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전관예우 백태

경찰청 간부 총포협회…국방부 대령 군수업체로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공직계에 암암리 존재했던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실체가 드러났다. 정부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및 행위제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관피아 문제에 칼을 뽑아든 것처럼 보였다. 엄격한 잣대로 관피아 척결에 앞장서야 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업무관련성 기준의 모호성과 취업심사의 불투명성으로 공직자 전관예우 양성소로 전락한 모습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정공위)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권리 확대를 위해 2014년 7월부터 매달 취업심사 결과를 공개해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심사를 받은 54명 중 단 4건에 대해서만 취업제한이 결정됐다.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평가과정이 불투명해 유관업체에 퇴직공직자 대다수가 어려움 없이 재취업에 성공한 모습이다.

고무줄 잣대
주관적 해석

경찰청 총경 출신으로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상임이사로 취업심사를 의뢰한 A씨는 정공위에 의해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았다. 문제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의 업무 내용이 경찰청 인허가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보이기에 충분하다는 것.

총포에 관한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서류를 경찰청에 제출하고 총포에 대한 검사결과는 의무적으로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후 협회의 검사결과를 토대로 담당 공무원이 총포에 대한 승인을 하는 구조다.

이처럼 경찰청과 실질적으로 업무상 관련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정공위에 의해 A씨는 취업가능 평가를 받았다. 국방부 공군중장 출신으로 국방기술품질원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취업심사를 의뢰한 B씨의 경우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의 경우 국방기술기획, 국방품질경영, 국방품질인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군수업체가 국방기술품질원으로 인증을 신청하게 되면 신청업체의 국방품질경영시스템 운영 및 유지실태를 심사해 요구사항에 적합할 경우 인증서를 수여한다.

인증업체는 방위사업청 경쟁 입찰계획의 낙찰자 결정시 미 인증업체와 비교해 가점을 받거나 방산물자 원가 선정 시 이윤 보상, 무기체계 연구개발사업 업체선정 평가 시 가점 및 혜택을 받게 된다.

취업심사 54명중 단 4명만 제한 결정
퇴직공직자 대부분 유관업체 재취업

이처럼 업무가 무관하다고 보기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취업가능 심사를 받은 상황이다. 이밖에 국방부 대령 출신 C씨의 경우도 취업제한기관에 포함된 사립대학교인 동명대학교 예비군연대장에 취업가능 심사를 의뢰해 취업가능 평가를 받았다.

정공위 담당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국방부 대령의 경우 일종의 국가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퇴직 후 국가 법령에 따라 취업한 것”이라면서도 업무관련성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취업제한과 관련한 업무관련성 판단기준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보조금·장려금·조성금 등을 배정·지급하는 등 재정보조를 제공하는 업무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 등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조세의 조사·부과·징수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법령에 근거해 직접 감독하는 업무 등 8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업무를 설명함에 ‘직접’이라는 단어를 넣어 재취업대상자에게 숨통을 터줬다는 점이다.

업무관련성이 있더라도 직접 관련이 없다면 업무관련성 판단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심사가 결론난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제한은 심사대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하였던 부서, 기관의 업무와 취업예정업체 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확인된 경우다. 취업불승인의 경우 업무관련성이 인정되고 심사대상자가 취업을 승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인정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심판원장은 전국은행연합회 전무이사로 가려다 취업제한을 받았다. 김 전위원장은 2014년 1월부터 조세심판원장을 지내다가 지난해 11월 명예퇴직했고, 정공위의 심사를 통과하면 전국은행연합회 전무로 취임할 계획에 있었다.

하지만 정공위에 의해 재취업에 고배를 마셨다. 이밖에 울산광역시 남구 지방 3급 공무원의 경우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다 취업불승인 결정이 났다. 환경부의 임기제 고위공무원은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취업불승인 결과를 받았고 마찬가지로 환경부의 4급 공무원도 환경보전협회 수변생태관리본부장으로 재취업 하려고 했지만 취업제한을 받았다.

반면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됨에도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국정원 특정3급 공무원의 경우 주식회사 대교씨엔에스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의 경우도 한국동서발전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한국방송공사의 편성본부장의 경우 KBS미디어 부사장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 4급 공무원의 경우 LG경영개발원의 비상근고문으로 취업했다. 이밖에 금융감독원 4급 공무원의 경우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투자증권 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평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평성 없고
일관성 없어

정공위가 매달 발표하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는 공무원이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나 대학, 병원 등 비영리법인에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업제한 기관의 기준은 ▲자본금이 10억원 이상이면서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인 사기업체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업무 수행 공직유관단체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를 설립·경영하는 학교법인과 학교법인이 설립·경영하는 사립학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3항 제1호 가목(자산규모 2조 이상)에 해당하는 시장형 공기업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용대상은 재산등록의무자였던 퇴직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4급 이상 공무원, 경찰·소방·감사 및 조세·건축·토목 등 인허가부서 근무자로 5∼7급 공무원, 공직유관단체 임원(상근이사·감사 이상), 일부 공직유관단체 직원(금감원,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적용대상에 해당하는 공직자들이 취업제한 기관의 기준에 해당하는 기관에 취업하고자 할 때 정공위의 심사를 받게 된다.

공직자윤리법은 취업제한 및 재산공개를 명시하도록 해 1981년 12월31일 제정, 198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취업제한의 목적은 퇴직예정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는 등의 부정한 유착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기업체 등에 취업한 후 퇴직 전에 근무했던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후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부각된 민관유착과 전관예우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인 이른바 ‘관피아 방지법’이 생기면서 퇴직공무원에 대한 취업제한 강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현실은 퇴직공무원들의 재취업을 심사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피아를 근절하기보다는 오히려 면죄부를 쥐어주는 형국이다.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 모호
평가 과정도 불투명해 불신


문제는 취업예정 업체에서 맡게 될 업무내용은 공개되어 있지만 퇴직 당시 소속에서 맡은 업무내용이 공개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인허가 업무를 맡은 사람이 재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공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상 윤리위원회 회의는 비공개로 한다”며 “너무 자세한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면 개인정보 문제가 발생해 심사결과 정도만 공개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해 취업예정자의 개인정보는 보호했지만 일관성 없는 판단에 대해서는 해명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를 내놓아도 비판을 면키 어려운 모습이다.

이 같은 지적에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취업 제한 여부에 대한 매뉴얼이 있지만, 업무관련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개인적인 성향도 일정 부분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심사결정에 주관적이 요소가 개입될 수 있음을 인사혁신처 측도 일정부분 시인한 모습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2월31일 2016년도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대상기관 1만5687곳을 확정했다. 인사혁신처는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심사를 받아야 하는 영리기관 1만4214곳, 비영리기관 1473곳을 관보에 고시했다. 인사혁신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유착 근절을 위해 취업대상 사기업을 확대했다”며 “2014년 3960곳에서 2016년 1만4214곳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취업제한기업의 확대는 분명히 심사대상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취업대상자가 취업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취업제한기업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취업심사의 핵심키는 정공위가 쥐고 있음에도 불투명한 심사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공위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매달 발표한다고 하지만 취업가능 여부의 결과만 보여줄 뿐 그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

이밖에 업무관련성 판단의 모호성에 대해 정공위 관계자는 “업무내역이 외견상으로 보기엔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퇴직 당시 소속과 취업예정 업체만 공개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 전체와 취업예정 업체와의 업무내역을 세밀히 검토한다. 계약건, 지도사항, 예산, 용역 및 간단한 민원처리가 있었는지 여부까지 조사한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