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선 앞두고…박지만-함승희 행보가 주목되는 내막

"비선이 움직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사석에서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력에 관심이 없다"던 박 회장이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에 줄을 대려는 예비 후보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정권 비선'으로 의심된다. 소위 '진박'(진짜 친박)으로 분류되는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이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박지만 EG회장은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는 검찰이 '미행설'에 대해 '허위'라고 결론짓자 진술서를 통해 의문을 표했다. 지난 7월 열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재판에서도 "문건에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검찰이) 한 번에 거짓으로 만든 문건이라고 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언급한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다. '국정 개입'보다는 '문건 유출'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검찰 발표의 핵심은 "문건 내용이 풍문에 기초한 지라시"라는 것이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문건 내용의 전부가 허위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지난 10월1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끝나지 않은
비선실세 의혹

국정 개입 파문 당시 청와대는 '비선실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7일 여당 지도부 오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옆을 떠났고, 동생 부부(박지만·서향희)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농담으로 비선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었다. 역대 정부 가운데 비선이 부재한 정권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에서 제기된 '문고리 3인방' 경질 요구를 묵살했다. 정권 초기 거듭된 '인사 참사'도 비선의 존재를 의심케 했다.


지난 9월21일 <매일경제>와 <레이더P>가 국회보좌관·교수 등 정치 분야 전문가그룹 11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치권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응답자별 3명 복수응답)는 질문에 응답자의 13.55%(50명)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선택했다. 이 비서관은 2위와 4%가량 차이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문고리 3인방+정윤회 정권실세 의혹 여전
박지만+여당 정치권 인사 '회동설' 촉각

이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9.76%·36명)은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9.49%), 4위는 최경환 경제부총리(8.4%)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5위는 민간인인 정윤회씨(7.59%)가 꼽혔다. 정씨의 뒤를 이은 6위는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안봉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7.32%)이었다. 3인방과 정씨를 '실세'로 응답한 비율의 합은 38.22%에 이르렀다.

하지만 관련 조사에서 박 회장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10위권 밖에서도 박 회장은 실세로 꼽히지 않았다. 실제 박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3성 장군들은 나란히 진급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육사 37기인 신원식 당시 합참차장과 이재수 제3군부사령관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 역시 '정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7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재판에서 그는 "난 원래 정치권력에 관심이 없다"라며 "심하게 말하면 냉소적이다. 나를 이용해 뭘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증언했다. 또 '평소 청와대와 관련한 사안을 조 전 비서관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나'라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선 "난 청와대에 아무 것도 궁금한 게 없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최근 박 회장이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서울 모처에서 회동을 가진 사실이 알려졌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평소 친분이 두텁지 않은 편이며, 박 회장과도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동설'에 연루된 이들의 공통점은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 공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 무관심
박지만은 왜?


지난 18일 사정기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회장이 여당 정치권 인사로 분류되는 A씨와 B씨 등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서로 말이 다르지만 선거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겠느냐"라고 귀띔했다. 관계자가 언급한 A씨와 B씨 등은 수도권과 영남이 아닌 지역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박 회장이 평소 알고 지낸 지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사생활'의 영역이다. 하지만 총선 출마를 검토 중이었거나 선언한 이들과 만난 것은 사생활로 보기 어렵다. 회동의 맥락과 관계없이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박 회장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와 사석에서 만났다는 의혹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기됐다. 지난 19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평소 박지만 회장과 잘 알죠?"라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만난 적은 없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어떻게 됐든 박 회장과 만난 적 있죠?"라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그 부분을 말씀드리기는…"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 후보자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수사 당시 박 회장을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박 회장과 최근 만났다는 정치권 인사 또한 김 후보자와의 사이가 매끄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누가 먼저 모임을 제안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회장 측은 지난 20일 오후 총선 관련 해명을 들으려 하자  "대답할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박 회장은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박 회장이 직접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당장 공천권 행사를 둘러싸고 당·청간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마땅한 명분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박 회장의 진의와 무관하게 이른바 '문고리 권력'은 '박지만사단'의 당·청 입성을 강하게 견제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관련 대목에서 박 회장은 물론이고 청와대와도 '끈'이 닿는 인물의 '총선 역할론'이 제기된다. 정치인이지만 공공기관장으로서 권력투쟁과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 바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이다. 함 사장은 최근 박 회장과 함께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함 사장은 검사 출신으로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당적은 민주당이었지만 2007년 탈당한 뒤 예상을 깨고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2008년 친박연대 최고위원과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으로 분류된다.

권력 맴도는
주변 사람들

함 사장은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야인'으로 있다가 2014년 11월 강원랜드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함 사장은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사심 없는 사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 사장은 지난 2012년 7월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당시) 김기춘이 '차나 한잔 합시다'해서 갔는데 박 후보(현 대통령)가 나와 있었다"라며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함 사장은 지난 2008년 5월부터 포럼 '오늘과 미래'(포럼오래)를 이끌고 있다. 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낙마한 뒤 포럼오래에 합류했다. 함 사장의 표현을 빌면 포럼오래 회원들은 박 대통령과 함께 공부했다.
 

