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 출마설 도는 기업인 리스트

여의도 입성 노리는 사장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내년 4월13일로 예정된 20대 총선이 가까워지자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인사들의 발 빠른 행보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투영하듯 내년 총선에 다수의 기업인들이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를 놓고 저울질하는 명망 있는 기업인들을 간추려 봤다.

경제전문가를 표방했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기업인들의 정계 진출은 익숙한 풍경으로 비춰지고 있다. 대기업 CEO 출신이었던 이 대통령이 표방한 경제살리기와 실용주의 이념이 폭넓게 퍼지기 시작한 까닭이다. 실물 경제전문가인 기업인들의 총선 참여 여부에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기업인들이 경제 회복에 일익을 담당할 거란 기대감을 반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금융권 출신
정치권 기웃

4월 총선을 겨냥하고 있는 기업인 명단을 살펴보면 이름값에서부터 확연히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정·재계에서 명망을 쌓았거나 대내외적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확보한 정몽준, 최양오 등이 대표적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출마 여부를 두고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로 손꼽힌다. 한 때 월드컵 개최 1등공신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대선에 참가할 만큼 정 이사장은 거물급 인물로 통한다. 이미 울산과 서울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대표도 겸임했다.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것도 그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FIFA 회장 출마 과정에서 피해자로 비춰지며 대중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비춰진 점이 호재다. 이미 여당 내부에서도 정 이사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정말 중요한 분들은 모조리 총선에 참여해주길 강력히 권고한다”고 언급하며 정 이사장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부각한 상황이다.


다만 아직까지 정 이사장은 총선 출마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회장 탄신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출마 여부는 다른 자리에서 수차례 이야기했다”고 언급을 회피했다.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배경이 총선 출마 가능성을 부채질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처남으로 잘 알려진 최 고문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한 이후 줄기세포 제약기업인 차바이오텍 대표이사를 거쳤다. 지난해 김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된 후 2달 만인 9월15일자로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으로 임용된 바 있다.

최 고문은 최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텃밭인 서울 서초갑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황이다. 최양오 고문의 출마 예정지인 서울 서초갑은 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비서관의 출마가 예상되는 곳이다.

금배지 야망 품고 저울질 한창
여야 물밑서 될만한 사람 찾기

성일종 엔바이오컨스 대표는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이 부각된 경우다. 성 대표는 이미 20대 총선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형의 지역구였던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를 뜨겁게 달군 ‘성완종리스트’ 파문을 계기로 야당으로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성 대표는 지난 7·30재보선에서 형의 지역구인 충남 서산태안 보궐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일부 공천심사위원이 형제가 지역구를 대물림한다는 문제를 지적해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 성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동정여론이 일고 있어 성 대표에게 표가 쏠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도 20대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거나 소문이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굽네 치킨’으로 중소기업 성공 신화를 일궈낸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에 이어 페리카나치킨의 양희권 회장이 총선에 뛰어들었다. 양 회장은 올해 초부터 홍성·예산 선거구에 출마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홍성·청양선거구는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 2선에 성공한 지역으로 국회 예결특위위원장까지 맡아 활동해 온 홍 의원이 판세를 굳히는 양상이었다는 게 지역 정계의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양 회장은 공식적으로 출마 입장을 밝히면서까지 지역 정가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홍성·예산은 현재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과 양희권 회장 이외에 새정치연합에서는 이두원 전 지역위원장과 채현병 전 홍성군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양 회장은 “그동안 지역민들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기업을 성공적으로 일구고 이로인해 다양한 사회봉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며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의 발전을 위해 봉사해보고 싶다”고 출마 의지를 밝혔다.

재수·삼수하는
사장·회장님도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의 출마 여부도 관심거리다. 빙그레그룹의 최대주주인 김 전 회장은 2008년 총선 출마를 위해 대표이사직을 내놓은 이후 6년 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2010년 천안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활동했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이자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고 김종희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빙그레 경영진 복귀를 염두한 움직임이 포착된 이래 총선과 관련된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출마 의중을 내비치지도 않은 상황이다.

부산 중동구 출마를 준비해온 하준양 리더스손해사정 대표는 내년 총선 때 지역구가 분리되거나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출마한다면 비례대표로 바꿀 생각마저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산복싱연맹 회장과 부산지식서비스융합협회 사무총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쳐온 '차세대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 대표는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선거사무실 개소를 미루기로 한 상태다.

