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기무사 권력암투 막후

정보기관 파워게임…충성경쟁 무리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해킹 파문과 관련해 의외의 사실이 고개를 들었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소속 S 소령의 휴대전화가 감청된 것이다. 관련 배경을 놓고 기무사를 겨냥한 조직적인 사찰 의혹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경쟁 정보기관을 상대로 일종의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란히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을 시도했고,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하며 '정보전'에 나섰다. 문제는 국정원 쪽의 의욕이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단 1명의 피해자. 국정원 해킹 사건이 폭발력을 갖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지난 23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해킹 프로그램 중개업체 나나테크 사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믿어야 한다"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국민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부인

우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혹은 공안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고발 내용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에 유리한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종 기소 여부가 불투명함에도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만큼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2014년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 본진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국정원은 3년 연속 압수수색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전망이다. 국정원으로서는 박근혜정부 들어 사실상 경쟁관계였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는 터라 모욕감이 더하다. 국정원은 지난 14일 첫 해명에 나선 뒤 줄곧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이 대상"이라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해킹수사 배당…압수수색 불가피
기무사 소령 상대 RCS 사용 감청 의혹


또 이 원장은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회선씩 프로그램 20회선을 구입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원장의 해명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해킹팀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정황이 나온다. 특히 국정원의 프로그램 구매 대행업체인 나나테크는 2012년 12월6일 '긴급'이란 제목의 메일에서 "30회선 사용권을 한 달간 임시로 사용하게 해 달라"라고 해킹팀에 주문했다.

국정원 관계자로 알려진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이하 데빌엔젤)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해킹팀에 스파이웨어를 심은 가짜 URL 제작을 의뢰했다. '떡볶이 맛집 소개' '금천구 벚꽃축제' '메르스 Q&A' 등 자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주제로 만든 URL은 195개에 달했다.

지난 17일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은 국민의 국정원"이라며 "국정원이 왜 무엇 때문에 우리 국민을 사찰하겠습니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국정원 주장의 핵심은 '20명분의 프로그램만 구입했기 때문에 최대 해킹 대상자가 2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동시 감청 대상이 20명일뿐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꾸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다. 야당 및 시민진영의 의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가 정보기관의 감청 타깃이 고작 20명에 그쳤겠느냐는 것이다.

'1명의 피해자'
정보요원 가능성

하지만 국정원의 해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감청의 동기와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면 일반 시민은 사찰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정보기관의 감청은 처음부터 특정인을 겨냥해 설계되고 실시간 감시를 주된 목표로 삼는다. 언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깃이 많으면 그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의 수요가 증가한다. 어느 순간 조직이 가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일부 타깃은 제외될 확률이 높다. 국정원이 제아무리 '빅브라더'를 꿈꾼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고3 수험생의 일상까지 속속들이 챙길 여력은 없다. 단 예외는 있다. 해당 수험생이 세월호 사건의 생존자라면 혹은 고위공직자·재벌총수·정치인의 자녀라면 감시의 유혹을 느끼는 것이 정보기관의 속성이다.


국정원은 분명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 누군가가 외국인인지 내국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유추할 수 있는 건 국정원의 상시 감청 대상에 '사회고위층'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노태우정부 때부터 김대중정부까지 일명 '미림팀'을 가동해 국회의원·학자·언론인 등 사회고위층 5000여명을 상대로 대통령 승인 하에 불법 도·감청을 자행했다.

그렇다면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최종 타깃은 누구였을까.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언론에 소개됐다. <시사IN> 등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기무사 소속 소령 S씨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국정원이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를 사용, 자신을 감시했다"라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S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외부로 공표된 날은 지난 10일이다. 국정원 해킹 의혹이 각 일간지에 보도되던 시점과 맞물린다. 이날 국방부 검찰단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및 군형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S씨를 재판에 넘겼다고 알렸다. S씨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 측 기관요원으로 추정되는 A씨에게 3차례에 걸쳐 군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S씨가 유출한 군사자료는 해군 함정 관련 3급 기밀자료 등 27건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국방부는 S씨가 유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밀 가운데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관련한 자료는 없었다"라고 밝혀 축소·은폐 의혹을 확산시켰다. S씨는 지난 1월 중국 측 기관요원에게 사드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받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무사 후배인 Y 대위(해군 소속)와 연락했다.

