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자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넷

벼랑 끝 내몰고 비밀은 감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해킹 파문의 중심에 있던 그는 3장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임 과장의 죽음으로부터 1달이 지났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또 국정원은 무엇이 두려워 임 과장의 사망 경위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드러난 4가지 핵심 의혹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임 과장의 유골이 안치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 '평온의 숲'이다. 평온의 숲에서 자동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는 임 과장이 숨진 고라지골이 있다. 앞서 소방당국이 밝힌 임 과장의 정확한 사망 장소는 화산리 산77번지다. 마을 주민들은 화산리 산77번지 일대를 일컬어 고라지골이라고 부른다.

임 과장은 지난 7월18일(토요일) 오전 6시30분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을 끌고 고라지골에 도착했다. 임 과장은 이날 오후 12시2분 소방대원들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자체 작성한 보고서에서 "당시 망자가 전신 사후강직 상태에 있었다"고 적었다. 기후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전신 사후강직'이 이뤄진 점에 비춰 임 과장은 늦어도 오전 10시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사후강직은 사망 후 5시간 내지는 6시간 내 일어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스터리 1]
왜 119로 신고했나

용인 지역 CCTV 등으로 확인된 임 과장의 사망 전 행적은 이렇다. 사건 당일 오전 4시52분 임 과장은 자택에서 나와 마티즈 차량에 탑승했다. 오전 5시48분까지 마트 세 곳에 들러 소주와 빈 호일도시락, 숯, 번개탄 등을 구입했다. 오전 4시52분∼5시48분 동안 임 과장은 자택 인근의 낚시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티즈 차량이 대로변 CCTV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각은 오전 6시22분이다.

임 과장은 이날 새벽 집을 나서면서 부인에게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인 A씨는 "출근한 남편을 찾아달라"라며 5시간 만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지난달 "임 과장의 부인이 오전 8시부터 모두 10여차례에 걸쳐 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119에 실종신고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바로 국정원의 개입이다.


<노컷뉴스>는 지난 7일 야권 관계자의 전언을 인용해 "국정원이 사건 당일 오전 9시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출근하지 않았으니 119에 신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임 과장의 실종 사실을 정부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인지하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국정원 3차장은 사건 당일 오전 8시40분쯤 국장급 간부로부터 임 과장의 결근 사실을 보고 받았다. 3차장은 즉각 위치추적장치(MDM)를 작동하라고 지시했다. 또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용인 소재 저수지 근처'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용인의 옆부서 직원'을 현장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실제 국정원 직원은 소방당국과 거의 비슷한 시각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우에 따라선 119대원보다 먼저 도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 과장 사망 한 달째 여전한 의혹
사건 현장 마티즈 최초 확인 가능성

A씨는 국정원과 약속한 대로 119에 신고했다. 통화시간은 오전 10시4분∼7분 사이다. A씨는 119의 권유를 받고, 파출소를 직접 방문해 신고 절차를 밟았다. 위치추적에 동의했다가 오전 10시32분 돌연 경찰 쪽 신고를 취소했다. 이후 경찰과 연락해 신고가 취소됐는지를 확인했다. 이때가 오전 11시38분이다.

반면 신고를 접수한 관할 소방서는 오전 10시25분 출동 준비를 마쳤다. 소방당국은 임 과장의 휴대전화 GPS 위치추적을 통해 '화산리 34번지'라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출동한 대원들은 오전 10시32분 상황실과의 무전 교신에서 “화산리 34번지로 출동하라”라는 통보를 받았다. 화산리 34번지는 임 과장이 숨진 화산리 산77번지와 도로상으로 130여m가 떨어진 곳이다. 119대원들은 오전 10시40분쯤 화산리 34번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산중턱에서 머뭇댔다. 상황실에서는 "인근 저수지를 수색하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앞서 A씨는 10시30분∼40분 사이 소방당국과의 통화에서 "남편이 화산리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를 자주하니 (그곳을) 찾아달라"라고 말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약 2km가량 떨어진 요덕저수지와 맹골낚시터(화산저수지)를 차례로 수색했다.

[미스터리 2]
왜 수색 방해했나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약 5분 거리(차량 기준)에 있는 낚시터다.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 화산리 34번지로 갈리는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 삼거리는 지도상 각 거점 수색이 용이한 요충지로 확인된다. 119대원들은 이 삼거리에서 어느 쪽을 수색할 것인지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 대원들과 당일 오전 11시11분께 정차된 구급차량 앞에서 3∼4분간 대화를 나눴다. 누가 먼저 대화를 요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는 대화가 이뤄진 경위에 대해 국정원 측에 답변을 요구한 상황이다.

단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통화 녹취록이 존재한다. 녹취록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은 '동료 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왔다'라며 현장대원과 접촉했다. 이어 '낚시'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대원들에게 흘렸다. 이들은 11시15분께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대원들이 향한 곳은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맹골낚시터였다.

같은 시각 국정원 직원은 따로 활동했다. 그의 행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일각에선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로 몰래 임 과장을 찾으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 대원들은 차량이 발견되기 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국정원 직원과 통화했다. 지난 1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은 "수색을 하다보면 동료나 가족과 함께 요구조자를 찾을 일이 생긴다"라며 "(그가) 국정원 직원인지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또 한편에선 이미 현장을 장악한 국정원 직원이 다른 직원을 도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출동한 대원은 오전 11시35분께 상황실로부터 "관계자한테 물어보세요" "'위치추적 관계자'가 같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연달아 받았다. '위치추적 관계자'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자 무전을 받은 현장대원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답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수색 가능성을 암시한다.

