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36)정한근 한보그룹 부회장

수백억 빼돌리고 해외 잠적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36화는 750억3400만원을 체납한 동아시아가스(EAGC)의 실소유주 정한근씨다.

고액체납자 정한근씨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그의 행적은 15년 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근씨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4남으로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됐다. IMF 직전에는 한보그룹 부회장이란 직함도 달았다.

15년째 행방불명

정태수 일가는 각각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 정 회장은 1997년 1월부터 주민세 등 78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28억51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정 회장은 1992년부터 증여세 등 73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누적된 체납액은 2225억2700만원이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12월29일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⑤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편에서 정 회장의 숨겨진 재산과 근황 등을 조명한 바 있다. 당시 그의 아들 한근씨는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근씨는 1997년부터 증여세 등 15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한근씨가 체납한 세금은 293억8800만원이다.

정태수 일가가 떼먹은 세금의 합은 국세청 기준으로만 3199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거둬갈 세금까지 더하면 실제 체납액은 3300억원을 초과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이를 징세할 대안이 없었다. 정 회장과 한근씨가 한국을 떠나는 동안 우리 사법당국은 일손을 놓고 있었다.


특히 한근씨는 1998년 한보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취를 감췄다. 수사당국의 신병 확보가 늦어지면서 한근씨는 도주할 시간을 벌었다. 이후 미국에서 한근씨를 봤다는 소문이 무성할 뿐 실제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한보그룹이 살포해 놓은 뇌물이 어마어마해 그를 잡지 않는 것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행정당국 관계자는 "안 잡는 것이 아니라 못 잡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음먹고 해외에서 잠적한 사람의 거처를 알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근씨 같은 경우) 자신 명의로 된 재산도 없을 텐데 힘들여 잡아봐야 무슨 실효가 있겠느냐"라며 "한 세무 공무원이 담당하는 체납자만 적게 잡아도 수백명인데 한근씨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한근씨는 반드시 잡혀야 될 이유가 있다. 그는 지명수배자다. 지난 2008년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한근씨를 불구속기소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한근씨는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을 위해 설립된 동아시아가스㈜ 이사를 지내면서 회사 임직원들과 짜고 회사돈 3270만달러(당시 환율기준 323억5000만원)를 스위스 소재 한 은행의 차명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한근씨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점을 고려해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소를 결정했다.

국세청 681억3500만원 서울시 69억원
스위스은행 차명계좌 수천만달러 은닉
 

한근씨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탈세를 실행한 1세대 가운데 한 명이다. 한근씨가 연루된 민사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그의 범행수법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한근씨가 실소유주로 지목된 EAGC라는 회사가 있다. 언론에선 한글로 순화시켜 동아시아가스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EAGC는 '주식회사 이에이지씨' 'EAGC International Ltd'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 회사는 모두 EAGC가 만든 페이퍼컴퍼니다.
 


EAGC는 1996년 8월 현금 300억원을 들여 러시아에 있는 루시아석유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당시 EAGC는 미화 2512만달러에 루시아석유회사의 주식 1237만5000주를 취득했다. 지분율은 27.5%였다. 또 1449만달러를 투자담보금으로 러시아 수출입은행에 예치했다. 결론적으로 EAGC는 루시아석유회사를 통해 러시아 이르쿠츠크 지역 천연가스전 개발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1997년 초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고 계열사인 EAGC의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한근씨가 움직였다. 한근씨는 대표이사였던 전모씨, 기획부장 임모씨 등과 공모해 루시아석유회사 주식에 대한 불법 처분을 감행했다.

한근씨는 1997년 11월 EAGC가 소유하고 있던 주식 가운데 900만주를 러시아에 있는 시단코사에 매각하기로 계약했다. 예상 매각대금은 5790만달러였다. 그런데 한근씨는 이 과정에서 남은 주식 매각과 관련해 날조된 계약서를 작성했다. 머스틸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에 540만주를, 보이드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에 360만주를 매각한 것처럼 꾸미고 계약대금은 각각 1512만달러, 1080만달러라고 기재했다. 실제 매각대금 중 2680만달러는 해외로 은닉했다.

문제의 비자금은 스위스 취리히 소재 히포스위스 은행에 윌카스사 명의로 예치됐다. 이 가운데 2230만달러는 1998년 3월 한근씨의 지시에 따라 싱가포르 소재 디비에스 은행에 송금됐다. 예금주는 '미주 인터내셔널 PTE'였다.

1998년 4월 한근씨는 말레이시아 자유무역지대에 투자목적회사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회사 자본금은 1달러에 불과했다.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의 주소지는 EAGC가 말레이시아에 세운 법인인 'EAGC International Ltd'의 주소지와 같았다. 이들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같은 달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은 '아시아엠 앤드 에이'라는 주식회사를 대리인으로 앞세워 EAGC에 30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외국인 투자신고서를 한국에 제출했다. 다음달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은 시티은행 서울지점에 2100만달러를 역으로 송금했다. 사우스아시아 걸프 코퍼레이션은 EAGC가 발행한 신주인수권 600만1주를 모두 사들여 EAGC의 대주주가 됐다. EAGC가 이 같은 거래로 챙긴 돈은 3270만달러에 달했다.

유령회사 이용

EAGC의 등기상 대표는 송태주씨다. 그러나 송씨는 한근씨의 하수인이었을 뿐 실제 책임은 한근씨에게 있다. EAGC(동아시아가스)는 1997년부터 근로소득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과세한 세금은 387억4700만원이다. EAGC는 1999년 3월부터 주민세 등 16건의 지방세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68억9900만원이다.

최근 세무당국 관계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정 회장이 아직 중앙아시아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정 회장을 돕는 세력이 한근씨를 비롯한 자녀들이라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또 검찰에 따르면 한근씨는 스위스 외에도 미국 등에 비자금 계좌를 따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에서 의문은 다시 돌아온다. 한근씨는 못 잡는 것일까, 아니면 안 잡는 것일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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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