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건 잇달아 무죄' 박근혜정부 검찰 굴욕사

'진실한 사람' 돕는 무리한 기소 남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요즘 정가의 화두는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의 정확한 기준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알고 있다. 소위 '친박'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청와대의 지침에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도 그랬다. 지난 1년간 검찰은 청와대의 지시에 묵묵히 따랐다. 안 될 사건은 만들어서라도 기소했다. 연이은 무죄 판결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검찰에는 '진실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외통수에 걸린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정권 눈치를 본 무리한 기소였다"라는 비판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앞두고 가토 다쓰야(49·일본)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칼럼을 썼다가 지난해 10월8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무리한 수사
결론은 무죄

지난 22일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법리적으로 모순된다"라면서도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 포기의 이유로 ▲가토 전 지국장이 작성한 기사가 허위임이 규명됐고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함을 규명했으며 ▲외교부에서도 한일관계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선처를 요청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라며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또 아베 총리는 21일 가토 전 지국장과의 면담에서 "고생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번 사건을 정치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검찰의 항소는 곧 한일 양국의 외교적인 마찰로 번질 공산이 컸다. 결국 검찰은 예상대로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포기했다. 1년 넘게 끌어온 재판에서 확인된 사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는 지난 17일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식하고 사생활 의혹을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 아닌 만큼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대통령의 당일 행적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라며 "공적인 대통령 업무 수행에 대한 비판에 해당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윤회 뜨면
청와대 발끈

역대 정부 가운데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 외국 언론인을 기소한 경우는 없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해 8월3일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과 관련해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게재했다.

당시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나고 있었나?'라는 기사에서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가량 파악되지 않고 있다"라며 몇몇 풍문을 전했다. 검찰 수사 결과 풍문은 사실과 달랐다. 의혹의 당사자인 정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한학자 이세민씨와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또 다른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14년 4월16일 박 대통령이 언제·어떤 경로로 세월호 참사를 보고 받았고, 언제·어떤 구조·구난지시를 내렸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 게재로부터 4일 뒤 청와대는 윤두현 당시 홍보수석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라며 별렀다. 같은 날 보수단체인 사단법인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는 가토 전 지국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같은 해 9월15일 검찰은 "정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이씨와 만났다"라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날(9월16일)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라며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틀 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라는 일본 등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1심 무죄 판결 직후 스스로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으로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청와대는 공식 반응 없이 "외교부 입장을 참고하라"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청와대의 이른바 '세월호 물타기' 전략은 법원 단계에 이르러 암초에 부딪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27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인 유병언 일가에 대해 반드시 검거해 사법처리하라"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의 '불호령'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관계된 모든 인물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검찰이 '도피 총책'으로 지목한 오갑렬 전 체코 대사는 지난 9월24일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은 범인은닉과 범인도피 교사 혐의로 기소된 오 전 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오 전 대사는 생전 유 전 회장의 매제였다.

언론인 가토 다쓰야 명예훼손 무죄
정윤회 문건 연루된 조응천 1심서 무죄
세월호 물타기 통영함 사건 황기철 무죄

검찰은 "오 전 대사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주도했다"라며 그 증거로 ▲이른바 '김엄마' '신엄마'와 연락하고 ▲구원파 신도로 알려진 김모씨에게 은신처(별장)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등의 공소장을 꾸몄다. 유 전 회장은 오 전 대사와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김씨 별장으로 가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검찰은 신도 김씨가 당시 별장을 청소한 행위에 대해 '범인은닉죄'를 적용했다. 청소를 부탁한 오 전 대사에게는 범인은닉 교사 혐의를 씌웠다. 법원은 "범인은닉죄의 경우 예비 또는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라고 판시했다. 또 '친족 범위 내 가족이 범인은닉 또는 도피죄를 범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제151조 2항을 적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만약 담당검사가 무죄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사법고시를 다시 치러야 할지 모른다. 유독 박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내린 사건에서는 무죄 발생 비율이 높다. 지난 10월5일 방위사업 비리 1호 타깃으로 지목된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9일 "방산·군납비리는 안보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며 "강력히 척결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즉각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을 구성하고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나섰다. 황 전 총장은 이른바 '통영함 비리'에 연루돼 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통영함은 핵심장비인 음파탐지기가 '고철'과 다름없던 까닭에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검찰은 황 전 총장을 통영함 납품 비리의 몸통으로 보고 그를 구속 기소했다. 직속 부하인 오모 전 해군 대령과 짜고 음파탐지기 선정 과정에서 문서를 조작해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A사 제품을 납품하도록 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부실 납품에)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황 전 총장과 오 전 대령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세월호 탑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책임을 통영함에 떠넘기려던 정부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라고 말했다.

모르쇠 기소
책임은 아몰랑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은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에서도 충실히 이행됐다.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 보도로 촉발된 '정윤회 문건 파문'은 같은 해 12월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며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박 대통령은 같은 달 7일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검찰을 압박했다. 수사가 진척되기도 전에 문건의 성격을 '찌라시'로 규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투입된 수사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을 조준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로 박 경정이 청와대 내부 문건 17부를 박지만 EG 회장 측에 빼돌렸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에게는 나란히 공무상 비밀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 1월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하지만 1심에서 조 전 비서관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행정관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됐지만 문건 유출과 무관한 수뢰죄가 인정된 형량이었다. 지난 10월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는 정윤회 문건 1부를 제외하고는 남은 16부의 문건 유출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원본이 아니므로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의 핵심은 이른바 '십상시'가 실재하느냐다. 그러나 검찰은 문건 유출 경위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조 전 비서관을 찍어 내렸다. "박관천보다 죄질이 나쁘다"라는 언론플레이도 잊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최근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청와대 입장에선 김 총장만큼 '진실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장악
여론 장악

검찰이 '전가의 보도' 마냥 휘두른 국가보안법은 실제 유죄 판결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다. 지난 9월11일 주한 미국대사인 마크 리퍼트를 흉기로 습격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는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 받았다. 살인미수 등 혐의만 유죄로 인정된 김 대표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또 지난 10월29일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유우성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최종 판결 받았다. 증거 조작의 공범과 다름없는 검찰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올해 검찰 수사의 '백미'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 6명은 전원 무혐의 처리됐다. 과연 검찰이 가토 전 지국장, 유 전 회장, 조 전 비서관에 대해 화력을 퍼부었던 만큼 '노오력'을 기울였는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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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