[미스터리 3]
왜 수사하지 않았나

부인 A씨는 오전 11시15분 119에 2차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A씨가 위치추적을 재요청한 시점은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과 헤어진 시점과 맞물린다. 오전 11시28분 소방당국은 위치추적을 통해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화산리 산77번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보다 2분 빠른 11시26분에는 소방대원들이 사고를 의심하고 112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앞서 밝혔듯 A씨는 경찰이 출동 준비를 하자 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재촉했다. 오전 11시51분에는 앞선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위치추적을 요구했다. 이 시각 소방대원들은 상황실의 전화를 받고 도라지골에 진입한 상태였다. 상황실은 화산리 산77번지 뒤편인 시궁산 정상을 수색하라고 했다가 '관계자(국정원 직원)와 연락해 도라지골로 가라'며 수색 위치를 조정했다.

당일 오전 11시42분께 맹골낚시터에서 출발한 펌프차는 삼거리를 거쳐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향했다. 오전 11시49분에는 구급차량이 같은 장소를 통과했다. 소방대원들은 화산리 34번지에서 U자로 구부러진 길을 지나 화산리 산77번지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마티즈 차량을 발견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취했다. 확인된 통화 시간은 오전 11시54분~55분 사이다.

인근에 있던 국정원 직원은 오전 11시54분께 삼거리에서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같은 날 오후 12시2분께 현장을 접수한 국정원 직원은 임 과장의 시신을 먼저 체크했다. 이때부터 소방대원들은 상황실과의 무전 연락을 중단했다.

산중턱에 있던 5명의 대원은 오전 12시12분 구급차량으로 내려와 약 4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국정원 직원의 모습은 구급차량 블랙박스에 포착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에 홀로 남아 있었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시신에 손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정원 측은 현장 오염과 관련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119대원들은 국정원 직원과 만난 다음에야 경찰에 사건 소식을 알렸다. 경찰이 사건을 인계받은 시각은 7월18일 오후 12시50분이다. 소방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보조석과 뒷좌석에선 번개탄이 꺼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3월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된 권모 과장은 차량 문을 잠그고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마티즈 차량의 문은 권 과장의 산타페와 달리 잠겨 있지 않았다. 충분히 의심 가는 부분이지만 경찰은 문의 개폐와 관련한 의혹을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소방서 입막고 증거인멸 의혹
'그날' 감찰실서 무슨 대화 오갔나?

또 경찰은 임 과장의 사망 장소를 '마티즈 뒷좌석'이라고 기재했다가 국회 보고 과정에선 앞좌석으로 정정했다. 경찰은 출동 대원들의 단순 실수라고 떠넘겼지만 소방당국조차 시신의 위치를 별도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차량에서 발견된 17개의 쪽지문에 대해서도 "누구 것인지 판정할 수 없었다"라고 답했다.

경찰 신고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보인 A씨의 통화기록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은 "단순 자살 사건이고, 유족 측이 수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의 행적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 과장이 쓰고 나간 것으로 전해진 뿔테 안경은 유실됐다. 안경의 행방은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임 과장의 매부'를 자처한 사람은 증거인 마티즈 차량을 7월19일 폐차했다. 폐차를 대행한 업체는 국정원의 오랜 협력사로 알려졌다.


[미스터리 4]
왜 그는 자살했나

출동으로부터 1시간10여분 만에 소방당국은 실종자를 찾았다. 일반 실종사건과 비교하면 신속한 사건 처리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국정원과 공모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장에 있던 구급차량 블랙박스는 오후 12시30분부터 촬영이 중지됐다. 전원이 꺼졌기 때문이다. 블랙박스가 다시 켜진 시각은 오후 12시58분이다. 28분 동안 국정원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구급차량은 블랙박스가 켜짐과 동시에 사건 현장을 이탈했다.

A씨는 오후 12시30분이 돼서야 소방관으로부터 마티즈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고 신고자임에도 국정원은 물론 경찰보다 늦은 시각에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다. 임 과장은 생전 A씨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임 과장은 아내, 두 딸과 함께 신앙생활에 애착을 드러냈다고 한다.

임 과장의 자살 당시  주위 사람들은 집사인 임 과장이 교리를 어기면서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궁금해 했다. 현재 설득력 있는 원인으로는 내부 감찰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감찰 당시 국정원과 임 과장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또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파면 등을 이유로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은 강압적인 감찰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한겨레21>은 '정말 다 짊어지려 그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기사에서 "임 과장이 올 7월 초 한 목사로부터 마티즈 차량을 구입했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때만 해도 마티즈 차량은 '죽음의 도구'가 아니었다. 대전에 살던 임 과장은 출퇴근용으로 구입한 차량을 몰고 가족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7월13일 국정원 해킹 파문이 일면서 한 가장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의 죽음 전 마지막 5일. 임 과장은 자신의 상관들에게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가족들에겐 "사랑해"라고 인사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할 만큼 '우려스런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영면을 취하고 있는 고인은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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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