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외곽조직' 양우공제회 골프연습장 폐업 내막

'수십억 현금' 어디다 쓰려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의 외곽조직으로 지목된 양우공제회가 최근 한 골프연습장을 폐업 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초법적 친목단체'인 양우공제회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도 국정원은 묵묵부답이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양우공제회라는 사단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7월 법인화한 양우공제회는 회칙에서 "국정원 직원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국가 안전보장 및 국익의 신장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조직의 실제 성격은 상조회에 가깝다.
 

양우공제회는 그간 위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국정원은 양우공제회의 정확한 자산 규모와 운영 내역 등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조직 특유의 폐쇄성에 '국가안보'라는 명분이 더해져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정보는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다.

퇴직금이
국가안보?

지난해 양우공제회는 뜻밖의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의혹을 제기한 근거 가운데 하나로 '양우공제회가 선박사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시장은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기조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국정원 현직 직원들이 운영하는 법적근거도 없는 투자기관으로 모든 운영사항이 비밀로 취급된다"라며 "수천억대 자산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국정원이 선박을 취득·운항한 사실까지 확인됐으니 '세월호는 국정원 소유'라는 확신이 더 커졌다"라고 적었다.


양우공제회의 위법성을 우려하는 쪽에선 "양우공제회 기금이 정치자금으로 변질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과거 국정원은 출처가 불분명한 금품을 여당 정치인들을 상대로 건넨 바 있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국가공무원법 위반 여부다. 국가공무원법 64조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25조는 모든 공무원의 겸직과 공무 이외의 영리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양우공제회는 선박은 물론 펀드·건물·기타 부동산 등에 투자해 이득을 남겨 왔다. 양우공제회의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의혹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일요시사>는 '국정원 비밀조직 양우공제회 실체, 소문과 진실'이란 기사에서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기사의 중심축은 국정원과 세월호의 연관성을 찾는 데 있었다. 그로부터 약 7개월이 흐른 현재, 세월호와 관련한 이슈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남은 한 축인 양우공제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기금이 검은돈?…위법시비 끊이지 않아
자산규모·운영내역 등 비공개 '의문투성'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 3월11일 양우공제회는 '양우회'로 이름을 바꿨다. 명확한 개명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잇따른 언론 노출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됐다. 포털사이트에서 '양우회'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지역 친목단체나 종교단체가 기사로 검색됐다. 검색 첫 화면에서 양우공제회는 노출되지 않았다.

양우공제회 이사로는 이모씨, 장모씨, 송모씨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대표권 제한규정'의 적용을 받는 이씨(이씨 이외에는 대표권이 없음)는 한 골프클럽의 대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골프클럽의 이름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나이스골프클럽'이다. 실외 골프연습장인 나이스골프클럽은 양우공제회가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 18일 기자는 나이스골프클럽을 직접 찾았다. 나이스골프클럽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골프클럽이 있던 부지에는 돌무더기가 무성했다. 골프클럽 옆길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골조를 올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기술자는 "나이스골프클럽이 지난 봄 철거됐다"라고 말했다. 나이스골프클럽과 언덕을 경계로 마주본 경쟁 골프클럽 관계자도 "나이스골프클럽이 올 봄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나이스골프클럽의 내선으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양우공제회는 지난 2004년 11월18일 권모(1942년생)씨로부터 나이스골프클럽을 매입했다. 경기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 236-13번지 임야를 경계로 오산리 236-10번지 외 2필지(1만5599㎡)를 사들였다. 국도와 인접한 골프장 출입구(오산리 산 45-42, 오산리 647번지)는 모두 국유지로 확인됐다. 건물 공사 중인 터의 토지 소유주들은 민간인이었다. 분할 소유자 가운데는 미국인 A씨와 옛 청와대 관료로 알려진 B씨가 눈에 띄었다.

이날 구청 관계자는 "골프장 부지에 곧 창고가 들어설 것"이라며 "옆 건물은 주거용으로 허가를 내줘 골프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관련 임야는 증여 등이 이뤄진 사유재산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체육용지'로 허가받은 오산리 236-10번지 일대에 들어설 '창고'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았다. 아직 양우공제회는 관련 부지를 제3자에게 매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름 바꾼
양우공제회

이후 취재 과정에서 골프연습장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월 고시한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에 그 단서가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시에서 골프연습장과 인접한 236-13번지에 개설된 신용인-동서울 345kV 송전탑에 대한 보상 및 보수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 기간은 2015년 5월부터 2017년 4월까지로 고지됐다. 양우공제회는 골프클럽을 포기하더라도 인근 땅이 수용당해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래 전에 세워진 송전탑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며 "금액 등 구체적인 협상은 한국전력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나이스골프클럽은 사라졌지만 양우공제회의 골프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양우공제회는 강원도에서 파크밸리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양우공제회는 자신들이 임대한 시유지를 놓고 원주시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양우공제회가 투자한 또 다른 골프장인 '제피로스'는 지난 5월8일 충주시로부터 골프장 변경 공사에 대한 허가를 따냈다. 공사 면적 137만9817㎡, 퍼블릭 27홀에 달하는 이 대형 공사의 시행사로는 중원레저개발㈜이 낙점됐다. 중원레저개발㈜은 양우공제회가 설립한 골프장 개발업체이며, 총 투자 규모는 7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외에도 양우공제회가 전국 곳곳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정확히 가늠되지 않는다. 양우공제회는 지난 2009년 지리산 일대에 자체 연수원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구례군청은 해당 연수원 입구에 도로를 터주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수원 설립과 도로 확장은 모두 계획이 취소됐다.

