‘고베야마구치’로 만들어 야마구치파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수십년째 지속
경찰 초긴장

이 조직원의 숫자는 7000명으로 야마구치파 전체의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야쿠자의 조직원수가 급격히 감소해 수 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 전국에 거점을 둔 폭력단 구성원과 준 구성원 수가 지난해보다 6600명(12.3%) 감소한 4만69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1958년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야쿠자의 세력이 가장 컸던 1963년에는 조직원이 18만4100명에 이르렀다. 폭력단 가입자는 2005년 이후로 줄곧 감소했고 그 수가 5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9월5일 고베야마구치파의 모임에 도쿄에 근거지를 둔 일본 3대 야쿠자인 스미요시파의 간부가 등장한 것은 다른 조직과도 연계하고 있다는 ‘세 과시용’인 것으로 일본 경찰은 분석했다. 야쿠자 조직간 알력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85년 1월 오사카 스이타시에서 야마구치파 4대 두목인 다케나카 마사히사가 조직원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야마구치파 내분이 고조되면서 암살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최대조직 ‘야마구치파’분열
6대 두목 시노다 과도한 상납 요구

이후 2년여 간 세력 다툼으로 조직원 25명이 숨지고 경찰과 시민을 포함해 7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1997년 내분에서 당시 부두목이 고베시 호텔에서 사살됐고 근처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을 맞아 희생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한 두목의 집에 수류탄이 날아들어 일본 국민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15일, 도쿄 신주쿠에서 발생한 충돌이 있다.. 야마구치파의 본거지 중 하나인 도쿄 신주쿠 가부키쵸(도쿄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고베 야마구치파가 두 달 연속 회합을 열면서 양측의 충돌이 벌어졌다.
 

야마구치파 조직원들이 고베 야마구치파 조직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했고 이 사건 이후, 두 조직은 일본 전역에서 보복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상대방 사무실에 차로 돌진하거나 총을 쏘고 달아나는 방식이다.

지난 5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에 있는 고베 야마구치파 사무실에 트럭이 돌진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야마구치파 조직원으로 드러났다. 다음날인 6일에는 총도 등장했다. 같은 사무실에 5발의 총탄이 날아들어 야마구치파가 고베야마구치파를 위협했다.

일련의 알력다툼에 일본 공안위원회 고노 장관은 “대립항쟁 상태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며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계파 간의 갈등에 대해 일본의 한 형사는 “언제 어디서 격렬한 항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며 “특히 두 조직의 본거지가 있고, 소수파인 고베 야마구치파가 오히려 세력이 더 큰 고베일대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본열도의 불안감도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쿠자가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막대한 수익에 있다. 지난 2014년 9월14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파의 연매출이 800억달러(한화 94조여 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5대 범죄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다. <포춘>은 “범죄조직이 지하경제를 통해 활동하고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이들의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958년 당시 조직의 3대 보스 다오카 가즈오는 100만엔을 투자해 연예기획사 ‘고베 예능사’를 세웠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 미소라 히바리 등을 소속 가수로 두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소속 가수가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면 지역 유지들에게 표를 강매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 같은 행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난 2011년 일본의 국민MC로 불린 시미다 신스케는 야마구치파 두목과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연예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60년대는 좌익 학생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해 우익 정치인들로부터 특혜를 받기도 했다. 정·관계의 비호아래 공갈, 협박, 갈취, 마약 밀매, 도박, 건설 등에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몸집을 급속히 불려나갔다. 특히 일본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1980년대는 부동산, 미술, 대부업에 뛰어들면서 자금을 축적했다. 특히 야마구치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시노다 겐이치는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05년 보스의 자리에 오른 뒤 조직 사업을 양성화 했고, 복잡한 다단계의 지배구조를 통해 건설, 식품운송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들을 소유했다. 국책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간사이 국제공항 건설, 국립대학교 기숙사 건설에 참여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폭행에 보복
일본열도 불안

