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먹은' M&A 제왕 김병주 실체

‘7조7000억 베팅’ 대기업 총수 안 부럽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아시아·태평양 기업인수합병(M&A) 역사상 최고 인수가 기록이 깨졌다.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7조7000억원대에 팔면서다. 업계는 엄청난 규모의 홈플러스를 단숨에 삼킨 인수업체에 눈길이 쏠렸다. 인수업체는 국내 토종 사모펀드(PE) MBK파트너스. 자연스레 MBK파트너스 수장에게도 관심이 집중됐다. 주인공은 김병주 회장이다.

국내 사모펀드 업체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6800억원에 지분 100% 인수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이로써 종전 아시아 M&A 역사사상 최고 인수가 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종전 인수 최고가는 지난 2007년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인수 금액 6조 6765억원.
 
인문학도 소년
M&A 거물 성장
 
홈플러스 매각 과정은 그 규모만큼이나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매각 과정에서 김병주 회장의 역할도 부각됐다. 테스코가 지난 6월 5일 HSBC증권을 홈플러스의 매각주관사로 선정하면서 본격적인 입찰경쟁이 시작됐다. 인수에 참여한 후보자는 MBK를 포함해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KKR 등 글로벌 사모투자전문회사(PE)였다. 6월 24일 예비제안서가 마감되면서 경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인수 희망자는 MBK, KKR, 어피니티, 칼라일,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 세계적인 PE들이 대거 참여했다. MBK의 인수에 험로가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7월1일 적격후보(숏리스트)가 발표됐다. 숏리스트로 선정된 업체는 MBK파트너스, KKR, 어피니티, 칼라일 등이었다. 다행히도 글로벌 PE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MBK의 인수 가능성은 높아졌다. 7월23일에 회사 현황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차례 홍콩에서 모인 후 8월 매각을 위한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
 

이 기간 MBK 김병주 대표와 실무진들은 휴가 기간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인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마지막까지 MBK의 인수를 어렵게 만드는 회사는 글로벌 PE인 KKR이었다. KKR은 어피니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MBK를 압박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KKR컨소시엄은 투자 자금 증빙에 실패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결국 MBK는 홈플러스 인수에 성공했다. 국내 M&A사를 새로 쓴 순간이었다. 10년차에 접어든 국내 토종 PE가 오랜 전통을 가진 글로벌 PE를 이긴 것도 업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 회장에게는 6년전 OB맥주 인수전에서 KKR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한 셈이다. 김 회장은 사석에서 종종 OB맥주와의 인수전 당시를 회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승리에 대한 의미는 남다를 것으로 판단된다.
 
인문학을 전공한 김 대표의 삶은 치열한 승부사의 인생과 닮아있다. 이 같은 모습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발간한 <1조원의 승부사들>(저자:박동휘, 좌동욱)에서 잘 나타나 있다. 총 304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10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때였다.
 
“정말 막막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무조건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그때부터 김 회장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소설류를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문학도의 꿈을 꾸게 됐다. 평소에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책읽기”라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 됐다.
 
ING생명, 네파, 씨앤엠, 코웨이 등 인수
 한국·일본·중국서 총 22개 기업 성공
 
키 작은 동양의 아이라고 놀림 받고 소외되는 것이 싫어 운동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엔 야구부에서 활약했고, 대학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한때는 영화감독과 야구 구단주를 꿈꾸기도 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인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었지만 결국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때의 경험이 이후 김 회장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국내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고급스러운 영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달변가’, ‘영어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평가할 정도다. 실제로 2009년 유럽 대형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최고 투자책임자가 그의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에 압도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저 아시아인이 도대체 누굽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깊은 인문학 지식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누구라도 후덕한 인상과 겸손한 말솜씨에 반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은 월가의 골드만삭스였다. 김병주 회장은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코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해 다시는 월 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20대의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얻은 경험들은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다. 
 
