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먹은' M&A 제왕 김병주 실체

‘7조7000억 베팅’ 대기업 총수 안 부럽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아시아·태평양 기업인수합병(M&A) 역사상 최고 인수가 기록이 깨졌다.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7조7000억원대에 팔면서다. 업계는 엄청난 규모의 홈플러스를 단숨에 삼킨 인수업체에 눈길이 쏠렸다. 인수업체는 국내 토종 사모펀드(PE) MBK파트너스. 자연스레 MBK파트너스 수장에게도 관심이 집중됐다. 주인공은 김병주 회장이다.

국내 사모펀드 업체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6800억원에 지분 100%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로써 종전 아시아 M&A 역사사상 최고 인수가 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종전 인수 최고가는 지난 2007년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인수 금액 6조 6765억원.
 
인문학도 소년
M&A 거물 성장
 
홈플러스 매각 과정은 그 규모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매각 과정에서 김병주 회장의 역할도 부각됐다. 테스코가 지난 6월 5일 HSBC증권을 홈플러스의 매각주관사로 선정하면서 본격적인 입찰경쟁이 시작됐다. 인수에 참여한 후보자는 MBK를 포함해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KKR 등 글로벌 사모투자전문회사(PE)였다. 6월 24일 예비제안서가 마감되면서 경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인수 희망자는 MBK, KKR, 어피니티, 칼라일,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 세계적인 PE들이 대거 참여했다. MBK의 인수에 험로가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7월1일 적격후보(숏리스트)가 발표됐다. 숏리스트로 선정된 업체는 MBK파트너스, KKR, 어피니티, 칼라일 등이었다. 다행히도 글로벌 PE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MBK의 인수 가능성은 높아졌다. 7월23일에 회사 현황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차례 홍콩에서 모인 후 8월 매각을 위한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
 

이 기간 MBK 김병주 대표와 실무진들은 휴가 기간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인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마지막까지 MBK의 인수를 어렵게 만드는 회사는 글로벌 PE인 KKR이었다. KKR은 어피니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MBK를 압박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KKR컨소시엄은 투자 자금 증빙에 실패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결국 MBK는 홈플러스 인수에 성공했다. 국내 M&A사를 새로 쓴 순간이었다. 10년차에 접어든 국내 토종 PE가 오랜 전통을 가진 글로벌 PE를 이긴 것도 업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 회장에게는 6년전 OB맥주 인수전에서 KKR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한 셈이다. 김 회장은 사석에서 종종 OB맥주와의 인수전 당시를 회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승리에 대한 의미는 남다를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을 전공한 김 대표의 삶은 치열한 승부사의 인생과 닮아있다. 이 같은 모습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발간한 <1조원의 승부사들>(저자:박동휘, 좌동욱)에서 잘 나타나 있다. 총 304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0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때였다.
 
“정말 막막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무조건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그때부터 김 회장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소설류를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문학도의 꿈을 꾸게 됐다. 평소에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책읽기”라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 됐다.
 
ING생명, 네파, 씨앤엠, 코웨이 등 인수
 한국·일본·중국서 총 22개 기업 성공
 
키 작은 동양의 아이라고 놀림 받고 소외되는 것이 싫어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엔 야구부에서 활약했고, 대학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한때는 영화감독과 야구 구단주를 꿈꾸기도 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인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었지만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의 경험이 이후 김 회장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고급스러운 영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달변가’, ‘영어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평가할 정도다. 실제로 2009년 유럽 대형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최고 투자책임자가 그의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에 압도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저 아시아인이 도대체 누굽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깊은 인문학 지식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누구라도 후덕한 인상과 겸손한 말솜씨에 반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은 월가의 골드만삭스였다. 김병주 회장은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코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해 다시는 월 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20대의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얻은 경험들은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다. 
 
