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기무사 권력암투 막후

정보기관 파워게임…충성경쟁 무리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해킹 파문과 관련해 의외의 사실이 고개를 들었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소속 S 소령의 휴대전화가 감청된 것이다. 관련 배경을 놓고 기무사를 겨냥한 조직적인 사찰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경쟁 정보기관을 상대로 일종의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란히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을 시도했고,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하며 '정보전'에 나섰다. 문제는 국정원 쪽의 의욕이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단 1명의 피해자. 국정원 해킹 사건이 폭발력을 갖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 중개업체 나나테크 사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믿어야 한다"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국민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부인

우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혹은 공안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고발 내용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에 유리한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종 기소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만큼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2014년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 본진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국정원은 3년 연속 압수수색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전망이다. 국정원으로서는 박근혜정부 들어 사실상 경쟁관계였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는 터라 모욕감이 더하다. 국정원은 지난 14일 첫 해명에 나선 뒤 줄곧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이 대상"이라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해킹수사 배당…압수수색 불가피
기무사 소령 상대 RCS 사용 감청 의혹


또 이 원장은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회선씩 프로그램 20회선을 구입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원장의 해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해킹팀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정황이 나온다. 특히 국정원의 프로그램 구매 대행업체인 나나테크는 2012년 12월6일 '긴급'이란 제목의 메일에서 "30회선 사용권을 한 달간 임시로 사용하게 해 달라"라고 해킹팀에 주문했다.

국정원 관계자로 알려진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이하 데빌엔젤)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해킹팀에 스파이웨어를 심은 가짜 URL 제작을 의뢰했다. '떡볶이 맛집 소개' '금천구 벚꽃축제' '메르스 Q&A' 등 자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주제로 만든 URL은 195개에 달했다.

지난 17일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국민의 국정원"이라며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국정원 주장의 핵심은 '20명분의 프로그램만 구입했기 때문에 최대 해킹 대상자가 2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동시 감청 대상이 20명일뿐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꾸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다. 야당 및 시민진영의 의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가 정보기관의 감청 타깃이 고작 20명에 그쳤겠느냐는 것이다.

'1명의 피해자'
정보요원 가능성

하지만 국정원의 해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감청의 동기와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면 일반 시민은 사찰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의 감청은 처음부터 특정인을 겨냥해 설계되고 실시간 감시를 주된 목표로 삼는다. 언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깃이 많으면 그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의 수요가 증가한다. 어느 순간 조직이 가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일부 타깃은 제외될 확률이 높다. 국정원이 제아무리 '빅브라더'를 꿈꾼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고3 수험생의 일상까지 속속들이 챙길 여력은 없다. 단 예외는 있다. 해당 수험생이 세월호 사건의 생존자라면 혹은 고위공직자·재벌총수·정치인의 자녀라면 감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이 정보기관의 속성이다.


국정원은 분명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누군가가 외국인인지 내국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유추할 수 있는 건 국정원의 상시 감청 대상에 '사회고위층'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노태우정부 때부터 김대중정부까지 일명 '미림팀'을 가동해 국회의원·학자·언론인 등 사회고위층 5000여명을 상대로 대통령 승인 하에 불법 도·감청을 자행했다.

그렇다면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최종 타깃은 누구였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언론에 소개됐다. <시사IN> 등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기무사 소속 소령 S씨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국정원이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를 사용, 자신을 감시했다"라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S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외부로 공표된 날은 지난 10일이다. 국정원 해킹 의혹이 각 일간지에 보도되던 시점과 맞물린다. 이날 국방부 검찰단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및 군형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S씨를 재판에 넘겼다고 알렸다. S씨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 측 기관요원으로 추정되는 A씨에게 3차례에 걸쳐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S씨가 유출한 군사자료는 해군 함정 관련 3급 기밀자료 등 27건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방부는 S씨가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밀 가운데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한 자료는 없었다"라고 밝혀 축소·은폐 의혹을 확산시켰다. S씨는 지난 1월 중국 측 기관요원에게 사드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받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무사 후배인 Y 대위(해군 소속)와 연락했다.

