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 즉 사실과 픽션 즉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1973년 8월 9일, 아침 이른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집무실에 도착하여 책상에 앉아 막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한순간 노크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안중규 비서실장이 김운정 국무총리와 장경호 외무부 장관과 함께 들어섰다.
“각하!”
“임자들이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오?”
박 대통령이 김 총리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아울러 사전에 기별도 없이 들어 선 모습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상당히 곤란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갑자기 그 무슨 소리야!”
“장관께서 말씀 드리시지요.”
김 총리가 잠시 심호흡하고 장경호 장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 장관이 가볍게 머리를 조아렸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주일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그게‥‥‥.”
장 장관이 머뭇거리며 김 총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서서 그러지들 말고 앉아서 이야기 나눕시다.”
박 대통령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를 가리키며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박 대통령이 소파에 자리하자 일행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주시하다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 윤대중이 어제 오후 도쿄의 한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답니다.”
“윤대중이, 납치되다니요!”
장경호가 비록 직급은 장관이지만 박 대통령보다 네 살이나 연상인 관계로 항상 존대를 해왔던 터였다.
“현재 그 일로 일본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 외에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답니까?”
“현재 보고된 바로는 그 일에 우리 쪽 사람들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데 혐의를 두고 있다 합니다.”
“우리 쪽이라니요!”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우리 쪽을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김 총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우리 쪽이라면 중앙정보부에서 일을 벌였단 말인가?”
“정보부가 아니면 그런 일을 성사시킬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각하, 뭔가 집히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안 실장이 슬그머니 끼어들고는 김 총리의 얼굴을 주시했다.
“며칠 전 이병선 부장이 다녀가지 않았는가.”
“그랬었지요.”
“그러면 이병선 부장이!”
김 총리가 은근히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김 총리의 반응을 살피다 안 실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임자, 이 부장 들어오라 해.”
안 실장이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자 박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들었다. 이병선 중앙정보부장이 사전 연락도 없이 긴하게 보고할 일이 있다며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게 뭔가?”
이 부장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노란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윤대중의 동향입니다.”
“윤대중이 왜?”
“지금 윤대중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유신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급기야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결성하여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를 옹호하며 김일성과 회합하려 한답니다.”
“그런다고 김일성이 응하겠는가?”
“응하고 말고를 떠나 상당한 혼선을 주게 될 겁니다.”
박정희 지시? 중앙정보부장 일탈?
급박하게 전개된 3국 외교 전말은?
“무슨 사유로 그리 판단하는가?”
“윤대중이 김일성과 대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망명정부를 구성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김일성은 누구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혼돈스럽겠지요.”
“그래서.”
박 대통령이 심드렁하니 답하자 이 부장이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제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망명한 사람을 어떻게 제지하겠다는 말인가?”
“그래서 말씀인데.”
이 부장이 말하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사람, 그 습관은 여전하구먼.”
핀잔 아닌 핀잔에 이 부장이 슬그머니 자신의 뒷덜미를 쓸었다.
“이참에 아예‥‥‥.”
“아예, 뭔가!”
박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이 부장이 밭은기침을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까 합니다만.”
“제거하겠다는 말인가?”
“네, 각하!”
박 대통령이 잠시 턱을 괴었다.
“그 방법밖에 없는가?”
“그 인간에게 공갈 협박이 먹히겠습니까?”
“하기야.”
박 대통령이 창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면 제거하는 방향으로 일처리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 부장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임자.”
박 대통령이 담배를 힘차게 빨고 연기를 뿜으며 나직하게 이 부장을 불렀다.
“말씀 주십시오, 각하.”
“허락할 수 없네.”
의외의 답인지 이 부장이 눈을 깜빡였다.
“그 이유를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명분이 약해.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각하, 김일성과 애써 이룩한 일을 윤대중으로 인해 망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각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잘 알지. 임자의 목숨까지 저당잡혔었으니.”
지난해 남북 간에 이루어졌던 7.4 공동성명의 성사를 위해 이 부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었다. 당시 만일을 대비하여 여차하면 자결하겠다며 청산가리까지 휴대했었다.
“그런 일을 절대로 망칠 수 없습니다. 특히 윤대중이라는 놈 때문에.”
이 부장이 중간에 말을 멈추고 슬그머니 이를 갈았다.
“임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아. 일본도 그렇지만 미국도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수수방관하겠는가?”
“어차피 남북관계 변화의 시발은 미국의 움직임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사람하고는.”
박 대통령이 이 부장의 얼굴을 직시하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 이유를 알려달라는 듯 이 부장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비록 미국의 변화가 그 원인이 되었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도 변화되기를 바라겠는가.”
이 부장이 박 대통령의 완고한 말의 의미를 헤아린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여하튼 경거망동하지 말고 재고하게.”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