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기무사 권력암투 막후

정보기관 파워게임…충성경쟁 무리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해킹 파문과 관련해 의외의 사실이 고개를 들었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소속 S 소령의 휴대전화가 감청된 것이다. 관련 배경을 놓고 기무사를 겨냥한 조직적인 사찰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경쟁 정보기관을 상대로 일종의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란히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을 시도했고,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하며 '정보전'에 나섰다. 문제는 국정원 쪽의 의욕이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단 1명의 피해자. 국정원 해킹 사건이 폭발력을 갖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 중개업체 나나테크 사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믿어야 한다"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국민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부인

우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혹은 공안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고발 내용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에 유리한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종 기소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만큼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2014년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 본진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국정원은 3년 연속 압수수색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전망이다. 국정원으로서는 박근혜정부 들어 사실상 경쟁관계였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는 터라 모욕감이 더하다. 국정원은 지난 14일 첫 해명에 나선 뒤 줄곧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이 대상"이라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해킹수사 배당…압수수색 불가피
기무사 소령 상대 RCS 사용 감청 의혹


또 이 원장은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회선씩 프로그램 20회선을 구입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원장의 해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해킹팀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정황이 나온다. 특히 국정원의 프로그램 구매 대행업체인 나나테크는 2012년 12월6일 '긴급'이란 제목의 메일에서 "30회선 사용권을 한 달간 임시로 사용하게 해 달라"라고 해킹팀에 주문했다.

국정원 관계자로 알려진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이하 데빌엔젤)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해킹팀에 스파이웨어를 심은 가짜 URL 제작을 의뢰했다. '떡볶이 맛집 소개' '금천구 벚꽃축제' '메르스 Q&A' 등 자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주제로 만든 URL은 195개에 달했다.

지난 17일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국민의 국정원"이라며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국정원 주장의 핵심은 '20명분의 프로그램만 구입했기 때문에 최대 해킹 대상자가 2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동시 감청 대상이 20명일뿐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꾸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다. 야당 및 시민진영의 의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가 정보기관의 감청 타깃이 고작 20명에 그쳤겠느냐는 것이다.

'1명의 피해자'
정보요원 가능성

하지만 국정원의 해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감청의 동기와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면 일반 시민은 사찰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의 감청은 처음부터 특정인을 겨냥해 설계되고 실시간 감시를 주된 목표로 삼는다. 언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깃이 많으면 그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의 수요가 증가한다. 어느 순간 조직이 가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일부 타깃은 제외될 확률이 높다. 국정원이 제아무리 '빅브라더'를 꿈꾼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고3 수험생의 일상까지 속속들이 챙길 여력은 없다. 단 예외는 있다. 해당 수험생이 세월호 사건의 생존자라면 혹은 고위공직자·재벌총수·정치인의 자녀라면 감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이 정보기관의 속성이다.


국정원은 분명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누군가가 외국인인지 내국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유추할 수 있는 건 국정원의 상시 감청 대상에 '사회고위층'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노태우정부 때부터 김대중정부까지 일명 '미림팀'을 가동해 국회의원·학자·언론인 등 사회고위층 5000여명을 상대로 대통령 승인 하에 불법 도·감청을 자행했다.

그렇다면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최종 타깃은 누구였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언론에 소개됐다. <시사IN> 등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기무사 소속 소령 S씨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국정원이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를 사용, 자신을 감시했다"라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S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외부로 공표된 날은 지난 10일이다. 국정원 해킹 의혹이 각 일간지에 보도되던 시점과 맞물린다. 이날 국방부 검찰단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및 군형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S씨를 재판에 넘겼다고 알렸다. S씨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 측 기관요원으로 추정되는 A씨에게 3차례에 걸쳐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S씨가 유출한 군사자료는 해군 함정 관련 3급 기밀자료 등 27건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방부는 S씨가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밀 가운데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한 자료는 없었다"라고 밝혀 축소·은폐 의혹을 확산시켰다. S씨는 지난 1월 중국 측 기관요원에게 사드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받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무사 후배인 Y 대위(해군 소속)와 연락했다.

