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3일 부산 소재 한 실탄사격장에서 총기 피탈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검거됐지만 실탄사격장의 허술한 관리·감독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월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처럼 미흡한 안전 대책이 도마에 올랐다. 장전된 총기를 탈취한 범인은 4시간 가까이 부산 시내를 활보했다.
지난 3일 오전 9시20분께 부산 진구 소재 한 실탄사격장에서 45구경 권총이 사라졌다. 이날 20대 남성 홍모씨는 총기 1정과 실탄 18발을 들고 달아났다. 이를 제지하던 사격장 여주인 전모씨는 홍씨가 휘두른 흉기에 배와 허벅지 등을 찔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총기 탈취 범행에 실탄사격장은 속수무책이었다.
대형사고 우려
홍씨는 범행 당일 1시께 검문 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홍씨는 검거 직후 "자살하려고 총을 훔쳤다"라고 했지만 "우체국을 털려 했다"라고 진술을 바꿨다. 홍씨는 사업 실패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최근 식당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홍씨는 범행 이틀 전 실내사격장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답사를 진행했다. 총기를 훔친 뒤에는 피 묻은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행로를 바꿔가며 도주를 시도했다. 경찰은 홍씨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사고는 막았지만 실탄사격장의 허술한 관리·감독은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사고 직후 "전국 모든 실탄사격장에 대해 긴급 점검을 벌였다"라고 알렸다. 우리나라 실탄사격장은 모두 14곳에서 운영 중이며, 서울·부산·제주·경주 등 외국인이 자주 찾는 관광지역에 시설이 밀집돼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일본 야쿠자 조직원들이 부산 영도의 한 실탄사격장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당시 경찰은 언론을 통해 "관광을 온 야쿠자가 실탄사격장에 들러 돌아가며 총을 쏘았다"라고 전했다. 일본은 실탄을 삽입한 모든 총기류 사용이 전면 금지돼 있다.
이번 긴급 점검에서 경찰은 권총 안전고리 및 시건장치가 손으로 쉽게 열리는 등 총기 관리·감독의 부실이 드러난 시설에 대해 보완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제점이 확인된 시설은 9곳이다. 이들 사격장은 안전고리 등을 보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영업이 중단된다.
지난 5년 동안 '사격 및 사격장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사격장법)'로 적발된 사격장은 한 곳에 불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격장법에 의한 처벌은 한 건에 그쳤다. 2011∼2014년까지 단속에 의한 적발은 한 건도 없었다. 처벌받은 사업장도 비교적 경미한 과태료 10만원 처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가 일어난 실탄사격장을 제외하면 남은 8곳의 사격장 또한 같은 위험에 노출됐다. 사격장법에 따르면 사격장에는 사격선수 출신 혹은 전직 경찰 등 총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안전 관리자를 배치하게 돼 있다. 또 안전 관리자는 반드시 보조 직원과 함께 근무해야 한다.
그러나 권총이 피탈된 사격장에는 사격선수 출신인 전씨만 근무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고 이면에 안전불감증이란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부산 총기탈취범 4시간 도주 끝 검거
전국 사격장 권총 700정 실탄 50만발
지난 5일 부산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민기 의원은 "부산 4개 사격장에 125정의 총기가 있고 실탄은 12만발이 있다"라며 "전국 실내사격장에는 600∼700여정의 총기와 실탄 50만발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누군가 마음먹고 훔칠 수도 있는데 경찰은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추궁했다.
통신사 <뉴스1>에 따르면 이날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은 "실탄사격장 이용객 90%가 외국인인데 일본 관광객들이 특히 좋아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격 전 신분증 확인이 법으로 강제돼 있지 않은 데 대한 해명이다. 그러자 김 의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라고 했으며, 진 의원은 "국민의 안전보다 수익성이 중요하나"라고 꼬집었다.
경찰은 같은 날 정책브리핑을 통해 실내사격장 관리 대응 방안을 내놨다. 핵심 대책은 사로별 이중 안전고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해 사격자가 총기를 분리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경찰은 사격장 안전 관리자 2명 이상이 근무하는 상태에서만 이용자가 사격을 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경찰은 이용자가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허위로 기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운전면허증·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제출받아 본인여부를 확인한 후 사격장 관리자(혹은 보조인)가 직접 대여대장을 작성토록 할 방침이다. 이용자가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나 본인 확인이 안 될 시에는 총기 대여를 금지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탈취범 홍씨는 여주인 전씨에게 가짜 인적 사항을 일러준 뒤 실탄 50발을 받았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모두 가짜였다. 외국인 이용자가 많은 현황을 고려하면 실탄 지급 전 신원 확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국의 모든 실탄사격장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정에 맞게 CCTV를 설치하고, 안전 관리자 배치를 준수하고 있는 사격장도 있다. 이들 사격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면 여권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 소재 한 사격장은 사로마다 최루가스를 분사하는 기계를 설치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총기를 다루는 사업장은 늘 총기 사고의 위험성을 동반한다. 군에서 종종 발생하는 총기 인명 사고는 군인이 총기를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 개인의 총기 소지가 허가돼 있는 미국은 하루에 한 번 꼴로 크고 작은 총격 사건이 민간인 간에 발생한다.
당장 미국 오리건주의 총기난사범 크리스 하퍼(사망)는 지난 1일(현지시각) 무고한 시민 9명을 사살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10월 서울 양천구 소재 실내사격장에선 권총 탈취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A씨는 훔친 권총을 들고 은행을 습격해 1억5000만원을 챙겼다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A씨는 권총을 빼내는 과정에서 사격장 업주 부인에게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해 주겠다"라며 접근했다.
2009년 기준 8곳이었던 실내사격장은 올해 들어 14곳으로 늘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가 명분이다. 2009년 11월 부산 중구 소재 실내사격장에선 화재가 일어나 일본인 관광객을 포함해 10명이 숨졌다. 10년 사이 8∼14곳의 실내사격장에서 3번의 사건·사고가 일어난 통계는 그대로 묵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