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박근혜정부 폭풍사정 막후

위기의 영일만 친구들 '아~옛날이여!'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경북 영일·포항 출신의 공무원(5급 이상) 모임인 '영포회'는 지난 정권 당시 청와대를 비롯해 정·재계의 요직을 꿰찼다. 영포회와 가까우면 권세를 누렸고, 일부는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 그 정점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실세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진용을 꾸렸다. 정권이 바뀌고 3년차가 돼서야 영포회에 대한 사정작업이 재개됐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영일만 친구들'을 함께 불렀던 이들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SD(이상득 전 의원)까진 가지 않겠어? 모르지. 중간에 나도 모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자세한 건 지켜보자고."

지난 4월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의 향배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3월30일자 '표적수사설 포스코 사정 난항 막전막후'란 기사에서 포스코 수사가 시작된 경위를 알린 바 있다.

이상득 조준
포스코 사정

포스코에 대한 사정작업은 올 1월 초 시작됐다. 사실상 BH(청와대)가 내린 하명수사다. 핵심 의혹 가운데 새로운 것은 없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벌이기 위한 구실 찾기에 골몰했다.

이 와중에 포스코 동남아사업단 부실 감사 결과가 검찰에 포착됐다. '정준양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던 내부 인사는 검찰 및 신문기자와 접촉했다. 유명 언론매체가 취재에 들어가자 포스코가 '억대 인사'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검찰은 이번 수사 초기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통해 이상득 전 의원을 법정에 세우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양정(정준양·정동화)으로 향하는 '인의 장막'은 생각보다 두터웠다. 정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지름길'로 삼았던 동양종합건설에 대한 수사 역시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당초 검찰은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을 수사해 이 전 의원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배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풀려났다.

지난 정권 당시 검찰이 묵살한 정 전 회장의 배임 의혹이 새로운 것 마냥 언론에 터져 나왔다. 검찰 안팎에서 '무리한 수사' '뒷북 수사'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수사 선상에 오른 10여개의 하청업체 대표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닫았다.

지난 8월 무렵 'SD'라는 이름이 언론사 사회면에 등장했다. 애피타이저보다 메인요리가 먼저 나온 격이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된 후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가 돌연 '이상득 카드'를 꺼냈다. 수사 방향을 돌리자 물꼬가 터졌다.

경북 영일·포항 출신들 나란히 수사선상
포스코 수사로 물꼬…이상득 소환 초읽기

검찰은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켐텍과 티엠테크 간 부당거래를 적발했다. 티엠테크는 이 전 의원의 측근 박모씨가 대표를 역임한 회사다. 박씨는 정 전 회장의 취임과 함께 티엠테크 지분을 매입해 수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또 처가쪽 인척을 동원해 10억여원의 임금을 챙겼다. 이 중 일부는 이 전 의원에게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씨의 계좌를 확인하는 한편 이 전 의원과 관련된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이 전 의원에 대한 수사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검찰은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또 다른 축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연루된 '보은 인사' 의혹이다. 지난 2009년 포스코 회장 자리를 놓고 정 전 회장과 갈등을 빚은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회장은 이달 초 비밀리에 검찰에 소환됐다.


윤 전 회장은 박 전 차관으로부터 직접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박 전 차관은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 관계자들과 만나 "정준양을 회장으로 뽑으라"라며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박영준과 만나려면 수천만원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또 박 전 차관이 몇몇 이권에 개입했다는 투서도 돌았다. 여러 정황상 박 전 차관은 잠재적인 수사대상으로 지목된다. 또 소문의 진위와는 별개로 박 전 차관은 이 전 의원의 '분신'을 자처해왔던 만큼 검찰 소환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검찰 입장에서 포스코 사정은 언론플레이만 잘하면 실패할 수 없는 수사다. 사건에 연루된 정치권 이해관계자가 많은 탓이다. 보은 인사 의혹은 이사회 당시 의결권을 갖고 있던 안철수 의원을 겨눌 수 있는 꽃놀이패다. 포스코 협력사와 결탁해 금품을 전달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 역시 검찰 소환이 불가피하다. 이 의원은 포항에서만 4선을 한 중진의원이다.

고개 숙인
영일만 친구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팬클럽 MB연대도 수사대상이다. MB연대 대표 한모씨가 대표로 있는 청소 용역업체 E사는 티엠테크와 유사한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 받아 이득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키맨'들의 혐의가 하나둘 벗겨지면서 유보를 거듭했던 정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재검토되고 있다.

최근 사정기관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가 "이 전 의원과 영포회를 노린 기획수사"라고 말했다. 수사 핵심 증인을 보호해가며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한 검찰은 수사 착수 6개월여 만에 '영일만 친구들'을 사면초가로 내모는 데 성공했다. 수사가 지연되면서 탈도 많았지만 소기의 성과는 이뤄냈다는 평가다.

