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야쿠자의 세계

최대조직 전쟁 임박…국내 조폭도 초긴장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인 일본의 야쿠자가 파벌싸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올해로 101년째를 맞은 야쿠자는 매해 100조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이며 일본 사회를 주름 잡고 있다. 이번 파벌 싸움이 지난 1985년 25명의 사망자를 낸 ‘야마이치’ 항쟁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가 분열하면서 기존 조직과 파벌싸움이 시작됐다. 조직원 2만7000명 규모의 ‘야마구치파’는 지난해 8월 기존의 ‘야마구치파’와 ‘고베 야마구치파’로 갈라섰다. 야마구치파의 현 두목이 간사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100년 전 야마구치파가 처음 태동한 고베를 강조한 고베 야마구치파가 생겨난 것. 일본 정부는 야쿠자들의 전면전인 ‘항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지난 8일 일제히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일본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계파별 알력
‘야마이치’ 재연?

야쿠자는 일본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말로 주로 대규모 조직을 가진 폭력 조직이다. 토건 및 금융 업체로 위장해 사업을 벌인다. 야쿠자의 근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력 송출, 하역, 건설 등의 목적으로 무리를 지은이들이 당시에 마피아처럼 누구누구 일가(一家)라는 명칭 아래 텃세를 과시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구미(組), 또는 가이(會)로 바뀌었다.

야쿠자라는 명칭은 도박용어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화투놀이 중 하나인 산마이라는 도박은 1부터 9까지의 숫자패 중 3장을 뽑아 합산해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7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라는 기본 규칙이 있다. 8, 9의 눈이 나오면 합계가 17이 돼 끝자리 수가 7이 된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 장을 더 뽑지 않겠지만,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은 여기서 한 장을 더 뽑는다. 최악의 경우 3을 뽑아 끝자리수가 0(8+9+3=20)이 된다. 이 같은 행동 패턴이나 인생 설계가 야쿠자가 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일본어로 ‘893’을 읽어서 ‘야쿠자’라 하고, 이를 ‘쓸모없는 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야쿠자의 조직 구조를 살펴보면 3대 조직은 ‘야마구치파’ ‘스미요시파’ ‘이나가와파’로 나뉜다. 야마구치파의 조직원 숫자는 2만3000여명이다. ‘고도카이’는 야마구치파 산하 최대 파벌로 현재 6대 회장 시노다 켄이치가 여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야마켄파’는 야마구치파 산하 2대 파벌로 ‘고베야마구치파’를 창설하는 데 주도한 파다. 3대조직 중 하나인 ‘스미요시파’는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3대조직 중 하나인 ‘이나가와파’는 현 5대 회장이 재일동포 출신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련의 조직 분열의 중심에는 야마구치파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가 있다. 2005년 두목이 된 이래 10여년 동안 야마구치파를 이끌어왔다. 일본 전국의 산하조직의 중간 보스에 해당하는 직책에 자신의 파인 고도카이 사람을 대부분 임명해온 것이다. 다른 파벌 간부들을 중용하지 않고 본부에 과도한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특히 지난해 8월 긴급집행부회의에서 산하 조직 두목 13명을 ‘절연’ 또는 ‘파문’ 형식으로 조직에서 배제하면서 격화됐다.

폭력조직 내부규율에 따르면 파문이 되면 다른 조직에도 통보돼 야쿠자사회에서 배제되며 절연 조치에는 무서운 보복이 뒤따라 일반사회에 부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지난해 야마구치파에서 이탈된 13개 세력은 야마켄파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를 새 조직의 리더로 추대했다. 조직명을 야마구치의 발상지 고베를 넣은 ‘고베야마구치’로 만들어 야마구치파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수십년째 지속
경찰 초긴장

