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더민주 입당한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정치가 목적? 사람 사는 세상 위해!”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 행보는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연이어 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그 중에서도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직능성에 있어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영입리스트에는 또 한 명의 이름이 추가됐다. 지난 24년 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일해 온 정춘숙 전 상임대표를 영입함으로써 더민주는 ‘복지’와 ‘여성인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법을 하나 발의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과된 법을 본래 취지에 맞게 살려내는 작업은 그보다 더욱 힘들다. 여기 ‘정춘숙’은 그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해 살아온 지난 삶이 주는 울림 때문일 테다. 정치가로서 이상(理想)을 꿈꾸겠다고 선언한 정 전 대표의 생각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다음은 정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 더민주에 공식 입당하셨다. 정계 진출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을 때 다른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반대 운동을 펼쳤던 적이 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여성가족프로젝트를 정부기관에서 진행한 적 있는데, 우리 기관이 우수 프로젝트로 뽑혔음에도 지원금을 못주겠다고 하더라.

왜냐고 물으니 너희가 촛불집회를 한 단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정치가 잘 안되니까 우리가 다양한 정책을 내도 실천이 안 되는구나’라고.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문제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 위원을 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6월부터 9월까지 활동하면서 정치가 얼마나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정치가 아무리 거지같다고 해도 정치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 국회의원 출마까지 생각하고 있나?
▲비례대표로 출마할 생각이다.

- 1호 법안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면?
▲‘스토킹방지법’을 발의할 생각이다. 데이트 폭력을 법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초적인 법안이 될 것이다. 유사한 법안이 이번 국회에 3개나 올라가 있는데도 폐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꼭 하겠다’라는 굳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 문제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꼭 1호 법안으로 만들고 싶다.

- 앞서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는 데 큰 공헌을 하셨다. 변화를 느끼나?
▲변화는 느끼지만, 아쉬움도 있다. 이 법은 국민청원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당시 8만5000명 모두에게 서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성공했다. 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10개가 안됐던 쉼터가 68개로 늘었고, 상담소도 10개 내외에서 200개가 넘게 생겼다.

개인적으로 이 법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정 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인정됐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법의 목적조항에 ‘가정의 안전’이 들어가 있는데, 이를 왜곡시켜 적용하는 데 있다. 입법취지대로 하지 않고 대부분 봐주는 식으로 진행돼 안타깝다.
 

- 현 정부가 4대악 근절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도 미흡하다고 생각하나?
▲매우 미흡하다. 연초에 정부가 4대악 근절에 힘을 주면 검·경의 대처가 늘어나지만, 2~3개월이 지나면 이전으로 돌아간다. 앞서 4대악 보상보험을 만든다고 할 때 주체가 누구냐고 계속 질의했다. ‘현대해상’에서 한다고 해서 우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민간회사에게 떠 넘기냐’고 문제제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유야무야됐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좋게 만들지만 실제 국민들이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는 게 우리의 평가다.

개인적으로 4대악 근절을 위해서는 국어·영어·수학처럼 아이들이 배울 수 있게 ‘여성인권과 폭력’ 혹은 ‘인권과 폭력’을 정규교과목으로 설치해 수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폭력이 왜 나쁜지, 인권이 뭔지, 가족을 이루는 게 어떤 것인지를 교육해야한다. 그렇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세상이 안 바뀐다.


비례대표 출마선언 “약자 위한 정치할 것”
24년 여성인권 위해 노력 “아직 부족해”

- 실제 가정 폭력 사례들을 많이 접했을 것 같다.
▲많은 사건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가정폭력 가해자는 거의 처벌받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구속률이 1%도 안 된다. 얼마 전 11살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죽게 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됐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다 보니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이런 일들이 최소 1년에 3건 이상 일어난다.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대표적인 예다. 한 여성이 이혼 과정 중에 자기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가정일이라며 쉬쉬해서 발생한 일이다.

부천 중학생이 백골로 발견된 일도 아이가 주변에 SOS를 요청했지만, 집으로 돌려보냈고 결국 죽었다. 아이는 한 명의 엄마가 아닌 나라 전체가 키우는 것이다. 커서 이 나라를 지탱해 줄 아이들이다. 내 마누라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옛날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 일각에서는 여성 상위시대를 주장한다.
▲몇몇 분들이 느낌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공무원 중에 여성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왜 여자들은 시험을 보는 곳으로 갈까. 사기업에서 여성을 적게 뽑거나 여성들이 공적으로 시험 보는 곳이 아니면 차별받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 등에서 성 격차지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 130개 국 중에 116위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52%인데 반해 남성은 75%가 넘는다. 남성은 OECD 기준에 가까이 가는데 여성은 격차가 크다.

- 저 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해법은 없나?
▲정부가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셋째 낳으면 1500만원 준다는 식의 접근보단 보육·교육·요양같이 삶의 시스템적인 부분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게 해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한국을 구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스웨덴의 유명한 통계학자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난 여기에 해법이 있다고 본다. 스웨덴에서도 처음에는 저 출산 문제를 인구 정책으로 접근했다.

아이 하나 낳으면 얼마의 돈을 보상으로 주겠다는 식으로. 그래도 효과가 없자 성 평등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인구가 일정한 수준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지속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성 평등을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고 그 통계학자가 말하더라.

성 평등 세상이 오면 남성들도 평안해진다. 나와 친한 남자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은 “이 가부장적 사회가 얼마나 남성들을 억압하는지 안다면 남성들이 먼저 여성 해방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하더라. 예를 들면 갑작스런 퇴직 권고로 노숙자가 되는 분들이 있는데, 굉장히 잘못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부담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지 않을까.

- 초선 여성 비례대표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따로 준비하는 게 있나?
▲책을 많이 읽고 있다(웃음). 웃긴 얘기지만, 정치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나 여성의전화를 24년 동안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회복지 석·박사를 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적·이론적으로 배웠다. 그런 게 나의 자산이라 생각한다.

<절반의 인민주권>이란 책을 보면 ‘정치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다’라고 나와 있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정치는 전쟁이야”라며 비웃는다. 전쟁일 순 있지만, 목표가 무엇일까란 생각을 한다. 입당할 때 말했는데, 여기에 왜 있는지 잊지 않는 정치인이 되겠다.

당장의 목표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지만,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를 하거나 정치를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사람들 말로는 나중에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약자들을 위한 정치! 국민의 삶을 좀 더 편안하고 눈물 흘리는 일 없게 하는 그런 정치를 하고 싶다.



<chm@ilyosisa.co.kr>


[정춘숙은 누구?]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 졸업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인권위원장
▲전 서울시성평등위원회 위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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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