Y 대위는 자신이 빼낸 3급 기밀을 S씨의 지시대로 충남 계룡대 당직실에 맡겼다. 기밀 중에선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관련한 자료도 있었다. S씨는 이 자료를 자필로 가공해 A씨의 국내 협조자인 B씨와 만나 사진 형태의 정보로 제공했다. B씨에겐 "자료를 받은 즉시 파기해달라"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일찍부터 S씨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내사 진행 기간만 2년여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S씨는 6월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정보·보안분야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은 S씨는 주중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으로 발령받은 상태였다. 주중한국대사관에는 전임 국가안보실장인 김장수 대사가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기무사와 악연

그런데 S씨는 공항 수속을 밟던 중 긴급 체포됐다. 일각에선 김 대사를 포함한 군부에 일부러 망신을 준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국정원은 중국 측 협조자와 내통한 또 다른 장교를 찾고 있었다. 국정원은 앞서 감청 등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A씨와 연관된 내국인을 조사 대상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두말할 것 없이 '1호 타깃'은 기무사 소속 정보요원이었다.

<시사IN>에 따르면 S씨의 변호인은 국정원이 진행한 내사 단계에서 RCS의 사용을 의심했다. S씨가 나눈 채팅 내용과 통화 내역 등을 수사기관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군 검찰은 S씨가 A씨와 말다툼한 내용까지 꿰고 있었다. S씨에 대한 감청영장은 지난 6월까지 모두 90여차례나 발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청에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심'서 멀어진 공신들 반란
정권 바뀔 때마다 '보고 전쟁'

만약 국정원이 내사 초기 단계부터 S씨의 휴대전화를 겨냥해 RSC를 사용했다면 이는 기무사를 노린 기획수사로 의심된다. 반대로 A씨를 표적삼아 RCS를 사용했더라도 최종 결론은 마찬가지다. A씨와 친분을 쌓은 군인이 기무사 소속이란 사실을 국정원 측에서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턱대고 타국 정보요원인 A씨를 감청했다면 사건의 앞뒤 전개가 뒤틀리는 상황이다.

국정원은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음지의 권력을 놓친 적이 없다. 이런 국정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가 있다. 바로 12·12 사태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육군본부로 피신한 '그날' 양지와 음지의 권력은 모두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로 넘어갔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보안사도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추는 다시 국정원에게 기울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지난 2008년 기무사가 국정원이 있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관사 이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기무사 내곡동 이전에 가장 앞장서 반대한 기관이 국정원이다. 또 국정원은 기무사가 군사 관련 첩보 수집 외에는 할 수 없도록 정치권을 통해 견제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사로서도 정권을 전복한 '원죄' 때문에 정치권의 비호를 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잠잠했던 두 정보기관의 충성경쟁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다시 군불을 땠다. 이들은 나란히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으로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했다. 특히 기무사 쪽이 거는 기대가 더 컸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군인이고 동생 역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니 아무래도 군 출신을 더 우대하지 않겠냐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인 이들은 나란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지 못했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정원과 감청설비를 보강한 기무사 모두 자신들의 '정보'를 과시할 기회가 없었다. 대통령이 독대 보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조연이 된 사이 핵심권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대표되는 '법조그룹'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위시한 '문고리 그룹'이 장악했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없을 호기
불법 첩보수집

이 가운데 기무사는 2013년 11월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의 경질과 지난해 이어진 이재수 현 3군사령부 부사령관(당시 기무사령관)의 사임으로 권력 경쟁에서 이탈했다. 차기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정보 공작까지 했지만 끝내 이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반면 국정원은 '증거 조작' 사건 등 잇따른 실책에도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을 발탁한 것은 상징적이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가진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동향보고서다. 통치자는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 정보기관이 써 올리는 보고서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입법·행정·사법부 장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3년 차인 2015년은 국정원 입장에서 다시 없을 호기였다. 경쟁 기관인 기무사를 공격해 차별화를 꾀하고, 청와대의 신임을 회복한다면 '1인자' 자리까지 노려볼 만했다. 그러나 자신들과 거래한 해킹팀이 해킹당할 줄은 국정원조차 예상키 어려웠을 것이다.

정보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 파문의 배경으로 국정원 내부의 지나친 실적 경쟁을 꼽고 있다. 다른 권력기관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서려다보니 무리가 따랐다는 지적이다. 이는 내부 경쟁이 최고조에 이른 원 전 원장 때와 남재준 전 국정원장 재임 시기가 가장 의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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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