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인터넷은행 시대 '빛과 그림자'

어르신들은 모르는 ‘금융 혁신’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예금과 대출 등의 업무를 볼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으로 말이다. 점포가 없어 보다 높은 금리, 낮은 대출금리 등을 기대할 수도 있다. 금융권도 인터넷전문은행을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판단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모두가 들떠 있는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의 명암을 살펴봤다.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을 가리는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 1일 금융위원회가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접수를 마감한 결과 경쟁은 카카오 컨소시엄(카카오뱅크), 인터파크 컨소시엄(I-뱅크), KT 컨소시엄(K-뱅크) 등 3파전으로 결정됐다. 12월까지 심사를 거쳐 1곳이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이 된다.
 
미래 먹거리
편의성 강화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은 카카오 컨소시엄의 경우 카카오, 한국투자금융지주, KB국민은행 등 11개 기업이, 인터파크 컨소시엄의 경우 인터파크, SK텔레콤, NHN엔터테인먼트, IBK기업은행, NH투자증권 등 15개 기업이, KT 컨소시엄의 경우 KT, 우리은행, 현대증권 KG이니시스, KG모빌리언스 등 19개로 총 45개 기업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금융업계와 ICT(정보통신기술) 업계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다양한 수익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의 조영서 파트너는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다양한 사업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은 모바일과 빅데이터에 기반해 구현되고 필연적으로 제휴를 수반하기 때문에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의 주요 구성 주체는 금융기관과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될 전망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을 통해 기존 은행이 제고하는 것보다 향상된 서비스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은 신속한 고객기반 구축이 가능하고 비용구조와 상품 판매의 혁신으로 빠른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또, ICT업체 제휴를 통해 고객을 모집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 Critical Mass(한계점)에 도달이 가능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계좌 개설을 쉽게 할 수 있다.
 
장소 구애받지 않고 예금·대출 업무
국내 최초…45개 기업 참여해 수주전
 
여기에 제휴 업체의 고객 기반을 활용할 경우 대규모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고 오프라인 지점 운용비용을 절약할 수 잇기 때문에 매력적인 여수신 금리 제공이 가능해 고객 유입이 용이하다. 또 빅데이터와 모바일 기술을 이용해 고객이 처한 상황을 바탕으로 적시에 상품 추천이 가능하고, 이로 인해 판매적중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크게 계좌개설과 이체, 결제, 여신, 수수료사업, 서비스 및 채널 등 6가지 단계에서의 인터넷전문은행의 다양한 사업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계좌 개설 단계에서는 일본 지번은행(Jibun bank)처럼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전송하거나 통신사 고객 데이터 및 제3자 인증기관을 통한 고객 정보 인증이 가능하다고 조 파트너는 설명했다.
 
고객이 이미 보유중인 계좌로 소액을 송금하면서 인증코드 전송 등 법적 실명 확인을 통해서도 간편하게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이밖에 정해진 시간 내에 무작위로 요구된 특정 동작을 취한 뒤 본인얼굴과 함께 사진을 전송하거나 실시간 영상 통화를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다면 지점에 방문하지 않고 비대면 실명 확인을 통해 간편하게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다.
 

아울러 통신사 오프라인 대리점에서 고객 대면을 통해 실명을 확인하거나 인터넷 메신저와 연동된 전화번호 및 가입자 정보를 실명 확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통신사,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 제공 업체 등과 제휴를 통해 고객 기반을 신속하게 확장할 수 있다.
 
앉아서 한방에
수익의 다각화
 
먼저 비밀번호나 지문인식 등을 통해 본인 인증을 하고 폰북이나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송금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의 편의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송금 때는 기존 인증 방식 대신 휴대전화 잠금 패턴이나 지문인식, 홍채인식, 안면인식 등 보안성과 편의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
 
트위터 공동창업자인 잭 도시가 설립한 스퀘어(Square)가 제공하는 ‘스퀘어 캐시(Square Cash)’는 상대방의 메일과 전화번호만 입력하고 금액을 넣으면 바로 송금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에 진화된 결제서비스를 도입하면 기존 카드 서비스보다 높은 혜택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수신자 계좌나 전화번호 없이도 상대방 스마트폰에 접촉만 하면 바로 송금이 가능한 ‘BUMP 계좌이체 기반 결제’를 제공할 수 있고 은행은 현금영수증 발급 서비스와 매출 관리 등의 부가 서비스도 제공 가능하다.
 
