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정몽준 웃는 이유

금수저서 투사로 ‘이미지 세탁’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부정부패로 얼룩진 국제축구연맹(FIFA)의 내부 비리가 만천하게 공개되면서 철권통치를 자행하던 블래터 회장이 물러났다. 그 사이 FIFA 차기 회장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정몽준은 전임 회장의 덫에 걸려 원치 않게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생각지 못한 전개가 시작되고 있다. 최악으로 내몰린 줄 알았던 정몽준에게 새로운 기회가 부여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지난 8일 FIFA는 5년 전 부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한국의 월드컵 유치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에게 자격정지 6년을 내렸다. 이로써 오는 26일 이전에 회장 후보에 등록하려던 정몽준의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차기 FIFA 대권을 노리던 정몽준의 꿈이 깨진 순간이다.

연이은 악재

비록 FIFA 징계와 관련해 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천명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1994년 부회장직을 시작으로 FIFA와 인연을 맺은 정몽준은 2011년 부회장직에 낙선하기까지 17년 간 FIFA에서 제프 블래터의 반대 세력으로 활동했다. 그 사이 줄기차게 FIFA 개혁을 요구하면서 ‘반블래터’ 세력의 주축으로 손꼽혔다.

정몽준에 대한 징계가 발표되자 국내에서는 정몽준과 대립각을 세웠던 블라터 회장의 정치적 음모가 개입됐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실제로 블래터 전 회장의 측근이 다수 포진한 FIFA윤리위원회는 ‘블래터의 살인청부업자’라 불릴 만큼 그의 반대파들을 축출하는데 앞장서온 게 사실이다.


문제는 정몽준을 둘러싼 악재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정몽준은 안팎으로 내홍에 휩싸인 상황이다. 특히 정몽준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내부에서 그의 행보에 대한 반감이 확산된 분위기다.

회사가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 삭감으로 ‘먹튀 폐업’을 유도하는 등 그룹 내 구조적 문제는 등한시하면서 비리 등 부패 문제가 불거진 국제축구연맹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달 22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스위스 원정투쟁단을 구성해 정몽준 대주주가 국제축구연맹 회장 후보로 나설 자격이 없음을 폭로할 것”이라며 “10월18일 출국해 국제노동기구(ILO)와 대형선주사 엠에스시(MSC)가 위치한 제네바와 국제축구연맹 본부가 위치한 취리히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자격정지 6년 결정으로 이 계획은 취소됐지만 정몽준의 입장에서는 꽤나 골치 아픈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실적 부진을 거듭하는 상황도 정몽준에게 악재이긴 마찬가지다. 안살림은 내팽개친 채 잿밥에만 골몰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진 것도 이 무렵이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최근 4년간 매출총이익이 2011년 6조9385억원, 2012년 4조6532억원, 2013년 3조2551억원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나타내다 지난해 717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그 사이 자산총액은 31조9994억원으로 감소했고 결국 올해 초 열린 제41기 주주총회에서는 대규모 적자의 영향으로 배당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지난 8월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중공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부정적)'로 떨어뜨렸다. 예상 범위를 웃도는 손실을 기록했고 향후 수익구조 개선의 불확실성이 증대된다는 것이 하향 이유였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경영 목표로 매출 24조3259억원, 수주 229억5000만달러를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블래터 음모’ 멀어지는 FIFA 대권
국내 여론 반등…생각지 못한 반전


게다가 노조와의 임급협상이 지연될수록 정몽준에 대한 성토는 커지고 있다. 노조의 올해 임협 요구안은 ▲임금인상 요구액 12만7560원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 성과금 250% 이상 보장 ▲노후연금 현실화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통상임금 1심 판결결과 적용 ▲임금·직급체계 및 근무형태 개선 노사 공동위원회 구성과 내년 6월1일부터 시행 ▲성과연봉제 폐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처우개선 등이다. 아직까지 회사와 뚜렷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계에서도 정몽준은 차츰 설자리를 잃어가는 양상이었다. 한 때 월드컵 개최 1등공신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대선에 참가할 만큼 정몽준은 정치권에서 거물로 통했다. 울산과 서울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대표도 겸임했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도전장을 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이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아들의 부적절한 언행 등이 논란으로 번지면서 결국 고배를 마셨고 이후 정계에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잃어간다.

이처럼 정몽준을 둘러싼 복합적인 악재는 FIFA 회장 입성이 사실상 힘들어진 이 시점에서 정몽준을 진퇴양난으로 몰고 갔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정몽준이 FIFA로부터 자격정지를 받은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 떨어져 있던 정몽준에게 긍정적인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동정론도 상당수 껴있지만 최악의 순간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의 이미지마저 덧칠해졌다.

그동안 정몽준은 ‘금수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를 향한 금수저라는 인식은 커다란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과거 교통카드 논란에서부터 아들의 부적절한 언행에 이르기까지 서민의 입장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계속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엔 공교롭게도 그의 출신마저 긍정적인 면모로 비치고 있다. 일단 돈이 연루된 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정몽준은 지금껏 금전적인 문제로 별다른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만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노출된 기나긴 시간 동안 금전적인 비리로 잡음을 만들지 않았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FIFA 내부에서 개혁세력으로 꼽힌 것도 어쩌면 그의 행적과 연관된다. 여기에 때마침 FIFA 내부 비리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위력이 더해진 셈이다.

이렇게 되자 최근 정몽준의 대중적인 입지는 다시 올라가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주 주간집계와 동일한 21.5%로 1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0.4%p 상승한 19.9%로 2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정몽준의 이름이 여전히 순위권에서 등락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몽준 에 대한 선호도는 약 3.0% 수준. 한창 정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부 거물급 정치인들과 엇비슷하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등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다.

탈출구 열리나

성공한 사업가이자 정치인, 그리고 월드컵의 기적을 이끌어낸 장본인. 정몽준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수사어구다. 한 마디로 거칠 것 없이 잘 나가던 사람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최근 몇 해는 정몽준에게 악재의 연속이었다. 정계에서 차츰 멀어졌고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의 수익은 곤두박질쳤다. 물론 결정타는 FIFA의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러나 미묘하게 변해버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 다른 반전을 예고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정몽준은 어쩌면 희미하게나마 미소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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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