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피탈로 본' 국내 실탄사격장 실태

일본 야쿠자도 종종 드나든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3일 부산 소재 한 실탄사격장에서 총기 피탈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검거됐지만 실탄사격장의 허술한 관리·감독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월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처럼 미흡한 안전 대책이 도마에 올랐다. 장전된 총기를 탈취한 범인은 4시간 가까이 부산 시내를 활보했다.

지난 3일 오전 9시20분께 부산 진구 소재 한 실탄사격장에서 45구경 권총이 사라졌다. 이날 20대 남성 홍모씨는 총기 1정과 실탄 18발을 들고 달아났다. 이를 제지하던 사격장 여주인 전모씨는 홍씨가 휘두른 흉기에 배와 허벅지 등을 찔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총기 탈취 범행에 실탄사격장은 속수무책이었다.

대형사고 우려

홍씨는 범행 당일 1시께 검문 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홍씨는 검거 직후 "자살하려고 총을 훔쳤다"라고 했지만 "우체국을 털려 했다"라고 진술을 바꿨다. 홍씨는 사업 실패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최근 식당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홍씨는 범행 이틀 전 실내사격장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답사를 진행했다. 총기를 훔친 뒤에는 피 묻은 옷과 신발을 갈아입고, 행로를 바꿔가며 도주를 시도했다. 경찰은 홍씨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사고는 막았지만 실탄사격장의 허술한 관리·감독은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사고 직후 "전국 모든 실탄사격장에 대해 긴급 점검을 벌였다"라고 알렸다. 우리나라 실탄사격장은 모두 14곳에서 운영 중이며, 서울·부산·제주·경주 등 외국인이 자주 찾는 관광지역에 시설이 밀집돼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일본 야쿠자 조직원들이 부산 영도의 한 실탄사격장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당시 경찰은 언론을 통해 "관광을 온 야쿠자가 실탄사격장에 들러 돌아가며 총을 쏘았다"라고 전했다. 일본은 실탄을 삽입한 모든 총기류 사용이 전면 금지돼 있다.

이번 긴급 점검에서 경찰은 권총 안전고리 및 시건장치가 손으로 쉽게 열리는 등 총기 관리·감독의 부실이 드러난 시설에 대해 보완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제점이 확인된 시설은 9곳이다. 이들 사격장은 안전고리 등을 보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영업이 중단된다.

지난 5년 동안 '사격 및 사격장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사격장법)'로 적발된 사격장은 한 곳에 불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격장법에 의한 처벌은 한 건에 그쳤다. 2011∼2014년까지 단속에 의한 적발은 한 건도 없었다. 처벌받은 사업장도 비교적 경미한 과태료 10만원 처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가 일어난 실탄사격장을 제외하면 남은 8곳의 사격장 또한 같은 위험에 노출됐다. 사격장법에 따르면 사격장에는 사격선수 출신 혹은 전직 경찰 등 총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안전 관리자를 배치하게 돼 있다. 또 안전 관리자는 반드시 보조 직원과 함께 근무해야 한다.

그러나 권총이 피탈된 사격장에는 사격선수 출신인 전씨만 근무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고 이면에 안전불감증이란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부산 총기탈취범 4시간 도주 끝 검거
전국 사격장 권총 700정 실탄 50만발

지난 5일 부산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민기 의원은 "부산 4개 사격장에 125정의 총기가 있고 실탄은 12만발이 있다"라며 "전국 실내사격장에는 600∼700여정의 총기와 실탄 50만발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누군가 마음먹고 훔칠 수도 있는데 경찰은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추궁했다.


통신사 <뉴스1>에 따르면 이날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은 "실탄사격장 이용객 90%가 외국인인데 일본 관광객들이 특히 좋아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격 전 신분증 확인이 법으로 강제돼 있지 않은 데 대한 해명이다. 그러자 김 의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라고 했으며, 진 의원은 "국민의 안전보다 수익성이 중요하나"라고 꼬집었다.

경찰은 같은 날 정책브리핑을 통해 실내사격장 관리 대응 방안을 내놨다. 핵심 대책은 사로별 이중 안전고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해 사격자가 총기를 분리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경찰은 사격장 안전 관리자 2명 이상이 근무하는 상태에서만 이용자가 사격을 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경찰은 이용자가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허위로 기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운전면허증·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제출받아 본인여부를 확인한 후 사격장 관리자(혹은 보조인)가 직접 대여대장을 작성토록 할 방침이다. 이용자가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나 본인 확인이 안 될 시에는 총기 대여를 금지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탈취범 홍씨는 여주인 전씨에게 가짜 인적 사항을 일러준 뒤 실탄 50발을 받았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모두 가짜였다. 외국인 이용자가 많은 현황을 고려하면 실탄 지급 전 신원 확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국의 모든 실탄사격장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정에 맞게 CCTV를 설치하고, 안전 관리자 배치를 준수하고 있는 사격장도 있다. 이들 사격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면 여권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울 소재 한 사격장은 사로마다 최루가스를 분사하는 기계를 설치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총기를 다루는 사업장은 늘 총기 사고의 위험성을 동반한다. 군에서 종종 발생하는 총기 인명 사고는 군인이 총기를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 개인의 총기 소지가 허가돼 있는 미국은 하루에 한 번 꼴로 크고 작은 총격 사건이 민간인 간에 발생한다.

당장 미국 오리건주의 총기난사범 크리스 하퍼(사망)는 지난 1일(현지시각) 무고한 시민 9명을 사살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10월 서울 양천구 소재 실내사격장에선 권총 탈취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A씨는 훔친 권총을 들고 은행을 습격해 1억5000만원을 챙겼다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A씨는 권총을 빼내는 과정에서 사격장 업주 부인에게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해 주겠다"라며 접근했다.

2009년 기준 8곳이었던 실내사격장은 올해 들어 14곳으로 늘었다. 일본인 관광객 유치가 명분이다. 2009년 11월 부산 중구 소재 실내사격장에선 화재가 일어나 일본인 관광객을 포함해 10명이 숨졌다. 10년 사이 8∼14곳의 실내사격장에서 3번의 사건·사고가 일어난 통계는 그대로 묵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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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