김세환 전 대전시티즌 사장도 발빠른 행보를 밟기 시작했다. 씨티엘 상무를 거쳐 대전시티즌에 몸담았던 그는 지난달 29일 한밭대 평생교육관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 출판기념회를 열며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이 책에 대전시티즌 사장과 대전생활체육회 사무처장 재임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중구 당협위원장 공모에 도전하기도 했던 김 전 사장은 내년 총선에도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신방식 전 제민일보 대표이사는 지난 1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제주시 갑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신 전 대표는 새누리당 중앙당에 자율적인 후보 경선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당내 예비후보들에게 아름다운 경선 동참과 함께 정도의 의리의 정치를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신 전 대표는 제주시 이호동 출신으로 제주중앙고와 제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제민일보 대표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주시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제19대 총선에서 제주시 갑 지역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공천에 탈락한 뒤 현경대 후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으며, 대선 때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제주도당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경제전문가 내세워 표심 공략
전국구 인지도 갖춘 거물급도

금융권의 주요 인사들도 총선을 앞두고 요주의 대상이다. 최근 금융권은 연말 인사 태풍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금융권 수장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총선을 위해 차출될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을 비롯해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등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금융권 인사 가운데 총선 차출 1순위로 꼽히고 있다. 2013년 12월 기업은행의 수장으로 취임한 권 행장은 '최초 여성 1급 승진' '최초 여성 부행장'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란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다.
 

부임 초기만해도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지만 경영 실적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도 올해 초 열린 5개 경제부처 협업 업무보고에서 “권 행장을 본받아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을 정도다.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역시 총선 출마설과 연결되고 있다. 홍 회장은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초기 KDB산업은행 회장으로 낙점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첫 공공기관장 인사였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 대통령을 도왔으며, 2013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경제1분과 인수위원을 맡았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도 교체론과 함께 총선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3월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한 이 행장은 이전부터 금융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거친 박 대통령과는 서강대 동문이자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파악된다. 다만 이 행장은 과거 수은이 지원했던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구설수에 올랐던 게 취약점이다.

공천룰 변수
눈치만 본다

이외에도 KB국민카드 부사장 출신의 이현희씨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미 새누리당 청주흥덕갑 지역구에 출사표를 낸 상태다. 이씨는 “고향인 청주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제가 가진 역량을 고향을 위해 쓰고싶다”고 사실상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씨가 도전하는 청주흥덕갑 지역구는 3선의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국회의원이 버티고 있다. 또 새누리당 내에서는 최현호 당협위원장 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씨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청주중·청주고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KB국민카드 부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당시 한나라당 청주흥덕갑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편 기업인 출신 총선 참가자들의 성패는 공천룰 확정 여부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획정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공천 룰도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출마자들은 나서야 할 지역구를 아직도 정하지 못했고 나머지 주자들의 공천 불안감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출마설’ 공기업 임원은?

전·현직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이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출마 채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공직자 사퇴시한은 선거일인 내년 4월13일의 90일 전, 선출직은 선거 120일 전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내년 공천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부산이나 출생지인 대구·경북지역에서 출마를 검토 중이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경기 성남 분당갑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성남 분당갑에 출마하면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종훈 현 의원과 당내 공천을 먼저 거쳐야 한다.

재무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도 성남 분당을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임 전 의원은 지난해 7월30일 재·보궐선거 때 경기 수원정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전 장관도 경남 창원에서 출마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았다가 비리 의혹 등이 불거지며 공천이 취소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도 고향인 충남 서산·태안에서 재기를 노릴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세청에서 조사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그는 올해 4월 관련 의혹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고향인 충남 보령·서천 출마 얘기가 나오고 있으며, 이수원 전 특허청장 역시 고향인 강원 춘천에서 출마 예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야권 인사 가운데는 이용섭 전 의원이 전 지역구인 광주 광산을에서 복귀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경제원 출신인 이 전 의원은 국세청장,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꼽힌다.

재경부 출신으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3선의 김진표 전 의원도 수원 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내년 총선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부 출신인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고향인 부산 남구 쪽에서 출마 요구가 있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임해종 전 산업은행 감사는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에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완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 현직 공기업 간부들도 총선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긴 마찬가지다. 박완수 사장은 경남 창원 의창구, 김성회 사장은 경기 화성갑에 각각 출마할 채비를 갖추면서 사퇴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총선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던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총선 불출마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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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