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대작 가족 모시기 현대판 음서제 백태

금수저 물고 태어나 취직까지 쾌속직진

[일요시사 사회2팀] 박호민 기자 = 장기 경기 불황에 국민 모두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다. 일단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녹록치 않은 벽에 부딪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권도 이를 아는 모양새다. 쉽지 않은 취업시장에서 자신의 친인척이 홀로 헤매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나 보다. 취업청탁이라는 형태로 ‘친인척 사랑’을 표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가족사랑(?) 시비에 휘말린 정치인들을 확인했다.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딸 취업청탁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다. 최근 고용 절벽의 상황에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바로 합격통지
특혜취업 시비
 
지난 2013년 9월 윤 의원의 딸 윤모씨는 LG디스플레이 변호사 채용 부문에 합격했다. 이 과정에서 윤 의원이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전화해 “(딸이) 지원했는데 실력이 되는 아이면 들여다봐 달라”고 말한 사실이 지난 13일 한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문제는 윤 의원의 지역구인 파주에는 LG디스플레이의 대규모 공장이 있어 회사 측이 윤 의원의 전화를 취업청탁 전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일선 재계 관계자는 “유력 인사의 자녀가 이력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데 해당 유력인사가 직접 자녀의 지원 사실을 알려줄 경우 사실상 취업청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한 목소리로 윤 의원을 질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윤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했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17일 현안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표가 딸의 특혜채용 의혹에 휘말린 윤 의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당 윤리심판원에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역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윤후덕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본인이 반성하고 사죄했지만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해 징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윤 의원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했다. 윤 의원은 자신의 커뮤니티를 통해 “저의 딸 채용 의혹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제 딸은 회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모두 저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청년실업 110만명 비정규직 600만명
정치인-기업 위험한 취업거래 도마
 
윤 의원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던 여당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져 머쓱한 상황을 맞았다.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이 아들 특혜취업 의혹에 휩싸인 것. 청년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법조인 572명은 정부법무공단에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아들인 로스쿨 출신 김모씨 채용 당시의 서류심사 및 면접평가 자료 등을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이들은 정부법무공단이 2013년 9월 채용 공고를 낼 때 지원자격으로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라고 공지했다가 불과 두 달 만에 “2010년 1월 1일부터 2012년 3월 1일 사이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해 법률 사무에 종사한 법조경력자”로 변경해 김씨를 채용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즉, 김모씨 채용을 위해 채용 전형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들은 또한 “변호사 경력이 있고 업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을 제쳐놓고, 재판연구원 근무기간이 끝나지 않은 김씨를 채용해 100일이나 지나서야 근무를 시작하도록 한 것은 특혜를 줬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들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아울러 “김씨의 아버지인 국회의원이 당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이었던 손범규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강조했으며, “채용후 1년3개월 동안 16건만 수임시켜 판사 임용을 준비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없으면 만들고

높으면 낮추고
 
김 의원은 현재 이 같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김태원 의원은 18일 “만약에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정치 생명을 걸겠다”며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아들 취업을 위해 채용요건 완화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그건 공단에서 충분히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제도를 바꿔야 될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은 공단에서 충분히 밝혀지리라 생각된다”며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항”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새누리당은 조사결과를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에서 김 의원 취업특혜 의혹과 관련된 오해가 해소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 19일 김태원 의원으로부터 소명서를 제출받고 자체 진상 조사에 본격 돌입했다. 김 의원 관련 사안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번주 내로 발표될 전망이다.
 
야당 거물인 문희상 의원도 지난해 처남의 취업을 청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작년 12월 문의원의 처남이 문 의원과 부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판결문이 공개되면서 처남 취업청탁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판결문을 살펴보면 문 위원장이 대한항공의 회장(조양호 회장)을 통해 미국에 거주하던 처남의 취업을 부탁했고, 고교 선후배 사이인 대한항공 회장은 미국의 브리지 웨어하우스 유한회사 대표에게 다시 취업을 부탁했다. 또, 2012년쯤까지 컨설턴트로 74만 7000달러(약 8억원)를 지급받은 김씨는 회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등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문희상 의원은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마무리하려 했다.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은 김성수 대변인을 통해 “지난 2004년쯤 미국에서 직업이 없던 처남의 취업을 간접적으로 대한항공 측에 부탁한 사실이 있다”면서 “이유를 막론하고 가족의 송사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대단히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태는 문 의원의 사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보수 시민단체인 한계레청년단이 검찰에 이와 같은 사실과 관련 제3자뇌물공여죄로 문 의원을 고발하면서 사건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취업청탁의 경우 사법처리가 어렵지만 제3자뇌물공여죄의 경우 처벌이 가능해 수사 결과에 따라 문 의원은 사법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수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6월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의 재무팀 그리고 한진의 법무팀을 압수수색했다. 7월에는 조회장의 최측근인 한진해운 석태수 사장, 한진 서용원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문 의원에 대한 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은 처남이 받은 억대 연봉을 두고 회사측에 컨설턴트를 해주고 받은 정당한 임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수사 결과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자녀합격 위해
채용기준 바꿔?
 