Y 대위는 자신이 빼낸 3급 기밀을 S씨의 지시대로 충남 계룡대 당직실에 맡겼다. 기밀 중에선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와 관련한 자료도 있었다. S씨는 이 자료를 자필로 가공해 A씨의 국내 협조자인 B씨와 만나 사진 형태의 정보로 제공했다. B씨에겐 "자료를 받은 즉시 파기해달라"라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일찍부터 S씨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내사 진행 기간만 2년여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S씨는 6월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정보·보안분야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은 S씨는 주중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으로 발령받은 상태였다. 주중한국대사관에는 전임 국가안보실장인 김장수 대사가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기무사와 악연

그런데 S씨는 공항 수속을 밟던 중 긴급 체포됐다. 일각에선 김 대사를 포함한 군부에 일부러 망신을 준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국정원은 중국 측 협조자와 내통한 또 다른 장교를 찾고 있었다. 국정원은 앞서 감청 등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A씨와 연관된 내국인을 조사 대상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두말할 것 없이 '1호 타깃'은 기무사 소속 정보요원이었다.

<시사IN>에 따르면 S씨의 변호인은 국정원이 진행한 내사 단계에서 RCS의 사용을 의심했다. S씨가 나눈 채팅 내용과 통화 내역 등을 수사기관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군 검찰은 S씨가 A씨와 말다툼한 내용까지 꿰고 있었다. S씨에 대한 감청영장은 지난 6월까지 모두 90여차례나 발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감청에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심'서 멀어진 공신들 반란
정권 바뀔 때마다 '보고 전쟁'

만약 국정원이 내사 초기 단계부터 S씨의 휴대전화를 겨냥해 RSC를 사용했다면 이는 기무사를 노린 기획수사로 의심된다. 반대로 A씨를 표적삼아 RCS를 사용했더라도 최종 결론은 마찬가지다. A씨와 친분을 쌓은 군인이 기무사 소속이란 사실을 국정원 측에서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턱대고 타국 정보요원인 A씨를 감청했다면 사건의 앞뒤 전개가 뒤틀리는 상황이다.

국정원은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음지의 권력을 놓친 적이 없다. 이런 국정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가 있다. 바로 12·12 사태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이 육군본부로 피신한 '그날' 양지와 음지의 권력은 모두 국군보안사령부(현 기무사)로 넘어갔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보안사도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의 추는 다시 국정원에게 기울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지난 2008년 기무사가 국정원이 있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관사 이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기무사 내곡동 이전에 가장 앞장서 반대한 기관이 국정원이다. 또 국정원은 기무사가 군사 관련 첩보 수집 외에는 할 수 없도록 정치권을 통해 견제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사로서도 정권을 전복한 '원죄' 때문에 정치권의 비호를 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잠잠했던 두 정보기관의 충성경쟁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다시 군불을 땠다. 이들은 나란히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으로 당시 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했다. 특히 기무사 쪽이 거는 기대가 더 컸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군인이고 동생 역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니 아무래도 군 출신을 더 우대하지 않겠냐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인 이들은 나란히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지 못했다.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정원과 감청설비를 보강한 기무사 모두 자신들의 '정보'를 과시할 기회가 없었다. 대통령이 독대 보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조연이 된 사이 핵심권력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대표되는 '법조그룹'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위시한 '문고리 그룹'이 장악했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없을 호기
불법 첩보수집

이 가운데 기무사는 2013년 11월 장경욱 당시 기무사령관의 경질과 지난해 이어진 이재수 현 3군사령부 부사령관(당시 기무사령관)의 사임으로 권력 경쟁에서 이탈했다. 차기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정보 공작까지 했지만 끝내 이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반면 국정원은 '증거 조작' 사건 등 잇따른 실책에도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을 발탁한 것은 상징적이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가진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동향보고서다. 통치자는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 정보기관이 써 올리는 보고서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입법·행정·사법부 장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3년 차인 2015년은 국정원 입장에서 다시 없을 호기였다. 경쟁 기관인 기무사를 공격해 차별화를 꾀하고, 청와대의 신임을 회복한다면 '1인자' 자리까지 노려볼 만했다. 그러나 자신들과 거래한 해킹팀이 해킹당할 줄은 국정원조차 예상키 어려웠을 것이다.

정보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 파문의 배경으로 국정원 내부의 지나친 실적 경쟁을 꼽고 있다. 다른 권력기관보다 정보에서 우위에 서려다보니 무리가 따랐다는 지적이다. 이는 내부 경쟁이 최고조에 이른 원 전 원장 때와 남재준 전 국정원장 재임 시기가 가장 의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