Y 대위는 자신이 빼낸 3급 기밀을 S씨의 지시대로 충남 계룡대 당직실에 맡겼다. 기밀 중에선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관련한 자료도 있었다. S씨는 이 자료를 자필로 가공해 A씨의 국내 협조자인 B씨와 만나 사진 형태의 정보로 제공했다. B씨에겐 "자료를 받은 즉시 파기해달라"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일찍부터 S씨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내사 진행 기간만 2년여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S씨는 6월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정보·보안분야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은 S씨는 주중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으로 발령받은 상태였다. 주중한국대사관에는 전임 국가안보실장인 김장수 대사가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기무사와 악연

그런데 S씨는 공항 수속을 밟던 중 긴급 체포됐다. 일각에선 김 대사를 포함한 군부에 일부러 망신을 준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국정원은 중국 측 협조자와 내통한 또 다른 장교를 찾고 있었다. 국정원은 앞서 감청 등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A씨와 연관된 내국인을 조사 대상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두말할 것 없이 '1호 타깃'은 기무사 소속 정보요원이었다.

<시사IN>에 따르면 S씨의 변호인은 국정원이 진행한 내사 단계에서 RCS의 사용을 의심했다. S씨가 나눈 채팅 내용과 통화 내역 등을 수사기관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군 검찰은 S씨가 A씨와 말다툼한 내용까지 꿰고 있었다. S씨에 대한 감청영장은 지난 6월까지 모두 90여차례나 발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청에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심'서 멀어진 공신들 반란
정권 바뀔 때마다 '보고 전쟁'

만약 국정원이 내사 초기 단계부터 S씨의 휴대전화를 겨냥해 RSC를 사용했다면 이는 기무사를 노린 기획수사로 의심된다. 반대로 A씨를 표적삼아 RCS를 사용했더라도 최종 결론은 마찬가지다. A씨와 친분을 쌓은 군인이 기무사 소속이란 사실을 국정원 측에서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턱대고 타국 정보요원인 A씨를 감청했다면 사건의 앞뒤 전개가 뒤틀리는 상황이다.

국정원은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음지의 권력을 놓친 적이 없다. 이런 국정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가 있다. 바로 12·12 사태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육군본부로 피신한 '그날' 양지와 음지의 권력은 모두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로 넘어갔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보안사도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추는 다시 국정원에게 기울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지난 2008년 기무사가 국정원이 있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관사 이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기무사 내곡동 이전에 가장 앞장서 반대한 기관이 국정원이다. 또 국정원은 기무사가 군사 관련 첩보 수집 외에는 할 수 없도록 정치권을 통해 견제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사로서도 정권을 전복한 '원죄' 때문에 정치권의 비호를 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잠잠했던 두 정보기관의 충성경쟁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다시 군불을 땠다. 이들은 나란히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으로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했다. 특히 기무사 쪽이 거는 기대가 더 컸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군인이고 동생 역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니 아무래도 군 출신을 더 우대하지 않겠냐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인 이들은 나란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지 못했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정원과 감청설비를 보강한 기무사 모두 자신들의 '정보'를 과시할 기회가 없었다. 대통령이 독대 보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조연이 된 사이 핵심권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대표되는 '법조그룹'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위시한 '문고리 그룹'이 장악했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없을 호기
불법 첩보수집

이 가운데 기무사는 2013년 11월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의 경질과 지난해 이어진 이재수 현 3군사령부 부사령관(당시 기무사령관)의 사임으로 권력 경쟁에서 이탈했다. 차기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정보 공작까지 했지만 끝내 이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반면 국정원은 '증거 조작' 사건 등 잇따른 실책에도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을 발탁한 것은 상징적이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가진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동향보고서다. 통치자는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 정보기관이 써 올리는 보고서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입법·행정·사법부 장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3년 차인 2015년은 국정원 입장에서 다시 없을 호기였다. 경쟁 기관인 기무사를 공격해 차별화를 꾀하고, 청와대의 신임을 회복한다면 '1인자' 자리까지 노려볼 만했다. 그러나 자신들과 거래한 해킹팀이 해킹당할 줄은 국정원조차 예상키 어려웠을 것이다.

정보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 파문의 배경으로 국정원 내부의 지나친 실적 경쟁을 꼽고 있다. 다른 권력기관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서려다보니 무리가 따랐다는 지적이다. 이는 내부 경쟁이 최고조에 이른 원 전 원장 때와 남재준 전 국정원장 재임 시기가 가장 의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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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