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대사님, 이제 슬슬 역공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공이라니.”
“이 서기관을 지목한 일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의 행태를 비난해야지요.”
“이 사람아, 그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네!”
“어차피 그 사건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작품 아니던가.”
피할 수 없는 역풍
“그래도.”
“강한 역공은 역풍을 맞을 수 있네. 그러니 우리는 저들의 공세에 수세적인 입장에 처하면서 저들의 기세가 수그러들기를 기다려야 하네.”
조 참사관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 즈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비서가 일본 외무성 고이즈미 차관이 방문했음을 알려왔다. 김 대사와 조 참사관이 급히 정색하고 고이즈미를 들였다.
“차관께서 이른 시간에 연락도 없이 어쩐 일입니까?”
자리를 잡자마자 김 대사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고이즈미가 즉답을 피하고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일인지 기탄없이 말해보세요. 우리 사이에 이거저거 따질 필요 없잖소.”
김 대사의 은근한 말에 고이즈미가 가볍게 헛기침하고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지금 일본 경시청에서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하여 대사관에 근무하는 이성원 일등 서기관을 소환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경시청이 모처에서 극비 정보를 입수했는데 이성원 서기관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또 그래서 반드시 수사를 해야 한다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김 대사가 짤막하고 단호하게 말을 맺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차관님, 어떻게 일국의 외교관을 심증만으로 소환 조사하겠다는 겁니까?”
“조 참사관, 단순히 심증만이 아닙니다. 경시청에서 구체적인 물증을 가지고 요구하고 있어요.”
“구체적 물증이라니요?”
“잠깐만이오!”
김효의 반문에 고이즈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조 참사관이 개입했다.
“왜 그러는 겐가?”
“대사님, 이 서기관을 경시청에 보내는 대신 이 자리에 불러 차관님과 대면하여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조 참사관의 긴급제안에 김효가 눈을 깜박이며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그렇게라도 해주신다면 저로서는 고맙지요.”
고이즈미의 답이 이어지자 조 참사관이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이 서기관을 대사 집무실로 호출했다.
“이보세요, 차관님.”
“말씀하세요, 대사님.”
“만약에 말이오. 이 서기관이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대사관에 근무하도록 배려했을까요?”
“저도 그런 의문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시청이 워낙 확고하게 주장해서.”
“그런데 그 극비로 입수했다는 정보의 출처는 알고 있습니까?”
“우리에게까지 함구하고 있습니다.”
김효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보게, 조 참사관.”
“네, 대사님.”
윤대중 소재파악 되다
목격자와 은밀한 접촉
“윤대중 선생 납치사건이 일어났던 그 시각에 이 서기관이 어디 출타한 적 있는가?”
“한창 근무 시간인데 그럴 리 없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 이 서기관이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서기관과 동료 직원들을 접촉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동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 대사관에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확신에 찬 조 참사관의 변이 이어지자 고이즈미의 표정이 어둡게 변해갔다. 순간 문이 열리며 이 서기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서기관, 오해 말고 이야기 잘 들어보게.”
이 서기관이 자리하자 조 참사관이 설명을 곁들였다.
“저도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어찌 제가.”
이 서기관이 목소리를 높이며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저는 그 시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서기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 참. 여하튼 경시청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항에 대해 질문할 터이니 답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해보시지요.”
“먼저 이 서기관이 흥신소에 윤대중 씨의 소재 파악을 의뢰했다는 정보가 있소만.”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사유로 윤대중 씨를 찾았다는 말씀인지. 그리고 흥신소라니요. 정말 이해불가입니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이 서기관을 지목한 건 아니오. 다만 이 서기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윤대중 씨의 소재 파악을 의뢰했다는 이야기요. 그건 그렇고 당일 호텔 내 엘리베이터에서 이 서기관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왔답니다.”
“당일 그 시간에 말인가요?”
“그렇소만.”
“저는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간 사실이 없는데요.”
“혹시 다른 날 본 건 아니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서기관이 손님을 만날 때 주로 그 호텔을 이용한다 하던데.”
김효 대사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날은 아니고 그 전날 저녁에는 방문했었습니다만.”
“전날 저녁에요?”
“일본 주재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이 서기관의 지문이 남아 있다는 이야긴가.”
고이즈미가 마치 자학하듯 한마디 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순간 조 참사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닙니다. 호텔 곳곳에 이 서기관의 지문이‥‥‥.”
“그런 엉터리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그 지문들이 이 서기관의 지문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일본 경시청에서 우리 직원들의 지문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면 이는 윤대중 사건이 아닌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리라 봅니다.”
“아니요. 확실한 것은 아니고 다만.”
고이즈미가 말을 해놓고는 저도 이상한지 고개를 흔들었다.
“차관님,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지문이 일치하다니요. 물론 이 서기관이 자주 그곳을 방문하니 지문이 곳곳에 남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게 이 서기관의 지문이라 단정함은 우리 직원들의 신상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이는 치외법권을 지니고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엄중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 봅니다.”
강하게 주문한 조 참사관이 고이즈미를 주시했다.
“아니오, 내 이야기 잘못 꺼냈소. 그러니 그 이야기는 접읍시다.”
조 참사관의 강공에 고이즈미가 기어코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난조 상.”
오사카 이즈미오쓰에서 집회를 마치고 이코노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회에 참석했던 기미코가 은근하게 문석원에게 다가섰다.
입수한 극비 정보
“고타로는 무슨 일로 참석하지 않았는데?”
“오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 도저히 짬을 내지 못하겠다 하더라고.”
“그래, 잘 되었네.”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문석원의 힐책 아닌 힐책에 기미코가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팔짱을 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