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자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넷

벼랑 끝 내몰고 비밀은 감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해킹 파문의 중심에 있던 그는 3장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임 과장의 죽음으로부터 1달이 지났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또 국정원은 무엇이 두려워 임 과장의 사망 경위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드러난 4가지 핵심 의혹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임 과장의 유골이 안치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 '평온의 숲'이다. 평온의 숲에서 자동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는 임 과장이 숨진 고라지골이 있다. 앞서 소방당국이 밝힌 임 과장의 정확한 사망 장소는 화산리 산77번지다. 마을 주민들은 화산리 산77번지 일대를 일컬어 고라지골이라고 부른다.

임 과장은 지난 7월18일(토요일) 오전 6시30분께 빨간색 마티즈 차량을 끌고 고라지골에 도착했다. 임 과장은 이날 오후 12시2분 소방대원들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자체 작성한 보고서에서 "당시 망자가 전신 사후강직 상태에 있었다"고 적었다. 기후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전신 사후강직'이 이뤄진 점에 비춰 임 과장은 늦어도 오전 10시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사후강직은 사망 후 5시간 내지는 6시간 내 일어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스터리 1]
왜 119로 신고했나

용인 지역 CCTV 등으로 확인된 임 과장의 사망 전 행적은 이렇다. 사건 당일 오전 4시52분 임 과장은 자택에서 나와 마티즈 차량에 탑승했다. 오전 5시48분까지 마트 세 곳에 들러 소주와 빈 호일도시락, 숯, 번개탄 등을 구입했다. 오전 4시52분∼5시48분 동안 임 과장은 자택 인근의 낚시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티즈 차량이 대로변 CCTV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시각은 오전 6시22분이다.

임 과장은 이날 새벽 집을 나서면서 부인에게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인 A씨는 "출근한 남편을 찾아달라"라며 5시간 만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지난달 "임 과장의 부인이 오전 8시부터 모두 10여차례에 걸쳐 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119에 실종신고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의도적으로 빠져 있다. 바로 국정원의 개입이다.


<노컷뉴스>는 지난 7일 야권 관계자의 전언을 인용해 "국정원이 사건 당일 오전 9시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출근하지 않았으니 119에 신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임 과장의 실종 사실을 정부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인지하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국정원 3차장은 사건 당일 오전 8시40분쯤 국장급 간부로부터 임 과장의 결근 사실을 보고 받았다. 3차장은 즉각 위치추적장치(MDM)를 작동하라고 지시했다. 또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용인 소재 저수지 근처'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용인의 옆부서 직원'을 현장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실제 국정원 직원은 소방당국과 거의 비슷한 시각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우에 따라선 119대원보다 먼저 도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 과장 사망 한 달째 여전한 의혹
사건 현장 마티즈 최초 확인 가능성

A씨는 국정원과 약속한 대로 119에 신고했다. 통화시간은 오전 10시4분∼7분 사이다. A씨는 119의 권유를 받고, 파출소를 직접 방문해 신고 절차를 밟았다. 위치추적에 동의했다가 오전 10시32분 돌연 경찰 쪽 신고를 취소했다. 이후 경찰과 연락해 신고가 취소됐는지를 확인했다. 이때가 오전 11시38분이다.

반면 신고를 접수한 관할 소방서는 오전 10시25분 출동 준비를 마쳤다. 소방당국은 임 과장의 휴대전화 GPS 위치추적을 통해 '화산리 34번지'라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출동한 대원들은 오전 10시32분 상황실과의 무전 교신에서 “화산리 34번지로 출동하라”라는 통보를 받았다. 화산리 34번지는 임 과장이 숨진 화산리 산77번지와 도로상으로 130여m가 떨어진 곳이다. 119대원들은 오전 10시40분쯤 화산리 34번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산중턱에서 머뭇댔다. 상황실에서는 "인근 저수지를 수색하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앞서 A씨는 10시30분∼40분 사이 소방당국과의 통화에서 "남편이 화산리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를 자주하니 (그곳을) 찾아달라"라고 말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약 2km가량 떨어진 요덕저수지와 맹골낚시터(화산저수지)를 차례로 수색했다.

[미스터리 2]
왜 수색 방해했나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약 5분 거리(차량 기준)에 있는 낚시터다. 요덕저수지와 화산저수지, 화산리 34번지로 갈리는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 삼거리는 지도상 각 거점 수색이 용이한 요충지로 확인된다. 119대원들은 이 삼거리에서 어느 쪽을 수색할 것인지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 대원들과 당일 오전 11시11분께 정차된 구급차량 앞에서 3∼4분간 대화를 나눴다. 누가 먼저 대화를 요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는 대화가 이뤄진 경위에 대해 국정원 측에 답변을 요구한 상황이다.

단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통화 녹취록이 존재한다. 녹취록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은 '동료 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왔다'라며 현장대원과 접촉했다. 이어 '낚시'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대원들에게 흘렸다. 이들은 11시15분께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대원들이 향한 곳은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맹골낚시터였다.

같은 시각 국정원 직원은 따로 활동했다. 그의 행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일각에선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로 몰래 임 과장을 찾으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 대원들은 차량이 발견되기 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국정원 직원과 통화했다. 지난 10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조송래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장은 "수색을 하다보면 동료나 가족과 함께 요구조자를 찾을 일이 생긴다"라며 "(그가) 국정원 직원인지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또 한편에선 이미 현장을 장악한 국정원 직원이 다른 직원을 도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출동한 대원은 오전 11시35분께 상황실로부터 "관계자한테 물어보세요" "'위치추적 관계자'가 같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연달아 받았다. '위치추적 관계자'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자 무전을 받은 현장대원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답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수색 가능성을 암시한다.