단 현 수사팀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김진태 검찰총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껏 나온 것 외에 큰 건이 몇 개 더 있는데 할지 안할지는 다음 수뇌부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귀띔했다. 힘을 잃은 김 총장 대신 포스코 수사와 관련한 주요 '사인'은 청와대에서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들어 막을 올린 대한체육회 수사는 영포회 사정의 연장선에 있다. 검찰은 지난 15일 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수사의 실질적인 타깃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이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6월10일자 '<단독> 검찰, 문체부-대한체육회 갈등 내사 왜?'라는 기사에서 검찰의 사정 움직임을 전한 바 있다.

대한체육회 내사는 체육단체 통합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권력다툼이 빌미가 됐다. 정부 및 여당의 시각에서 대한체육회는 포기할 수 없는 '표밭'이다.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대한체육회는 선거를 앞두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다.

바꿔 말하면 대한체육회 수사는 김 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신뢰가 바닥났음을 의미한다. 김 회장은 동지상고 출신으로 이 전 대통령과 동창이며, 영포회의 일원으로도 알려졌다. 체육계 관계자는 "김 회장의 옷을 벗기고 믿을만한 친박 인사를 대한체육회 수장에 앉히려는 속셈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포스코 판박이
농협중앙회 수사

농협중앙회에 대한 수사도 가속이 붙었다. 검찰은 'MB맨'으로 분류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을 전방위 압박하고 있다. 지난 23일 검찰은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업체를 압수수색해 농협중앙회와의 거래내역 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최 회장의 측근인 손동우 전 경주 안강농협 이사가 해당 업체에 발주 물량을 몰아준 뒤 뒷돈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농협물류의 협력업체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손 전 이사를 구속했다. 검찰은 손 전 이사를 통해 최 회장의 비리를 들춰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실제 시중엔 농협의 대형 공사 발주와 관련한 범죄 첩보가 나돌고 있다. 최 회장의 또 다른 측근이 연루됐으며, 한 방송사가 취재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 회장은 올해 말 임기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경북 경주에서 총선 출마를 검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함께 공천은 물 건너 간 모습이다.

민영진 전 KT&G 회장에 대한 수사도 영포회 사정의 한 갈래로 여겨진다. 검찰 관계자는 "최 회장과 민 전 회장 모두 MB때 사람인데 VIP 입장에선 곱게 보일 리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체육회·농협·KT&G 동시수사…영포회 타깃
총선 앞둔 TK연합 SD 공천비리 '만지작'

검찰은 지난달 13일 KT&G 협력업체 3곳의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의 몸통으로는 민 전 사장을 직접 언급했다. "협력업체가 만든 돈이 민 전 사장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민 전 사장이 자회사를 인수·운영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 전 시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7월29일 KT&G 사장직에서 사퇴했다.

공교롭게도 검찰 수사의 칼날은 모두 '영포라인'을 향하고 있다. 정치성향으로 보면 친이계다. 같은 경북 출신이라도 범대구권(친박계)과 범포항권은 결이 다르다. 때문에 이번 수사는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친박계가 친이계를 손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유는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기싸움이 유력하다. 포항 일대의 패권을 쥐고 있는 영포회를 공격해 그들이 선거에 나서거나 도움을 줄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포항 패권의 맨꼭대기에는 MB, 바로 이 전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정부의 이번 MB사정은 유착 구조에 초점을 맞췄던 '방산비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현직 국회의원을 직접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연루된 공천비리와 관련한 내사를 끝냈다. 경북 지역 현역 국회의원 A가 내사망에 걸려들었다.

A의원은 포스코와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검찰은 지난 정부 당시 총선을 앞두고 이 의원이 경북지역 각 지역구를 조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A의원으로부터 수억원의 공천헌금을 챙겼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역구 조정 과정에서 낙오한 일부 현역의원은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청와대는 내년 총선에서 친박계 다수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유하자면 모와 정을 들고 박힌 친이계를 빼내야 하는 처지다. 대통령 퇴임 이후가 걸린 선거라 청와대로서는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시형(이 전 대통령의 아들)씨가 이사로 있는 다스(DAS)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흘러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명박 실소유주' 의혹이 불거진 다스는 포스코보다도 수사의 난이도가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무리하게  들어갔다가는 역풍을 맞게 될 우려가 있다. 한식 세계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를 겨눈 수사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친이계 빼고
친박계 점령

야권이 고삐를 쥐고 있는 4대강·자원외교 비리는 이번 사정작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진다. 야당이 주도한 모양새라 현 정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사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린 정용욱씨의 소환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정씨는 지난 2011년 최 전 위원장을 대신해 억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이자 해외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정씨의 강제 구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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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