이 조직원의 숫자는 7000명으로 야마구치파 전체의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야쿠자의 조직원수가 급격히 감소해 수 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 전국에 거점을 둔 폭력단 구성원과 준 구성원 수가 지난해보다 6600명(12.3%) 감소한 4만69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1958년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야쿠자의 세력이 가장 컸던 1963년에는 조직원이 18만4100명에 이르렀다. 폭력단 가입자는 2005년 이후로 줄곧 감소했고 그 수가 5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9월5일 고베야마구치파의 모임에 도쿄에 근거지를 둔 일본 3대 야쿠자인 스미요시파의 간부가 등장한 것은 다른 조직과도 연계하고 있다는 ‘세 과시용’인 것으로 일본 경찰은 분석했다. 야쿠자 조직간 알력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85년 1월 오사카 스이타시에서 야마구치파 4대 두목인 다케나카 마사히사가 조직원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야마구치파 내분이 고조되면서 암살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최대조직 ‘야마구치파’분열
6대 두목 시노다 과도한 상납 요구

이후 2년여 간 세력 다툼으로 조직원 25명이 숨지고 경찰과 시민을 포함해 7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1997년 내분에서 당시 부두목이 고베시 호텔에서 사살됐고 근처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을 맞아 희생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한 두목의 집에 수류탄이 날아들어 일본 국민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15일, 도쿄 신주쿠에서 발생한 충돌이 있다.. 야마구치파의 본거지 중 하나인 도쿄 신주쿠 가부키쵸(도쿄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고베 야마구치파가 두 달 연속 회합을 열면서 양측의 충돌이 벌어졌다.
 

야마구치파 조직원들이 고베 야마구치파 조직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했고 이 사건 이후, 두 조직은 일본 전역에서 보복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상대방 사무실에 차로 돌진하거나 총을 쏘고 달아나는 방식이다.

지난 5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에 있는 고베 야마구치파 사무실에 트럭이 돌진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야마구치파 조직원으로 드러났다. 다음날인 6일에는 총도 등장했다. 같은 사무실에 5발의 총탄이 날아들어 야마구치파가 고베야마구치파를 위협했다.

일련의 알력다툼에 일본 공안위원회 고노 장관은 “대립항쟁 상태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며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계파 간의 갈등에 대해 일본의 한 형사는 “언제 어디서 격렬한 항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며 “특히 두 조직의 본거지가 있고, 소수파인 고베 야마구치파가 오히려 세력이 더 큰 고베일대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본열도의 불안감도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쿠자가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막대한 수익에 있다. 지난 2014년 9월14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파의 연매출이 800억달러(한화 94조여 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5대 범죄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다. <포춘>은 “범죄조직이 지하경제를 통해 활동하고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이들의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958년 당시 조직의 3대 보스 다오카 가즈오는 100만엔을 투자해 연예기획사 ‘고베 예능사’를 세웠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 미소라 히바리 등을 소속 가수로 두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소속 가수가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면 지역 유지들에게 표를 강매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 같은 행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난 2011년 일본의 국민MC로 불린 시미다 신스케는 야마구치파 두목과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연예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60년대는 좌익 학생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해 우익 정치인들로부터 특혜를 받기도 했다. 정·관계의 비호아래 공갈, 협박, 갈취, 마약 밀매, 도박, 건설 등에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몸집을 급속히 불려나갔다. 특히 일본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1980년대는 부동산, 미술, 대부업에 뛰어들면서 자금을 축적했다. 특히 야마구치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시노다 겐이치는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05년 보스의 자리에 오른 뒤 조직 사업을 양성화 했고, 복잡한 다단계의 지배구조를 통해 건설, 식품운송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들을 소유했다. 국책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간사이 국제공항 건설, 국립대학교 기숙사 건설에 참여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폭행에 보복
일본열도 불안