[미스터리 3]
왜 수사하지 않았나

부인 A씨는 오전 11시15분 119에 2차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A씨가 위치추적을 재요청한 시점은 국정원 직원이 소방대원들과 헤어진 시점과 맞물린다. 오전 11시28분 소방당국은 위치추적을 통해 임 과장의 휴대전화가 화산리 산77번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보다 2분 빠른 11시26분에는 소방대원들이 사고를 의심하고 112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앞서 밝혔듯 A씨는 경찰이 출동 준비를 하자 신고를 취소해 달라고 재촉했다. 오전 11시51분에는 앞선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위치추적을 요구했다. 이 시각 소방대원들은 상황실의 전화를 받고 도라지골에 진입한 상태였다. 상황실은 화산리 산77번지 뒤편인 시궁산 정상을 수색하라고 했다가 '관계자(국정원 직원)와 연락해 도라지골로 가라'며 수색 위치를 조정했다.

당일 오전 11시42분께 맹골낚시터에서 출발한 펌프차는 삼거리를 거쳐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향했다. 오전 11시49분에는 구급차량이 같은 장소를 통과했다. 소방대원들은 화산리 34번지에서 U자로 구부러진 길을 지나 화산리 산77번지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마티즈 차량을 발견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취했다. 확인된 통화 시간은 오전 11시54분~55분 사이다.

인근에 있던 국정원 직원은 오전 11시54분께 삼거리에서 화산리 34번지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같은 날 오후 12시2분께 현장을 접수한 국정원 직원은 임 과장의 시신을 먼저 체크했다. 이때부터 소방대원들은 상황실과의 무전 연락을 중단했다.

산중턱에 있던 5명의 대원은 오전 12시12분 구급차량으로 내려와 약 4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국정원 직원의 모습은 구급차량 블랙박스에 포착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은 현장에 홀로 남아 있었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시신에 손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정원 측은 현장 오염과 관련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119대원들은 국정원 직원과 만난 다음에야 경찰에 사건 소식을 알렸다. 경찰이 사건을 인계받은 시각은 7월18일 오후 12시50분이다. 소방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보조석과 뒷좌석에선 번개탄이 꺼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3월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된 권모 과장은 차량 문을 잠그고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마티즈 차량의 문은 권 과장의 산타페와 달리 잠겨 있지 않았다. 충분히 의심 가는 부분이지만 경찰은 문의 개폐와 관련한 의혹을 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소방서 입막고 증거인멸 의혹
'그날' 감찰실서 무슨 대화 오갔나?

또 경찰은 임 과장의 사망 장소를 '마티즈 뒷좌석'이라고 기재했다가 국회 보고 과정에선 앞좌석으로 정정했다. 경찰은 출동 대원들의 단순 실수라고 떠넘겼지만 소방당국조차 시신의 위치를 별도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차량에서 발견된 17개의 쪽지문에 대해서도 "누구 것인지 판정할 수 없었다"라고 답했다.

경찰 신고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보인 A씨의 통화기록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은 "단순 자살 사건이고, 유족 측이 수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임 과장의 '동료'인 국정원 직원의 행적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 과장이 쓰고 나간 것으로 전해진 뿔테 안경은 유실됐다. 안경의 행방은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임 과장의 매부'를 자처한 사람은 증거인 마티즈 차량을 7월19일 폐차했다. 폐차를 대행한 업체는 국정원의 오랜 협력사로 알려졌다.


[미스터리 4]
왜 그는 자살했나

출동으로부터 1시간10여분 만에 소방당국은 실종자를 찾았다. 일반 실종사건과 비교하면 신속한 사건 처리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국정원과 공모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장에 있던 구급차량 블랙박스는 오후 12시30분부터 촬영이 중지됐다. 전원이 꺼졌기 때문이다. 블랙박스가 다시 켜진 시각은 오후 12시58분이다. 28분 동안 국정원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구급차량은 블랙박스가 켜짐과 동시에 사건 현장을 이탈했다.

A씨는 오후 12시30분이 돼서야 소방관으로부터 마티즈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고 신고자임에도 국정원은 물론 경찰보다 늦은 시각에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다. 임 과장은 생전 A씨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임 과장은 아내, 두 딸과 함께 신앙생활에 애착을 드러냈다고 한다.

임 과장의 자살 당시  주위 사람들은 집사인 임 과장이 교리를 어기면서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을 궁금해 했다. 현재 설득력 있는 원인으로는 내부 감찰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감찰 당시 국정원과 임 과장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또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파면 등을 이유로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은 강압적인 감찰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한겨레21>은 '정말 다 짊어지려 그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기사에서 "임 과장이 올 7월 초 한 목사로부터 마티즈 차량을 구입했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때만 해도 마티즈 차량은 '죽음의 도구'가 아니었다. 대전에 살던 임 과장은 출퇴근용으로 구입한 차량을 몰고 가족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7월13일 국정원 해킹 파문이 일면서 한 가장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의 죽음 전 마지막 5일. 임 과장은 자신의 상관들에게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가족들에겐 "사랑해"라고 인사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야 할 만큼 '우려스런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영면을 취하고 있는 고인은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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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