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시즌 눈치보는 대기업 속사정

살 떨리는 주총장 ‘예전 같지 않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난달 17일 넥센타이어를 시작으로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가 막을 올렸다. 배당금 증액 등 주주친화 정책이 현안으로 부각된 만큼 주가부양을 위한 액면분할이나 자사주 매입 등이 안건으로 상정될 전망이다. 기존 경영진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보는 일도 나름의 관전 포인트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3월에 주주총회 일정을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826곳. 이 가운데 77.96%에 해당하는 644곳이 11일, 18일, 25일에 주총을 실시한다. 모두 금요일이다. 특히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367곳은 오는 25일 주총을 열겠다고 신고했다. ‘주총데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매주 금요일
슈퍼주총 예고

날짜별로 살펴보면 11일에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총이 몰려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과 포스코의 주총도 이날 열린다. 18일에는 SK그룹 계열사와 LG그룹 계열사들이 일제히 주총을 실시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도 이날 주총을 실시한다.

25일에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주총을 갖는다. 이밖에 KB금융, 대림산업, 대한전선, 엔씨소프트, 팬오션, 현대홈쇼핑, NHN엔터테인먼트, LS, 코오롱, 웅진에너지, E1, 남양유업 등의 주총이 예정돼 있다.
주총의 최대 화두는 배당 확대로 귀결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주주들의 요구대로 배당을 늘리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주당 1000원이던 배당액을 2500원으로 크게 늘렸다. 2014년 350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조6111억원으로 359%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라홀딩스는 배당액을 500원에서 1200원으로 늘렸고 S&T중공업도 배당금을 전년도 100원에서 200원으로 2배 증액했다고 공시했다. 이외에 SK하이닉스, 삼성정밀화학, 동아타이어, LG유플러스, 등도 배당액을 60% 이상 늘렸다.


분기배당을 고려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 1회 중간배당이 가능하도록 규정된 정관을 변경해 매 분기배당이 가능하도록 한 안건을 11일 주총에 상정한다. 포스코와 한온시스템도 분기배당을 도입한다고 공시했다.

더욱이 ‘증권가 큰손’ 국민연금은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중점 관리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금운용본부가 저배당 기업을 몰아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배당확대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기준을 이미 마련하고 전담팀까지 꾸렸다. 저배당 기업을 선정해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표적대상 기업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배당 관련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거나 배당 성향이 낮은 기업 중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해당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예고될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율 5% 이상 가진 기업은 대략 250곳에 이른다. 기금운용본부는 주총시즌이 끝나는 3월 말 이후 배당성향을 분석해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기업들을 가려낼 계획이다. 우선 구체적으로 배당정책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시장 상황과 산업의 특성, 개별기업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대상기업을 선정할 방침이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배당정책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 막 올라…관전 포인트는?
배당 확대로 주주 달래기 “국민연금 신경쓰이네”

국민연금의 배당확대 요구 움직임에 대해 기업들은 긴장과 함께 내심 경영권 간섭으로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국민연금 주권행사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통주식 수를 늘리기 위한 액면분할도 주총을 관통하는 핵심 안건으로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액면분할을 통해 주가를 상승시켰던 전례를 참고삼아 주주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액면분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양상이다.

통상 액면분할은 거래량 증가를 수반하며 이를 통한 주가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액면분할을 결정 공시한 기업은 모두 26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종목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냈다. 시총 1000억원 이상 기업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6개 기업 가운데 3개는 주가가 상승했고, 나머지 절반인 3개는 주가가 하락했다.

흥미로운 점은 액면분할 이후 대부분의 종목에서 일일 평균 거래대금이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거래대금 상승은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가세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올해는 주당 액면분할이 한층 적극적으로 상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 테이프는 크라운제과가 끊었다. 크라운제과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주당 5000원인 주식을 500원으로 분할하는 액면분할을 발표하고 오는 25일 예정인 정기 주총에 안건으로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운제과 이외에도 KNN, 넥센, 성보화학, 엠에스씨, 케이티롤, 동양물산, 극동유화 등이 액면분할을 예고한 상황이다.

하지만 액면분할이 모든 기업들에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오뚜기, 오리온 등 이른바 식품업종 황제주들은 거듭된 액면분할 요구를 무작정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다.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이들은 액면분할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배당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 눈치껏
배당 늘리나

실제로 오리온은 보통주 1주당 60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한 상황이다. 최대 주주인 이화경 부회장(86만5204주)은 약 50억원, 이 부회장의 남편인 2대 주주 담철곤 회장(77만626주)은 45억원을 챙기게 된다.
오뚜기는 보통주 1주당 5200원을 현금으로 배당한다. 주식 57만543주(16.5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은 약 30억원, 함 명예회장의 장남인 함영준 회장은 약 28억원을 각각 배당금으로 받는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은 아직 배당금을 확정하지 않았다. 롯데 계열사의 배당성향(이익대비 배당총액)은 낮은 편이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낮아 배당금 수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예년 수준의 배당을 결정하더라도 사실상 ‘그들만의 배당 잔치’는 큰 변동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별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에 배당수혜가 집중되는 황제주를 액면분할해 투자 진입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거래소 역시 우량 대형주를 대상으로 액면분할 여부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 부이사장은 “지난해 황제주였던 아모레퍼시픽의 액면분할 사례를 통해 주가 상승과 거래량 증가 등의 효과가 확인됐다”며 “많은 기업이 액면분할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제주 피해
액면분할 효과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도 관심이다. 주요 그룹들의 사업 재편과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가운데 등기이사 선임은 오너들의 책임경영 확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 가시화된 모습이다. 최 회장은 SK·SK C&C·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 등 4개 회사 등기이사를 맡아왔으나 지난 2014년 횡령 혐의로 수감되면서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사면 이후 그룹 대규모 투자를 주도하는 등 그룹 전반의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LG그룹에서는 신성장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의 LG화학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한다. LG화학은 18일 주총에서 구본준 부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안을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LG전자 CEO를 역임하다 올해부터 지주사로 자리를 옮겨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1일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지난달 임기가 종료된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4년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는 물러난 바 있다.
 

정의선 부회장 역시 같은 날 열리는 현대차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맡고 있다.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는 오너가 그에 대해 법적인 영역의 책임까지 진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룹 오너들이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말뿐이 아닌 책임경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액면분할 확대…황제주 ‘글쎄’
이사회 재선임 ‘갈등의 화약고’


재계 관계자는 “오너들의 등기이사 선임은 단순히 감투 하나를 쓰는 의미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책임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오너의 책임경영 확대는 성장 정체 속에 그룹의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등기이사 재선임 이전에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본적인 장치를 함께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불법행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일정 기간 등기임원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존 이사회 구성원의 재선임을 원하는 회사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주주들 간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조5000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면서 주가는 3년 전에 비해 70% 떨어졌지만 박대영 대표이사 재선임이 주총 안건에 올라와 있다. 수주산업 특성상 프로젝트가 장기간에 걸쳐 마무리되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논란은 불가피하다.

효성 주주총회에서 조석래 회장의 재선임 여부도 관심사다. 조 회장에게  지난달 15일 법원은 총 1358억원의 탈세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갈등의 내막
이사 재선임

GS건설, 베이직하우스, 세아제강 등도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3년 전에 비해 주가는 반 토막이 난 상태지만 사내외이사와 감사의 재선임을 안건에 올렸다. 

IB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가 났는데도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책임경영을 담보할 수 없다”며 “주총은 경영진 재선임에 대해 주주들 의견을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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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