OB맥주 패배 
이번에 설욕
 
당시 골드만삭스는 적대적 M&A의 방어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M&A 광풍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더 큰 도전을 위해 하버드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 MBA를 마친 김병주 회장은 발걸음도 하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월 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골드만삭스라는 친정으로의 복귀였다. 그 이후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를 거치며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반을 더 일한 뒤, 33세이던 1996년 살로만 브라더스로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살로먼에서의 생활도 3년을 넘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칼라일에 들어간 이후 1998년 외환위기가 불러온 한국 M&A 시장의 급팽창, 그리고 외국계 사모펀드들의 M&A 맹활약 등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것을 기반으로 김병주 회장은 37세이던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하면서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이는 칼라일 그룹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거래였고, 칼라일그룹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이기도 했다. 심지어 입사 1년 만에 성사시킨 거래였다.

 
3억 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원금 대비 2.3배의 수익을 칼라일 그룹에 안겨줬다. 칼라일그룹이 설립 이래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었다. 이게 2004년 초의 일이었다. 2004년 12월, 국내에 사모펀드법이 태동할 무렵 김병주는 이미 세계적인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에서 ‘거물’로 성장했다. 그는 칼라일그룹 전체 매니지먼트 커미피 7인 멤버 중 하나였다.
 
칼라일그룹 경영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이 자리의 참석자는 창업자 3명과 유럽 헤드, 아시아 헤드, 벤처 헤드 등이었다. 그 아시아 헤드가 바로 김병주 회장이었다. 그는 한국 시장에 엄청난 변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드디어 정부가 주도하는 사상 초유의 사모펀드 시장이 한국에 열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10세 때 홀로 미국 땅으로 ‘성공 신화’
설립 10년만에 아시아 최대 PE로 키워
 

2005년 3월 1일, 하버드 동문인 윤종하 현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병주 회장과 인척간인 부재훈 대표와 홍콩 헤드였던 케이시 쿵, 일본 헤드였던 켄스케 시즈나카 등 6명의 칼라일그룹 멤버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 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데뷔했다. 저자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그가 독립을 선언하자 칼라일그룹은 발칵 뒤집어졌다고 설명했다. 어쨋든 자신의 이름 석자 MBK (마이클 병주 킴)를 내건 사모펀드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이름 앞에 붙길 원한 수식어는 딱 두 가지였다.
 
‘로컬’과 ‘독립’. 김병주 회장은 “사모펀드 역사상 최초로 한, 중, 일을 포괄하는 동북아 사모펀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투자 지역으로도 기존과 다른 형태의 펀드였기에 운용도 아시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당시만 해도 아시아 투자를 하는 데 뉴욕에 있는 미국 보스들의 결제를 받아야 했어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MBK는 김 회장의 계획대로 상반기 현재 자산규모 82억 달러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PE로 성장했다. 서울과 도쿄, 상하이, 홍콩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MBK의 투자 기업들의 매출액은 미화 287억 달러, 직원 수는 4만1065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ING생명을 1조8400억원에 사들였고, 앞서 아웃도어업체 네파, 케이블방송사업자 씨앤엠(C&M), 정수기업체 코웨이, HK저축은행,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에이팩로지스틱스(중국), 루예제약(중국), 뉴차이나생명(중국), 인보이스(일본), 고메다(일본) 등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총 22개 기업을 인수한 바 있다. 한국기업의 보유 비중은 50% 수준이다.
 
박태준 사위
결혼도 눈길
 

김 회장이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그의 장인인 고 박태준 전 총리(1927∼2011)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고 박 전 총리는 1962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1968년 포항종합제철소를 설립했다. 정가에는 1997년 국회의원으로 입문해 자민련 총재까지 지냈으며, 2000년 1월 32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4개월만에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을 받고 물러났다. 퇴임 후 그는 포스코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김 회장의 부인 이력도 눈길을 끈다. 고 박 전 총리의 넷째 딸이자 김 회장의 부인인 박경아 씨는 과거 전두환 아들 전재용씨와 결혼했으나 이혼한 이력이 있다. 김 회장과의 결혼은 재혼인 셈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