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피아 비리' 눈감아 준 검찰 추적

'VIP 측근' 이름 나오자 비리 정황 덮었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의 출구전략으로 기획된 이른바 ‘철피아’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특정 업체를 비호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납품 비리 혐의를 인지했음에도 사실상 봐주기로 일관한 것이다. 납품 비리에 연루된 회사는 부산지역 대표기업인 동일고무벨트다. 회사 대주주인 '박근혜 친인척'과 상임감사를 지낸 '기춘대원군'의 의중을 살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라며 이른바 '관피아' 수사를 주문했다. 검찰은 즉각 특수부 인력을 투입해 철피아(철도+마피아) 수사에 착수했다.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 철피아 수사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철피아 수사 당시 검찰이 외면한 납품 비리 의혹이 새롭게 확인됐다. 사건을 인지했던 검찰은 무슨 이유인지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11월 검찰의 소환 통보에 응한 '참고인'을 만나 사실을 확인했다.

취재 과정에서 복수 철도업계 관계자는 관련 배경에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납품 비리에 연루된 회사는 동일고무벨트,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김 의원은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사위로 박 대통령과는 인척관계다. 부친은 한나라당 등에서 5선을 지낸 김진재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아들(김 의원)에게 동일고무벨트를 물려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13년 8월까지 동일고무벨트의 상임감사를 역임했다.

지난 7월 철도시설공단 감사실은 동일고무벨트가 연루된 납품 비리 의혹을 확인했다. 철도시설공단은 납품 비리의 주범으로 알티(RT)코리아를 지목했다. 감사결과 알티코리아는 전라선 BTL사업 과정에서 시공사와 발주처 등을 속이고, 승인 받지 않은 동일고무벨트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알티코리아의 대표 김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일고무벨트가 외압을 행사해 (할 수 없이) 허위 납품을 했다"라고 증언했다. 납품 비리는 사실로 확인됐으며 검찰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철피아 의혹 1] 내부감사는 왜?

고무제품 제조회사인 동일고무벨트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2012년 회사 분할을 거쳐 현재는 DRB동일이란 사명을 쓰고 있다. 회사 감사보고서를 살피면 지난해 연매출은 5800억원대로 확인된다. 철도산업 분야 매출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 알티코리아는 국내외 철도부품을 전문적으로 공급해 온 에이전시다. 규모는 작지만 철도업계에선 제법 인지도가 있는 회사로 전해진다.

철도시설공단은 지난 6월과 7월 각각 '콘크리트궤도 자재 관련 민원 검토보고' '전라선 BTL사업 궤도자재 의혹 관련 검토현황'이란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 따르면 알티코리아는 지난 2011년 6월 전라선 BTL사업에 필요한 독일산 캠플레이트 완충재 9만8040개를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알티코리아는 이중 절반인 4만9020개를 독일제로 납품하고, 나머진 동일고무벨트 제품을 독일산인 것처럼 꾸며 납품했다.

검찰 '전라선 납품 비리' 인지
동일·RT 가짜 독일제품 납품

캠플레이트 완충재는 열차가 운행할 때 궤도에 가해지는 충격 또는 온도에 따른 TCL(도상콘크리트층) 거동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탄성분리재'(TCL 중간층 재료)와 함께 쓰이는데 세부 기능은 다르지만 어린이 안전매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호남고속철도 공사 등 여러 철도건설 현장을 관리한 허모 소장은 "캠플레이트와 탄성분리재가 철도 안전상 중요한 부품"이라고 강조했다. 열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충격을 궤도가 흡수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선로 이탈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20년간 철도기관사로 재직하며 철도정책 분야를 연구해 온 박모씨 역시 "철도사고는 한 번 나면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대형사고"라며 "웬만한 철도부품은 작은 결함에도 민감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라선 철도에는 기존 설계와 다른 부품이 삽입돼 있다. 축구선수로 비유하면 왼발은 '나이키' 오른발은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은 셈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운행이 계속되다 보면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철도안전분야 전문가인 장모씨는 "각 제품마다 품질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구간에는 동일한 제품을 쓰는 것이 상식"이라며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해당 납품업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납품 비리에는 형사 고발, 입찰 제한 등 강도 높은 제제가 뒤따른다. 이번 감사 직후 철도시설공단은 "위법 부당한 사실에 대해 국토교통부에 보고하고, 사업시행자(전라선철도)에게 통보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자제 납품사(알티코리아)에 대해선 형법 제231호(사문서 위·변조)를 적용해 전라선철도가 고소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전라선철도는 지난달 29일 "공단 측으로부터 고발 등 조치와 관련해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형사고발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같은날 철도시설공단 홍보실은 "지난 9월 중순 국토교통부 쪽에 사건 조치를 질의해 놓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다음날 통화한 국토교통부 담당자는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고, 내부 일정상 결재가 늦어졌다"라며 "안전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초 비리로부터 4년이 지났음에도 각 기관이 대책 마련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는 격이다.

[철피아 의혹 2] 부품 안정성 논란

지난 6월 기자와 통화한 김씨는 동일고무벨트의 외압을 받고 이 같은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씨는 '부탁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부탁이 아니라 외압이었다"라며 "우리는 작은 회사인데 동일 쪽에서 자기들이 완제품 만들어놨으니까 쉽게 말하면 '까불지 마라' '가만 안 둔다' 이런 식으로 나왔고 (중략) 자세한 건 문서로 남겨놨다"라고 말했다.