OB맥주 패배 
이번에 설욕
 
당시 골드만삭스는 적대적 M&A의 방어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M&A 광풍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더 큰 도전을 위해 하버드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 MBA를 마친 김병주 회장은 발걸음도 하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월 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골드만삭스라는 친정으로의 복귀였다. 그 이후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를 거치며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반을 더 일한 뒤, 33세이던 1996년 살로만 브라더스로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살로먼에서의 생활도 3년을 넘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칼라일에 들어간 이후 1998년 외환위기가 불러온 한국 M&A 시장의 급팽창, 그리고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M&A 맹활약 등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것을 기반으로 김병주 회장은 37세이던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이는 칼라일 그룹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거래였고, 칼라일그룹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이기도 했다. 심지어 입사 1년 만에 성사시킨 거래였다.

 
3억 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원금 대비 2.3배의 수익을 칼라일 그룹에 안겨줬다. 칼라일그룹이 설립 이래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었다. 이게 2004년 초의 일이었다. 2004년 12월, 국내에 사모펀드법이 태동할 무렵 김병주는 이미 세계적인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에서 ‘거물’로 성장했다. 그는 칼라일그룹 전체 매니지먼트 커미피 7인 멤버 중 하나였다.
 
칼라일그룹 경영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이 자리의 참석자는 창업자 3명과 유럽 헤드, 아시아 헤드, 벤처 헤드 등이었다. 그 아시아 헤드가 바로 김병주 회장이었다. 그는 한국 시장에 엄청난 변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드디어 정부가 주도하는 사상 초유의 사모펀드 시장이 한국에 열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10세 때 홀로 미국 땅으로 ‘성공 신화’
설립 10년만에 아시아 최대 PE로 키워
 

2005년 3월 1일, 하버드 동문인 윤종하 현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병주 회장과 인척간인 부재훈 대표와 홍콩 헤드였던 케이시 쿵, 일본 헤드였던 켄스케 시즈나카 등 6명의 칼라일그룹 멤버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 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데뷔했다. 저자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그가 독립을 선언하자 칼라일그룹은 발칵 뒤집어졌다고 설명했다. 어쨋든 자신의 이름 석자 MBK (마이클 병주 킴)를 내건 사모펀드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이름 앞에 붙길 원한 수식어는 딱 두 가지였다.
 
‘로컬’과 ‘독립’. 김병주 회장은 “사모펀드 역사상 최초로 한, 중, 일을 포괄하는 동북아 사모펀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투자 지역으로도 기존과 다른 형태의 펀드였기에 운용도 아시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당시만 해도 아시아 투자를 하는 데 뉴욕에 있는 미국 보스들의 결제를 받아야 했어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MBK는 김 회장의 계획대로 상반기 현재 자산규모 82억 달러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PE로 성장했다. 서울과 도쿄, 상하이, 홍콩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MBK의 투자 기업들의 매출액은 미화 287억 달러, 직원 수는 4만1065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ING생명을 1조8400억원에 사들였고, 앞서 아웃도어업체 네파, 케이블방송사업자 씨앤엠(C&M), 정수기업체 코웨이, HK저축은행,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에이팩로지스틱스(중국), 루예제약(중국), 뉴차이나생명(중국), 인보이스(일본), 고메다(일본) 등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총 22개 기업을 인수한 바 있다. 한국기업의 보유 비중은 50% 수준이다.
 
박태준 사위
결혼도 눈길
 

김 회장이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그의 장인인 고 박태준 전 총리(1927∼2011)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고 박 전 총리는 1962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1968년 포항종합제철소를 설립했다. 정가에는 1997년 국회의원으로 입문해 자민련 총재까지 지냈으며, 2000년 1월 32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4개월만에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을 받고 물러났다. 퇴임 후 그는 포스코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김 회장의 부인 이력도 눈길을 끈다. 고 박 전 총리의 넷째 딸이자 김 회장의 부인인 박경아 씨는 과거 전두환 아들 전재용씨와 결혼했으나 이혼한 이력이 있다. 김 회장과의 결혼은 재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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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