야마쿠치파는 자신들을 의리의 사나이로 위장하는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감행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했고 조직원들을 공개 채용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2000년대부터는 ‘두뇌’ 산업에 뛰어들었다. 경제, IT 전문가들과 함께 주가조작과 M&A를 추진해 지능형 조폭으로 변신했다. 야마구치파는 세계 다른 조직들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 마피아와는 해산물 밀수를 진행하고 우즈베키스탄 폭력 조직과는 우즈벡 매춘 여성을 일본에 공급하는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야쿠자 전문가 미조구치 아쓰시는 “이들은 외부 세력과 협조를 할 때 외부 세력에 의해 자신의 조직이 공격받는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마구치파가 ‘사회공헌’ 분야에 진출한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2014년 야마구치파는 마약추방 운동을 장려하고, 사회공헌활동을 부각시키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건장한 인력이 많다는 점을 활용해 지진, 태풍과 같은 재난 시 자위대보다 먼저 재해지로 들어가 피해자를 돕는 일도 일본 신문에 종종 보도되고 있다.

마약매춘…연매출 100조 육박
기존 조직들과 양보 없는 파벌


야마구치파가 다각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검은돈이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자 미국 정부는 야쿠자를 압박했다. 지난해 4월21일 미국 재무부는 야쿠자 산하 야마구치파의 유력 지파인 ‘고도카이’에 대해 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조치로 고도카이와 다케우치 회장의 미국 내 자산이 모두 동결돼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도 금지됐다.

당시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는 야쿠자 조직의 자금줄을 약화시켜 그들의 국제 범죄 행위를 막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쿠자는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범죄 조직과도 연계돼 있고 특히 미국에서 마약, 돈세탁 등의 범죄에 연루돼 있다”고 덧붙였다.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거듭한 야쿠자는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면서 경제 영향력이 쇠퇴했다. 이번 야마구치 내분도 총수입이 줄어든 데 따른 불만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폭력조직을 적대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야쿠자는 옛 명성을 잃은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92년 일본정부가 ‘폭련단대책법’을 만들어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2년에는 20년 만에 폭력단대책법을 더욱 강화해 5명 이상의 야쿠자가 모여 경쟁조직 사무실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게 개정했다. 도쿄와 오키나와를 비롯해 47개 지자체가 야쿠자 조직에 이익 공여를 금지하는 ‘폭력단배제조례’를 만들어 압박했다. 대기업, 소기업,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야쿠자와 친분을 맺거나 그들이 돈을 버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모두 금지됐다.

이러한 단속의 영향으로 6∼7년 사이 야마구치파의 조직원은 4만여 명에서 2만300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가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 당국은 최근의 내분이 ‘항쟁’의 시작단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일본 경제 침체
조직 돈 줄 말라

경찰이 특히 우려하는 이유는 지난 1985년 전면전이라 불리우는 ‘야마이치’ 항쟁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시민들에게 안전 주의를 당부하고 폭력단 대책 과장 등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고노 다로 국가공안위원장은 지난 8일 각의 뒤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흉포화하는 등 두 조직이 ‘대립 항쟁’ 상태에 있다고 경찰청이 판단했다”며 “시민들이 항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전 확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쿠자 국내 유입 실태

새로운 마약시장 ‘타깃’

야쿠자가 일본의 경기 침체와 엔화 가치 하락 속에 한국을 새로운 마약 소비시장으로 노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은 한국에 들어와 필로폰 10kg을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구속한 야쿠자 간부급 조직원 A씨를 상대로 추가 혐의를 수사했다. A씨는 검찰에서 “한국의 필로폰 수요가 늘고 있고, 여기에 환율 등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사실상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필로폰 수요 증가
환차익으로도 수익 발생

필로폰 1회 투약분이 한국에서 10만원 선으로 일본보다 높고,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환차익까지 발생하면 더 큰 수익을 누릴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최종판매지로 선택했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한 야쿠자 조직이 국내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관련 기관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7년 9월에는 일본 야쿠자 최대 조직 ‘야마구치파’의 중간보시가 김해공항으로 필로폰 615g을 밀수입하고, 일본으로 밀수출 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검거되기도 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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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