반면 동일고무벨트는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도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 철도시설공단은 감사 문건에서 "동일고무벨트 제품 품질에 문제가 없다"라고 결론 냈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등 다른 공사에 납품된 제품이 품질을 검증받았으므로 허위 납품된 제품의 품질 또한 같다는 논리다.
 

이들은 '공급원 승인'을 근거로 제시했다. 공급원 승인은 제품 생산업체가 공인된 시험기관에서 실험을 받고 성적서를 제출하면 발주처가 품질 검토 후 납품을 허가한 서류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품질인증서와 같은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시험기관이 발급한 시험성적서는 공급원 승인을 좌우한다.

그런데 시험기관들은 제품 시험성적서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기자는 동일고무벨트가 발급받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입수했다. 각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기관은 기계연구원과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다.

이들은 모두 업체가 의뢰한 방식대로 시험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신들은 업체가 준비한 시방서(일종의 시험가이드라인)대로 시험했다는 것이다.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ㅇ박사는 지난 5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체가 원하는 대로 해준 걸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설계도와 다른 부품 사용해 안전성 논란
'김세연 대주주' '김기춘 감사' 경력 원인?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답변은 더욱 의문이다. 지난 3월 시험성적서를 발급한 ㅎ연구원은 "현재 그 시험은 못한다. 용역을 줘야 한다"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ㅎ연구원은 "(시방서에 적힌) 어떤 조건을 삭제하면 (발급이) 가능할 수 있다"라고 귀띔했다. 2012년 이후 동일고무벨트 외에 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서 관련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외국계 시험기관에서 재직 중인 임모씨는 "시방서 기준이 애매하다"라며 "완벽하게 시험하려면 그 조건(E축 진동시험)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품을 독일로 보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씨는 "사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건 기술적인 해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철피아 의혹 3] 엇갈린 자료·진술

풀리지 않는 의혹은 더 있다. 앞서 기자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철도시설공단 측으로부터 호남고속철도(1·2공구) 납품 현황에 대한 자료를 확보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1공구에는 독일산 제품이 2공구에는 동일고무벨트 제품이 각각 납품됐다. 호남고속철도 사업 역시 이번 '민원 검토보고' 대상에 포함됐다.

1공구의 경우 독일계 두 회사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를 따로 납품했다. 반면 2공구는 동일고무벨트가 캠플레이트, 탄성분리재를 일괄 납품했다. 세부적으로 캠플레이트(A·B·C·D형)는 45만1934개가 납품됐고, 탄성분리재는 26만282개가 납품됐다. 제품 단가는 5760~2만2000원 선이다. 독일 제품과 비교하면 개별 단가가 오차 없이 동일했다.


그런데 당시 사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1공구 시공사가 독일 제품을 주문하자 공단 측이 여러 자료를 과도하게 요구하며 납품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2공구처럼 한국산 제품을 쓰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새정치민주연합 한 의원실을 방문해 "납품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철도시설공단은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첫 번째 회신에서 최초 제품 단가와 수량을 잘못 기재해 전달했다. 오류를 지적하고 나서야 정정된 자료를 송부했다.

[철피아 의혹 4] 정치권 비호설 왜?

상당수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피아 수사 당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는 등 비리의 온상으로 의심됐다. 반면 지난 1년여간 취재해 온 납품 비리 건은 단 한 차례도 검찰의 사실 조회가 없었다. 복수 업계 관계자는 "김광재(사망·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때부터 말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우리 철도인들의 잘못이 크다"라고 말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위에서 눌렀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관련 납품 비리 건은 최소 두 차례 이상 검찰 간부급에 비중 있게 보고됐지만 수사로 전환되지 않았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철피아와 관련한 재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라선 납품 비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드러나지 않은 뿌리가 더 깊다는 것이다.

관련 대목에서 철피아 수사 도중 숨진 김광재 전 이사장의 유서가 눈길을 끈다. 김 전 이사장은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라고 적었다.

한편 김세연 의원실은 지난달 30일 오후 통화에서 "의원님과 의원실 모두 관련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동일고무벨트의 운영에는 5년 전부터 관여하고 있지 않고, 대주주인 것 외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회사 소식을 따로 보고받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반론보도문] ㈜디알비동일 납품 비리 의혹 관련

본지는 2015. 11. 1.자 1면 내지 3면에 “VIP 이름 나오자 비리 정황 덮었나” 제목의 기사에서 주식회사 디알비동일이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전라선 BTL철도 사업을 수주한 RT코리아에 외압을 행사하여 독일제품이 아닌 승인 받지 않은 디알비동일 제품을 납품하도록 한 비리 의혹이 있고, 검찰은 디알비동일의 대주주인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과 상임감사를 역임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때문에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디알비동일은 RT코리아에 외압을 행사하여 납품에 이른 사실이 없고 RT코리아의 주문을 받아 자사 제품을 납품한 것이며, 대주주인 김세연 의원과 전 상임감사인 김기춘 전 실장 때문에 검찰로부터 비호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