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①윤대중 납치사건의 서막

윤대중, 도쿄 호텔에서 납치되다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 즉 사실과 픽션 즉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1973년 8월 9일, 아침 이른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집무실에 도착하여 책상에 앉아 막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한순간 노크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안중규 비서실장이 김운정 국무총리와 장경호 외무부 장관과 함께 들어섰다.

“각하!”

“임자들이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오?”

박 대통령이 김 총리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아울러 사전에 기별도 없이 들어 선 모습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상당히 곤란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갑자기 그 무슨 소리야!”

“장관께서 말씀 드리시지요.”

김 총리가 잠시 심호흡하고 장경호 장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장 장관이 가볍게 머리를 조아렸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주일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그게‥‥‥.”

장 장관이 머뭇거리며 김 총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서서 그러지들 말고 앉아서 이야기 나눕시다.”

박 대통령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를 가리키며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박 대통령이 소파에 자리하자 일행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주시하다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 윤대중이 어제 오후 도쿄의 한 호텔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답니다.”

“윤대중이, 납치되다니요!”

장경호가 비록 직급은 장관이지만 박 대통령보다 네 살이나 연상인 관계로 항상 존대를 해왔던 터였다.
“현재 그 일로 일본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 외에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답니까?”

“현재 보고된 바로는 그 일에 우리 쪽 사람들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는 데 혐의를 두고 있다 합니다.”
“우리 쪽이라니요!”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우리 쪽을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김 총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우리 쪽이라면 중앙정보부에서 일을 벌였단 말인가?”

“정보부가 아니면 그런 일을 성사시킬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각하, 뭔가 집히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안 실장이 슬그머니 끼어들고는 김 총리의 얼굴을 주시했다.


“며칠 전 이병선 부장이 다녀가지 않았는가.”

“그랬었지요.”

“그러면 이병선 부장이!”

김 총리가 은근히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김 총리의 반응을 살피다 안 실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임자, 이 부장 들어오라 해.”

안 실장이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자 박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들었다. 이병선 중앙정보부장이 사전 연락도 없이 긴하게 보고할 일이 있다며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게 뭔가?”

이 부장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노란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윤대중의 동향입니다.”

“윤대중이 왜?”

“지금 윤대중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유신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급기야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결성하여 북한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를 옹호하며 김일성과 회합하려 한답니다.”

“그런다고 김일성이 응하겠는가?”

“응하고 말고를 떠나 상당한 혼선을 주게 될 겁니다.”

박정희 지시? 중앙정보부장 일탈?
급박하게 전개된 3국 외교 전말은?

“무슨 사유로 그리 판단하는가?”

“윤대중이 김일성과 대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망명정부를 구성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김일성은 누구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혼돈스럽겠지요.”

“그래서.”

박 대통령이 심드렁하니 답하자 이 부장이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제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망명한 사람을 어떻게 제지하겠다는 말인가?”

“그래서 말씀인데.”

이 부장이 말하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사람, 그 습관은 여전하구먼.”

핀잔 아닌 핀잔에 이 부장이 슬그머니 자신의 뒷덜미를 쓸었다.

“이참에 아예‥‥‥.”

“아예, 뭔가!”

박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이 부장이 밭은기침을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까 합니다만.”

“제거하겠다는 말인가?”

“네, 각하!”

박 대통령이 잠시 턱을 괴었다.

“그 방법밖에 없는가?”

“그 인간에게 공갈 협박이 먹히겠습니까?”

“하기야.”

박 대통령이 창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면 제거하는 방향으로 일처리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이 가타부타 답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 부장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임자.”

박 대통령이 담배를 힘차게 빨고 연기를 뿜으며 나직하게 이 부장을 불렀다.

“말씀 주십시오, 각하.”

“허락할 수 없네.”

의외의 답인지 이 부장이 눈을 깜빡였다.

“그 이유를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명분이 약해.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각하, 김일성과 애써 이룩한 일을 윤대중으로 인해 망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각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잘 알지. 임자의 목숨까지 저당잡혔었으니.”

지난해 남북 간에 이루어졌던 7.4 공동성명의 성사를 위해 이 부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었다. 당시 만일을 대비하여 여차하면 자결하겠다며 청산가리까지 휴대했었다.

“그런 일을 절대로 망칠 수 없습니다. 특히 윤대중이라는 놈 때문에.”

이 부장이 중간에 말을 멈추고 슬그머니 이를 갈았다.

“임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아. 일본도 그렇지만 미국도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수수방관하겠는가?”

“어차피 남북관계 변화의 시발은 미국의 움직임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사람하고는.”

박 대통령이 이 부장의 얼굴을 직시하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 이유를 알려달라는 듯 이 부장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비록 미국의 변화가 그 원인이 되었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도 변화되기를 바라겠는가.”

이 부장이 박 대통령의 완고한 말의 의미를 헤아린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여하튼 경거망동하지 말고 재고하게.”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 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한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날 지난 2022년 재·보궐 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계(친 윤석열)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새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당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차기 당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반면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 정부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 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2024년 총선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동훈 급부상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서 제일 빛난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친한계(친 한동훈)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서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다”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은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서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서 “로텐더홀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8분이 지나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란 취지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에도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돌아다녔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서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당 대표 직에 당선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