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43)이광남 숭민그룹 회장

서민 등친 돈 해외로 빼돌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3화는 673억7600만원을 체납한 이광남 숭민그룹(SMK) 회장이다.

지난 2001년 12월5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는 '제39회 영화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영화인협회가 주최한 행사에는 신상옥 감독(2006년 타계) 등 국내 영화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보도한 단신 끄트머리에 생소한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이광남 숭민그룹 회장(이하 이광남)은 한국영화인협회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다단계 거물

국내 다단계 사업자 1세대로 통하는 이광남은 1988년 숭민산업을 창업한 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중심으로 다단계 사업을 전국 단위까지 확산시켰다. 지난 2006년 4조원의 피해액과 수십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숭민그룹을 통해 다단계에 발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이광남의 회사는 숭민산업, 산융산업, 숭민그룹, SMK종합유통㈜, 숭민코리아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당국의 타깃이 된 첫 번째 회사는 산융산업이다. 산융산업은 일본 야쿠자조직이 운영하는 '저팬라이프'와 한국 범죄조직 2세대 최모씨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라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이광남은 최씨가 1990년 말 범죄단체 조직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산융산업을 인수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렇지만 회장이 바뀌었을 뿐 저팬라이프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일본인 임원들은 자리를 지켰고, 산융산업 자회사로는 다단계 판매조직 JLK㈜가 설립됐다. 이들 회사는 자석요와 자석목걸이 등 자체 개발한 자기 의료용구를 피라미드식 영업망을 통해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다단계 방식의 영업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


이광남과 야쿠자의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은 200억원에 육박했다. 저팬라이프코리아가 돈을 벌수록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동시에 판매자)의 수도 늘었다. 검찰은 1992년 4월 사기 등 혐의로 이광남을 구속했다.

당시 보도된 내용을 참조하면 이광남은 1580억원 상당의 자석요를 팔았으나 242억원의 매출 신고를 누락한 혐의를 받았다. 또 장당 원가가 20만~45만원에 불과한 자석요를 140만~270만원에 팔아 폭리를 취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이광남은 구속 3개월 만에 풀려났다. 다음해 6월 검찰이 보강수사를 벌여 재구속할 때까지 이광남은 자유롭게 돈을 벌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이광남뿐 아니라 전국 주요 총판 사장과 대리점장 등을 연달아 구속했다. 불법 다단계의 뿌리를 뽑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광남은 재수사가 임박하자 조직 개편을 벌여 추적을 피했다. 언론에 보도된 총판 수는 250개, 대리점 수는 900여개에 달했다.

서울시 52억7300만원 국세청 621억300만원
다단계 1세대…60만명 상대 5700억 사기

법원은 같은 해 7월 이광남에게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숭민산업의 연매출은 2800여억원이었다. 이광남은 이 돈의 51%(1400여억원)를 다시 판매회사에 배분했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피라미드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렸다.

다단계 피해자가 속출하자 국회는 1995년 다단계 사업자가 제조회사를 겸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JLK는 SMK란 다단계 판매사업부를 따로 만들었다. SMK는 숭민코리아의 약자다. 이들은 '애국 마케팅'에 주력했다. 당시 미국 암웨이사가 국내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SMK는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등의 홍보 전략을 폈다.

SMK는 국내 일부 제조업체와 연계해 사실상 마구잡이식으로 제품을 밀어냈다. 생활용품, 화장품, 전자통신기기, 건강보조식품 등 유통된 품목만 70여종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회사에서 쫓겨난 남편, 아내, 자녀들까지 다단계 시장에 유입됐다.


불법 다단계에 대한 당국의 단속에도 SMK는 숭민코리아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회원 확보에 주력했다. 회사 지분구조상 이들 회사는 모두 이광남 개인 소유였다. 당시 SMK는 대학생 등 20대를 꼬드겨 집단합숙을 시키는 영업방식이 적발되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위기가 닥칠수록 이광남은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2001년 2월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유명 권투선수의 후원자를 자처했고, 여자축구단의 구단주로 활동했다. 이광남은 인도, 일본, 홍콩 등에 잇따라 현지법인을 만들어 국내에서 발생한 수입을 송금했다. 중국 칭따오에 설립한 청도숭민건강용품유한공사(SMI)는 비자금 창구로 의심된다. 이광남은 2002년 2월에도 인도네시아 현지에 60만달러를 투자 목적으로 위장해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5월 이광남은 다단계 판매원에게 직급당 최대 5000만원에 달하는 상품을 강매하는 등 모두 5765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됐다. 또 이광남은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계열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850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편취한 혐의도 받았다. 아울러 이광남은 70명의 교육사원을 자체 승급시킨 뒤 허위수당을 입금해 통장과 원천징수내역서 등을 떼어주고 판매원을 모집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관리관에 뇌물을 건넨 혐의, 자석요와 동충하초 등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상품을 허위과장 광고한 혐의 등이 더해졌다. 그러나 이광남은 구속 2달 만에 또다시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만을 선고했다.

법원은 불법 다단계 영업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검찰이 공소사실에 추가한 대구 B빌딩 공사 과정에서의 법인세 포탈 혐의만 인정했다. 그 사이 SMK 출신이 설립한 다단계 업체 글로벌자이언트(GTS)는 부산을 중심으로 자석요 등을 판매하며 재기를 노렸다. GTS가 SMK의 후신이라고 의심받는 이유다.

GTS는 이광남이 구속된 해에만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2003년 7월 협력업체에게 납품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등 자금난을 겪다가 간판을 내렸다. 다음해 2월에는 자석요를 생산하는 숭민사업이 부도 처리됐다. 같은 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MK가 소비자 청약 환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다단계 거물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2004년 3월 이후 이광남은 측근들과 함께 건강식품 제조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이모씨를 앞세워 2009년까지 다단계 회사를 운영했다는 설도 있다. 그가 남긴 숭민산업은 2012년 청산종결된 것으로 간주됐다. 이광남과 아들 이씨는 나란히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솜방망이 처벌

숭민산업은 2004년 6월부터 주민세 등 6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52억7300만원이다. 등기상 이씨가 대표인 숭민산업, 숭민코리아유통, 숭민화성주식회사 등 3개 회사는 모두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 법인에 포함돼 있다. 각각 92억4900만원(법인세 등 30건), 52억9200만원(부가가치세 등 22건), 65억1800만원(근로소득세 등 23건)을 2004년부터 체납했다.

이광남 개인은 '네오스포'라는 업체 사장으로 소개됐다. 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3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463억13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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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