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노조전임자 실태

거꾸로 가는 노조문화…‘이젠 완장을 버려라’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노동계의 가장 큰 이슈는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다. 이 논란의 골자는 일손을 놓고 있는 노조전임자에게 굳이 회사에서 월급을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뿐더러 노조전임자 주도의 무리한 투쟁을 불러오는가 하면 툭 하면 터지는 비리·부패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시행된 ‘타임오프제’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임자들의 특권이 크게 축소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전임자들은 노조완장을 내려놓지 않으려 악을 쓰고 있으며 이 같은 노조 측의 몸부림에 회사 측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임자 비율 일본의 4배, 유럽의 10배 넘어
특권 지키기 위해 비합리적 투쟁 주도하기도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에서 급여를 받은 국내 전체 노조전임자는 1만583명으로 이들이 회사로부터 수령하는 임금은 1인당 평균 43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1인당 조합원수 149명
선진국 500∼1500명

또 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는 149명으로 다른 선진국들과 차이가 크다. 일본은 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가 500∼600명, 미국은800∼1000명, 유럽연합(EU)은 1500명 수준이다.
전임자들은 출·퇴근 면제는 물론, 회사일에서 손을 놓고 노조 업무에만 몰두한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만은 꼬박꼬박 챙긴다. 게다가 교대로 일하는 일반 근로자가 기본급과 잔업수당만 받는 데 비해 전임자는 기본급에 고정 잔업수당, 휴일 특근 수당 등 갖가지 수당을 더 얹어 받는다. 또 핵심 전임자들은 회사로부터 차량 및 유류비를 지원받는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특권 유지를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가 하면 비합리적 투쟁을 주도하고 조합원들의 의지와 무관한 싸움을 불사하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노조전임자의 무리한 투쟁 및 파업 선동, 전임자 수 및 대우에 대한 분쟁으로 인한 파업 유발, 작업장 분위기 및 생산성 저하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면 노조전임자 문제로 파생되는 피해규모는 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를 지켜보는 세인들의 시선도 차갑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일손 놓은’ 전임자에게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대한상공회의소가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71.0%가 회사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실정임에도 그간 회사 측은 파업 등을 앞세운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에 밀려 노조전임자 급여를 지급해왔다. ‘근로자가 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한다’는 노사관계의 기본 원칙에 역행해 오고 있던 셈이다.

이런 ‘삐뚤어진’ 관행은 노조 간부의 특권화와 권력화, 방만한 노조운영과 노조 예산의 투쟁기금화로 이어졌고 결국 노사 갈등과 노사관계의 악화를 초래해 왔다. 그럼에도 전임자들은 그동안의 관행에 기대 특권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노동법에서 부당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97년에 개정된 노조법에 따르면 노조 전임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아서는 안되고, 회사도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규정은 13년째 논의만 있었을 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계의 강력 반발로 13년 간 4차례나 유예됐던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가운데 지난 1일 개정 노동법에 따라 타임오프제가 시행됐다. 이는 노조원이 임금을 받으며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 총량을 정한 제도로, 사용자는 법정 타임오프 한도 안에서만 노조 전임자 월급을 지급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전임자 급여지급을 금지하면서도 예외적으로 타임오프제를 도입한 까닭은 전임자 급여지급 전면 금지로 인한 노조활동 위축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노사갈등의 불씨는 안고 가게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씨는 이내 번졌다. 금속노조가 노조 전임자 처우 보장 요구를 골자로 ▲지난 상반기에 중앙노동위원회 일괄 조정신청 ▲쟁의행위 찬반투표 ▲총파업 선포대회 등 구체적인 투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 이는 타임오프제와 관계없이 기존 노조 전임자 수와 처우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노동부 측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운영되는 상황에서 금속노조가 개정법에 위반하는 사항으로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찬반투표 및 총파업을 강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자신들의 뜻을 실력으로 관철하려는 불합리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정 갈등으로의 비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금속노조의 명분 없는 파업 지침에 대한 비판 역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
“임금 지급 부정적”

하지만 금속노조 측은 오히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금속노조 측은 “전임자 급여 지급은 노사자율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정부가 법으로 강제 규제하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개정 노조법 투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재계 관계자는 “분명 노조의 주장대로 전임자 급여 지급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없다”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각국은 전임자 급여를 노조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어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노조 전임자 급여는 굳이 법으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노조가 당연히 부담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이를 두고 마치 한국 정부만 유일하게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규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어떤 노조도 활동비용을 회사 측에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기업별 노조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임자 급여를 노조의 재정으로 지급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도 사정은 같다. 영국 역시 노조에 어떤 금전적 지원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조 측에서도 자주성 유지를 위해 회사 측에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금속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 무효화 시도
기아차노조, 특근거부로 고객 차량 인도 차질 


기아차 역시 첫 단추부터 어긋나 곤란해 하는 모습이다. 기아차 노조가 회사 측에서 제안한 특별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임단협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는 것.

지난 2일 기아차 서영종 사장을 비롯한 회사 측 교섭위원 9명은 소하리공장 종합사무동에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제도 시행 관련 특별 단체교섭’ 개최를 위해 노조측 교섭위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노조 측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조 측은 “타임오프 관련 조항만 교섭하자는 것은 노동조합의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임단협의 틀 안에서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을 고집하는 이유는 협상이 틀어져 파업으로 이어졌을 때 ‘합법 파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회사가 제안한 특별 단체교섭은 노조 측이 불참한 반쪽짜리 교섭이 됐으며, 기아차 노사의 2010 임단협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게다가 기아차 노조는 181명의 전임자를 19명으로 축소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강화된 전임자 관련 요구안을 확정했다.

기아차 노조의 2010년 임단협 요구안에는 ▲현행 전임자 수 보장 ▲상급단체와 금속노조 임원으로 선출 시 전임 인정 및 급여지급 ▲조합에서 자체 고용한 채용 상근자 급여지급 ▲전임자에 대한 편법 급여지급 ▲조합활동 인정 범위를 대의원 및 각종 노조위원회 위원까지 대폭적인 확대 등 노조 전임자와 관련된 내용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한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전임자 급여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개정 노동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요구다.
또 기아차 노조는 6월에 이어 7월에도 특근 거부 투쟁에 나섰다. 전임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지속적인 급여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24일과 25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65.7%의 찬성률로 가결시키는 등 파업 수순을 밟았다. 이에 회사 측은 지난 1일 전임자 204명에 대해 무급 휴직 발령을 내는 것으로 맞서고 있다.

이로써 공장별로 월 4~8회 특근을 하기로 했던 계획이 무산됐다. 지난달에 이어 7월에도 1만대 가량의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근 거부로 휴가철에 새 차를 이용하기 위해 지난 5월 말 출시한 중형 세단 K5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차량을 인도받게 되는 시기가 최대 한 달가량 늦어질 전망이다. K7, 쏘렌토R, 스포티지R 등의 인도 일정도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뒤로 미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투쟁으로 신차의 안정적인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면 신차효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기아차에 치명적인 손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 선진화 위해
급여 노조가 부담

이어 이 관계자는 “올바른 노사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노조 전임자 급여를 회사가 아닌 노조 스스로 부담토록 함으로써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과 부당한 폐해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당분간의 진통이 수반되더라도 노사 관계의 선진화를 위해 올해는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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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