포럼오래는 18대 대선 과정에서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주축인 국가미래연구원과 더불어 박 대통령의 숨은 외곽조직으로 지목됐다. 함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 지지모임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포럼오래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염원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함 사장이 2012년 4월 포럼오래 회원들에게 남긴 글(총선 후기)과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지글(SBS <힐링캠프> 출연)만 봐도 박 대통령을 지지할 의사가 뚜렷했음이 드러난다.


특히 포럼오래에는 박근혜정부 들어 정부 내각 및 국책·금융·연구·공공기관 등에 중용된 회원이 다수 포진해 있다. 포럼오래 출신들의 약진에서 함 사장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반대로 이는 박근혜정부가 얼마나 편중된 인사를 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일부 공개된 회원 및 강연에 나선 연사의 면면은 화려하다.

먼저 백승주 국방부 차관(2013.3), 김행 청와대 대변인(2013.3), 유영제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2013.4)을 비롯해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2013.10),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2013.11), 이중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감사(2014.2), 김주남 국가브랜드진흥원장(2014.3), 오건택 한국기술벤처재단 사무총장(2014.3),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2014.6),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2014.12), 황인경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사(2014.12),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2015.02), 김정식 경찰위원회 상임위원(2015.8) 등이 모두 포럼오래에서 활동했다.

또 김철호 본죽 대표,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 신달순 센트럴시티 사장, 이도식 GS동해전력 대표이사 등 재계 인사를 포함해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안광찬 전 국가위기관리실장, 조청원 전 국립대구과학관 원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등 관가 인사, 정현숙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 등 체육계 인사까지 포럼오래에 소속돼 있다. 위 인사들은 포럼오래 측이 직접 출판물 및 부고 공지 등을 통해 한 차례 이상 회원으로 언급했다.

함승희 이끄는 외곽조직은 '등용문'
'중도개혁' 표방 포럼오래 출신 약진?

뿐만 아니라 최근 '광화문 시위' 발언으로 논란이 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 같은 당 김도읍 의원이 포럼오래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강석훈·김회선·박덕흠 의원이 각각 포럼오래 출신으로 확인된다.

당초 포럼오래의 간판은 김종인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다. 현재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포럼오래정책연구원장으로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김기춘의 절친'으로 알려진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은 외곽에서 김 전 실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포럼오래 4분과 위원장인 우주하 전 코스콤 사장이 최근 함 사장이 있는 강원랜드 사회공헌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이다. 우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11월 자신의 친구 자녀를 특혜 채용한 의혹에 휩싸이며 자진 사임했다. 2014년 가을 국감에서는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흥미롭게도 우 전 사장은 지난 9월 강원랜드 임직원들을 상대로 '윤리특강'을 진행했다.

포럼오래는 창립 당시 경제민주화에 관한 연구 등 의미 있는 성과물을 내놨다. 그러나 이들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인 2013년 3월 중국 현지에서 박 대통령 홍보와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새마을 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진행했다. 전자는 실제 국정운영에 오차 없이 반영됐고, 후자 역시 중요 주장을 인용한 논문집이 지난 20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명의로 발간됐다.

결과적으로 함 사장은 자신의 인맥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음은 물론이고, 일부 정책적 제안마저 관철시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박 회장과 만났다면 우연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포럼오래 회원 상당수는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소위 '문고리 권력'과 '최경환사단'의 인사 독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박지만&함승희 회동설'은 권력 지각변동의 전조로 풀이된다. 중도개혁을 표방한 '비선'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편 함 사장은 지난 20일 오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지만은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요즘에는 통 본 적이 없고, 총선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가만있는 사람(박지만)을 정치권에 끌어 들이면 안 된다. 허위사실이다"라며 "나는 총선에 나갈 생각이 없지만 회원들이 선거와 관련해서 물으면 '나가 보라'고 한다. 대신 우리 포럼에서는 제명될 수밖에 없다. 포럼오래는 정치적인 조직이 아니며 학술모임이고 봉사단체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웅크린 싱크탱크
문고리와 일전?

또 기사에 언급된 일부 인사에 대해서도 "그 사람(유영제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은 자기가 알아서 원장이 된 거고, 백승주는 두 번 나오다가 말았다. 김행은 처음부터 우리 멤버가 아니었다. 강연만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김회선, 김도읍은 검사 후배일 뿐 정식 회원이 아니다. 회원이 아닌 사람들까지 회원이라고 하지마라. 허위사실이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비춰지면 안 되기 때문에 회원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함 사장은 "부패와의 전쟁 같은 경우 예전 VIP(대통령)가 우리 모임에 나왔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며 "VIP도 그 부분(부패척결)은 잘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이 우리 정책을 더 잘 반영한다. 난 강원도 시골에 있는 사람이다. 최근 VIP와 통화한 적 없다. 총선이나 (청와대) 인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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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