고객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업주가 있는 매장이면 어디서나 결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가맹점은 별도 단말기 설치 없이 앱에 계좌 및 일부 기본 정보만 등록하면 바로 이용이 가능한데다 고객 결제 금액이 즉시 입금돼 높은 유동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여기에 기존 카드 대비 낮은 가맹점 수수료 제공도 가능해 이용 고객과 가맹점 모두에게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
 
검색과 위치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니즈에 맞춘 적시 상품추천으로 구매율도 높일 수 있다. 구글 월렛(Google Wallet)은 고객이 구글에서 검색한 이력과 위치 정보를 통해 고객이 인근 매장을 지나갈 때 할인 쿠폰을 전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풀어야할 숙제도 산적
 
이런 방식을 활용해 고객이 자동차를 구입과 이를 위한 대출을 포털을 통해 알아본 뒤 자동차 매장을 방문하면 오토론을 추천해주고, 은행에 가지 않아도 손쉽게 대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고객의 편의와 은행의 금융상품 판매율을 모두 높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자산과 지출, 투자 현황 등을 수집하고 분류해 고객에게 맞춤형 분석과 조언을 제공하고, 고객의 금융 행태에 맞는 상품을 제공해 상품 판매의 성공률을 높일 수도 있다. 아울러 고객이 전문가 상담을 예약하면 고객이 편한 시간에 365일, 24시간 상담을 제공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모델을 통한 해외 금융시장 개척도 가능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된 시스템을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빠른 해외 진출이 가능하고 고객 수용도가 높다. 조 파트너는 “국내에서 테스트베드 기간을 거친 후 해외 금융시장을 개척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의 어두운 점도 존재한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두고 의견대립이 가장 큰 부분은 은산분리 원칙이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자본 소유 가능 지분은 4%(의결권이 없는 경우 10%)까지로 제한돼 있다.
 
은산분리 원칙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를 기존 9%에서 4%로 낮췄다. 은산분리 원칙은 일반 기업이 은행을 지배할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섞이면 기업이 대출을 받을 때 대출 심사가 완화돼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적절한 대출 기준이 모호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도 있다.
 
은산분리 원칙
산업자본 침략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두고 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소유 비율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정래 변호사는 현재 재벌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규제가 ICT 기업 등의 참여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재벌에 대해서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진출을 불허하되, 그 기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더욱 완화된 은산분리 원칙을 주장했다. 그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도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최대 50%까지 가질 수 있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한 것. 이는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의 개정안보다 은행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산업자본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신동우 의원은 대기업을 제외한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50%까지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강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용태 의원 개정안은 기존 금융위 안보다 야당 입장과 더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이라며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확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7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에 대해 경제·경영·법학 전문가 85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효과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과도한 결합으로 금융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가 답변이 23.53%(20명)로 가장 많았다.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것’이라는 응답이 6.47%(14명)로 뒤를 이었다.
 
기획재정부는 금감원과 야당의 절충안을 내놓는 모습이다. 지난 6일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참석해 “기본적으로 ‘은산분리’ 원칙은 견지하면서도 인터넷전문은행 특성에 걸맞는 IT기업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 중심으로 최소한 범위 내에서 지분한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과 관련해 보안문제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전통적인 은행과의 거래는 대면거래를 원칙으로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은 모든 과정을 비대면으로 하기 때문에 보안문제가 중요하다.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보안과 관련한 불안한 시각이 존재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감독당국이 보안에 무신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금감원이 발표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에 대한 평가항목과 배점을 살펴보면, 보안배점은 총 1000점 가운데 100점에 그쳐 보안에 대한 미심쩍은 모습을 보였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으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해킹 사태로도 대규모 뱅크런(대규모 인출)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어 보안 안전불감증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내 보안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는 금융권을 비롯해 보안에 대한 인식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보안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안문제 대두
털리면 뱅크런
 
금감원은 ‘인터넷전문은행업 인가 매뉴얼 초안’을 지난 10일 내놨다. 초안은 보안에 좀 더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금감원은 “전산사고가 발생하거나 개인정보 보호가 취약해 지면 은행의 신뢰도가 더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온라인 영업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심사 강화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빠져 있어 향후 보안 강화 예방책에 눈길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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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