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전쟁 ‘사생결단’ 신동빈 액션플랜

장남 사방이 적…차남 승기 잡았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롯데가의 경영권 전쟁이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무게추가 신동빈 회장에게로 조금씩 쏠리는 양상이다. 정서적인 부분부터 경영권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될 우호 지분 향방까지 현재 경영권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확인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롯데홀딩스의 임원 6명과 차남 신동빈 회장을 해임하려다 역풍을 맞아 역으로 해임돼 한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말이다.

위축되는 동주
활발해진 동빈
 
당초 신 총괄 회장이 신 회장을 해임하려는 것은 경영권을 되찾아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넘기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도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은 동생 신 회장이 그동안 경영권과 관련해 과욕을 부렸다며 신 회장에게 넘어간 경영권을 되찾아 오기위해 연일 발언의 수위를 높여갔다.
 
당시 구도는 ‘동주 VS 동빈’ 대결에서 신 총괄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라 신동주 전 부사장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신 총괄회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초반까지도 신 전 부회장의 발언이 먹혀드는 모습이었다.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 돌아오고 난 이틀 뒤인 29일 한국에 도착했는데 취재진을 향해 미소를 지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의 여유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 롯데에서의 지지가 분위기를 바꿨다. 한국의 경영진들이 일제히 신 회장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37개 개열사 사장단은 4일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회의를 열고 신 회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은 “롯데그룹을 이끌어갈 리더로 오랫동안 경영능력을 검증받고 성과를 보여준 신 회장이 (후계 구도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형제의 난’ 결론?…한쪽으로 기울어
지분부터 정서까지 차남에게 힘실려
 
게다가 한국 롯데의 노조마저 신 회장을 지지하면서 한국에서의 신 회장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조합 협의회는 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회의를 열고 최근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신동빈 회장에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보낸다”고 밝혔다. 강석윤 롯데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롯데 그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논란을 신속히 해소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영 능력과 자질조차 검증되지 않은 자와 그를 통해 부당하게 그룹에 침투하려는 소수의 추종세력들이 불미스러운 수단 방법으로 그룹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이들의 행태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의장은 “80여개의 계열사와 10만 직원을 안정적, 성공적으로 이끄는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모든 임직원이 하나가 돼 조속히 경영을 정상화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일본 쪽 사정도 신 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사장단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날 롯데홀딩스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도 신 회장 체제의 롯데를 지지했다.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롯데홀딩스의 사장이라 의미가 컸다.
 

롯데홀딩스 위에 광윤사가 있지만 우호지분 확보에 따라 광윤사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롯데홀딩스 사장의 지지에는 큰 의미가 부여됐다. 쓰쿠다 회장은 “롯데그룹은 상품 개발이나 상호 판매 등을 한일 공동으로 해야 한다”며 “신동빈 회장이 그런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아버지힘이냐
경영능력이냐
 
그는 또 “저는 신동빈 회장과 한 몸이 돼 (한일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한일 분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쓰쿠다 사장은 “신동빈 회장은 법과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기업 운영을 신조로 생각하는 분”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올 1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된 것에 대해서는 “기업 통치의 법치와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저희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자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한일 양국에서 신 회장을 지지하려는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기, 신 전 부회장의 행보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그는 당초 계획한 출국 일정을 미루고 칩거에 들어갔다. 한일 양국의 지지 입장이 신 전 부회장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한일 양국의 일사분란 한 ‘신동빈 지지’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형제의 난 이후 이미지가 급락하고 있다”면서 “경영진이나 노조 입장에서는 오너 일가가 경영권 다툼을 빠른 시일 내 끝내고 경영을 정상화 시키길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 회장에게 경영권이 돌아가는 것이 신 전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에게 경영권이 돌아가는 것보다 향후 분란의 소지가 더 적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격호 총괄 회장의 건강 이상 징후가 한일 경영진들의 신 회장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동안 “신 총괄 회장이 신 회장을 평소에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신 회장의 경영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 측은 이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령화되면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상황은 신 회장 측에게 한동안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치부를 드러내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공개한 영상 속 신 총괄회장의 모습에서 그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곳곳에 포착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어눌한 말투와 말이 꼬이는 모습 그리고 논리에 맞지 않은 말을 하는 모습이 종종 노출된 것. 특히, 신 전 부회장 측이 공개한 내용이라 전후 사정을 알 수 없어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은 한층 강화됐다.
 
쓰쿠다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7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 오셨을 때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면담을 했다”며 “처음에는 굉장히 침착하셨고 아주 문제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대화를 나누는 도중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같은 질문을 하신다든지, 말씀드린 걸 다시 말씀하신다든지, 저는 일본 담당인데 한국 담당으로 헷갈리기도 했다”며 “생각해 보면 93세이니까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 같은 목격담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롯데 계열사의 한 사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중에 알려진 신 총괄회장 건강에 대한 소문들은 사실이 맞다”며 “수년 전부터 본인이 직접 자른 임원들을 찾거나 부르는 경우도 많다”고 전하면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했다.
 
한국롯데 주축
지지세력 늘어
 

신 총괄회장이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자 우호지분 확보 경쟁도 신 회장에게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그동안 아버지 신 총괄회장 및 가족들의 지분과 자신의 지분을 합치고 나머지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되찾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오너일가의 지분이 신 총괄회장의 지분을 제외하고는 지배구조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윤사나 일본 롯데홀딩스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많지 않다. 결국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우호지분 확보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이는데 신 총괄 회장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설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신 회장 쪽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동안 우호지분의 향방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왔다. 지주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 신 총괄회장과 롯데 창업 초기부터 함께해온 멤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악화설이 중론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주들도 신 회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이란 분석이 서서히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초반 우세 신동주
뒷심 부족에 고전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한국말 구사능력 차이도 둘에 대한 평가를 갈라 놓았다. 신 전 부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거나 일본어로 인터뷰해 ‘롯데는 일본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냈다. 신 전 회장 측은 신 전 회장이 그동안 일본에서 나고 자라고 일본 롯데에서만 경영을 해왔다고 해명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을 돌리는 데는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또한, 한국에 입국한 이후 줄곧 동생 신동빈 회장을 깎아내리는 폭로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도 국민 정서상 반감을 샀다. 신 전 부회장은 귀국 후 “신동빈 회장의 왜곡된 정보로 내가 (일본롯데에서) 영구 추방됐다”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한테 맞아서 아버지를 안 본다” “아버지가 신 회장을 교도소에 보내려고 했다” 등을 폭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신 전 부회장이 귀국 후 했던 행보는 자충수가 돼 자신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일까지 여론전에 펼치다가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서자 칩거 중이다.
 
 
반면 신 회장은 한국에 귀국한 이후 줄곧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말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또한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택했다. 그는 한국에 온 이후 형제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회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입국한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제2롯데월드 현장을 방문하며 회사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는 모습이었으며, 지난 5일에는 계열사 사장들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현안 챙기기에 들어갔다.
 
신격호 총괄회장
건강이상 징후도
 
업계 관계자는 “귀국 후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행보가 판이하게 갈리면서 신 회장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신 전 부회장은 귀국 후 분란을 만드는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신 회장은 ‘형제의 난’ 이후 발생한 회사의 분란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설명했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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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