문 의원이 처남 취업청탁과 관련해 곤혹스러웠을 당시 여당의 거물 정치인인 김무성 당대표는 문 의원에 대한 비난을 자제할 것을 당내에 주문했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딸 특별 채용 의혹에 관한 이슈가 부각될까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2014년 8월 김 대표의 딸인 김현경씨의 수원대 디자인학부 조교수 채용(2013년)을 두고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일보>가 참여연대로부터 받은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지난해 8월 김 교수가 실제로 수원대가 공고한 지원 자격을 충족했는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지원 당시 김 교수는 박사과정 수료 상태(2011년 3월 수료)여서 석사학위 소지자에 해당됐는데, ‘석사학위 소지자는 교육 또는 연구(산업체) 경력 4년 이상인 분만 지원 가능’이라는 자격 요건이 명시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김 교수는 2009년 2학기부터 2013년 1학기까지 상명대와 수원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했지만, ‘시간강사의 교육경력은 50%만 인정한다’는 수원대의 교원경력 환산율표에 따라 김 교수의 교육경력은 2년에 불과했다.
 
연구경력 또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원대는 석사학위 취득자는 연구경력 2년, 박사과정 수료자는 해당 기간의 70%를 인정해 주는데, 김 교수의 총 연구경력은 3년4개월(석사 2년, 박사과정 1년 4개월)이다. 때문에 김 교수는 교육경력 4년도, 연구경력 4년도 못 채운 셈이라고 보도했다.
 
넌지시 전화 한통에 OK!
쿨하게 문자 한통에 OK!
 
이에 대해 수원대 측은 해당 공고문의 문구는 ‘연구경력과 교육경력의 합산’을 뜻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해석의 문제인데, 통상적으로 연구와 교육을 합해서 4년 이상이면 지원자격을 충족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 사건은 참여연대의 고발로 검찰 수사까지 확대됐지만 지난해 11월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면서 마무리 됐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도 과거 자녀 취업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배 의원의 취업청탁은 이마트의 내부문건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알려졌다. <한겨레>가 입수한 이마트의 ‘외부추천 입사자 현황’(2008년 작성) 문서를 보면, 1999∼2005년 구학서 신세계 회장의 추천을 받아 입사한 7명의 경력 직원과 2003∼2006년 신세계그룹 계열사 간부들의 추천을 받아 입사한 24명의 신입 직원 이름과 직급, 출신학교 및 ‘특이사항’이 나와 있다.
 
자료에 따르면 배 의원이 당시 해운대 구청장이었던 2005년 배 의원의 딸 배모씨는 특이사항란에 아버지는 배덕광 해운대구청장, 추천자란에는 노태욱 당시 신세계건설 부사장을 기재했다. 이를 두고 당시 이른바 ‘뒷배경’이 든든한 인사들만 취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배 의원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딸은) 전혀 어떤 추천 없이 공채로 입사했다. (신세계 복합쇼핑몰 건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친인척도 청탁

여기저기 특채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은 지인의 아들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2013년 새누리당 김 의원은 국회 본회의 중 지역구 인사 아들의 ‘국방과학연구소’ 취업 청탁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 김진표 전 의원도 같은 해 자신의 지역구 유지 아들이 한전 자회사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문자로 알리면서 취업청탁 논란에 시달렸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판 음서제’ 대책은?
“고관 자녀들 취업현황 공개해야”
 
윤후덕 의원과 김태원 의원이 자녀 특혜취업 의혹에 나란히 곤혹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고위공직자 자녀의 취업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는 20일 성명을 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고위공직자들은 현대판 음서제를 만들고 있다”며 “고위층 부모의 청탁과 알아서 해 주는 특별한 배려의 결과로 인해 일거리를 찾는 고단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계층이 생겨버린 셈”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변회 성명서 내고 주장
공직자 윤리법 개정에 주목
 
서울변회는 “법조인 선발과 양성의 문제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불투명한 입학 과정과 고액의 등록금, 나아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자의 취업 특혜 의혹까지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변회는 이와 관련해 “공직자 윤리법을 개정, 고위공직자 가족의 취업현황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직계존비속이나 배우자가 대기업, 공공기관, 대형로펌 등에 취업하는 경우 현황을 공개해 국민의 눈으로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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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