야마쿠치파는 자신들을 의리의 사나이로 위장하는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감행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했고 조직원들을 공개 채용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2000년대부터는 ‘두뇌’ 산업에 뛰어들었다. 경제, IT 전문가들과 함께 주가조작과 M&A를 추진해 지능형 조폭으로 변신했다. 야마구치파는 세계 다른 조직들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 마피아와는 해산물 밀수를 진행하고 우즈베키스탄 폭력 조직과는 우즈벡 매춘 여성을 일본에 공급하는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야쿠자 전문가 미조구치 아쓰시는 “이들은 외부 세력과 협조를 할 때 외부 세력에 의해 자신의 조직이 공격받는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마구치파가 ‘사회공헌’ 분야에 진출한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2014년 야마구치파는 마약추방 운동을 장려하고, 사회공헌활동을 부각시키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건장한 인력이 많다는 점을 활용해 지진, 태풍과 같은 재난 시 자위대보다 먼저 재해지로 들어가 피해자를 돕는 일도 일본 신문에 종종 보도되고 있다.

마약매춘…연매출 100조 육박
기존 조직들과 양보 없는 파벌


야마구치파가 다각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검은돈이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자 미국 정부는 야쿠자를 압박했다. 지난해 4월21일 미국 재무부는 야쿠자 산하 야마구치파의 유력 지파인 ‘고도카이’에 대해 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조치로 고도카이와 다케우치 회장의 미국 내 자산이 모두 동결돼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도 금지됐다.

당시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는 야쿠자 조직의 자금줄을 약화시켜 그들의 국제 범죄 행위를 막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쿠자는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범죄 조직과도 연계돼 있고 특히 미국에서 마약, 돈세탁 등의 범죄에 연루돼 있다”고 덧붙였다.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거듭한 야쿠자는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면서 경제 영향력이 쇠퇴했다. 이번 야마구치 내분도 총수입이 줄어든 데 따른 불만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폭력조직을 적대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야쿠자는 옛 명성을 잃은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92년 일본정부가 ‘폭련단대책법’을 만들어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2년에는 20년 만에 폭력단대책법을 더욱 강화해 5명 이상의 야쿠자가 모여 경쟁조직 사무실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게 개정했다. 도쿄와 오키나와를 비롯해 47개 지자체가 야쿠자 조직에 이익 공여를 금지하는 ‘폭력단배제조례’를 만들어 압박했다. 대기업, 소기업,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야쿠자와 친분을 맺거나 그들이 돈을 버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모두 금지됐다.

이러한 단속의 영향으로 6∼7년 사이 야마구치파의 조직원은 4만여 명에서 2만300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가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 당국은 최근의 내분이 ‘항쟁’의 시작단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일본 경제 침체
조직 돈 줄 말라

경찰이 특히 우려하는 이유는 지난 1985년 전면전이라 불리우는 ‘야마이치’ 항쟁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시민들에게 안전 주의를 당부하고 폭력단 대책 과장 등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고노 다로 국가공안위원장은 지난 8일 각의 뒤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흉포화하는 등 두 조직이 ‘대립 항쟁’ 상태에 있다고 경찰청이 판단했다”며 “시민들이 항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전 확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쿠자 국내 유입 실태

새로운 마약시장 ‘타깃’

야쿠자가 일본의 경기 침체와 엔화 가치 하락 속에 한국을 새로운 마약 소비시장으로 노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은 한국에 들어와 필로폰 10kg을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구속한 야쿠자 간부급 조직원 A씨를 상대로 추가 혐의를 수사했다. A씨는 검찰에서 “한국의 필로폰 수요가 늘고 있고, 여기에 환율 등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사실상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필로폰 수요 증가
환차익으로도 수익 발생

필로폰 1회 투약분이 한국에서 10만원 선으로 일본보다 높고,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환차익까지 발생하면 더 큰 수익을 누릴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최종판매지로 선택했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한 야쿠자 조직이 국내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관련 기관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7년 9월에는 일본 야쿠자 최대 조직 ‘야마구치파’의 중간보시가 김해공항으로 필로폰 615g을 밀수입하고, 일본으로 밀수출 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검거되기도 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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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