지난 21일 행정당국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이 연수원에 딸린 골프장까지 원했지만 주민들이 반발해 골프장을 짓지 못하게 되자 설립을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골프장은 물론
전국에 부동산

도로점용허가를 수차례 신청한 것도 눈에 띈다. 도로점용은 토지주나 건물주 혹은 사업시행자가 공사를 할 때 그에 필요한 도로의 사용권을 일정 기간 넘겨받는 것을 뜻한다. 바꿔 말하면 양우공제회가 건물이나 시설 공사를 수차례 벌였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밖에도 양우공제회는 법원 경매에 나온 부동산 매물에 일부 질권을 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양우공제회는 자신들의 투자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현대라이프가 발행한 한 채권에 1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우공제회의 이름은 '모 공제회'로 바뀌거나 노출이 중단됐다. 투자에 따른 정당한 평가를 막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양우공제회가 설립한 우양개발은 2009년부터 매출이 잡히지 않고 있다. 우양개발의 직전 대표는 양우공제회 이사로 등기된 송씨다. 우양개발은 2008년 자본금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늘렸는데 이후부터 매출이 오히려 없는 상황이다. 우양개발은 중원레저개발㈜과 같은 내선 전화번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사무실도 같다. 지난 21일 해당 내선으로 통화한 사무실 관계자는 "양우공제회가 맞다"라고 했다.

우양개발의 현 대표는 박모씨다. 박씨는 양지개발이란 건설 회사의 대표를 지냈다. 양지개발은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 소유다. 양지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지상 7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다.

4700평 부지 밀고 송전탑 수용 보상
'100억원 채권 투자' '골프장 개발' 쉬쉬 

양지회가 양우공제회와 구별되는 점은 국정원 현직 직원의 개입 유무다.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는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다. 수익사업을 한다고 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우공제회는 다르다. 국정원 현직 간부가 운영에 개입하고 있으며, 국정원 외곽조직이란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의미 있는 첫 번째 판결은 한 여인의 끈질긴 법정싸움에서 나왔다. 국정원 직원의 부인이었던 C씨는 남편과 6년에 걸친 소송 끝에 양우공제회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C씨는 국정원 직원이 받는 퇴직금의 종류가 두 가지이며, 이중 한 가지는 양우공제회를 통해 지급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C씨는 "국정원 직원이 받는 특수활동비(업무관련금) 가운데 일부가 퇴직금으로 적립된다"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남편의 월급명세서 등을 각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했다.


C씨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월급과 달리 국정원 직원은 정보비와 부근속수당 등을 매달 현금으로 지급받는다. 이 가운데 일부 현금이 처음부터 '공제'된 상태에서 나온다. 그 현금의 저수지는 양우공제회다. 정부로서는 자신들이 승인해 준 특수활동비가 '특수활동'이 아닌 양우공제회에 적립되는 셈이다.

C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정보비공개결정처분취소, 2010두1****)의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국정원 직원은 '기타 보너스' 항목(창립기념일, 휴가, 크리스마스, 김장, 명절 등)으로 국정원에게서 별도의 현금을 받고 있다. 급여명세서에는 양우회(양우공제회) 항목이 적시돼 있다. 국정원 역시 양우공제회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개를 껄끄러워하는 것은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이다.

당시 법원은 국정원 직원이 받는 급여(특수활동비 포함)를 '비공개'라고 판단했다. 반면 C씨는 특수활동비가 배제된 급여명세서를 자신이 받아봤기 때문에 정확히는 급여가 아닌 특수활동비가 비공개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양우공제회가 지급하게 될 퇴직금을 '비공개'로 보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C씨가 의미 있는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던 C씨는 남편이 받게 될 '제2의 퇴직금'을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국정원으로서는 본인들이 급여를 모아 양우공제회를 관리한다는 사실을 간접 시인한 격이다.

하지만 C씨의 싸움은 비극으로 끝났다.  C씨는 2012년 2월16일 재산분할 소송 선고를 앞두고 서초동 법원 벽 아래로 목을 맨 채 투신했다. C씨가 궁극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건 양우공제회 기금 명목으로 분류돼 있는 국정원의 돈이다. 그 돈은 골프장에 있고, 펀드에 있으며, 국민이 모르는 '비자금'으로 관리된다.

출처는 세금
그대로 적립?

C씨의 투신 4일 뒤인 2월20일 남편이자 전직 국정원 직원인 D씨는 판결정본을 발급하고, 송달 및 확정 증명서도 뗐으며, 집행문부여신청도 했다. 민사소송상 일련의 과정은 상대의 재산을 강제집행함을 의미한다.

2013년 6월 법원은 변론재개를 결정하고 C씨에게 출석하라는 통보를 했다. C씨에게 보내진 소환장은 수취인불명으로 처리됐다. 이후 C씨는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법원은 2013년 9월24일 소송이 취하된 것으로 간주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진실은 언제쯤 가려질 수 있을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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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